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한국판 리메이크 <조제>, 원작과 어디가 달라졌을까?

조회수 2020. 12. 17.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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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김명재 객원 기자

12월 13일, 첫 눈이 내렸다. 로맨스의 계절이 찾아왔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4)은 시린 겨울, 사랑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로 꼽히는 이 영화가 2020년의 끝자락에 한국판으로 리메이크 되어서 다시금 우리 곁에 찾아왔다. <최악의 하루>(2016)로 익숙한 김종관 감독이 리메이크한 <조제>(2020), 어떻게 달라졌을까.  

※<조제>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사라진 유모차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는 유모차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난다. 할머니(신야 에이코)의 유모차 안에서 격리된 채 살아가는 조제는 처음 본 츠네오에게 칼을 휘두를 만큼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동시에, 산책을 하며 보는 꽃과 고양이들을 포기할 수 없는, 세상에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조제는 호기심에 유모차를 억지로 들춰보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해야만 했지만, 동시에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유모차는 그를 위험한 세상에서 보호하는 역할이자, 발이 되어 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성인 여성이 유모차에 타고 있는 비주얼 역시 츠네오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조제>

리메이크 된 <조제>에서 영식(남주혁)과 조제(한지민)는 보다 현실적인 전동휠체어를 통해 만나게 된다. 혼자 책을 사기 위해 나온 조제는 전동휠체어의 고장으로 인해 길거리에 쓰러지고 만다. 우연히 그런 조제를 본 영식은 리어카를 이용해 조제와 전동 휠체어를 나른다. <조제>에서의 첫 만남은 한국적인 소품과 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영화가 앞으로 어떤 색을 갖고 흘러갈지를 보여준다. 고장난 전동휠체어 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가 봐”라고 말하며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는 조제와 그런 그를 두고 볼 수 없는 영식의 성격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조제의 나이대
(조제와 남자 주인공의 나이차)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개봉 당시, 주연 배우인 츠마부키 사토시와 이케와키 치즈루의 나이는 모두 20대 초반이었다. 때문에 츠네오는 대학생으로, 조제는 그와 비슷한 연령대로 등장했다. 그래서 조금 더 친구 같이 장난 치고, 반말이 자연스럽다.

<조제>

반면 <조제>의 주연 배우 한지민과 남주혁은 나이차가 있다. 한지민은 38살, 남주혁은 26살로 12살 띠동갑 차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인지, 영화에서 영식은 대학 졸업반, 조제는 30대 중반으로 나온다. 김종관 감독은 “원작이 만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건 내게도 관객에게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조제의 나이에 자신만의 변주를 줬다고. 그는 “좀 더 깊고 성숙한 인물로 조제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모차가 전동휠체어로 대체된 이유 역시 여기서 기인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를 탄다는 설정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 전동휠체어로 바꿨다고.


주인공의 성격과 조제의 과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역시 주인공들의 성격 변화다. 츠네오는 다소 가볍고, 욱하는 성질이 있다. 농담을 받아 칠 줄 아는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에 조제에게 “밥 좀 넉넉히 해줘”라며 뻔뻔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 츠네오가 조제의 세계에 별다른 고민 없이 성큼 성큼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원작 조제는 독특한 말투에 틱틱대기는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걸 솔직히 얘기하는 성격이었다. 첫 키스 후 스스로 옷을 벗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조제가 사랑과 욕망을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조제>

