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영화 주연까지 맡은 유명 감독, 누가 있을까?

조회수 2020. 8. 12.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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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카메라 뒤에서만 영화를 관장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자기 영화에 주인공을 자처한 감독들이 있다.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고, 적게는 절반 이상 많게는 거의 모든 작품에 주연을 맡아 활약한 감독들을 소개한다.


* 조연이나 카메오로 출연하거나, 감독보다는 배우로서 이미지가 강한 경우는 경우는 제외했다. 


찰리 채플린
Charlie Chaplin

출처: <시티 라이트>

찰리 채플린은 연출과 연기뿐만 아니라 제작, 각본, 음악, 편집까지 도맡은 전무후무한 재능을 선보였다. 처음 영화에 출연한 1914년, 일주일에 한번 꼴로 단편영화를 개봉시킨 그는 바로 그해 연출 작업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떠돌이 캐릭터를 시작했다. 장편 데뷔작 <키드>(1921)부터 <황금광 시대>(1925), <시티 라이트>(1931),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무슈 베르두>(1947) 등 46년간 11개 장편의 감독을 맡은 채플린이 주연을 맡지 않은 영화는 두 번째 장편 <파리의 여인>(1923)과 말론 브란도와 소피아 로렌을 내세운 유작 <홍콩에서 온 백작>(1967)뿐이었다. 초기의 떠돌이 캐릭터에 이어 유대인 이발사와 독재자 힌켈의 1인2역, 유복한 홀어미만 노리는 연쇄살인범, 한물간 코미디언, 퇴위 당한 왕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재미는 물론 당대의 사회상을 담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출처: <뉴욕의 왕>

버스터 키튼
Buster Keaton

출처: <셜록 2세>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영화 시대를 사로잡은 코미디 스타 버스터 키튼 역시 거의 모든 연출작에 주연으로 활약했다. 그의 무기는 슬랩스틱 코미디였다. 늘 영화 속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한 키튼은 <우리의 환대>(1923), <셜록 2세>(1924), <제너럴>(1926) 등 서커스를 방불케하는 액션을 직접 소화하면서 움직임을 담는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한껏 열어젖혔다. 하지만 감독 버스터 키튼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막대한 제작비가 든 <제너럴>이 흥행에 완전히 실패하면서 그의 입지는 점차 좁아졌고, 감독과 주연 배우 크레딧에 이름을 동시에 올린 건 <홧김에 한 결혼>(1929)이 마지막이었다. 유성영화가 도래했고, 키튼은 재기를 노리며 배우로 일했지만 이전만큼의 커다란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출처: <제너럴>

오손 웰스
Orson Welles

출처: <시민 케인>

오손 웰스는 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시민 케인>(1941)을 26살에 감독 데뷔작으로 발표했다. 연출력은 물론 청년기에서부터 70대 노인까지의 주인공 케인을 스스로 소화한 연기 또한 대단했다. 제작사로부터 난도질 당한 채 개봉한 두 번째 영화 <위대한 앰버슨가>(1942)에선 내레이터만 맡았지만, 이후 연출작에서 꾸준히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아왔다. 영화 이전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재해석한 연극을 무대에 올려 이름을 알렸던 웰스의 연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기반으로 한 <맥베스>(1948), <오델로>(1951), <한밤의 종소리>(1965)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른바 흥행 감독은 아니었던 그는 <제3의 사나이>(1949) 같은 수작은 물론 수많은 B급 영화에 부지런히 출연하면서 영화 제작비를 모았다. 마지막으로 완성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거짓의 F>(1973)에선 자기 자신으로 출연해 “예술은 진실을 이해하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출처: <거짓의 F>

자크 타티
Jacques Tati

출처: <윌로 씨의 휴가>

이번 기획에서 소개하는 감독 가운데 주연 빈도가 가장 높은 감독. 생전에 발표한 모든 연출작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단편 <우체부 학교>에 이어 우체부를 연기한 장편 데뷔작 <축제일>을 내놓은 자크 타티는 4년 뒤 <윌로 씨의 휴가>(1953)에서 처음 자신을 대표하는 캐릭터 윌로 씨를 선보였다. 어수룩한 행동으로 노르망디 해안의 휴양지에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는 윌로 씨는, 자동 시스템이 갖춰진 집에 사는 누이의 소개로 고무호스 공장에 취직해서도(<나의 아저씨>), 파리의 낯설고 복잡한 고층 빌딩을 이리저리 헤매면서도(<플레이타임>), 독특한 캠핑카를 디자인 해 자동차 박람회에 참석해서도(<트래픽>) 그곳을 난리통으로 만들어놓았다. <트래픽>에선 더 이상 윌로 씨를 등장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유명 캐릭터가 있어야 제작비가 마련되는 상황 때문에 다시 한번 윌로 씨가 돼야만 했던 타티는 유작인 TV영화 <퍼레이드>에서 이름 없는 서커스 단원 역을 맡아 마지막까지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였다.

