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슈퍼맨, 아이언맨, 닥터 스트레인지? 셜록 홈즈 유니버스를 거쳐간 역대 홈즈들

조회수 2020. 10. 26.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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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이지연
<에놀라 홈즈>

세계 넷플릭스 데일리 톱 10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있다. <에놀라 홈즈>다. 낸시 스프링어의 영 어덜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와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에 대한 이야기다.

1970년 영화 <셜록 홈즈의 미공개 파일>, 2015년 영화 <미스터 홈즈>, 일곱 시즌에 달하는 미국 TV 시리즈 <엘리멘트리> 등, 명작인 만큼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 '셜록 홈즈'를 각색한 극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영국 시리즈 <셜록>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를 앞세운 <셜록 홈즈>가 우리에게는 가장 익숙하겠다. <에놀라 홈즈>는 두 셜록 홈즈 대표 프렌차이즈와 한참 다른 길을 걸었다. 튜크스베리 후작도, 왓슨도 없다. 세 셜록 유니버스의 홈즈들을 모아봤다.


에놀라 홈즈, 유로스 홈즈
Enola Holmes, Eurus Holmes

에놀라 홈즈 | 에놀라 홈즈 (밀리 바비 브라운)

셜록도 마이크로프트도 애초에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지만, 에놀라는 더 허구적인 인물이다. 원작엔 없던 인물이라는 거다. 원작 세계관을 빌려 새롭게 탄생시킨 소설 '에놀라 홈즈'를 영화화했다. <에놀라 홈즈>의 주인공은 에놀라 홈즈다. 이 영화에서 셜록은 서브 캐릭터다. 배경은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와같이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 정도지만, <에놀라 홈즈>는 당대의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를 그려온 여러 작품이 간혹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 영화는 스테레오타입을 완전히 비틀었다.

15세 에놀라는 엄마 유도리아와 함께 홈스쿨링 했다. '숙녀'가 되기 위해 '숙녀처럼' 걷는 방법, 음식을 차분하게 먹는 방법을 배우는 숙녀 기숙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집에 있는 책을 몽땅 읽고 무술을 익혔다. 에놀라는 사랑에 목매는 어린 소녀가 아니다. 이 극에 백마 탄 왕자는 없다. 위험에 처한 튜크스베리(루이스 패트리지)를 구하는 건 오히려 에놀라 쪽이다.

'사라진 엄마 찾기'와 '튜크스베리 실종 사건', 두 주요 에피소드를 따라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리고 에놀라는 극의 중심에서 미스테리를 능히 해결한다. 에놀라는 두뇌 회전이 매우 빠르다. 여기에 열정이 더해져 단서를 빠르게 조합하고 퍼즐을 풀어낸다. 그의 선택은 온전히 그의 것이다. 엄마의 것도, 셜록의 것도 아니다. 마이크로프트, 미스 해리슨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The future is up to us!(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어!)"

셜록 | 유로스 홈즈 (시안 브룩)

마지막 시즌에서 <셜록> 팬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유로스 홈즈. 에놀라 홈즈가 나이 차가 큰 셜록의 여동생이었다면 유로스는 그보다는 나이 차가 덜 나는 셜록의 비밀 형제다. 셜록의 기억 속에서는 한동안 잊혀 있었던 여동생이다. 물론 에놀라처럼 유로스도 BBC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다. 그는 천재적이다. 어쩌면 셜록보다도 더 그렇다. 쇼에서 그 능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따로 언급된 바 없지만,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따르면 유로스는 '뉴턴을 능가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한 시대를 정의하는 천재'다. 그런데 그 천재성이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데 쓰이는 것이 문제였다. 유로스는 대화의 상대를 '재구성'하여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

유로스는 시즌 4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네 시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셜록의 모든 결정이 유로스에 관한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설정과, 존재 그 자체가 쇼의 마지막 사건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장면 지분 대비 큰 역할을 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셜록 여동생 플롯에 적잖이 당황했을 팬들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것도 시즌 마무리를 코앞에 두고 있던 시점에, 폭력적 성향을 가진 사이코패스 동생이라. 외딴 섬에 평생을 갇혀 살았다는 동생이라. 게다가 셜록에게 마이크로프트나 왓슨 둘 중 한 명을 죽이라고 협박하는 동생이라.

아쉽다는 의견이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시즌의 마지막 플롯이 의미 있는 이유. <셜록> 시리즈의 역대급 빌런이 되어주었던 것과 더불어, 감정적인 셜록을 끌어낸 인물이었기 때문 아닐까. 현대판 <셜록>에서 '감정'과 '셜록'은 상충하는 단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이린 애들러(라라 펄버)와의 접촉을 그린 몇몇 장면에서 그의 감정선이 미미하게 움찔대기는 했지만. 어쨌든, 유로스와의 관계는 셜록으로 하여금 감정을 통제치 못하게 했다. 마지막에 셜록은 잊힌 혹은 구태여 잊어 왔던 과거를 끄집어내며 슬픔을 느꼈고, 유로스의 외로움에 공감하여 슬퍼했다. 다소 새로운 셜록의 성격을 드러내며 끝을 맺게 된 데에 유로스가 어느 정도 트리거 역할을 한 셈이다.


