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의 연기 선생님? 배우 이정은의 모든 것

조회수 2020. 11. 19.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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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김명재 객원 기자
<내가 죽던 날>(2020)

영화 <기생충>(2019) 최고의 신 스틸러 문광을 완벽하게 소화했던 배우 이정은을 기억하는지. 그 이전에도 그는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2015) 서빙고 보살 역이나 <미스터 선샤인>(2018) 함안댁 역, 영화 <미성년>(2018)의 방파제 아줌마 등으로 대중들에게 차근차근 얼굴을 알려왔다. 출연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나올 때마다 그만의 아우라를 내뿜으며 존재감을 발휘한 그는 오랜 시간 쌓아왔던 내공을 보여줄 수 있는, <기생충>이라는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잡은 것 놓치지 않는다는 듯, 보란듯이 보여줬다. 이후 광고 출연도 하고, 영화 <내가 죽던 날>(2020)의 주연도 맡게 됐다. 그야말로 전성기다. 오늘은 스크린 속 이정은이 아닌, 인간 이정은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그가 보여주는 수많은 얼굴들은 다 어디서 온걸까. 궁금하지 않나.

처음엔 조연출로 시작한 연극영화계

KBS <대화의 희열> 방송 화면.

타고난 연기자 같은 이정은이지만, 처음부터 연기자의 길을 걸었던 건 아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이정은은 친구와 함께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의미로 검은 리본을 달았는데, 그게 단체 행동으로 인식되는 바람에 반성문을 쓰게 됐다고 한다. 부반장 친구는 자퇴까지 하게 됐다고. 그 일을 겪은 후 그는 어떻게 어른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교사가 되길 희망했으나 그는 입시 한 달 전,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바꿨다. 이후 고(故) 박광정으로부터 연극 조연출 제의를 받아 대학로에 입성했다. 자신이 연출한 연극이 크게 망한 후, 연기에 전념하게 됐다.


카메라 울렁증

KBS <대화의 희열> 방송 화면.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연기자 데뷔를 한 그는 꾸준히 대학로에서 활동을 하다가 2000년 <불후의 명작>(2000)으로 드디어 영상 연기에 데뷔하게 된다. 관객들과 호흡하며 연기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관객의 반응을 배제한 예술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어, 영상 연기에 도전을 결심한 그는 연기 앞에서 한 차례 큰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와니와 준하>(2001) 이후 다시 대학로로 돌아갔던 그는 2009년에서야 다시 <시선1318>로 스크린에 복귀하게 된다. 꽤나 길었던 공백의 이유는 바로 카메라 공포증이었다.

<와니와 준하>

<와니와 준하> 김용균 감독은 이정은과 학교 동기로 이정은에게 주진모의 선배이자 영화사 PD역을 맡겼다. 그는 커다란 카메라에 압도되어 결국은 카메라 울렁증이 생기고 말았다. 이후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간 그는 뮤지컬 <빨래>에서 배우 김희원을 만나게 된다. 그때 김희원은 이정은에게 “선배님 연기도 좋고 열정도 좋은데, 마흔다섯 정도까지 영상 연기를 못 하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라는 말을 지나가듯 남겼다. 그 말을 듣고 다시금 도전하기로 한 그는 단역, 조연 가리지 않고 단편영화 30편 정도에 참여하며 카메라 울렁증을 없애고자 노력했다.


1년에 수입 20만원?

1970년생, 올해로 50세인 그는 오랜 무명생활로 인해 40세까지 아르바이트로 투잡을 뛰어야만 했다고 한다. 수입이 일정치 않았던 그는 1년에 20만 원을 번 적도 있다고. 연극은 물론 방송 활동도 했으나 그럼에도 생활고에 시달려 연기 학원 선생님부터 마트 직원, 녹즙 판매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신하균, 지진희, 우현에게
5000만 원을 빌리다

이정은이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을 20년 전 2000년, 그는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인해 큰 돈인 5000만 원이 필요했다. 그는 결국 평소 친하게 지냈던 동료 배우 신하균, 지진희, 우현에게 돈을 부탁했고 세 배우는 모두 흔쾌히 돈을 빌려줬다. 그들은 총 5000만 원을 빌려줬다. 현재에도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인데 20년 전 금액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들의 신뢰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정은은 꼭 돈을 갚겠다고 약속했고, 그 말을 지켰다. 무려 13년의 시간이 걸려 모든 빚을 청산한 그에게 우현은 문자로 ‘돈을 빌려준 사람 중에 유일하게 너만 갚았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옥자>의 옥자가 바로 이정은?