반면 <조제>에서 영식은 원작처럼 여성관계가 복잡한 인물이지만, 능글맞게 그려지진 않는다. 조제를 내버려두지 못할 만큼 착하지만, 그를 책임지기에는 현실의 문제가 버거운 평범한 대학생이다. 한지민이 연기한 조제는 원작과 전혀 결을 달리 한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건 동일하나, 한지민의 조제가 조금 더 어둡고, 쓸쓸하다. 오랜시간 고립된 채 살아오며 자신을 아끼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인물로 그려진다. 독특한 목소리톤과 말투를 구사하는 원작 조제와는 달리, 리메이크 버전 조제는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렵다는 듯이 자신감이 없고, 날 서 있다. 처음 영식에게 밥을 해줬을 때 영식이 먹지 못하고 쭈뼛거리자 조제는 “왜, 독이라도 탔을까봐?”라며 뾰족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가 밥 먹기 편하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바깥에 나가고 싶어 하면서도 두려움에 쉽사리 나서지 못한다. 캐릭터 내면의 상처를 설득력 있게 구축하기 위해 <조제>는 원작에서는 없던 조제의 아픈 과거를 집어 넣었다. 이외에도 한국판 조제는 환상 속에 살고 있다. “난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어”와 같은 말을 하며 꿈 속에 빠져 있는 듯한 동화같은 조제가 원작을 기억하는 이에겐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원작을 배제한다면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말수가 많지 않은 조제는 말 보다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마치 흰 눈이 쌓인 거리처럼 여백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독보적인 영상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주인공들의 성격이 달라지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의 톤도 달라졌다. 원작에서 당차고 호기심이 많은 조제는 츠네오가 만들어 준 스케이트보드 유모차에 타서 신나게 질주한다. 그들은 달리는 과정에서 실컷 웃고, 데굴데굴 굴러지기도 한다. 

<조제> 촬영현장.

한국 <조제>에서는 이 장면이 낙엽길 장면으로 대체됐다. 영석은 조제의 휠체어를 끌며 낙엽길 아래를 걷는다. 계절감이 살아 있는 이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화보처럼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조제>에서는 이러한 감성을 종종 보여준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에서의 산책은 한 편의 시와 같이 느껴진다. 마치 그들의 사랑처럼, 영화는 계절의 변화를 아름답게 포착해 그것만으로도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서 흰 눈이 쌓인 겨울을 지나, 벚꽃이 환상적으로 흩날리는 봄까지. 감성이 촉촉해지는 배경에 얼었던 마음이 어느샌가 스르르 녹는다.

<조제>

<최악의 하루>에서도 감각적인 영상미를 선보였던 김종관 감독은 <조제>에서도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극 중 조제의 집 구석구석 살펴보면 그의 섬세한 연출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시력측정판에 스팸을 담아 놓는 장면은 한국적인 색이 짙게 담긴 부분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소품을 통해 한국판 <조제>를 만든 그는 “공간의 매력이 잘 드러나기를 바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공간에 신경 쓴 이유에 대해 “조제의 집, 고물상, 헌책방, 겨울 유원지 등 쓸쓸한 느낌도 있지만, 사람들의 삶이 들어 있는 공간이기에 영화에서 아름답게 비치기를 바랐다. 어떤 공간이든 찰나적인 아름다운 순간이 있지 않나”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별의 과정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는 원작과 큰 흐름을 같이 하고 있으나, 결정적인 이별을 다루는 장면에서 그 궤를 달리 한다. 원작은 사랑의 시작, 그리고 끝을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조제는 인간적으로 성숙해진다. 자신에게 솔직했던 조제는 여전히 떠나는 그를 향해 야한 잡지를 선물할 만큼 당차다. 그러나 언제나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던 조제가 이젠 머리를 묶고 스스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조제는 변하지 않았지만, 변했다. 츠네오는 결국 도망치고 마는 자신의 비겁함과 조제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현실적으로 그들의 이별을 표현해낸다. 

<조제>

<조제>는 이별보다는 사랑의 과정에 집중한다. 영화 내내 쌓아오던 그들의 다름을 통해 관객은 이별의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나아가길 바랐지만 동시에 그와 함께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싶어 했던 조제와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추구했던 영식. “계속 옆에 있을게”라는 영식의 말이 슬프게 들리는 건 그들의 이별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조제>는 그렇기에 이별의 장면을 굳이 보여주지 않는다. 김종관 감독은 이를 두고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다. 누구 한 사람에게 이별의 책임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원작과 다른 길을 간다면 이별의 이유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조제>는 원작과 디테일한 부분에서 갈라진다. 살모넬라균으로 지식 자랑을 하던 원작 조제에서 위스키를 사랑하는 조제로 바뀌며 취향을 추가했다거나, 클로즈업 신을 통해 표정 연기에 더 집중한 촬영 방식, 조제의 숨겨진 과거, 호랑이와 물고기의 상징성까지. 마치 시처럼 써내려가는 서정적인 <조제>가 궁금한 이들에게는 특별한 영화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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