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박혜수,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돼요?" 대사가 눈물 버튼인 이유

조회수 2020. 10. 25.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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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이지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적어도 싫어하는 것은 뚜렷하네. 좋아하는 게 없으면 어때. 다 해보는 거지." 직장 생활 8년 차 보람(박혜수)의 권태와 한탄에 봉 부장(김종수)이 한 말이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보람의 꿈은 희미해졌었다. 꽤 오랫동안 무기력이 보람을 이겨왔지만, 사내 비리 사건을 해결하면서 이제야 삶의 의미를 되찾아 보려는 보람이다.

박혜수는 어느새 '청춘'의 얼굴이 되었다. 전쟁이라는 비극에 놓인 청춘 <스윙키즈> 양판래, 21세기형 청춘 그 자체 <청춘시대> 유은재, 이번에는 심보람이다. 지난 10월 6일 박혜수를 만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분이 조금 넘는 짧은 인터뷰 시간이 야속했지만, 기자가 준비한 질문에 정성스레 답하려 시간을 갖고 말을 고르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와의 대화를 전한다.


박혜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 2018년 <스윙키즈> 이후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다. 쉬면서 뭐 하고 지냈나.

= 학교에 다녔다. 졸업까지 30학점 남았다. 학교도 다니고 <스윙키즈>를 계기로 시작했던 중국어도 배우고. 나름 알차게 보냈다.

-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언급하며 고아성, 이솜 두 배우의 역할이 컸다고 말해 왔다. 함께한 두 배우 외에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이유가 또 있다면.

= 제목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다.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가 영화에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대본을 받아보니 예상한 부분은 40% 정도밖에 안 되더라. 생각지 못한 지점들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었다. 영화 전체를 이끄는 사건뿐만 아니라 세 인물의 케미가 기대되더라. 현장이 재미있을 것 같은 게 그때 벌써 그려졌다. 그래서 꼭 하고 싶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세 배우의 인스타그램 주접 댓글이 화제다. 영화 밖에서도 새 배우가 많이 친한 것 같은데. 합숙도 했다고. 세 배우가 연기에 발을 들인 시기에는 차이가 좀 있기는 하지만, 같은 시기 비슷한 나이대를 보내고 있는 또래배우로서 생각을 많이 공유했을 것 같다.

= 언니들에 비해 확실히 경험이 적어서 언니들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촬영장에서는 경험에서 나오는 현명한 모습, 의도하지 않아도 멋있는 언니들의 모습을 보고 ‘다르긴 다르구나’ 했다. 현장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마냥 즐거웠다. 셋 다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함께 있으면 할 얘기가 넘쳐났다. 일단 말이 잘 통한다. 친언니가 둘 생긴 것 같다. 개인적인 고민이 있을 때마다 언니들한테 많이 물어보는 편이었다. 물을 때마다 언니들이 본인 일처럼 들어주고 고민해줬다. 좋은 선배이자 언니를 둘 만났다. 언니들 덕이다.

- 현장에서 어떤 점이 그렇게 멋있고 현명해 보였나.

= 집중의 정도가 다르더라. 물론 나도 집중을 열심히 하지만(웃음). 언니들을 보고 있으면…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그런 게 보여서 너무 멋있더라. 솜 언니는 보이지 않게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다 챙긴다. 아성 언니는 누구한테나 따뜻하다. 스태프 한 분 한 분 다가오기 편하게 만들어준다. 다년간 현장을 경험하면서 쌓아 온 연륜이 느껴지더라. 나도 먼저 인사하고 다가가려 하는데 사실 아직 조금 어색하다. 소심하게 다가가서 티도 잘 안 나는 편이다. 내 연기에 집중하느라 바빠서 주변을 많이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선배 배우들처럼 시야를 넓게 두고 싶은데 아직 연륜이 없는 것 같다. 언니들을 보며 연차가 쌓였을 때 ‘꼭 저런 배우가 되어있어야지’ 싶었다.

- 얼마 전 세 배우가 함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 함께 등장한 것을 봤다. 방송에서 각 배우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언급하다가 이솜 배우가 박혜수 배우를 처음 만났던 날 “재미있는 순간이 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순간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는지.

