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실제 사건들을 끈질기게 영화에 담은 감독

조회수 2019. 11. 22.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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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출처: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왼쪽)

정지영 감독이 <남영동1985> 이후 7년 만에 연출로 돌아왔다. 그 영화가 바로 11월 13일 개봉한 <블랙머니>. 이 영화는 미국계 사모펀드 기업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 매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금융사건 ‘론스타 게이트’를 기반으로 검찰 내부와 외부의 갈등을 그렸다. 그동안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정지영 감독다운 소재다. <블랙머니>를 포함해 정지영 감독이 영화에 활용한 실제 사건들은 뭐가 있을까.


<블랙머니>

론스타 게이트

출처: <블랙머니>
2003년, 부도 위기의 외환은행을 미국계 회사 론스타 펀드가 인수한다. 이후 2012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하고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약 5조 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고, 세금을 징수하려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2008년 외환은행을 HSBC에 매각하려는 계획을 한국 정부가 심사를 빌미로 부당지연시켜 파기됐다는 사유. 또 론스타는 미국 본사가 아닌 벨기에에 뿌리를 둔 론스타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외환은행 인수, 매각을 진행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의 세금 요구가 한국과 벨기에 간의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위반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의 매각 지연 관련 소송은 하나금융의 승소로 끝났으나 대한민국 정부와 론스타의 소송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진행 중에 있다.
출처: <블랙머니>

<블랙머니>는 정지영 감독도 공부하면서 준비한 작품이다. 제작사에서 영화화를 강력하게 제안했고,경제 이야기이기에 정지영 감독도 자료 조사를 한 후 연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7년 전 제작에 착수하고 6년간 한현근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쳤다고. 문제 제기를 통해 관객들이 스스로 자문할 수 있게끔 하는 정지영 감독 특유의 전개 방식이 <블랙머니>에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자신의 생각을 전하더라도 관객들이 토론할 수 있게 “재밌어야 한다”는 정 감독의 생각이 통했는지, 현재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남영동1985>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출처: <남영동1985>
출처: <남영동1985>
1985년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중 고(故) 김근태 민주화운동가(전 국회의원, 보건복지부장관)가 고문 받은 실화를 옮긴 영화. 당시 정부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직을 수행하는 김근태를 구속했다. 이후 남영동 대공분실로 이송, 이근안·김수현·백남은·김영두·최상 5명의 경찰이 22일간 김근태를 고문했다. 김근태는 끝내 그들이 원하는 내용의 조서를 작성했다. 1987년 김근태의 아내 인재근이 해외 언론과 인권 단체에 사건을 고발하고 ‘한겨레신문’ 사회교육부 기자가 취재 끝에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신원을 밝혀 세간에 알려졌다. 김근태는 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았으며 이근안은 수많은 고문 중 단 한 건만 공소시효 만료 전에 처벌을 받았다.
날 것의 고문. 정지영 감독은 <남영동1985>의 김종태(박원상)를 통해 김근태가 겪은 고문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했다. 실제 고문 피해자들의 진술을 엔딩크레딧에 실을 만큼 제5공화국 당시 고문 경찰의 실체를 최대한 반영한 영화. 정 감독 스스로도 촬영 기간 동안 고문하는 게 일상이 된 자신의 모습에 무서웠다고 털어놨을 정도.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가 그린 사건의 피해자 김근태는 2011년 세상을 떠났고,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2012년 초까지 목사로 활동하다 영화가 개봉하기 10개월 전 파직당했다.

<부러진 화살>

판사 석궁 테러 사건

출처: <부러진 화살>
출처: <부러진 화살>
2007년 1월 15일, 김명호 전 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2005년부터 진행된 교수 지위 확인 소송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부장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쐈다.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의 재판은 김 교수가 석궁 쏘는 걸 장기간에 거쳐 연습한 것과 부장 판사를 여러 차례 찾아간 정황 등 그가 고의로 석궁을 발사했다는 검사 측과 부장판사가 당시 착용한 옷 중에서 와이셔츠만은 구멍이나 혈흔이 없는 점과 고의인지 몸싸움에 의한 발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변호사 측의 주장이 엇갈렸다. 김 전 교수는 유죄 판결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정지영 감독이 <까> 이후 12년 만에 선택한 복귀작. 최근 10년의 정지영 감독이 이른바 ‘사회파 감독’으로 분류되는 건 이 작품의 영향이 크다. 독립영화급 예산의 작품이지만 346만 관객을 돌파해 긴 휴식기를 가진 정지영 감독의 존재감을 충무로에 다시 각인시켰다. 나영희와 김지호가 정 감독 못지않게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고, 문성근, 박원상 등 정감독과 함께 진보 성향이 도드라진 배우들이 출연했다.


다만 흥행 이후 논란이 많았다. 대체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김경호(안성기) 교수를 옹호할 수밖에 없는 장치가 과하게 들어가 실화와 달리 고무적이라고. “김 교수가 법정에서 불리한 발언은 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사건을 옮겼다는 원작 르포의 서형 작가는 영화를 보고 “안성기 배우가 워낙 신뢰감 있는 이미지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김 교수의 모든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일까 염려스럽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남부군>

비정규 무장 부대 남부군

출처: <남부군>
비정규 부대 무장 병사를 이르는 파르티잔(партизан)을 러시아어 식으로 발음해 나온 단어 ‘빨치산’. <남부군>은 빨치산이라 불리는 이들을 다룬 영화다. 제목의 ‘남부군‘은 제주 4·3 사건 진압을 반대한 여수, 순천 주둔 14연대 반란군 가운데 일부가 지리산에 근거지를 잡고 활동하면서 자칭한 이름이다. 남부군은 1948년부터 1953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1953년 지휘관 이현상의 사망으로 규모와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 ‘게릴라전을 펴는 공산주의 부대’ 이미지가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여순사건의 반란군 출신 부대이자 지휘관 이현상이 남조선 로동당의 간부인 남부군에게서 비롯됐다.

정지영 감독의 대표작. 남부군에 종군한 이태 작가가 쓴 동명 저서를 영화로 각색했고, 안성기가 이태 역을 맡았다. 빨치산을 소재로 삼아 국방부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고, 당시 할리우드 직배를 반대한 정지영 감독이 극장에 뱀을 풀었다가 촬영 종료 전날 구속되는 등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흥행에도 성공하고 그해 청룡영화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안성기), 남우조연상(최민수), 신인여우상(최진실)을 수상했다. 정 감독은 2년 후 베트남전 배경의 <하얀 전쟁>으로 한국 전쟁영화의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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