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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아무도 없는 곳> 연우진 "김종관 감독과 아무 말 안 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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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진은 여러 인터뷰에서 '귀 기울인다'는 표현을 자주 써왔다. 말을 내뱉는 것보다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걸 편안해하는 사람 같다는 인상은 그 표현으로부터 비롯됐다. 인터뷰 내내 연우진에게서 창석의 분위기를 느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연우진은 말을 아낀다, 아니 귀를 기울인다. 연우진이 연기한 창석은 주인공임에도 불구, 짐작할 수 없는 시간동안 이야기를 듣고, 목적지 없는 길을 걸으며 타인의 언어를 되뇔 뿐이다.

씨네플레이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연신 말을 하기보단 듣는 걸 편안해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제 말에 누군가 오해하거나 상처받는 게 너무 싫"어서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는 그는 듣는 것의 가치를 이해하며, 창석의 고독함을 이해하며, 정적과 여백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고 했다. 창석보다 더 창석 같았던. 한 마디, 한 마디에 허튼 단어를 섞지 않으려 노력하던. 울림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제 생각을 전하던 연우진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정말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서 만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셨나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웃음) 조용히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쉬고 있었어요. 가끔 진행하는 촬영도 조심조심하면서 찍었고. 이미 촬영을 끝내 놓은 작품들도 있어서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요. 사실 휴식기 아닌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이렇게 공식 석상에 나오는 거 오랜만이네요.

<더 테이블>(2016) 이후 김종관 감독과 두 번째 만남이에요. 이번 작업은 어떠셨나요?

<더 테이블> 당시 참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이번엔 제가 감독님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제가 또 한 번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민망하네요.

김종관 감독과는 작업이 없어도 사적으로도 자주 만난다고 들었어요. <더 테이블> 이전부터 친분이 있으셨나요?

정확한 첫 만남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더 테이블> 미팅을 하면서 정식으로 만나게 됐어요. 이후엔 영화 작업을 하지 않아도, 각자 일을 하면서도 종종 연락을 하고 지냈어요. 감독님 작업실에 놀러 가기도 하고. (웃음) 감독님은 항상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시니까, 감독님의 작품들을 구경하러 가곤 했어요. 감독님이 연출한 연극도 봤고, 전시도 봤고, 또 <밤을 걷다>를 작업하실 땐 편집본을 같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주 소통하면서 지냈던 것 같네요.

배우 입장에서 창석이란 캐릭터를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진짜 어렵습니다. (웃음) 진짜 어렵다는 표현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요. 여백의 미도 많고, 사실 글과 글 사이에 간격이 많은 책(시나리오)이다 보니 대사와 대사 사이의 호흡을 어떻게 메꿔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말투 자체도 일상적이지 않고, 감독님만의 표현 방법이 있어서 그것들을 캐치해 나가는 게 쉽지는 않았죠.

모호한 지점들을 엮어낸 영화다 보니 캐릭터를 구체화 시키는데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은데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감독님 작품을 할 때는 좀 예외적인 것들이 많아요. 제가 이렇게 연기를 했나 싶을 정도로 나중에 편집본을 보고 나면 퀘스천 마크가 많이 남아요. 사실 글도 그래요. 제가 처음 접했을 때랑 감독님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번 그 글을 보면 느낌이 전혀 다르거든요.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나면 내가 처음에 마음먹었던 것들을 정말 까맣게 잊어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더 테이블>을 찍으면서 이런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이번 작품은 어떤 계획이나 계산을 배제한 채. 제가 느끼는 순수한 마음 하나만을 가지고 연기에 다가가자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감독님이 가진 세계관 자체가 굉장히 견고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꾸며낸다거나, 계산되거나 혹은 뭔가 표현해낸다는 표현보다는 받아낸다, 비운다, 그리고 그냥 그 상황을 지낸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런 점에 주안점을 두고 연기를 준비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해내려고 했어요.