= 첫 리딩 때 감독님이 나와 아성 언니에게 레퍼런스 삼을만한 영화를 말씀해 주셨다. 솜 언니에게는 아무 말씀 안 해주셔서 솜 언니가 “저는 뭐 보면 돼요 감독님?” 하더라.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는데, 뇌를 거치지 않고 “거울”이라고 했다. 나도 당황하고 감독님도 언니도 당황했지만, 언니가 앉아 있는 모습이 그냥 유나 같아서 그 말이 툭 튀어나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정의파 오지라퍼 자영(고아성), 똑 부러진 엑스세대 유나(이솜), 그리고 보람. 세 캐릭터가 다 살아있더라. 보람은 앞장서서 무언가를 추진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자영과 유나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셋 가운데 유일하게 회사 밖 플롯이 있었던 캐릭터이기도 하다. 박혜수 배우가 생각한 보람은 어떤 캐릭터였나.

= 보람이는 가까운 친구가 아닌 사람과 대화할 때 힘들어한다. 8년 동안 말단 사원으로 일하면서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열정과 꿈은 희미해졌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질문을 던지며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사내 비리 사건을 마주하는 한편, 사건이 해결되는 동안 보람 개인적으로는 자신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보람이는 무기력을 해소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런 캐릭터다.

- 보람과 박혜수 배우의 합은 어땠나. 성격이 비슷한 부분이 있었나.

= 드러나는 성격은 보람이와 조금 다르다. 나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별로 어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바로 할 수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누구나 연약한 데가 있지 않은가. 나의 그런 여린 구석을 조금 더 겉으로 내보인 인물이 보람이라고 생각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한 인터뷰에서 "배경은 90년대 중반이지만 지금 직장 생활을 하는 2~30대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를 안겨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한 걸 봤다. 정말 그렇더라. 특히 보람과 봉 부장 사이의 병실 대화에서 더 와 닿더라. 꿈이 없다고 자책하고 있을 이들을 위한 현실 메시지에 기자도 위로받았다. 20대를 보내고 있는 박혜수 배우에게 이 영화가 어떤 여운과 울림을 남겼는지도 궁금하다.

= 대본을 받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보람이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라고 하는 대사다. 그 대사가 나에게는 눈물 버튼이다. 나도 그 생각을 할 때가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왜 꼭 무언가 열심히 해야 하지?’, ‘왜 어딘지도 모르면서 앞으로 막 달려 나가야 하지?’ 싶은 순간들이 오지 않는가. 주변 사람들도, 지금 사회도 달려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 강요된다는 느낌을 받아 왔던지라 보람의 대사가 더 공감됐던 것 같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휴식 기간에 무얼 했는지 물어봐 주셨는데 뭘 했는지 잠시 기억 못 했던 이유도 이것과 관련 있다. 진짜 가만히만 있는 시간을 나에게 줬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정리를 하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해를 구경하고. 집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새 소리가 좀 들린다. 새 소리를 듣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쉬면서도 초조한 날도 있고, 이래도 되나 싶은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고, 내가 무가치한 인간이 된 건가 싶은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멈춰있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 영화에 더 에너지를 쏟고, 언니들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보람이 그 대사를 뱉을 때, 내 입으로 밖으로는 차마 못 꺼내던 말을 대신해준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스윙키즈>(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제목이 ‘영어토익반’이다. 영어 대사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물어보고 싶다. 보람의 영어는 어땠나. <스윙키즈>의 양판래 역을 소화하면서 발음이나 어투 등 언어 구현에 아이디어를 직접 냈다고 들었다.

= 영어고 한국어고 그냥 보람이처럼 했다. 보람이만의 말투가 있다. 아무도 혼내지 않았는데 혼자 혼나 있는 것 같은 말투. 그 투를 계속 쓰려 했던 것 같다.

- 국문과에 재학 중이다. 보람은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인데, 수학 천재 연기를 하는 것이 새로웠을 것 같다.

= 보람이는 뚝딱 계산한다. 그런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식을 외우며 연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한테는 한자랑 비슷한 거였다. 촬영을 준비하면서 보람이처럼 생각하려 했다. 눈에 안 보이는 도식이 보이고, 거리가 삼각함수로 보이는 삶. (인터뷰 장소 구석구석을 가리키며) 이런 걸 봐도 보람이라면 ‘창문이 대략 2m에…’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 상상하니 그 삶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더라.

