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으로 백만장자 되고 할리우드 배우와 결혼한 실화 영화 주인공들

조회수 2020. 11. 1. 10: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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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의 각본을 쓴 아론 소킨의 신작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벌어진 시위대와 경찰의 대규모 충돌 사건.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은 그 시위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재판장에 소환된 8명의 재판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실존 인물들은 재판이 끝난 후에도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할리우드 배우와 결혼하고, 실제 의원직에 당선되고, 애플에 투자해 백만장자가 되는 등 인생 그래프 곡선이 밋밋할 날이 없었던 이들의 인생사를 간단히 정리해봤다.


톰 헤이든 | 에디 레드메인

민주사회학생회(SDS)의 리더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은 재판장에 선 멤버들 중 연설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문장 한 마디 한 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재주를 지닌 인물. 재판을 진행하는 내내 꽉 막힌 태도로 보는 이의 마음을 들끓게 만들던 율리우스 호프먼(프랭크 란젤라) 판사마저 그의 미래에 대한 덕담을 건넸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재판장에서부터 타고난 재능을 뽐냈던 톰 헤이든은 재판을 마친 후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반전 운동에 한창이던 배우 제인 폰다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제인 폰다는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작품상 트로피를 건넸던 배우다. 미국으로 돌아온 톰 헤이든은 1982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6번 더 그 자리를 이어나갔다. 톰 헤이든은 2016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애비 호프먼 | 사챠 바론 코헨

애비 호프먼은 톰 헤이든과 180도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반전 운동을 펼쳐나갔던 인물이다. 헤어와 의상, 톡톡 튀는 말주변까지 지닌 애비는 시카고 재판의 7인 중 가장 개성이 강한 캐릭터. <보랏> 시리즈 등 충격적인 코미디 캐릭터를 여럿 선보여왔던 사챠 바론 코헨이 애비 역을 맡아 색다른 연기 변신에 시도했다. 이미 재판 전 두 편의 책을 써낸 바 있던 애비는 재판 이후인 1971년 <이 책을 훔쳐라>(Steal This Book)라는 제목의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로부터 2년 후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고 4개월간 감옥에서 시간을 보냈다. 베트남전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연출작 <7월 4일생>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영화가 개봉한 해인 1989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수면제 과다 복용이었다고.

제리 루빈 | 제레미 스트롱

애비 호프먼의 파트너. 애비와 함께 청년국제당(Yippies, Youth International Party)의 리더로 활동하던 제리 루빈은 제레미 스트롱이 연기했다. 제레미 스트롱은 <젠틀맨> <빅쇼트> <제로 다크 서티>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의 신스틸러로 제 존재감을 알려온 배우다. 제리 루빈은 재판이 끝난 이후인 1970년대 초반까지도 정부에 대한 항의를 이어나갔다. 이후 애플에 투자해 백만장자로 거듭났다. 1980년대엔 애비 호프만과 함께 정치와 관련한 순회공연을 이어나갔고, 시간이 흐른 후 증권 중개인으로 활동하며 월스트리트에서 일했다.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는 1994년 UCLA(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엔젤레스) 캠퍼스 근처에서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2주 후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데이비드 델린저 | 존 캐럴 린치

무슨 일이 있다 한들 ‘비폭력’을 주장했던 데이비드 델린저. 그의 심경 변화는 이 재판이 사람의 인내심을 뿌리까지 흔들 정도로 터무니없었음을 증명해낸다. 베트남 전쟁 종식을 위한 위원회, 더 모브(The Mobe)의 리더였던 그는 재판 이후 <혁명적 비폭력>(Revolutionary Nonviolence, 1971), <우리가 아는 것보다 강력한 힘>(More Power Than We Know, 1975), <예일대에서 감옥으로>(From Yale to Jail: The Life Story of a Moral Dissenter, 1993) 등 몇 편의 책을 써내며 꾸준히 제 목소리를 높여왔다. 델린저가 다시 한번 경찰과 마주하게 된 건 1996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연좌시위를 벌였고 그 이유로 체포됐다. 당시 애비 호프만의 아들과 함께였다는 점이 인상 깊다. 델린저는 2004년 5월,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파운더> <재키> 등 실존 인물이나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에 자주 출연했던 존 캐럴 린치가 델린저를 연기했다.

보비 실 |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시카고 7인에 속하진 않지만 시카고 시위를 둘러싼 재판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시카고 시위와 거리가 먼 인물임이 분명했으나, 경찰을 살해했단 의혹을 받았던 보비 실은 시카고 7인과 나란히 앉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재판장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계속 주장했고, 그를 성가시게 여긴 판사의 말 한마디에 비인간적인 수모를 겪었다. 흑표당 창립자의 인권을 짓밟은 판사와 검찰 측은 차별 문제로 시끄러워질 것을 우려해 그의 반론을 받아들였고, 결국 그가 기소된 사건은 시카고 7인의 것과 별개로 분리됐다. 재판 이후 보비 실의 코네티컷 경찰 살해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판명 났다. 보비 실은 1973년 오클랜드 시장 선거에 출마했고, 40%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했다. 그로부터 5년 후엔 자서전 <외로운 분노>(A Lonely Rage: The Autobiography of Bobby Seale)를 발표했다. 미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그는 지금까지도 미국의 정치 풍토를 논하는 데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남아있다.

레니 데이비스 | 알렉스 샤프

톰 헤이든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레니 데이비스 역시 민주사회학생회(SDS)의 리더였던 인물이다. 재판장을 벗어난 후 데이비스는 대중 연설가로 활동했고, 인도의 종교인 한스 마하라즈가 설립한 ‘디바인 라이트 미션’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이후로도 그는 인권을 위한 새로운 재단을 만드는 데 힘썼고, 그 재단의 연설자로 활동했다. 올해 79살을 맞이한 레니 데이비스는 영화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에 대한 코멘트를 남겼다. “1968년 미국의 풍경,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미국의 풍경은 매우 유사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패닉에 빠져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영화가 등장한 타이밍이 절묘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정말 응원한다.”

리 와이너 | 노아 로빈스

유죄와 무죄, 판결 앞에서 죄책감에 시달릴 배심원들을 위해 구겨 넣은 예비 무죄 판결자 2인. 그중 한 명은 학자 출신, 리 와이너다. 넷플릭스 영화 <투 더 본>으로 데뷔해 올해로 배우 생활 4년 차를 맞은 알렉스 샤프가 그를 연기했다. 그는 재판이 끝난 후 뉴저지주에 위치한 럿거스대학에 재직해 교육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관련한 농담을 했다는 이유로 실직했다고. 이후 그는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 빈곤, 재난과 건강과 관련한 위기를 해결해나가는 비영리단체 아메리케어스(Americares)의 멤버로 일했다. 올해로 81세를 맞은 그는 자서전 <컨스피어러시 투 라이엇>(Conspiracy to Riot: The Life and Times of One of the Chicago)을 발간했다.

존 프로인스 | 다니엘 플라어티

예일대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존 프로인스는 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또 다른 인물이다. 재판 이후 그는 고더드대학에서 화학 교수로 일했고, 1990년대 초엔 UCLA의 직업 건강 센터의 소장으로 일했다. 시카고 7의 멤버인 제리 루빈이 UCLA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사실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존 프로인스는 독성 대기 오염물질 식별을 위한 과학 검토위원회의 의장으로 일했다. 영국의 동명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미국 드라마 <스킨스>의 스탠리 역으로 유명한 다니엘 플라어티가 그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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