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금지곡 전문? <전우치>, <보건교사 안은영> 음악감독 장영규

조회수 2020. 11. 4. 0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매력을 좌우하는 것 중 하나, 다채로운 음악이다. 요근래 한창 화제를 모은 <전우치> 속 '궁중악사'를 만들고, 국악과 팝을 접목시킨 밴드 '씽씽'과 '이날치'를 이끈 장영규 음악감독의 작품이다. 장영규 음악감독에게 <보건교사 안은영>과 그의 영화음악에 대해 물었다.


신스팝, 펑크, 일렉트로니카, 불교음악, 국악... <보건교사 안은영>(이하 <안은영>은 ‘장영규 음악’의 집대성처럼 느껴진다.

= 이경미 감독과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에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얘기하다가 전자음악, 특히 신디사이저 소리가 <안은영>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그림만 그려놨는데, 편집본을 받아보니 이게 한 가지 장르로만 갈 수 있는 영화가 아니더라.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흘러가고 있고, 수많은 인물들이 튀어나오니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음악들이 뒤섞일 수밖에 없었다.

만화적인 세계의 고등학교를 다룬다는 점에서 <다세포 소녀>(2006)가 떠오르더라. <다세포 소녀>의 음악 역시 장르가 다양해서 <안은영>을 작업하면서 의식이 됐을 법도 하다.

= 작업할 땐 아무 의식도 못했다. 그저 고등학생과 어떤 음악이 어울릴 수 있을까, 안은영의 판타지를 어떻게 그려줄 수 있을까,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만 생각했다. 


<안은영> 제작 중 어느 단계에서 음악을 작업하기 시작했나?

= 90% 이상은 편집본을 보면서 작업했다. 농구문어가 성아라한테 고백할 때, 밴드부가 연주하는 음악 등 촬영장에서 필요한 것들만 먼저 만들었다. 


여기저기 세세한 효과음들도 많고, 총 러닝타임만 300분 정도라 작업량이 방대해서 이전 작품들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 같다. 

= 보통 후반작업이란 기간이 영화마다 다르고 요즘은 특히 그 기간이 짧아진 경우들도 많은데, <안은영>은 한 5개월 넘게 시간을 열어놓았고, 나 역시 <배심원들>(2019), <봉오동 전투>(2019) 마치고 한가했던 기간이라 한 반년 가까이 <안은영>에만 매달렸다. 


마감 기한이 짧아 단기간에 바짝 효율적으로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아무래도 작업 시간이 길면 더 편한 편인가. 

= 어느 정도 만들고 나서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좋다. 뒤집어엎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만큼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긴 하지만, 일정이 타이트한 영화음악은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끝내야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인데, 한번 돌아보고 다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확실히 좋은 작업이 나올 가능성은 높아진다. 


뒤집어엎어서 좋아진 음악은 어떤 것인가? 

= 특정한 곡이라기보다 전체 흐름의 문제다. 음악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서 인물과 사건이 다르게 보일 수 있어서 한두 곡이 아니라 전체를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강선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은영과 강선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까, 죽어가는 강선과 죽어 흩어지는 강선에게 어떤 음악을 써야 할까... 앞에 어떤 음악을 쌓아왔느냐에 따라서 해당 장면이 다르게 보여서, 앞뒤로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해줘야 할까 특히 고민이 많았다.

<안은영>을 본 많은 사람들이 “보건~ 보건교사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에 중독됐다고 말한다. 그 노래가 만들어진 과정을 듣고 싶다.

= 보통 연주곡보다는 노래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작곡 과정에서 고민 없이 붙였던 것들이 다행히 잘 어울려가지고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보건~ 보건교사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도 같이 곡 쓰는 작업하는 친구가 멜로디 만들다가 그냥 붙인 거였다. 젤리가 나오는 신이라면 가사도 “젤리젤리젤리~”로 간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붙여놓으면 이경미 감독이 조금씩 바꾼다. 


‘넷플릭스’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흔히 극장 스피커 시스템을 통해 ‘듣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접근이 필요했을 것 같다. 

