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삼토반> 고아성, 23년째 연기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조회수 2020. 10. 27. 0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씨네플레이 문선우 기자

“아이 캔 두잇, 유 캔 두잇, 위 캔 두잇, 토익!” 글로벌 시대의 흐름 속 95년 을지로. 토익 점수 600점을 넘겨 대리가 되고자 하는 세 여성이 있다. 삼진그룹 입사 8년 차, 웬만한 업무에 있어 베테랑이지만 상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진급은커녕 제대로 된 일조차 하지 못하는 자영(고아성)과 유나(이솜), 보람(박혜수)이다.


‘오지라퍼’ 자영은 우연히 들렸던 회사 공장에서 폐수가 마을로 유출되는 것을 목격하고 유나와 보람과 함께 회사의 비밀을 파헤쳐 나간다. 두 친구에게 우는소리를 내어도 그 내막에 숨겨진 거대한 권력 앞에서 정작 자영은 쉽게 굽히는 법이 없다. 자영 역에 고아성 말고는 적합한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 이유다.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자영의 내면을 고스란히 닮은 배우. 인터뷰 내내 진솔함과 감사함이 묻어나는 답변으로 기자에게도 작은 위로를 안겨주었던 고아성과의 대화를 전한다.


-계절이 바뀌며 변화를 맞이하는 시기다.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근황이 궁금하다.

=올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촬영이 끝나고 좀 침전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되기도 했다. 그래서 좀 조용히, 차분하게 집에만 거의 있다가 새로운 예능 <바닷길 선발대>를 시작했다. 그걸 기점으로 생활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최근에 시작했다.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도 보이던데 그런 시간을 보냈을 줄은 몰랐다. 

=다시 그런 성격으로 돌아왔다(웃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시나리오에 끌려 출연하게 됐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출연을 결심하게 만들었나. 

=이종필 감독님과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류현경 배우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감독님이다”라며 소개를 해준 게 지금으로부터 한 4년 전인 것 같다. 감독님의 영화적 성향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시나리오를 공식적으로 받았을 때 색다른 인상을 받았다. 정서적인 영화를 만드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유쾌하고 귀여운 영화도 재밌게 쓰시는구나 싶었다. 


-상당히 인상이 깊었나 보다.

=내가 알던 모습과는 다른 인상이었다. ‘감독님이 이런 영화를 한다고?’ 싶었다(웃음). 또, 개인적으로는 밝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항거>가 끝난 이후에 내 나이에 맞는 영화를 하고 싶기도 했다. 개인적인 소망이었는데 마침 그런 영화가 들어왔고, 그게 또 이종필 감독님이었기 때문에 하게 된 거 같다.

-최근작들로 돌이켜보면, 1919년(<항거>), 1980년대(<라이프 온 마스>)를 지나 1990년대에 도달했다. 굉장히 긴 시간을 지나온 셈이다. 이번 영화에서 이자영은 입사 8년 차 사회인이지만 실제로 당시 4살이지 않았나.

=<라이프 온 마스>가 제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마음껏 누린 경험이었다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90년대는 일말의 기억들이 있었다. 그걸 처음 느낀 게 처음으로 의상·분장 테스트를 받았을 때다. 95년도는 전혀 뚜렷한 기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거울을 보니까 최초로 인지했던 그 당시 여자 회사원들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분장해 주신 분들이 그 시대를 겪었고 뚜렷하게 기억하시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구현을 잘해주신 것 같다. 그때부터 내가 알게 모르게 기억하고 있던, 내 안에 있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간 거다.


-매 작품마다 시대까지 반영한 다른 인물을 입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를 보면 그 시간이 깃든 여성들의 얼굴, 행동이 다르게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그 부분을 걱정하긴 했다. <라이프 온 마스>가 나에게도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아있었고, 그 작품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80년대랑 어떻게 다르게 해볼까 고민했는데 명백한 차이점이 있더라. 80년대는 조금 더 수줍고 내향적인 모습들이었다면, 90년대는 약간 이상한 낭만이 불었던 시절이었다. 뭔가 다들 활기차지만 멜랑콜리한. (영화 속 호프집 분위기 같은?) 맞다. 그 분위기를 직접 보진 못했고 아마 TV에서 봤을 거다. 그걸 하나하나씩 고려해봤을 때 뭔가 80년대를 연기하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출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여러 겹의 이야기가 레이어드 되어 있는 영화다. 그 베일을 하나씩 드러내는 게 이자영의 역할이다.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끌고 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 영화 속에서 뉴트로, 90년대 배경, 여자 패션 이런 중요한 요소들이 있지만 자영이한테는 그런 특징들이 두드러지기보다 진위 여부가 가장 먼저 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관객들이 함께 자영이를 따라갈 수 있다는 책임감이 내겐 좀 남달랐던 거 같다. 그러려면 실제로 자영이가 겪는 중대한 사안을 나 또한 중대하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제일 신중했던 부분이었다. 


