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엄태구를 만나 <낙원의 밤>에 대해 물어봤다

조회수 2021. 4. 15.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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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낙원의 밤> 속 태구(엄태구)는 말 수가 별로 없다. 관객은 태구의 눈을 통해, 결단력 있는 행동을 통해 그의 마음을 읽는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함이 담겨있는 건 배우 엄태구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뷰는 <낙원의 밤>의 배경이었던 제주도에서 이뤄졌다. 제작 보고회와 영상 인터뷰를 연이어 마친 엄태구와 마주 앉아 <낙원의 밤>의 태구, 그리고 배우 엄태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두 손을 모은 채 고심하던 그가 내놓은 답은 이렇다. “한 작품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다”고. 담백한 답에 담긴 꾸준함과 성실함은 앞으로 그에 비례해 탄생할 엄태구의 새로운 캐릭터들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낙원의 밤> 현장을 회상하던 그는 큰 눈을 반짝이며 “신기하고 재미있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촬영장에 대한 그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


- 제주도에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줄 몰랐다.

= 무서웠다. 비행기에서 바이킹 타는 느낌이 계속 나더라. 집에 가는 길이 걱정이다. 내일은 비까지 온다고 하던데….


- 개인적으로는 어떤 날씨를 좋아하나.

= 그때그때 다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웃음)


- 오늘 날씨는 <낙원의 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제주도는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한데, 촬영 당시에 날씨는 어땠나.

= 이렇게 궂은 날씨라기보단, 감독님은 너무 쨍쨍한 것보단 흐린 날씨를 원하셨다. 촬영 당시 늘 날씨가 도와줬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스케줄마다 흐린 날씨가 계속됐다.


-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낌이 묘했을 것 같다. 영화 속 제주 공항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지 않나.

= 맞다. 오늘 나왔던 입구가 영화 속 태구가 제주도에 들어오는 장면을 촬영했던 게이트였다. 촬영 당시 생각이 나서 감회가 새로웠다.


-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을 만났다. 베니스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 반응보단 해외 반응을 먼저 받아보기도 했고. 초청된 소감은 어땠나.

= 일단 정말 감사했다. 너무 가보고 싶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제일 크고. (전 세계 관객을 만나는 소감은) 일단 신기하다? 그리고 반응이 궁금하다? 각 나라별, 또 국내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신기하고… 그중 설렘이 가장 큰 것 같다.

- 극 중 이름이 태구다. 카메라 앞에서 상대 배우들에게 “태구야” 불릴 때 좀 색다른 느낌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 태구란 이름을 보고 재미있다, 신기하다 느꼈던 건 대본을 처음 봤을 때다. 태구, 태구, 태구 이름이 쭉 나열되어 있고, 그 옆에 대사가 적혀있지 않나. 그때가 가장 신기했고. 막상 촬영할 땐 “태구야” 그러면 ‘나 부르는구나’ 했다. (웃음)


- 살다 보면 강한 예감이 올 때가 있다. 캐릭터 이름을 보고 이 역할 내가 연기할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들진 않던가.

= 약간 있었던 것 같다. 박훈정 감독님이 누아르란 장르에, 나를 생각하고 쓰셨나? 진짜 영광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일동 웃음) 그래도 너무 재미있었고 감사했고. 우연의 일치도 신기했다.


- 태구는 일터에선 잔인하지만, 믿을만한 이들에겐 본연의 따스함, 예상치 못한 순간의 다정함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갭 차이에서 오는 캐릭터의 매력이 배우 본인의 매력과 붙어 있어 더 높은 시너지를 빚어냈다고 느꼈다. 박훈정 감독이 캐스팅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 있나.

= 특별히… 없었던 것 같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게, 왜…. (일동 웃음) 저를 알기 전, 오래전에 써놓으신 시나리오였다고 들었다. 믿고 캐스팅해 주셔서 감사했고, 보답해드리고 싶었다.


- 제작보고회에서 박훈정 감독과 작업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낙원의 밤>을 선택하는 데 그 영향이 컸나.