창석이 주인공인 영화지만, 창석은 말을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변화합니다. 실제 연우진이라는 사람도 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그런 부분들이 사실 창석과 많이 닮아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저는 제 의견을 피력하거나 이런 거에 익숙지가 않아요. 연기를 할 때도, 삶 속에서도. 누군가 저를 이끌어주는 상황에 제 마음이 조금 편하다고 할까? 상대방이 얘기하는 걸 듣고 제 의견을 좀 우회적으로 돌려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에요. 그런 부분이 창석과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래서 더욱더 '연우진'과 창석이 닮은 부분을 최대한 감추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내 모습이 창석에게 투영될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날 것의 느낌을 살리고, 단조롭지 않게 표현할까에 포커스를 맞춰서 연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종관 감독이 말하길 "연우진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김종관 감독이 연우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나요?

우선,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으로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저도 대인 관계가 그렇게 넓지 않고 누군가와의 만남을 굉장히 주저하고, 심사숙고하고, 어려움을 갖는 타입이에요. 오래된 친구들 위주로 만나는 스타일인데, 감독님은 함께 하고 있으면 일로 만났어도 인간적인 편안함이 느껴져요. 가끔 만나서 술을 한잔하는 사이기도 하고. 그런 인간적인 끌림이 있는데, 사실 이건 말로 설명할 순 없는 것 같아요. 감독님도 저에게 같은 감정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분위기와 무드가 비슷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점이 비슷한가요?

둘이 만나면 굉장히 재밌어요. 정적의 미가 있습니다. 정적과 여백이 감도는 순간에 서로가 어색하지가 않아요. 신기하죠? 남들이 보면 어색해 보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뭐랄까요.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독함이랄까요. 그런 공통점이 있어서 정적이 이상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아요. (웃음)

사실 인터뷰를 오기 전 말수가 굉장히 적다고 하셔서 걱정을 좀 했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말을 안 하는 사람은 전혀 아닙니다. (웃음) 어떻게 보면 대단한 척을 하는 사람으로도 보일 수 있겠네요.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오히려 말하는 것에 덜 익숙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사실 말을 하는 것에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강박감이 있어요. 제 말에 누군가 오해하거나 상처받는 게 너무 싫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심하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까 말을 줄이는 게 습관화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영화 속 창석처럼. 연우진에게도 대나무숲 같은 존재가 있겠죠?

저한테 창석은 가족인 것 같아요. 지금이 딱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가족과 조금 더 돈독해진 것도 있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순간들이 있는데 가족들한테 그런 위로를 받는 편이에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들한테 고민을 터놓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촬영 내내 네 배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섬세한 리액션을 해야 하는 작품이었어요. 네 사람과의 대화 중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뭐였나요?

"정말 끝에 희망이 있다." 성하(김상호)의 대사가 정말 가슴을, 마음을 움직이더라고요. 그때 촬영할 당시에도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정을 더 누르려고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요. 김상호 선배님 눈망울을 바라보니까 어떠한 간절함 같은 게 있었어요. 그 간절함을 통해 그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읽히고, 마지막엔 절망을 놓지 않으려는 그 대사를 덤덤하게 내뱉을 때 정말 좀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촬영이 끝나고 나면 영화 대사들이 잘 생각이 안 나는데 그 대사는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기자간담회 당시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아무도 없는 곳>, 김종관 감독의 세 작품을 두고 종로 3부작이라고 소개했어요. <아무도 없는 곳>을 촬영하면서도 종로 곳곳을 걸어 다녔을 것 같은데. 연우진에게 서울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저는 20대를 주로 서울에서 많이 보냈기 때문에 그때 그 당시 헝그리한 정신들이 생각이 나요. 조용필 선배님의 '꿈'이라는 노래 중에 그 대사가 생각나네요. (웃음) 화려한 빌딩 속에, 헤매고 있는 내 모습.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어떤 불빛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느꼈던 순간적인 방황, 정처 없이 떠도는 내 모습. 그리고 술에 취해 골목길에 앉아있던 제 모습이 스틸컷처럼 지나가네요. 가끔 보면 그런 잔상들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추억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뭐랄까, 제 초심을 떠올릴 수 있는 도시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조용필 '꿈' 中

김종관 감독에게 종로가 있다면, 연우진이 서울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음….