- 세 메인 캐릭터의 호흡도 좋았지만 조연들의 활약도 돋보이더라. 회계부 봉 부장부터 생산관리부 최 대리(조현철), 마케팅부 반 부장(배혜선)까지, 버릴 캐릭터가 없던데. 최애 조력자 캐릭터가 있는지.

= 아무래도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던 봉현철 부장님이 제일 좋았다. 총무부 미스김(이봉련)도 좋아하는 캐릭터다. 극 초반에 해고 아닌 해고를 당한 후 마지막에 혜성처럼 등장한 미스김을 보고 보람이가 “언니~~~”하면서 뛰어나가 반기는 장면이 있다. 삼진그룹 내에서 같은 처지에 있던 미스김이 토익반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해 줘서, 그래서 퇴사 후에도 이들을 도와주러 와 준 것이지 않은가. 미스김 서사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멋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토익반 친구들에게는 롤모델 같은 선배가 아니었을까.

박혜수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 보람의 MBTI는 INTP다. 논리적인 사색가, 은근한 원칙주의, 따뜻한 로봇이다. 박혜수 배우의 MBTI도 궁금하다.

= ENTP나 ENFP가 번갈아 가며 나온다.

- 보람의 취미도 노래더라. 본캐도 자칭 기타왕 꿈나무다. 요즘에도 작곡을 하는지.

= 작곡은 안 한 지 좀 됐다. 대신 기타 커버에 재미가 들려서 열심히 하고 있다. 물집도 잡혔다. (손톱을 보여주며) 영화 홍보 스케줄 돌면서 손톱도 좀 예뻐야 할 텐데(웃음), 기타 때문에 이렇게 바짝 잘랐다.

- 주로 어떤 음악을 커버하는가. 음악 취향이 궁금하다.

= 요즘 최애는 영화 <원스> 사운드트랙 곡들이다. 다 좋아서 기타로 칠 수 있는 건 다 쳐보려 하고 있다. 영화에 나온 곡 중 ‘Lies’라는 곡을 제일 좋아한다. 연습을 많이 해서 기타로 칠 수는 있는데 음역이 못 미쳐서 노래를 부르지는 못한다. 권진아의 음악도 너무너무 좋아한다.

-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니 인상 깊게 본 영화를 기록해두는 것 같더라. 휴식 때 영화를 자주 보는 것 같던데 최근엔 어떤 영화를 봤는가.

=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려고 한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지 않은가. 그래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권투 선수 이야기)를 틀어놓고 영화를 따라가며 그 마음, 그 정신으로 홈트레이닝을 했다.

- 일종의 노동요 같은 건가. 노동 영화.

= 그렇다. 그 영화를 보면서 하니까 운동이 너무 잘 되더라. 후반부에 슬픔이 몰아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는 또 같이 앉아서 울고, 또 운동하고 그랬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하는 게 참 많다. 글감이 떠오를 때 일기도 쓴다고. 최근 쓴 것 중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는가.

= 최근엔 10월 3일인가 4일께에 썼는데 사실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 직전이다. 그래서 일기에 설렘과 기대감이 엄청 묻어난다. 사람들에게 빨리 보람이를 보여주고 싶고 어떤 피드백이 나올지도 궁금하다. 영화를 먼저 본 관계자들에게 조금씩 반응이 올 때마다 벅차오르고 감사하다. 그런 내용을 적었다.

- 피아노, 플루트, 기타, 노래, 글, 언어. 잘하는 게 정말 많다. 이면에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나 극복하고 싶은 부분은 없는가.

= 지구력이 부족한 편이다. 처음으로 오래, 그리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게 기타다. 전에는 쉴 때마다 이것저것 배우려 했다. 미디도 배웠고, 재즈 피아노, 작곡, 뭐 엄청 많이 배웠다. 몇 달 못 가더라. 집중력에 지구력만 더해지면 시너지를 낼 텐데. 그게 좀 부족하다. 기타는 나의 첫 지구력 테스트와도 같다.

- 마지막으로, 다음에 해보고 싶은 새로운 역할이 있다면.

= 일단 참여한 작품 수가 많은 편은 아니라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아직 너무 많다. 꼭 어떤 역할을 맡으면 다음 작품은 그 역할의 대척점에 있는 역할이 하고 싶어 지더라. 나의 마스크를 보고 그런 역할을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유나 같은 역도 해보고 싶다. <킬링 이브>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 매회 울면서 봤다. 빌라넬(조디 코머) 같은 역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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