-이자영은 마음 약한 오지라퍼이면서도 때때로 누구보다 강건한 인물이다. 그 내면의 굳건함을 꺼내주는 게 ‘도로시’라는 자영의 영어 이름이라 생각을 했다. 자영이 사건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보람이나 유나가 ‘도로띠’라고 불러주며 자영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거 같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뭔가… 너무 감동적이다(웃음). 근데 이름에 관한 되게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 에피소드? 말해줄 수 있나. 

=대단한 건 아닌데(웃음). 영화 촬영 전에 감독님과 우리 세 명이서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궁금한 게 있으면 자유롭게 물어보기도 하고. 처음에 자영의 영어 이름 설정이 ‘도로시’였고, 유나는 ‘제인’이었다. 감독님에게 이유를 물어봤는데 감독님이 원래 시나리오에 있었는데 빠진 게 있다고 말씀하셨다. 자영이 “왜 내 이름은 도로시야?”라고 물으니 유나가 “원래 너같이 사고 치는 말괄량이들이 도로시고, 나같이 예쁜 여자는 제인이야”라고 답하는 대사가 있었다고 했다. 


-영화에 들어갔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나도 그 얘길 똑같이 했었는데! 그리고 이름뿐만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정체성이 정말 디테일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보람이 사는 동네는 불광동, 자영이는 동작구, 유나는 반포였다. 이런 식으로 정체성이 확고한 상태였는데 감독님이 그걸 다 걷어내고 시나리오를 쓰셨더라. 영화를 찍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출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언급한 바와 같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장점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캐릭터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혹시 이자영 외에 탐나는 캐릭터가 있다면.

=음. 없는 것 같다. 자영이가 나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함께 한 이솜, 박혜수 배우와 또래다. 헤어지기 아쉬워서 합숙까지 해가며 촬영했다고. 세 배우의 합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난 거 같아 보기 좋았다. 

=영화를 찍으면서 느꼈던 끈끈함이 기억에 남는다. 또래 여자 배우들과 같이 작업하는 특유의 행복감이 있다. <항거>를 통해서 그걸 느꼈었지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결이 다른 영화라서 그런가. 그래도 연달아 행복하게 촬영을 한 경험이었다.

출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자영과 최동수 대리의 케미가 기억에 남는다. 최대리가 “선배님, 선배님”하면서 쫓아다니는 게 상당히 귀여웠다. 촬영장에서 실제로 조현철 배우와 호흡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조현철 배우는 뭐랄까… 처음 겪어보는 결의 배우였다(웃음). 상대 배역으로 같이 앉아서 대사를 주고받는데 ‘이 배우가 까먹은 건가,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건가’ 싶을 정도로 헷갈리게 하는 거다. 그래서 촬영을 컷한 다음에 되게 조심스럽게 “혹시 일부러 그러신 거예요, 아니면 진짜 까먹으신 거예요?”하고 여쭤봤다. 그런데 그분이… 


-뭐라고 하던가. 

=“헤헤, 비~밀!” 이렇게 말했다(일동 웃음). 정말 막강한 배우다 싶었다(웃음). 그분의 연기를 가장 가까이서, 앞에서 보는 사람으로서 가끔 당혹스러울 때도 있는데, 결과물을 보면 조현철 배우가 진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구나를 느꼈다. 실제로 같이 연기 호흡을 맞출 때랑 카메라 밖에서 볼 때랑 다르다. 

-4살에 CF로 데뷔해 연기한 지는 23년이 지났다. 어린 시절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걸 깨고 나아가려는 시도가 고아성이라는 배우를 더 단단하게 해준 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부딪혀보고 싶은 새로운 영역이 있나.

= 개인적으로 취미가 많은 편이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게 많았는데 취미는 취미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이걸 업으로 삼거나 책임감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 무거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아예 원래 하던 걸 잘 연마하는 게 내 본분이겠다 싶더라(웃음). 그래도 여전히 재밌는 건 많다. 


-최근에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옛날부터 가졌던 취미인데, 사진 찍는 게 요즘 다시 재밌어졌다. 책도 많이 읽고. <바닷길 선발대> 예능을 하면서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처음 해봤는데 그것도 매력 있게 다가왔다. 


-정적인 것과 스포츠를 다 아우르는 취미 생활이다. 

=맞다(웃음). 


-이자영의 대사 중 “나는 뭘 위해서 일하고 있는 거지?”라는 대사가 있다. 모든 직장인들이라면 와닿을 것 같은 물음이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연기 외길을 걸어오고 있는지,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 

=진심으로, 거짓말 안 하고 내 영화를 보신 분들이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실 때 너무 행복하다. 진짜다. 그런 힘으로 연기를 계속하는 거다. (눈물을 닦으며) 말을 하는데 눈물이 난다. 왜 울리시는 건가(웃음).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웃음). 마지막으로 차기작 계획이 있나. 

=아직은 없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홍보가 끝나면 당분간은 쉴 예정이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