<옥자>(2017)

이정은과 봉준호의 인연은 사실 <마더>에서부터 시작됐다. <마더>에서 단역으로 등장한 그는 이후 <옥자>에서 옥자의 목소리 역을 맡게 된다. 봉준호 감독은 이 캐스팅에 관해 뮤지컬 <빨래>를 언급했다. “뮤지컬 <빨래>에서 정말 멋있는 연기를 보여주신다. 뮤지컬 연기를 한다는 건 목소리에 탁월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거다”라고 말하며 이정은에게 옥자의 목소리를 부탁한 이유를 언급했다. 이정은은 사람이 아닌 옥자의 소리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하루 종일 돼지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옥자 목소리는 이정은 목소리가 30퍼센트, 뉴질랜드산 돼지 목소리가 70퍼센트로 구성되어 이 세계에 없지만 리얼한 사운드를 표현해 낼 수 있었다.


사실은 서울 토박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함안댁으로 출연한 이정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최강 큐티뽀짝, 함안댁 역을 맡았던 이정은은 드라마에서 구수한 사투리를 보여준다. 사투리가 익숙한 지방 사람이겠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서울 토박이! 영화 <변호인>에서 대선배 송강호 배우 앞에서 연기를 선보여야 했던 그는 사투리 연기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아는 영화 PD가 마침 마산 출신이었기에 그에게 양해를 구한 후 그의 사투리를 녹음해 한 달 반 동안 매일 연습했다고 한다. 그 결과, ‘쥬씨라도 드실렵니까?’라는 디테일이 나올 수 있었다. 송강호도 ‘쥬씨’라는 말에 놀라 촬영 끝나고 그에게 “고향이 부산이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변호인>(2013)

아줌마, 엄마 아닙니다. 싱글입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

영화, 드라마, 연극에서 누군가의 엄마나 아줌마 역으로 자주 나오다보니 으레 결혼했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정은 배우는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싱글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엄마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동백꽃 필 무렵>에서 다각적인 모녀 관계를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로 그는 오히려 “엄마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제가 맡은 엄마는 특별해요. 약간 삐딱선을 타는 엄마예요. 제가 엄마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제 나름의 주관적인 엄마에 대한 모델도 있어요. 자녀에 대한 사랑은 많지만 관계 형성에 있어서는 이모나 고모 같은 엄마 정도인 것 같아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효리의 연기 선생님!

tvN <인생술집> 방송 화면

<놀면 뭐하니>에서 싹쓰리 린다G, 환불원정대 천옥으로 연예계를 다시 한 번 ‘싹쓰리’ 하고 있는 이효리. 이정은은 그의 연기 선생님이었다. 드라마 <세잎클로버>(2005) 당시 이효리 연기 지도를 했던 그는 이효리의 연기에 대해 “상황 몰입도가 굉장히 뛰어나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 웃더라. 하지만 감수성도 예민하고 연기를 꽤 잘하던 친구”라고 말했다. 여담으로, 드라마 <세잎클로버>는 이효리의 첫 드라마 주연작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으나 동시간 방영된 <쾌걸춘향>(2005)에 밀려 결국 조기종영되고 말았다. 

드라마 <세잎클로버> 속 이효리

배우 김영애의 마지막을 지킨 배우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2016) 속 김영애

배우 김영애가 우리의 곁을 떠난지 벌써 3년이 지났다. 배우 이정은은 그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켰던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는 김영애와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인연을 맺었고, 추후엔 간병을 하며 그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했다. 그와의 인연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애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내가 죽거든 경순이(정경순)나, 정은이(이정은)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정은은 간병인이 쉬는 날이면 종종 간병인을 자처하기도 했는데 종일 그의 곁을 지키며 간병을 했다고. 이정은은 그와 함께 영정 사진을 고르거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떠난 이후에도 이정은은 그가 생전에 이정은에게 해주었던 “연기를 계속하라”는 말을 기억하며 그에게 감사함을 드러냈다.


멜로보단, 더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하는 배우 이정은

<내가 죽던 날>

이정은은 한 인터뷰에서 “멜로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냐”는 말에 “왜 남자하고만 연애하는 걸 멜로의 기준으로 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저는 고양이나 개와도 멜로를 할 수 있고, 에이아이(AI)와도 멜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연장선에서 멜로보다는 다른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어서, 다양한 연기 시도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셈이다. 스크린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이정은. 그는 이번에 개봉하는 <내가 죽던 날>에서 무언의 목격자 순천댁 역을 맡았다.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섬마을 주민 순천댁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그의 최대 무기였던 언어를 숨기고 몸짓과 표정만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그는 앞으로 또 어떤 도전을 하고,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이정은의 행보가 기대되는 건 기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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