셜록 홈즈 Sherlock Holmes

에놀라 홈즈 | 셜록 홈즈 (헨리 카빌)

<에놀라 홈즈>는 에놀라의 이야기다. 다른 셜록 이야기와 같이 셜록 홈즈의 사건 해결을 메인 에피소드로 다루고 있지 않다. 그의 천재적 소양을 집중 조명하고 있지 않다. 영화는 셜록의 추리가 에놀라보다 한 발짝씩 늦은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에놀라 홈즈>의 셜록은 어떻게 묘사되었느냐. 맏형 마이크로프트는 시대의 방식대로, 그의 방식대로 에놀라를 통제하려 든다. 마이크로프트의 퇴행적 관점에 셜록은 동의를 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형이 틀렸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를 막지도 않았다. 언쟁을 벌이기보다는 침묵하기를 택했다. 그리고 침묵은 방관이 되기도 했다.

어찌 됐든, 셜록은 결국 에놀라에게 괜찮은 동료가 되어주었다. <에놀라 홈즈>의 셜록이 특별해던 이유가 몇 있다. 앞서 시리즈 <셜록>의 유로스 홈즈를 언급하며 셜록과 감정의 접점에 대해 말한 바 있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셜록의 디폴트는 소시오패스 셜록이다. 에놀라의 오빠 셜록은 조금 다르다. 다른 시리즈에서 마이크로프트를 제외하고, 셜록과 가족의 관계를 이렇게 깊이(?) 다룬 적이 있던가. 그는 여동생과 엄마의 행방을 걱정한다. 꽤나 가정적이고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졌다. 삐걱대는 괴짜가 아니다.

캐릭터와 배우의 매칭 포인트를 잠깐 짚어보자면. 헨리 카빌의 셜록 홈즈 캐스팅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색한 그림을 상상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영화나 시리즈에서 호리호리한 얼굴 태를 가진 캐릭터로 종종 묘사되어 왔던 셜록이었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다부진 슈퍼맨 헨리 카빌과 셜록의 이미지가 그리 동떨어지지는 않았다. 원작 코난 도일의 소설은 셜록 홈즈를 키가 크고 튼튼한 상체를 지닌 인물로 서술하고 있다.

셜록 | 셜록 홈즈 (베네딕트 컴버배치)

셜록 홈즈 스토리의 새 지평을 연 영국 TV 시리즈 <셜록>.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A-list 배우의 반열에 올려둔 <셜록>. 컴버배치의 셜록이 없었으면 컴버배치의 닥터 스트레인지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칭 고기능 소시오패스 셜록에게 사건은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이다.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날이 셜록에겐 크리스마스와도 같다. 세 작품의 셜록들 중에서도 '괴짜스러움'으로 1등 선점하는 21세기 셜록.

들었을 때 '도대체 어떻게 알았냐'며 크게 놀랄만한 추리가 그에게는 지루할 정도로 쉬운 로직이다. 체내 이성 지수 100%를 가졌을 그에게 관례적인 대화는 무의미하다. 그는 태생적으로 으레 예상되는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무례해 보이기까지 하다. 용기 내서 "이따 시간 있으면 혹시 커피 한잔하실래요?"라고 묻는 몰리(루 브릴리)에게 "블랙에 설탕 두 스푼 넣어서 위층으로 가져다줘요"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그는 테크 세비다. 빅토리아 대 셜록들이 논리력과 물질적인 무언가로 단서를 풀었다면 2000년대를 사는 셜록은 인터넷과 아주 가까운 사이로, 독보적인 검색 능력으로 빠르게 정보의 파편을 조합해낸다. 블로그도 직접 운영한다. 왓슨(마틴 프리먼)의 블로그보다 인기가 덜하지만 말이다.

셜록 홈즈를 현대화하는 과정에 동원된 연출력 또한 <셜록>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었는데, 셜록의 문자 메시지, 타이포그래피, 마인드 팰리스를 형상화한 것이 그중 하나이다. 대사로는, 언어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그의 사고 과정을 비주얼적 장치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셜록 홈즈 | 셜록 홈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셜록 홈즈>의 셜록은 다소 충동적이고 어수룩하다. 약도 한다. 여느 셜록처럼 천재적이긴 하나 코믹스러운 구석이 있다. <에놀라 홈즈>에서 에놀라에 빛을 비춰주는 한편 셜록의 지능을 보여주는 데 굳이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면, <셜록 홈즈>의 셜록은 애초에 다른 시리즈의 홈즈보다 덜 똑똑해 보이기도 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은 매력적이다. <셜록 홈즈>에서 두뇌 추리 쇼만을 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이들의 예상을 빗나간다. 이 영화의 셜록은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몸을 쓴다. 도박 권투 시합에 나간 싸움꾼 셜록을 볼 수 있다. 변장의 귀재 홈즈를 볼 수 있다.

