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궁금해서 찾아본 '국민 아빠 귀도'의 젊은 시절

조회수 2020. 7. 8.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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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출처: <인생은 아름다워>
진정한 인생 캐릭터 딱 하나로 머나먼 한국에서도 오래 사랑받는 배우, 로베르토 베니니.
출처: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로베르토 베니니는 극중 귀도를 훌륭하게 연기하면서 그해 미국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과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쥐었다.
출처: <Onda libera>
이탈리아 현지에서 그가 유명해진 건 시트콤 <Onda libera>(온다 리베라, 자유파)에 출연한 1976년. 이 작품은 한 농부가 개인 방송을 몰래 송출하면서 사회적인 변화를 이끈다는 내용이었다.
출처: <Onda libera>
이탈리아 정부가 <Onda libera>의 내용을 문제 삼아 제작을 중단시켰고 작품은 4화에서 방영을 종료했다. 하지만 이 '검열' 덕분에 로베르토 베니니는 더 유명해졌다.
출처: <베를링게르 아이 러브 유>
이후 주세페 베르톨루치와 함께 각본을 쓴 <베를링게르 아이 러브 유>라는 작품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출처: <베를링게르 아이 러브 유>
이 영화 또한 은근히 정치적인데, 제목의 '베를링게르'가 당시 이탈리아 공산당 서기장이 엔리코 베를링게르를 의미했고, 스토리 또한 젊은 시인이 시를 싫어하는 사회주의자 여성에게 반하는 내용이었기 때문.
출처: <Tu mi turbi>
베니니가 처음으로 '감독'이란 호칭을 얻은 건 1983년 <Tu mi turbi>(투 미 투르비, 날 화나게 한다).
출처: <Tu mi turbi>
<베를링게르 아이 러브 유>에서 호흡을 맞춘 쥬세페 베르톨루치와 각본을 집필했다. 옴니버스식 영화로 그는 1인 다역을 소화했다.
출처: <Non ci resta che piangere>
이쯤부터 그는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는 것과 거장의 작품에 출연하는 걸 병행하며 점차 영화계 깊숙이 이름을 남기기 시작한다. 훗날 <일 포스티노>에서 마리오 역으로 유명해진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와는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공동주연을 맡아 <Non ci resta che piangere>(논 씨 레스타 체 피앙제레, 울어야만 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또한 짐 자무시의 <다운 바이 로>,
<지상의 밤>,
그리고 이탈리아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한 명인 페데리코 펠리니의 유작 <달의 목소리> 등 출연한 작품들이 이목을 끌면서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영화 관객들에게도 점점 익숙한 얼굴이 돼갔다.
출처: <인생은 아름다워>
방점을 찍은 건 역시 <인생을 아름다워>를 만든 1997년. 직접 각본, 연출,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해 전 세계 관객들에게 로베르토 베니니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출처: <피노키오>
그러나 2002년, <피노키오>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직접 피노키오를 연기했고, 그 때문에 '괴랄한 작품'이란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출처: <호랑이와 눈>
이어 2005년 <호랑이와 눈> 또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잠정적으로 영화 공백기를 가졌다.
출처: <로마 위드 러브>
그러다 2012년 <로마 위드 러브>를 통해 영화계에 복귀했다.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영화에서 로베르토 베니니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고, 그 이상의 존재감을 발산했다.
출처: <피노키오>
그의 차기작은 <피노키오>. 2002년의 악몽은 잊어라. 이번엔 피노키오가 아닌 제페토 영감으로 출연한다. <고모라>, <테일 오브 테일즈>를 연출한 마테오 가로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니 전적으로 연기에만 몰입한 로베르토 베니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타임머신' 콘텐츠임에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 반 달라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위는 1993년, 아래는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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