이 근처에 대한 추억도 많을 것 같은데. (연우진의 모교인 세종대학교 바로 옆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 편집자)

아, 여기 건대군요! 여기가 어딘가 했네요 순간. (웃음) 아아! 네 그렇죠. 갑자기 저는 그게 생각이 나네요. 늘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차가 안 막히는 시간을 피해서 항상 야간 버스를 타고 다녔거든요. 그럼 항상 지하철이 끊겨서 동서울터미널, 강변역에서 제가 살고 있던 군자까지 항상 엄마 반찬을 들고 걸어왔었어요. 갑자기 그 추억이 생각이 나네요.

학교 바로 앞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추억도 많겠어요.

오오 네네. 어린이대공원도 자주 걸었어요. 고민이 있을 때마다 어린이대공원 쪽을 걸으면서 고민을 해결하곤 했는데... 감독님에게 종로가 있다면 저에겐 어린이대공원이 있겠네요. (일동 웃음) 지금 말씀해주셔서 생각이 났는데 어린이대공원을 진짜로, 진짜로 많이 걸었어요. 얼마 전엔 재작년 어머님 생신날, 어머니랑 저랑 동생이랑 어린이대공원을 갔어요. 근처 식당을 갔다가 예약 시간이 좀 남아서 옛날 생각을 돌이켜 볼 겸, 되새겨 볼 겸 걸었어요. 그때 어머님이 두 아들의 뒷모습을 찍어준 사진이 아직도 제 카메라에 있답니다. (웃음)

대중들에게 연우진은 '로코킹', '키스 장인', '케미 요정' 같은 로맨티스트 이미지로 친숙합니다. 그에 반해 김종관 감독 작품 속 캐릭터는 굉장히 정적이고, 연기 톤 자체도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른데요. <더 테이블>과 <아무도 없는 곳>을 거치면서 스스로 달라진 점들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와서 그때 작품들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했나 싶어요. (웃음) 지금의 저보고 그때의 연기를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 같아요, 절대 못 할 것 같아요. 그땐 사실 뭔가 계속 더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제 안에 숨겨진 의외성을 발견하고, '내 안에 이런 모습도 있구나'하는 것도 느끼긴 했지만, 괴리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김종관 감독님 작품을 하게 된 순간부터는 본질에 대한 것들을 다루다 보니까 나 자신에게 더더욱 솔직해지는 것 같아요. 캐릭터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모든 걸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감독님 작품에 임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과정을 좀 더 심화 있게 요구하는 감독님이다 보니 함께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SNS를 일절 하지 않는 배우로 유명합니다. 패션이라든지. 보여지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들었어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사실 깊이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그냥 내 삶 속에서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 기준이 책임감이었어요. 어떤 일을 할 때 결과물을 떠나서 책임감 있게 행동을 하고, 사람들에게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게 제 삶의 기준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나에 대한 표현도 늘 '정도껏'만 하는 것 같아요. 표현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거기까지가 제 나름의 책임이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보여지는 것에 대한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요즘 가장 즐기는 것이 있으신가요.

요즘은 정말 소박합니다. 가족들과 골프 라운딩 같이 나가는 것, 정말 그런 거예요. 저도 정말 평범해요. (웃음) 사실 연우진은 과연 뭘 하고 살까, 팬분들이 궁금해 해주시곤 하지만 정말 뭐 보여줄 게 없어서 이야기를 안 하는 걸 수도 있어요. (웃음) 정말 뭐 특별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TV 매체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배우였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영화 매체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신가요?

사실 연기를 대하는 마음은 똑같고요. 사실 뭐 어떤 거창한 제 생각이 있지는 않아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주어진 기회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내 할 일을 다 하자는 게 제 연기에 대한 철학이지, 매체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욕심은 크진 않습니다. 주어진 순리대로 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에요. (웃음) 다양한 배역 속에 항상 저를 시험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그냥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흐르는 그대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아직까지 더 좋은 것 같아요. (웃음)

10년 전 인터뷰에서 '나다운' 역할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다운' 역할이란 건 뭘까요?

글쎄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항상 그리움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 그리움이 슬프고 그런 게 아니라 삶의 동력이 돼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인간의 그리움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들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항상 자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고 자는데 보통 아버지에 대한 생각, 고향에 대한 생각을 해요. 그리운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제 나름대로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에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질 수 있고, 그리움이라는 감정 속에서 만나는 것들이 저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움을 가슴 속에 품고, 그리움을 동력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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