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영원하다, 세기의 미남 배우들

조회수 2021. 4. 2.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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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김명재 객원 기자

결국은 클래식이란 말도 있지 않나. '세기의 미남'은 이젠 너무도 흔해진 말이지만, 그 의미를 곱씹어 보면 실로 엄청난 말이다. 순수하게 외모로 시대에 기록된다는 건 도대체 얼마나 잘생겨야 가능한 일인가. 클래식이 아름다운 건 망각과 퇴색이라는 잔인한 시간의 흐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기의 미남들은 그 모습 그대로 대중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간다. 젊은 배우들은 끊임없이 그들과 경쟁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새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그들의 권위에 도전했지만, 고전이란 타이틀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고전은 영원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을 흔드는 고전 미남은 누가 있을까. 오늘은 세기의 미남 배우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알랭 들롱
프랑스, 1935-

1970년부터 90년대 초까지, '알랭 들롱 같다'는 말이 곧 '잘생겼다'를 의미할 정도였다. 수많은 미남 배우들이 있었지만, 이름 자체가 고유 명사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알랭 들롱에게는 잘생김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그의 눈빛에는 서사가 있다. 아름답지만 고독하고, 남성적이지만 동시에 그 쓸쓸함이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대사가 없어도 충분히 맥락을 만들 만큼 그의 눈은 많은 걸 말한다. 그 눈에 얼마나 수많은 여성들이 환상에 빠졌나. 

그걸 입증이라도 해 보이듯, 그는 여배우들과 끊이지 않고 스캔들을 일으켰다. 마치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듯, 그는 여러 여자들과 약혼과 결별을 반복했다. 그 여성편력으로 인해 친자 인정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을 정도.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탐욕적이지만, 그럼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위험한 매력을 갖고 있는 청년 톰 리플리 역으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실제 그의 성격과도 가장 유사했다고 한다. 

<태양은 가득히>(1960)

그는 결코 마냥 선하게만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위험하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성들은 그와 지독히도 얽히고 싶어 했다. 결코 주위에 사람이 끊일 것 같지 않던 그였지만, 노년에는 혼자였다. 프랑스 주간지 파라마치는 '알랭 들롱이 외로운 늑대처럼 은둔자로 혼자 살아가고 있다'고 그의 근황을 전했다. 


말론 브란도
미국, 1924-

배우 말론 브란도의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 스크롤의 압박이 상당해지지 않을까. 그 마초적인 매력은 물론 연기에도 한 획을 그은 그는 이후 연기의 판도를 바꿨다. 연기 역사상 그의 등장만큼 센세이션 했던 사건이 있었나. 실제로 그는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로 손꼽힌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7)

다소 과장된 연기를 하던 1930~40년대에 그는 처음으로 메소드 연기법을 도입시켜 영화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19살이 되던 해 그는 배우라는 꿈을 갖고 뉴욕 브로드웨이로 떠났고, 1944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차근차근 연기 내공을 쌓아가던 그는 액터스 스튜디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메소드 연기 방법을 배웠고 이후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주인공 스탠리 역을 맡아 여태껏 보지 못했던 연기를 선보였다. 

달라붙는 흰 티셔츠는 그의 상징과도 같았다. 원래 미 해군의 속옷이던 티셔츠를 그는 하나의 독립된 패션으로 완성시켰고, 이는 패션계에도 지대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꿈틀대는 근육과 반항적인 눈빛은 티셔츠를 섹시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맹렬하게 드러나는 그의 욕망과 아름다움에 수많은 남성들이 흰 티를 사들였다.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이름을 남긴 그이지만, 말년은 초라했다. 수차례 거듭된 결혼 실패와 우울증, 폭식,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쓸쓸한 마지막을 보내야만 했다. 


폴 뉴먼
미국, 1925-

50년대 말론 브란도와 라이벌 구도에 있던 폴 뉴먼은 길들여지지 않은 말론 브란도와는 전혀 다른 도회적인 매력을 갖고 있었다. 마치 대리석으로 만든 것 같은 깨끗한 푸른 눈동자에, 이지적인 매력은 여심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50년대 당시에도 미국의 아이콘이었던 그이지만, 진가는 시간이 흐른 뒤에 더욱 빛을 발했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완벽한 남자'. 폴 뉴먼을 수식하는 말이다. <길고 긴 여름날>(1958)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에도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물론 <레이첼레이첼>(1968)로 골든 글로브 감독상까지 수상했다. 확실히 그의 필모그래피는 탄탄하다. 미모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를 완벽한 남자로 만든 건 아니다.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

여성편력이 화려한 할리우드 미남 배우들과는 달리 그는 배우 조앤 우드워드와 죽기 전까지 시골에서 화목한 가정생활을 이뤘다. 그의 다정하고 바른 성품은 사업에서도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샐러드 드레싱 사업을 한 그는 모든 이익금과 로열티를 자선 사업에 기부하고, 재투자를 받았다. 그는 2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전부 기부하며 말뿐인 약속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금성무
대만, 1973-

대륙을 넘어, 아시아 미남도 빠질 수 없다. 고전이라기엔 다소 젊지만, 과거 아시아 미남하면 빠질 수 없는 그이기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해외에선 가네시로 타케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그이지만, 한국에서는 한자 발음인 금성무로 더 많이 불린다. 금성무. 이름마저 황홀하다.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생 때까지 타이베이 일본인 학교에 다녔고, 고등학생 때는 타이베이 아메리칸 스쿨을 다녔다. 덕분에 중국어는 물론, 광둥어, 대만어, 일본어, 영어 5개 국어에 능통한 말 그대로 엄친아로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그는 중화권과 일본을 넘나들며 활동할 수 있었고, 아시아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타락천사>(1995)

왕가위의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인 만큼, 금성무의 리즈 시절은 왕가위 영화 출연 당시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쌍커풀이 없던 금성무의 담백하면서도 순진무구한 얼굴이 가장 빛나던 시기다. <타락천사>에서 그는 실연당한 여자 찰리를 만나며 사랑에 눈을 뜨는 과정을 연기했다. 그처럼 아름다운 남자에게 사랑을 알려줄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실연해도 좋다. 

<중경삼림>(1994)

<중경삼림>에서는 경찰 223역을 맡아 마약 밀매업자와의 미묘한 하룻밤을 연기했는데, 청년과 소년의 경계에 있는 듯 무구한 그 연기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랑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는 그의 대사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실연당한 사람들의 프로필을 장식하고 있다. 


박근형
한국, 1940-

한국도 빠질 수 없다. 장동건, 정우성, 고수, 강동원 등 수많은 미남 배우들이 있지만 그 원조에는 바로 이 배우가 있다. 바로 원로 배우 박근형이다. 깊은 눈매와 빚은 듯한 코는 장동건을 떠올리게 한다. 

<본능>(1975)

지금은 누군가의 아버지, 회장 역을 주로 맡고 있는 그이지만 젊었을 적에는 주로 로맨스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나 그는 미남 배우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연기를 갈고 닦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악랄해지는 것을 두려워지지 않았다. <여명의 눈동자>(1991)에서 그는 고등계 형사 최두일로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는 역을 맡았다. 이 역을 통해 그는 비열하고 잔인한 악질 형사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고, 악역 전문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확실히 굳혔다. 언제나 권력자의 입장에서 악역을 행해왔을 것 같은 그이지만, 그의 넓은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얼마나 다양한 연기를 선보여왔는지 알 수 있다. 드라마 <아버지>(1997)에서는 가장의 무게를 표현해내며 재벌 회장뿐만 아니라 서민의 모습까지 소화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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