통합 검색어 입력폼

[인터뷰] <낙원의 밤> 전여빈, "배우로서, 또 여성 배우로서 꼭 하고 싶었던 작품"

조회수 2021. 4. 16. 22:44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전여빈.

식상한 표현 같지만, 전여빈은 어떤 캐릭터를 입혀도 납득할 만한 인물로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초월한 듯 냉소적인 <낙원의 밤> 재연과 언제나 하이톤으로 톡톡 튀는 드라마 <빈센조>의 홍차영 변호사를 비슷한 시기에 만났지만, 전여빈이기에 이 둘은 각자의 작품에서 온전하게 제 역할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제 만난 그 배우가 오늘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그게 전여빈의 진가다.


“배우로서, 또 여성 배우로서도 꼭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는 <낙원의 밤>의 재연은 그가 욕심낼 만큼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란 점에서 시선을 끈다. 핏빛 누아르 속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는 재연은 이 장르의 익숙한 여성 주인공의 서사와 분명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전여빈은 이것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완벽하게 구현했다. 끝내 포기하지 않는 재연의 질주가 슬프고 처연하지만, 오히려 반가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작품의 의미와 연기의 목표, 배우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까지. 지난 4월 2일,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 된 제주도에서 만난 전여빈과의 대화를 전한다.

※ 이 인터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여빈.

드라마 <빈센조>의 홍차영 변호사 인기가 대단하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낙원의 밤>까지 선보이게 됐다.

<낙원의 밤>이 관객들과 만나는 날을 기다려왔다. <낙원의 밤>은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그 공간 안에서 태구(엄태구)와 재연으로 살아간 순간들이 오롯이 담겨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나도 빨리 보고 싶다.


<낙원의 밤>은 어떻게 참여했나. 재연에게 끌린 점은 무엇인가.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을 한창 촬영하고 있을 때 박훈정 감독께서 미팅하고 싶다는 연락을 하셨다. 대략 어떤 이야기인지 듣고 감독님을 뵈러 갔고, 재연을 보면 된다고 하시며 그 자리에서 시나리오를 주셨다. <낙원의 밤>을 처음 읽었을 때는 정통 누아르 영화였다. 근데 기존 누아르와의 차이점은 바로 재연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차별점을 가져다주는 역할이라면 배우로서, 또 여성 배우로서도 꼭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누아르 속의 여성 캐릭터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문 적이 많았다. <낙원의 밤>의 재연은 그런 한계를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기 결정권이 뚜렷한 캐릭터란 점이 새롭다. <마녀>(2018) 박훈정 감독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점점 진화했다. <마녀>의 주인공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였다면 재연은 스스로의 목표를 가지고 단련한 점이 그렇다. <낙원의 밤> 재연은 어떤 인물인가.

<낙원의 밤>은 박훈정 감독님이 8년 전에 쓰신 작품이라고 하셨다. <마녀>보다 훨씬 전이다. 박훈정 감독님께 <낙원의 밤>은 애착이 커 제작까지 더 고심을 했던 작품이라고 했다. 재연은 그냥 평범한 아이였는데 어떤 계기로 인해 목표가 생겼고, 이 목표가 재연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단련해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고 구원도 바라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낙원의 밤> 재연(전여빈).

재연은 자의든 타의든 죽음에 대해 초월한 사람이 됐다. (가족이 살해되는 것을 지켜본)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겪었고, (불치의 병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불행을 가졌다. 재연의 삶을 어떻게 바라봤나.

재연의 상황이 너무나 벼랑 끝에 서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몰입하기 쉬웠다.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는 그 어느 것도 더이상 소중할 게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에 초연하고 덤덤하며 거침없는 재연의 행동이 이해되더라. 그리고 재연의 전사를 통해 그의 인생을 이해하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다가와 연기하기 수월했다. 모든 이야기에 다 드러나니까.