= 감독님이 각본을 쓰신 <부당거래>도 좋아하고, <마녀> <신세계> 등 감독님 작품들을 평소에 되게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신세계>와는 또 다른 누아르를 준비 중이시라니, 너무 흥미로웠고. 대본도 너무 탄탄했다. <낙원의 밤>은 정통 누아르 공식을 따르는데, 여기에 재연이란 캐릭터가 들어오면서 신선하고 재미있어진다. 그런 점이 새로웠다.


- 그러고 보니 박훈정 감독이 쓴 <악마를 보았다>에 단역으로 출연하지 않았나. 그 이야기를 나눈 적 있나.

= 형사 4를 연기했다. 그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웃음)

- 시나리오 속 태구의 첫인상은 어땠나.

= (오랜 고민 후) 어렵겠다. 연기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초반에 큰 사건이 벌어지니까, 그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촬영에 임하면 비어 보일 것 같았다. 제주도에서 차 안에 앉아있는 평범한 장면을 촬영하면서도 그 기억을 어떻게든 계속 떠올려야 했고. 그런 부분이 쉽지 않았다.


- 태구는 죽음에 초연한 캐릭터다. 세상 끝으로 몰린 캐릭터의 내면을 구축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감독님과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며 잘 잡아갈 수 있었다. 태구가 첫 등장했을 때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의 인생이 다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지치고 피곤하고, 이 일을 그만두고 싶고, 그가 지닌 부담감이나 책임감. 이 모든 게 얼굴 표정이나 주름 등에 배어있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촬영할 때 메이크업은 생략하고 스킨, 로션만 발랐다. 입술도 일부러 건조하게, 트게 놔두고. 살도 9kg 증량했다. 복도 신이 생각난다. 태구의 얼굴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라. 그날이 첫 촬영이기도 했다.


- 센 캐릭터를 여러 번 연기하긴 했지만, 슈트를 차려입은 갱스터 캐릭터는 처음이다.

= 이렇게 호흡도 길고, 입체적인 캐릭터는 처음이다.


- 언젠가 한번 연기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나.

(눈을 크게 뜨며) 물론이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너무 많다. 저런 것도 해보고 싶고 이런 것도 해보고 싶고.

- 카체이싱 장면도 인상 깊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았다. 차에 타면, (몸을 앞뒤로 흔들며) 차가 막 이렇게 움직인다. 그 안에서 ‘뒤에서 부딪힌다’ 등의 상황 설명을 들으며 상상해서 연기한다. 생각보단 힘들더라. 차 안에서 같이 힘을 주면서 연기를 하다 보니 컷 소리가 나면 몸에 힘이 쫙 풀리고. 그래도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 영화 속 태구는 유독 많이 맞는다. 영화를 보며 “때리는 연기보다 맞는 연기가 편하다” 이야기해 줬던 <판소리 복서> 인터뷰 당시 대답이 떠올랐다.

= 맞다. 사실 액션은 저보다 무술팀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 액션 연기를 하다 보면 신체가 닿을 수도 있는데, 그분들은 프로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진짜 때리시지 않는다. 영화 속 위험한 액션들도 다 하시고. 현장에서 한 번 보시면, 정말 대단하다. 현장에서 빛나는 건 그분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 사우나 액션 신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문신 분장도 오래 걸렸을 것 같던데.

= 솔직히 말씀드리겠다. (비장한 태도에 일동 웃음) 그 장면은 하루 동안 촬영했다. 나중에는 좀 외롭더라. 혼자 다 벗고 있으니까.(웃음) 어떤 식으로 갈지 여러 번 액션 합을 맞춰봤는데, 그 장면도 같이 연기했던 배우분들이 더 힘드셨을 거다. 문신한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라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그리지 않고 붙여서 분장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생각보다 수월했던 것 같다.


- 외형적으로 신경을 쓰기도 했겠다.