=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크게 신경 안 쓴 대신, 믹싱 하는 과정에서 그런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넷플릭스에 엄격한 기준이 있다. 한 편에 쓸 수 있는 볼륨의 최대치가 정해져 있고, 그걸 넘어갈 수 없다. 괴물이 나오면 큰소리를 쓸 수밖에 없고 강선이 나올 땐 잔잔하기만 한데, 두 편 다 쓸 수 있는 볼륨은 결국 똑같다. 그래서 소리가 많이 들어가는 부분은 볼륨 계산을 아주 잘해야 한다. 넷플릭스는 5.1 채널 환경으로 믹싱을 넘긴다. 하지만 보통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통해서 보고 있지 않나. 5.1 채널을 세팅해놓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공개되고 나서 노트북으로 한번 봤는데, 작업 당시 5.1로 의도했던 것과 관객 대부분이 보는 방식이랑은 차이가 커서, 다음에 또 넷플릭스 작품을 하게 된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 


이경미 감독의 장편 <미쓰 홍당무>(2008), <비밀은 없다>(2016), <보건교사 안은영> 세 작품 모두의 음악을 만들었다. 처음 <미쓰 홍당무>를 작업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 안 그래도 그때 이경미 감독이 왜 나를 찾았을까, 생각해봤는데 기억이 안 나더라. 나를 쓴 이유에 대해 얘기를 했었나 안 했었나도 잘 모르겠고. (웃음) 이경미 감독의 단편 <잘돼가 무엇이든>이 한예종 졸업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내가 작업한 다른 단편을 보러 갔다가 <잘돼가 무엇이든>을 너무 재미있게 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장편 데뷔작 <미쓰 홍당무>의 음악을 맡아달라고 이경미 감독한테 연락이 와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세 작품을 함께 한 익숙함이 <안은영>을 작업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나.

= 여러 편을 같이 했다고 작업이 수월해지진 않는다. 매번 이거 어떡해야 하나, 큰일났네, 하면서 시작한다. (웃음) 작업할 때 익숙함, 매끈함 같은 것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걸 벗어나는 게 내 일이라고 여기면서 영화음악을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경미 감독과 아주 잘 맞는다. 절대 이렇게 가면 안 된다, 그런 걸 받아들여주니까 오히려 신나게 작업하게 된다. 


각 에피소드의 엔딩마다 “내 몸이 좋아진다 좋아진다 좋아진다~”를 변주해서 썼다. 종종 없는 경우도 있다. 의도가 있었던 건가. 

=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떤 에피소드에 썼고 안 썼는지도 잘 모르겠다. 음악 작업을 끝냈을 때까지도 크레딧 음악이 없었는데, 본편에 음악들이 많으니까 믹싱 하면서 어떻게 끝낼까요? 하다가 그냥 골라서 넣었던 것들이다.

‘이날치’ 멤버들도 <안은영> 음악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 방석사냥 할 때 흐르는 음악은 이날치 곡 중에 보컬만 가져와 새로 편곡한 곡이다. <전우치>에 목소리를 쓰기도 한 안이호는, 예전에 비빙에서 염불 외는 음악을 한 적 있어서 화수(문소리)의 공간에서 들리는 염불 외는 것 같은 소리를 했다. 그리고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 휘파람을 잘 분다. 영화음악 할 때 휘파람이 필요하면 꼭 판소리 하는 친구들을 불러서 휘파람을 불게 했는데, <안은영>에선 이날치 멤버들이 휘파람을 담당했다. 

은영과 강선의 이야기에 쓰인 노래 'Rainbow'는 <안은영> 속 수많은 이상한 음악들 가운데서, 가장 일반적인 ‘가요’의 결이 느껴지는 곡이다. 보컬을 가수 ‘도마’에게 청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도마와 목소리가 겹치는 남자 목소리는 누구인가?

= 요즘 유행하는 창법이 그 곡과는 안 어울릴 거 같았다. 도마는 되게 담백하게 부른다. 처음부터 이건 도마가 불러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도마랑 가사를 똑같이 부르는 목소리는 나다. 노랫말은 감독님이 직접 썼다.

<비밀은 없다>에선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이 주요하게 쓰인 데 이어, <안은영>에서도 인디 뮤지션의 목소리를 빌려왔다.

= “보건~ 보건교사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을 남자가 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빌리 카터’의 김지원의 목소리다. 안은영의 테마곡은 힘 있는 보컬이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김지원에게 부탁했다. “보건교사다 잽싸게 도망가자~”는 ‘에고펑션에러’의 보컬 김민정이다.

'씽씽', '이날치', <안은영> 등 당신의 음악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많고 넓었던 적은 처음이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 ‘어어부 프로젝트’를 하면서 단편영화, 연극, 무용 작업 계속하다가 처음 상업영화를 한 게 <반칙왕>(2000)이다. 어어부 프로젝트를 계속 하면서 밖으로 드러나는 거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었고, 영화음악은 상업적이긴 하지만 내 작업이라고 할 만한 밴드 음악들은 상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국악 하는 친구들하고 ‘비빙’이라는 팀을 만들고 활동하던 중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주변에 같이 음악 하던 친구들이 한 명 두 명 떠나고 사라진 걸 떠올리며 무엇이 중요한 걸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음악을 하는 게 재미있지만 상업적으로 좀 성공할 수 있는 음악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통음악 하는 친구들하고 ‘제비 여름 민요’라는 프로젝트 공연을 하면서 락 페스티벌에 가서 공연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민요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고, 시장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씽씽’을 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반응이 왔다. 내부 사정으로 팀이 해체되긴 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이날치도 하게 됐고, 이날치를 하면서 뭔가 하나하나 엮이면서 주목을 받게 된 것 같다. 이날치도 아직은 ‘화제의 밴드’ 정도인 것 같다. 정말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숙제다. 