삼촌은 재연의 불행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나 남은 혈육이지만 어떻게 보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재연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 쏘다 보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게 삼촌 아닌가. 재연이 가진 삼촌에 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단순한 인과관계로 보면 삼촌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다르다. 삼촌의 잘못이 있었지만, 삼촌에게 그 대가를 묻는 사람들은 삼촌 말고 그 옆의 약한 사람들에게 화살을 겨눈다. 삼촌을 더 괴롭게 하기 위해서 그런 거다. 그러니까 재연의 불행은 삼촌의 잘못은 아니다. 삼촌의 아픔을 이용한 자들이 잘못한 거다. 재연은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어렸을 때는 삼촌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겠지만 삼촌과의 시간을 보내면서, 혹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면서 생각이 바뀌었을 것 같다. 하지만 삼촌에 대한 미움은 여전할 것 같다. 그래도 곁에 있어 줬으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또 절대 표현할 수는 없고. 이런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이 재연의 마음속에서 상충되지 않을까. 태구가 온 걸 재연이 싫어하는 것은 삼촌에게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 때문이다. 평온했던 삼촌과의 공간에 그 평온을 위협하는 인물이 들어오니까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다.

<낙원의 밤> 재연(전여빈)과 태구(엄태구).

<낙원의 밤>은 누아르의 기본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감성적인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다. 특별히 애착이 가거나 눈여겨 봤으면 하는 장면이 있나.

감독님이 내게 물어보신 게 있다. 태구와 재연의 관계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냐고. 그래서 나는 로맨스는 아니고 동료애 같은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되게 좋아하시더라. 절대 로맨스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같은 불행을 겪는 것이 서로를 붙여주는 동력이 된 거다. 그런 점에서 바닷가에 태구와 재연이 함께 서 있는 장면을 좋아한다. 잠시나마 각자의 행복을 느끼면서 순간의 평온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 위험 속에 둘러싸여 있어 그 평온의 순간이 아주 짧지만, 그 장면이 태구와 재연의 관계와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해준 장면이었던 것 같다.

(왼쪽부터) 엄태구, 차승원, 전여빈.

엄태구 배우도 분위기 하면 전여빈 배우 못지않다. 엄태구 배우와의 연기는 어땠나.

나는 <낙원의 밤>을 통해서 정말 좋고 친한 친구를 만났다. 엄태구 배우가 가진 좋은 에너지가 나에게 그대로 전이가 됐다.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극찬할 것밖에 없는 배우다. 좋은 영향을 주고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배우다.


차승원 배우의 존재감도 대단하다. 단순한 악인 아닌 나름의 원칙과 멋이 있더라. 차승원 배우의 연기를 본 소감이 궁금하다.

첫째로 비주얼적으로 압도하는 멋짐이 있으시다. 하얀 의상으로 등장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시선이 모두 선배님께 머물게 되더라. 둘째로 노련함과 센스다. 카메라가 켜지면 완벽하게 마 이사로 분해서 연기를 하시는데 그 연기 안에 희한한 재치가 있었다. 그게 원래 선배님이 가지고 계신 바이브이기도 한데, 그게 마 이사와 너무 잘 조합되어 훨씬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하는 거다. 후배 입장에서 선배님의 그런 노련한 센스가 부럽고 또 자극이 됐다. 현장에서 장난도 많이 거셨다. 우리 <낙원의 밤>이 누아르고 갱스터이다 보니 현장 분위기가 너무 세다. 모든 배우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선배님이 와 주시면 그런 유머들로 꽁꽁 긴장되어 있는 우리 마음을 녹여 주시곤 했다. 그런 면에서 캐릭터 말고도 배우, 그리고 인간 차승원 선배님께도 배운 게 많았다. 나도 더 큰 선배가 된다면 저런 에티튜드를 갖고 싶다.

<낙원의 밤> 현장 스틸.

재연의 활약이 돋보이는 장면에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 같은 우아함과 <영웅본색>(1987) 같은 홍콩영화의 흔적도 보였다. 분노가 거름이 되고 많은 연습과 준비가 실행을 이끌었다면, 마 이사를 앞에 두고 탄창을 바꾸는 손이 떨리는 모습은 또 현실감을 주더라.