(태구의 몸에 붙는 근육이) 헬스 근육이 아니라 생활 근육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사우나 신 촬영 당시가 9kg 증량했을 때였다. 증량을 위해선 일단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제주도에 와서부터는 살이 점점 빠졌는데, 극 중 상황과 잘 맞았던 것 같다.

- 극 중 태구는 물회를 즐겨 먹는다. 엄태구만의 소울 푸드가 있다면?

저는 뭐 아이스 바닐라 라테…. (다른 건 없냐는 질문에) 딱히… 없다.


- 그렇다면 선호하는 바닐라 라테가 있나. 파우더형, 시럽형?

= 그 차이는 사실 잘 모르는데 마시면 알 수 있다. 이 집이 원두를 좋은 걸 쓰는구나, 시럽이 수제인가? 혹은 살짝 밋밋하다든가. 그런 느낌은 확실히 아는 것 같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 카페는 괜찮은 곳이다. (웃음)

출처: <낙원의 밤>

- <낙원의 밤>의 제주도 촬영지 중 가장 좋았던 곳이 해안 도로였다고.

= 차 타고 바닷가 보면서 숙소 돌아갈 때. 그런데 조건이 있다. 그날 촬영에 만족스러운 연기가 나왔을 때다. 그런 후 차 탔을 때 기분이 가장 좋다. 거기에 풍경까지 완벽하면 더할 나위 없다.


- 태구와 재연이 함께 스쿠터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는 스틸 이미지만 보면 대만 로맨스 같다는 반응도 있더라.

= 아, 대만 로맨스. (웃음) 로맨스까진 모르겠는데. 그와 비슷한 감정선이 영화에 조금 담겨있는 것… 같나?


- 마음에 앙금이 남더라.

= 감사하다.


- 연기한 입장으로서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 저는 그게 궁금하다.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웃음)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모든 게 다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조금씩 의지했고. 그런 게 다 영화에 묻어난 것 같다. 피 분장하고 있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촬영했다. 감독님께서 중심을 잡고 계시니까, 배우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 한 분 한 분 모두 하나 되는 현장이었던 것 같다. 정말 멋진 현장이었다.


- 차승원 배우가 주연이었던 <시크릿>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 있다. <낙원의 밤>은 차승원 배우와 나란히 출연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을 것 같다.

= 물론이다. (앞서 진행한 영상 인터뷰 현장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직까지도 선배님과 대화할 때 떨린다. (웃음) 선배님은 너무 잘해주시는데 제가 그냥 떤다. (일동 웃음)


- 차승원 배우와 당시 이야기를 나눠본 적 있나.

= 없다. 아마 선배님은 저였는지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작품 현장에선 선배님 연기하신 현장 편집본을 볼 때마다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연기하시는 걸 보면 깜짝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 만우절에 넷플릭스 공식 계정이 엄태구 짤 공장장 계정으로 바뀌어 운영됐다. 혹시 봤나.

= 봤다. <낙원의 밤>에 출연한 현봉식 배우가 문자로 보내줬다. ‘행님, 이거 뭡니까’ 하고.


- 그 계정에서 엄태구 지하철역 광고 순례지도도 확인할 수 있던데.

=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자다 깨서 ‘이게 뭐지?’ 하고 봤는데. (거의 울먹이며) 넷플릭스에 정말 감사했다.


- SNS 운영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진 않지만, 팬으로서 물어본다. 엄지(엄태구 배우의 반려견)의 계정이라도 운영해보는 건 어떤가.

= 음… 고민해 보겠다. 엄지는 진짜… 좀 심하게 귀엽다.


- 차기작은 OCN에서 방영될 <홈타운>이다.

= 공포 스릴러 장르다. 대본이 너무 무서워서, (큰 숨을 들이쉬며) 보기 힘들다. 그래도 너무 탄탄하고 재미있다. 공포물을 잘 못 보는데도 불구하고 꼭 하고 싶다 생각했다. 극 중에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테러리스트 캐릭터를 연기한다.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저 역시 많이 기대하고 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분들과의 호흡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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