출처: <퍼레이드>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출처: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황야의 무법자>(1964)를 위시한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 B급 액션영화의 명장 돈 시겔이 연출한 <더티 해리>에서 정의를 추구하지 않는 히어로를 연기해 스타덤에 올랐다. 이스트우드의 프로덕션 말파소가 제작하고 시겔이 연출한 <매혹당한 사람들>과 <더티 해리>가 개봉된 1971년, 이스트우드는 감독 데뷔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연출하고 극성 팬의 집착에 위협 받는 라디오 DJ 데이브까지 연기했다. 윌리엄 홀든과 케이 렌즈를 기용한 <브리지>(1973)를 제외하면 1980년대 중후반까지 발표한 모든 영화에서 감독과 주연을 겸해왔다. 1988년 두 개의 재즈 영화 <버드>와 <셀로니어스 몽크: 스트레이트, 노 체이서>를 만든 이스트우드는 웨스턴 영화의 화신이었던 자신의 육신으로써 웨스턴과의 작별을 고한 걸작 <용서 받지 못한 자>(1992)를 만들었다.

출처: <용서 받지 못한 자>

<퍼펙트 월드>(1993),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미스틱 리버>(2003),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등 보다 다양한 소재와 한층 원숙한 연출력을 자랑한 그는 매사 까칠한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이웃이 된 아시아 가정과 우정을 나누는 <그랜 토리노>(2008)를 마지막으로 이제 자기 영화에서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J. 에드가>(2011),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2016) 등 미국의 실존인물들을 영화로 옮기며 필모그래피를 넓히던 이스트우드는 실존인물 얼 스톤을 연기한 <라스트 미션>(2018)을 통해 다시 연출과 연기를 겸했다.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부지런히 신작을 연출하는 행보를 보면 앞으로도 그의 새로운 연기를 보게 될 가능성은 농후해 보인다.

출처: <라스트 미션>

케네스 브래너
Kenneth Branagh

출처: <헨리 5세>

영국왕립연극학교에서 수학해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다가 <헨리 5세>로 크게 주목 받은 케네스 브래너는 4년 뒤 <헨리 5세>(1989)를 영화로 연출해 본인이 직접 주연까지 맡았다. 당시 아내였던 엠마 톰슨과 1인2역을 맡은 <환생>(1991), 영국 명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코미디 <피터의 친구들>(1992), 로버트 드 니로를 기용한 호러 <프랑켄슈타인>(1994)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연출/연기를 소화하는 와중에 <헛소동>(1993), <햄릿>(1996) 등 셰익스피어 작품을 영화화 하는 행보 또한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선 오랫동안 제 연출작에 출연하지 않다가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2014)에서 다시 감독과 배우를 겸했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에선 주인공인 탐정 에르큘 포와르 역을 맡았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속편 <데스 온 더 나일>(2020)에도 출연했다.

출처: <오리엔트 특급 살인>

기타노 타케시
北野武

출처: <하나비>

기타노 타케시는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의 코미디언으로 1970년대 말 80년대 초 일본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를 비롯해 여러 영화에 간간이 배우로 참여하고, 1989년 직접 주인공 아즈마를 연기한 <그 남자 흉폭하다>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 했다. (훗날 타케시 주연의 <배틀 로얄>을 연출하는) 후카사쿠 킨지가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방송 스케줄이 빡빡했던 타케시와의 일정 조율에 실패해 하차하고, 결국 타케시가 원래 시나리오를 대거 수정해 연출을 맡게 된 것. 성공적인 감독 신고식을 치른 그는 <소나티네>(1993)와 <하나비>(1997) 등 잔혹한 야쿠자물, <키즈 리턴>(1996)과 <기쿠지로의 여름>(1999) 등 잔잔한 성장영화를 오가며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드문드문 자신이 출연하지 않은 연출작도 내놓기도 했던 타케시는 <자토이치>(2003)부터는 (<8인의 수상한 신사들>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 감독과 주연 배우로 활약했다. 한동안 <타케시즈>(2005)나 <감독 만세!>(2007) 같은 작가적 야심이 가득한 작품을 내놓다가, 오랜만에 작업한 야쿠자 영화 <아웃레이지>(2010)가 큰 성공을 거둔 뒤 야쿠자 영화 연출에 몰두하고 있다.

출처: <자토이치>

출처: <아이 킬드 마이 마더>

2000년대 들어 자비에 돌란만큼 젊은 나이에 커다란 주목을 이끌어낸 감독이 또 있을까. 유년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한 그는 10대까지는 널리 이름을 떨치지 못했지만, 자전적인 이야기로 직접 주연까지 맡은 감독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면서 이목을 사로잡았다. 마찬가지로 프로듀서/시나리오까지 맡은 다음 영화 <하트비트>(2010)와 (직접 연기를 하지 않은 첫 연출작) <로렌스 애니웨이>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연달아 초청됐다. 세상을 떠난 연인의 가족을 찾아가는 남자를 연기한 <탐앳더팜>(2013)을 거쳐 이례적으로 1:1 화면비를 택한 가족영화 <마미>(2014)로 드디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상을 받으면서 단숨에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올라섰다. 캐나다/프랑스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은 돌란은 카메라 앞에 나서지 않은 채 마리옹 코티아르, 뱅상 카셀, 레아 세이두 등 프랑스 대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단지 세상의 끝>(2016), 키트 해링턴과 나탈리 포트만 등을 기용한 첫 영어 영화 <존 F. 도노반의 죽음과 삶>(2018)을 만들었지만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작으로 최초 공개된 <마티아스와 막심>(2019)은 돌란이 초심으로 돌아가서 만든 것 같은 영화다. 감독/주연/제작은 물론 편집/의상까지 도맡아, 친구 사이었던 마티아스와 막심이 뜻밖에 키스를 나눈 후 사랑이 피어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았다.


출처: <마티아스와 막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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