근래엔 <전우치>의 ‘궁중악사’가 화제가 됐다. 강한 중독성 때문에 ‘수능 금지곡’으로 불린다고.

= 나름 영화음악을 많이 했었는데 <전우치> 음악을 요즘 사람들이 듣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보통 영화음악이 주목받는 경우는 없지 않나. ‘궁중악사’는 궁중에서 선보일 수 있는 음악들을 찾던 중에 ‘취타’라는 곡을 찾았고 거기에 매력을 느껴 그걸 바탕으로 만든 곡이다. 영화에서는 전우치(강동원)가 궁중에서 왕 노릇을 하다가 도사의 정체를 드러내는 대목에서 쓰였다. 처음엔 ‘취타’ 오리지널로 시작해, 전우치가 “가락이 마음에 안 드는구나” 하면 살짝 바뀐 버전이 나오고, 본격적으로 전우치가 도술을 부리기 시작하면 ‘궁중악사’가 나온다.

2000년대에 장영규의 영화음악은 주로 감독의 색깔이 뚜렷한 영화들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10년대부터는 작업량도 부쩍 많아지고, 영화 폭도 넓어진 것 같다. 단순히 의뢰가 많아져서 생긴 변화일까?

= 2000년 초반엔 내가 어어부 프로젝트라는 팀을 했고, 뭔가 특별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음악감독으로 부르다보니 그만큼 색깔이 확실한 영화들이 않았다. 스스로도 평범하지 않은 음악을 하는 거에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 그런데 사실 그런 영화들이 대부분 흥행을 못했다. 그러다가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가 성공하면서 감독이 직접 찾아오는 게 아니라 투자사나 제작사 같은 데서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즈음부터 한국영화가 영화사에서 대기업 중심으로 옮겨가기도 했고. 


작업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고사하는 영화들이 있다면. 

= 로맨틱코미디는 웬만하면 안 한다. 밝은 음악을 못 써서 행복한 영화는 안 하게 된다. 종종 그런 것도 한 적도 있는데, 이젠 안 맞는 건 안 하려고 한다. 

유독 애착이 가는 영화음악 작업은 무엇인가?

= 초기 영화들, <복수는 나의 것>(2002)이나 <4인용 식탁>(2003) 좋아한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두세 편 함께 했던 감독들의 작업은 다 좋았던 것 같다. 서로 믿음이 생겨서 한 작업들은 분명 영향이 묻어나와서 보통 그런 작업들에 만족했다. 


장영규의 영화음악 가운데 영화 팬들 사이에서 유독 많이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가 달파란과 공동 작업한 <곡성>이다. 팬층이 두터운데 음반은 고사하고 음원도 유통되지 않아서 더 그럴 것이다. 

= <곡성>은 최장기간 작업한 영화였다. 안 좋으면 안 됐지. (웃음) 처음엔 내년 칸 영화제에 보내겠다고 해서 그때로 기한을 맞춰 놓았는데 나중에 내년 칸에 안 보내고 내후년 칸에 보내겠습니다 해서 아주 오랫동안 작업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걸 다시 들춰서 뭘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개봉 당시에 OST를 내지 않으면 나중엔 엄두가 안 난다. 


어떤 영화를 작업하고 있고, 작업할 예정인가? 

= 천우희, 신하균 주연의 <앵커>를 후반작업 중이다. 고두심 배우가 제주도 해녀를 연기한 <빛나는 순간>과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이미 작업을 끝냈고. 최동훈 감독의 신작 <외계인>은 계속 회의하는 중이다. 


음악이 중요하게 작용됐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소개 부탁한다. 

= 에밀 쿠스트리차의 <언더그라운드>(1995)를 너무 좋아했다. 음악 듣는 기분으로 영화를 봤다. 그 전엔 고란 브레고비치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가 그 영화를 보게 되면서 그의 이름을 찾아보게 됐다. 그 나라 전통음악 같은 것들이 너무 잘 살아 있어서 음악에 빠져서 봤는데, 나 역시 그런 음악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