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몰입 위해 촬영장 속 배우 따돌림 외면한 명감독?

조회수 2020. 11. 6.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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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올해 넷플릭스 기대작 중 하나였던 <레베카>가 베일을 벗었다. 대프니 듀 모리에가 쓴 1938년 작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휴양지에서 만난 맥심 드 윈터(아미 해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나’(릴리 제임스)가 드 윈터 가문의 대저택, 맨덜리에 입성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는 이미 여러 버전의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로 각색되어 관객과 만나왔다. 2020년판 <레베카>를 본 시네필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 있을 테니, 바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연출한 1940년 버전의 <레베카>. 80년 만에 새 옷을 입고 관객을 찾은 ‘레베카’를 맞이해, 여태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클래식 <레베카>(1940)에 대한 흥미로운 비하인드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 <레베카>(1940)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제1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 <레베카>는 영국 출신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레베카>는 제1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히치콕 감독 연출작의 처음이자 마지막 트로피다.

<레베카> 촬영 현장의 로렌스 올리비에, 조안 폰테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히치콕 감독은 오래전부터 <레베카>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소설의 판권을 살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았다. 결국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당대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를 쥐락펴락했던 유명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의 지휘 아래 <레베카>를 연출해야 했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O. 셀즈닉, 알프레드 히치콕

―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에 관련한 전반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이는 감독이 아니라 스튜디오 제작자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를 여럿 만들어냈던 데이비드 O. 셀즈닉이 <레베카>의 제작을 맡았다. 그의 입김이 워낙 셌던 탓에 히치콕 감독은 대본 작업, 후반 작업 과정에서 큰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이에 질 히치콕 감독이 아니었으니. 그는 제작자가 후반 작업 과정에서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흐려놓을 수 없도록, 현장에서 자신의 머릿속에 설계된 최소한의 장면만 촬영했다. 때문에 제작자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고.

(왼쪽부터)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안 폰테인

― <레베카>의 맥심 드 윈터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했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당시 교제 중이었던 비비안 리가 자신의 상대역을 맡길 원했다. 히치콕 감독은 수줍음이 많은 여주인공과 당찬 비비안 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당시 신인 배우였던 조안 폰테인을 <레베카>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출처: <레베카>

― 이런 이유로 로렌스 올리비에는 촬영장에서 조안 폰테인에게 늘 쌀쌀맞게 굴었다. 신인이었던 조안 폰테인은 로렌스 올리비에의 냉대에 짓눌려 혼란스러워했다. 이를 본 히치콕 감독은 그녀를 역할에 몰입시키기 위해 촬영장 스탭 모두가 조안 폰테인에게 냉랭하게 대할 것을 지시했다.


― 20명이 넘는 배우가 <레베카>의 여주인공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여자들>(The Women, 1939)에서 온순한 아내 역을 맡았던 조안 폰테인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보고 그를 ‘나’ 역에 캐스팅했다. 

출처: <레베카>

― 집사 댄버스 부인을 연기한 주디스 앤더슨은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는다. 히치콕 감독이 연기 중 최대한 ‘눈을 깜빡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 소설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히치콕 감독은 <레베카>를 흑백 영화로 만들었다. 


출처: <레베카>
출처: <레베카>

― 드 윈터의 죽은 전 부인, 레베카의 그림자를 품고 있는 맨덜리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프로듀서 데이비드 O. 셀즈닉은 맨덜리의 분위기를 담아낼 만큼 완벽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결국 그와 히치콕 감독은 로케이션 대신 미니어처, 세트로 맨덜리 저택을 창조해냈다.


― <레베카>의 원래 대본 속 여주인공의 이름은 다프네였다. 원작 소설을 쓴 작가의 이름을 딴 것. 그러나 데이비드 O. 셀즈닉이 반대했고, 영화에 여주인공의 이름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레베카> 촬영 현장의 로렌스 올리비에, 조안 폰테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레베카>의 촬영은 계획보다 한 달 정도 늦게 끝났다. 이유 중 하나는 히치콕 감독의 리허설 거부였다고. 카메라나 조명을 세팅하는 시간에 리허설을 겸하는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할리우드에선 일반적인 경우였으나 히치콕 감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음이 산만하다는 이유였다고.


― 영화 개봉 직전인 1939년 12월,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서 <레베카> 가편 시사가 진행됐다. 관객은 박수를 치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출처: <레베카>

― 데이비드 O. 셀즈닉은 <레베카>의 엔딩 화재 신에서 맨덜리 저택 위로 ‘레베카’를 상징하는 R 모양의 연기가 피어오르길 바랐다. 히치콕 감독은 이에 반대했다. 결국 이 장면은 레베카의 베개에 수놓아진 R자가 불타는 장면으로 대체됐다. 데이비드 O. 셀즈닉은 이 장면마저 재촬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니셜이 잘 잡히지 않았고, 불길이 생각보다 빠르고 높게 타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 <레베카>는 1940년 미국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다.

출처: <레베카>

― 히치콕 감독은 자신의 영화로 카메오로 등장하길 즐겼다. <레베카>에서도 히치콕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 후반부, 재판을 마친 후 밖으로 나온 잭 파벨이 경찰과 주차 문제로 실랑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뒤로 지나가는 중절모 쓴 남성이 바로 히치콕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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