<셜록 홈즈>는 셜록의 독무가 아니다. 존 왓슨(주드 로)과의 호흡이 돋보인다. 왓슨은 언급 않기로 했지만, 셜록과의 찰떡 호흡과 의외의 캐릭터 묘사를 참작하여 약간의 코멘트를 붙여 보자면, 군인 출신 원칙주의자로 그려지던 왓슨 박사는 여기에 없다. 주드 로의 왓슨은 셜록만큼이나 똑똑하고, 사교성이 좋으며 무술도 뛰어나다. 언뜻 보기에 완성형 캐릭터는 셜록이 아니라 왓슨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셜록의 베스트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 Mycroft Holmes

에놀라 홈즈 | 마이크로프트 홈즈 (샘 클라플린)

다시 <에놀라 홈즈>로 돌아와서. 헨리 카빌의 셜록만큼이나 신선한 조합이었던, 샘 클라플린과 마이크로프트. <러브, 로지>, <미 비포 유>, <헝거 게임> 시리즈로 기억되는 클라플린의 모습을 마이크로프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셜록>의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의 유일한 형제로서 결정적인 순간에 동생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면, 샘 클라플린의 마이크로프트은 형제에게 도움을 주진 못할망정 갈등을 빚는 인물이다. <에놀라 홈즈>의 마이크로프 홈즈는 당대 남성 권위의 상징으로 비쳐졌다. 본인이 생각하는 '여성성'이라는 범주 안에 에놀라를 가두려 애를 썼다. 무얼 위해? 제 멋대로인(?) 동생의 존재가 본인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마이크로프트는 탐정의 자질을 갖췄으나 필드에서 뛰는 것을 싫어하는 정부 고위 관료이다. <에놀라 홈즈>의 마이크로프트가 탐정의 통찰력을 가졌는지 확인할 방법은 딱히 없었지만, 그가 영국 신사 사회를 선호하는 엘리트주의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성차별도 일삼는다. 그는 여성 참정권과 관련한 개혁 법안에 반대하는 정치인이다.

셜록 | 마이크로프트 홈즈 (마크 게티스)

소설의 마이크로프트는 정부 관료다. 정확한 직책이 밝혀지진 않았다. 현대판 마이크로프트의 소속은 뚜렷했고, 그는 아주 바쁘다. 국왕을 위해 일하고, 영국 비밀 정보국과 CIA에서 일한다. 가끔은 혹은 번번이 동생 뒷바라지도 한다. 형제는 서로 자신의 지능적 우위를 주장하며 귀여운 앙숙 케미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손쓸 수 없을 것만 같은 스케일의 사건에 셜록이 연루되어도 그를 빼낼 수 있는 사람이 마이크로프트다.

일종의 믿는 구석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것이 형제 사이의 신뢰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는, 마이크로프트의 사고 능력, 지위 등과 같은 조건에 따른 셜록의 논리적 계산에 의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셜록의 믿는 구석은 본인의 뇌이기 때문에,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에게 부차적인 믿는 구석 정도겠지만 말이다.


유도리아 홈즈 Udoria Holmes

에놀라 홈즈 | 유도리아 홈즈 (헬레나 본햄 카터)

혼자 잘났을 것만 같은 셜록에게도 엄마는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유도리아 홈즈의 본래 라스트네임은 다른 이름이었을 테지만, 홈즈 패밀리네임을 공유하는 유도리아가 에놀라의 가치관 형성에 중요 역할을 한 인물이기에 함께 소개해본다.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 세계관에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역사를 접목했다. 유도리아는 개혁안의 입안을 성사시키기 위해 앞서 행동하는 인물이다.

에놀라의 미래에 지금 같은 세상을 물려주기 싫어서, '널 위해 떠난 것'이라지만, 어린 딸을 집에 혼자 두고 홀연히 사라진 것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놀라가 엄마의 족적을 찾아 런던 모험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과, 유도리아의 '계획'이라는 것이 기존 홈즈 시리즈에서 볼 수 없던 설정, 즉 여성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여전히 유도리아는 존재감 있는 캐릭터다.


올여름, 시즌 4로 끝난 줄로만 알았던 영국 시리즈 <셜록>의 시즌 5 제작 소식이 들려왔다. 물론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틴 프리먼 등 기존 캐스트와 함께 돌아온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 촬영으로 일정이 밀렸던 <셜록 홈즈>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도 2021년 말로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넷플릭스가 <셜록 주니어>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외에도 넷플릭스는 내년 또 다른 셜록 홈즈 스핀오프 시리즈 <더 이레귤러스> 공개를 앞두고 있다.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셜록 홈즈 세계관. 매 작품 매 홈즈 이야기가 끝을 맺을 때마다 아쉽기야 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홈즈를 영영 보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음 홈즈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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