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리얼타임 원테이크 도전한 골든 글로브 수상작

조회수 2020. 1. 17.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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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출처: <1917> 포스터

2020년 새해의 막을 올린 시상식 ‘제77회 골든글로브’에서 <1917>이 상을 받았다. 골든 글로브의 최고 상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 2관왕에 성공했다. 북미에서 개봉한 후 호평 세례가 쏟아졌었으나 국내에선 다소 생소했던 작품. 이 2관왕을 통해 한국 관객들도 <1917>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17>은 어떤 영화길래 <아이리시맨>, <조커>, <결혼 이야기>, <두 교황>을 제치고 작품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제목 <1917>은 1차 세계대전을 의미

출처: <1917>

<1917>은 1917년, 1차 세계대전 속 두 영국 군인이 주인공이다.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와 스코필드(조지 맥케이)는 에린 모어 장군(콜린 퍼스)에게 임무를 받는다. 적진을 향해 진격 중인 아군 부대에게 적군이 매복해있으니 진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전달할 것. 두 병사는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전선으로 향한다. ​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파리 수복,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진주만 등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2차 세계대전과 달리 1차 세계대전은 생소한 편이다. 이미 100년도 더 전의 전쟁이며, 2차 세계대전과 달리 전선이 유럽에 한정됐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들리지만, 홀로코스트 같은 비인도적인 사건이 없었던 것도 1차 세계대전이 대중들의 관심 밖에 머무는 이유 중 하나다.

참호에 있는 오스트리아 병사들

반면 1차 세계대전은 그만큼 처절했던 전쟁으로 거론된다. 전쟁이 지속된 약 4년간 끝없는 참호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참호전은 전선을 따라 지면보다 낮은 호를 파 그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양상을 의미한다. 호에서 방어하는 측은 기관총과 철책이 있었으나 전선을 돌파하는 입장에선 (탱크가 없던 시절이라) 보병들을 돌진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보병들은 돌파하든, 아니면 죽든 둘 중 하나였다. 호에서 대기를 하더라도 장기전이 되면 병사들은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야 했고, 그래서 세계 1차 대전은 보병들에게 훨씬 더 끔찍한 전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 

<1917>는 보병들이 이렇게 개죽음을 작정해야 했던 전쟁의 두 병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것도 전선을 뚫고 명령을 전달해야만 하는 전령의 이야기다. 진격 중인 부대의 1600여 명과 블레이크의 형을 살리기 위해 이들은 참호와 폐허를 오가며 적에게 더더욱 가깝게 다가가야만 한다. <1917>가 어떤 처절함을 보여줄지 대강 짐작되는 부분이다.


시간과 자연광, 공간의 완벽한 만남

우리 영화 볼래?: <1917> 런칭 예고편

​“시간은 적이다”(TIME IS THE ENEMY) <1917>이 포스터와 예고편으로 내세운 작품의 핵심이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시간 내에 명령을 전달하지 못하면 아군이 자멸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인데, 시간은 제작진에게도 적이었다. 왜? 제작진은 <1917>를 리얼타임 원테이크처럼 ‘보이게끔’ 찍으려고 했다. 즉 영화 속 시간대와 실제 촬영 시간대를 비슷하게 맞춰야만 촬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17>에서 시간만큼 공을 들인 건 공간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여정. 샘 멘데스 감독 말에 따르면 <1917>에선 “반복되는 장소 없이 지속적으로 풍경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이런 풍경을 위해 제작진은 실제 야외 공간을 찾아 촬영해야 했다. 여느 야외 촬영이 그렇지만 시간의 일관성이 중요한 <1917>은 날씨에 따라 촬영을 접고 리허설로 만족하는 나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영화로 거듭났다.


‘촬영천재’ 로저 디킨스조차 힘들었던 도전

로저 디킨스(<007 스카이폴> 현장)

그래서 샘 멘데스 감독이 선택한 건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더 브레이브> 등 코엔 형제의 영화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블레이드 러너 2049> 등 드니 빌뇌브 감독과 주로 작업한 촬영감독. 샘 멘데스와는 <자헤드 - 그들만의 전쟁>, <레볼루셔너리 로드>, <007 스카이폴>에서 협업한 바 있다. 1990년대부터 꾸준히 활동했음에도 아카데미 촬영상을 못 탄 ‘무관의 제왕’이었으나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촬영상을 수상하며 한을 풀었다.

출처: <1917>
출처: <1917>
출처: <1917>

로저 디킨스는 그동안의 작품에서 빛과 풍경이 아우러졌을 때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장기는 예고편에서도 곧바로 드러난다. 자연광으로 전장의 서늘한 분위기를 담아낸 건 기본, 전등에 의지해 아무도 없는 숙소를 수색전이나 아른거리는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중차대한 명령을 내리는 회의실 풍경 등 이번 영화에서도 남다른 이미지를 포착하겠구나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베테랑 로저 디킨스조차 <1917>은 도전이었다. (배우 딘-찰스 채프먼의 말을 인용하면)“카메라는 절대 두 캐릭터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목표가 있었기 때문. 그래서 로저 디킨스와 촬영팀은 모든 장면을 리허설로 배우의 연기를 파악한 후, 카메라 그것에 맞춰 똑같이 움직여야 했다. 로저 디킨스가 포착하는 음영의 이미지와 역동적인 카메라워크, 그것만으로도 <1917>을 챙겨볼 이유는 충분하다.


샘 멘데스가 처음으로 시나리오 쓴 이유

샘 멘데스 감독(가운데)

물론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1917>을 연출한 샘 멘데스 감독이다. 그는 <1917>에서 각본, 제작, 연출까지 1인 3역을 해냈다. 샘 멘데스는 이 영화가 자신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H. 멘데스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한 걸 보면 할아버지의 경험담이 샘 멘데스에게 큰 충격을 줬던 모양.

샘 멘데스는 처음부터 <1917>를 리얼타임 롱테이크로 연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작품은 물론이고 1차 세계대전이란 배경도 시간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 그는 “(1차 세계대전은) 탱크의 등장으로 종전됐고, 현대전이 시작된 순간”임을 강조했고, 그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고자 혈혈단신으로 길을 떠난 두 인물에게 가장 걸맞은 스토리텔링 방법임을 확신했다. 그 결과 그는 <1917>을 통해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고된 시간을 보냈을 보병들에게 개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부여했다.

<1917>은 북미 현지에서도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샘 멘데스의 연출력이 영화에 어떤 식으로 발휘됐을지는 짐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감독상이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봉준호, 토드 필립스가 아닌 샘 멘데스에게 돌아간 건 그가 리얼타임 롱테이크라는 형식과 두 병사의 여정을 통한 메시지를 정확하게 결부시켰단 걸 증명한다. 현지에서 1월 10일, 국내에서 2월에 관객들과 만날 <1917>이 영국·미국 아카데미에서도 상을 거머쥘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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