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만 해도 웃긴 배우의 인생 캐릭터들
다스베이더 탈을 쓴 심상치 않은 첫 등장. 특유의 능글거림과 인싸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있었으니.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익준 역을 연기한 배우 조정석입니다. 드라마에서 등장만 하면 극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환기하지만, 짠한 속사정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죠? 첫 방송부터 신스틸러로 낙점된 조정석의 보기만 해도 웃긴 캐릭터를 모아봤습니다.
<건축학개론> 납뜩이
지금까지도 ‘조정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캐릭터죠? <건축학개론> 납뜩이입니다. 과거, 승민(이제훈)의 연애 고민을 들어주던 재수생 친구 납뜩이. 단 10분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신마다 웃음을 유발하며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서연(수지)와의 키스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승민에게 “키스? 그게 키스야?” 비웃곤, “키스라는 건 말이야, 비벼, 막 비벼, X나 비벼” 말하며 온 몸으로 키스를 설명하던 그. 당시 조정석은 뮤지컬계에선 아이돌이었지만, 연예계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신인이었는데요. ‘납뜩이’로 스타덤에 오르며 제33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습니다.
<관상> 팽헌
한재림 감독의 역학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 <관상>.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등장신이 탄생한 이 영화에서 조정석 역시 이정재 만큼이나 길이 간직될 역대급 짤을 남겼는데요. 내경(송강호)의 처남 팽헌 역으로 등장, 닭백숙 먹방과 임금을 알아보지 못하고 “야밤에 눈치 없이 빈손으로 왔냐,” 타박하는 모습 등 방정맞은 삼촌의 전형을 연기하며 호평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레전드는 바로 이것! ‘연기의 신 송강호마저 이겨버리는 조정석’으로 유명한 댄스신 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춤을 가야금의 소리에 맞춰 추는 것이 독특한데요. 해당 장면은 애드리브가 아니라는 사실! 조선시대하면 떠오르는 고정적인 춤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던 조정석은 촬영에 앞서 춤을 연습했고, 이를 본 송강호가 “저 춤 좋은데?” 해서 추게 된 장면이라 합니다.
<질투의 화신> 이화신
아가리 마초’로 불렸던 <질투의 화신> 이화신 역은 조정석에게 또 다른 인생 캐릭터로 남았습니다. 남들은 다 아는 찌질한 면모가 있지만, 본인만은 스스로 ‘멋진 남자다’라고 생각하는 이화신(그게 포인트였죠). 여자에게 죽어도 질 수 없는, 자존심 빼면 시체인 화신은 남성 유방암에 걸리고 그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죠.
격정적인 키스신 등, 숱한 명장면‧명대사를 남긴 <질투의 화신>이지만 폭소를 참을 수 없었던 장면은 형의 장례식장에서의 화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방암 치료를 위해 교정브라를 하고 있었던 화신이 어머니(박정수)에게 그 모습을 들킨 장면이었는데요. 형의 죽음으로 슬프면서도 유방암에 대한 비밀을 말할 수 없는 화신의 표정이 압권입니다.
<엑시트> 용남
지난 여름, 입소문으로 극장가를 강타하며 조정석에게 최고 흥행작을 안겨준 영화 <엑시트>. 조정석은 장기취준생 용남 역을 맡아 온몸을 던진 열연을 선보였습니다. 벽을 오르고 달리는 것보다 조정석 특유의 자연스러운 찌질함이 흥행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네 철봉 바보’로 등장해 첫사랑과의 우연을 가장한 계획적인 재회까지. 찌질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귀여운 용남의 매력을 조정석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제대로 살릴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