재연의 분노가 극에 달하는 아주 중요한 신이다. 감정의 밀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함부로 들떠 보이거나 그렇다고 해서 긴장이 너무 없지 않게 아주 묵직한 나만의 재연의 공기를 만들려 했다. 이게 말로 표현하면 이런 데 아무튼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을 눈앞에 마주하게 됐을 때, 실제 그 감정을 가늠하기는 어렵겠지만 손이 벌벌 떨릴 것 같았다. 감독님의 배려로 이 장면을 거의 마지막 회차에 찍었다. 내 감정이 차곡차곡 잘 쌓인 상태에서 촬영하게 되어 더 잘 표현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리허설 총기 액션 연습은 정말 열심히 했다. 재연은 정말 총을 잘 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조건 잘 표현해야 했다. 그런데 총기 액션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서 많이 칭찬해 주셨다. (웃음) 처음 연습할 때는 소리에 놀라고 생각보다 엄청나게 센 반동에도 놀랐는데 그런 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전여빈.

유리 멘탈이라 연기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가 두렵다고도 했는데 역할에 몰두한 전여빈은 절대 그럴 것 같지 않다. <빈센조> 초기 반응을 알고 있나.

드라마는 굉장히 긴 호흡을 달려가는 과정이고 기승전결 중 ‘기’만 봤을 때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배우 입장에서는 단순히 이 작은 호흡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를 받아들이면서 감독님, 작가님과 충분히 상의하며 캐릭터를 구축해 나간다. <빈센조>의 현장은 용기와 확신을 가진 현장이었다. 단 한 번도 촬영을 다녀와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홍차영이 <빈센조>라는 세계관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의심을 한 적이 없다. 방영 초반 시청자분들의 의심의 눈초리가 마음 아프긴 했지만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패가 뒤집힐 것이로 생각했다.

그런 모든 평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배우에게 당연한 과정인 것 같다. 내가 늘 사람들이 박수 쳐 주는 역할만 할 수 없고, 물론 그 역할만 잘하는 것도 굉장한 성과라고 보지만 나는 여기저기 막 찢기고 더 넓어지는 배우로 성장하는 게 꿈이다. 그러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런 삶을 원하고 동경했기 때문에 배우를 선택한 거다.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서.

<죄 많은 소녀>(2018) 영희(전여빈).

<죄 많은 소녀>(2018)는 자신감에 더해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준 작품이다.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회가 없던 사람이었는데 기회가 생기게 해준 작품이다. 아무리 배우로 살고 싶어 하더라도 역할들이 내게 와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지 않나. 그 길을 열어 준 작품이기 때문에 내게 제일 소중하고 감사한 작품이다.


배우의 길을 택한 이유는 뭔가.

수능에 실패한 일반적인 고등학생이라면 다들 좌절감을 느끼게 될 거다. 가장 큰 목표가 무너지는 것이고, 왠지 도태되어 내 인생이 다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래도 당시에 내 안에서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의지가 있었다. 다만 그게 뭔지는 몰랐었다. 당시 논술 준비를 위해 고전 영화를 많이 봤다. 솔직히 말하면 순전히 대학 입시를 위해서 본 거였다. 그러던 중 <죽은 시인의 사회>(1990)를 보게 됐는데 내 마음에서 어떤 불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친오빠가 지금은 다른 일을 하지만 원래 연극영화과를 준비했었다. 오빠에게 나 이런 영화를 봤는데 영화 쪽 일을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얘기해봤더니 흔쾌히 너는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더라. 당시에 나는 누군가의 응원이 절실했었나 보다. 그렇게 묻고 시작할 정도면 내 안의 희망과 상관없이 누군가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이 되게 듣고 싶었다. 오빠에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다시 한번 내 인생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도전한다면 한번은 이 영화라는 멋진 세상을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후 연기학원에 들어갔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연기학원에서 감정을 숨길 필요 없이 텍스트에 따라서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으며 자기감정을 드러낼수록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동안 내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했는데 안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의 해제를 느끼게 된 거다. 그러면서 학교 시험 준비를 했고 대학에 들어가 수업을 들으며 애정이 더욱더 깊어졌다.

전여빈.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나.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부끄럽지 않은 연기. 자기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아니까. 내가 수긍할 수 있는 작품에 내가 어떤 궁금증이나 혹은 확신이 생기는 작품 안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배우가 되고 싶다.


차기작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글리치>다.

시놉시스를 보면 엄청나게 귀엽고 엉뚱한 작품이다. 나는 지효라는 역할을 맡았다. 지효는 오랫동안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고 결혼도 약속했는데 이 남자친구가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 지효는 남자친구가 UFO에 납치되었다고 믿고 있고, 그 UFO와 외계인의 행적을 찾아 떠나는 내용이다.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