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더 끌리는, 흑백으로 만들어진 영화 5

조회수 2019. 10. 16. 08: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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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문선우 기자

바람의 온도가 쌀쌀해진 걸 보면 어느 덧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만큼 흑백 영화와 가장 어울리는 계절이 있을까. 기자의 취향대로 가을에 더 끌리는 흑백 영화 다섯 편을 골라봤다. 아래 리스트들로 계절과 영화의 매력을 한껏 느껴보시길.


이다 Ida, 2013

출처: <이다>
출처: <이다>
감독 파벨 포리코브스키 / 드라마 / 15세 관람가 / 82분
출연 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 아가타 쿠레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고아가 되어 수녀원에서 자란 소녀 안나(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 정식으로 서원식을 거쳐 수녀가 되기 전, 그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아가타 쿠레샤)를 만나고 오라는 제안을 받는다. 완다를 찾아간 안나는 완다에게서 자신의 본명이 ‘이다’이며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님의 존재에 대해 알고 싶어진 이다는 완다와 함께 부모님의 묘를 찾아 나선다.


옛 영화가 떠오르게 하는 1.37:1의 화면비와 흑백 화면,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백은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알지 못하는 이다 자신과 다름 아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가는 여정을 더듬어 거슬러 간 이다는 마침내 화면의 테두리에서 여백을 지우고 화면 중앙으로 옮겨오기에 성공한다. 핸드헬드로 담아낸 이다의 마지막 얼굴과 발걸음은 어딜 향해있는 걸까. 2015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Merry Christmas Mr. Mo, 2017

출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출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감독 임대형 / 블랙 코디미 / 12세 관람가 / 101분
출연 기주봉, 오정환, 고원희, 전여빈, 김학선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던 모금산. 그는 이발소와 수영장, 치킨집, 집을 반복하며 단조롭기 그지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건소로부터 위암 선고를 받게 되고, 그는 영화감독이라던 자신의 아들 스데반을 집으로 부른다. 영문도 모른 채 서울에서 자신의 애인 예원과 함께 소환된 스데반. 미스터 모는 둘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를 내밀고, 영화를 찍자며 크리스마스에 상영할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그러곤 영 탐탁지 않아 하는 아들에게 말한다. “영화감독이면 영화를 찍어야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연극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무려 120편이나 출연한 기주봉의 주연작이다. 가을보다 겨울에 보면 더 좋을 영화지만(?) 흑백 영화를 소개할 때 꼭 소개하고 싶었던 기자의 사심을 담은 추천작! 찰리 채플린을 흉내 내는 미스터 모의 개구진 표정과, 타들어 가는 불꽃 아래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얼굴이 마음을 뭉클하게 어루만질 것이다.


레토 Leto, Summer, 2018

출처: <레토>
출처: <레토>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 드라마 / 15세 관람가 / 128분
출연 유태오, 로만 빌릭, 이리나 스타르셴바움

1981년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러시아 대중음악계를 풍미했던 그룹 ‘키노’의 빅토르 최와 록스타 마이크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영화 <레토>. 마이크를 만나 빅토르 최가 음악적 재능을 펼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당대 유행했던 파격적인 음악들과 이에 걸맞은 감각적인 영상이 흑백과 적은 불량의 컬러를 오가며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젊음과 예술을 향한 패기에 흑백을 덧씌워 청춘을 그리는 영화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지나친 화려함을 절제시킨 것이 눈길을 끈다. 다채로움이 탈색된 이들의 세계는 마냥 찬란하고 패기로울 수만은 없었던 당대 러시아 안에서의 억압된 삶을 표현한 것일지도. <레토>의 주인공, 한국계 러시아인이었던 빅토르 최 역에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국내 배우 유태오가 주연을 맡았다. 2018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후보로 올라 사운드트랙상을 수상한 작품.

출처: <레토>

더 파티 The Party, 2017

출처: <더 파티>
출처: <더 파티>
감독 샐리 포터 / 코미디, 드라마 / 15세 관람가 / 71분
출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패트리시아 클락슨, 킬리언 머피, 티모시 스폴, 브루노 강쯔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어딘지 분노와 슬픔, 배신감으로 얼룩진 한 여성이 스크린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고작 15초에 달하는 <더 파티>의 오프닝 시퀀스는 그 어떤 영화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영화가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게 만든다.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을 자축하기 위해 친구들을 초대한 자넷(크리스틴 스콧). 그러나 그의 남편 빌(티모시 스폴)은 어딘지 무기력하고 불안해 보이기만 하다. 


철저한 냉소주의자 친구 에이프릴(패트리시아 클락슨), 그의 애인 고프리드(브루노 강쯔)를 필두로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커플인 마사(체리 존스)와 지니(에밀리 모티머), 불안한 얼굴로 오자마자 화장실에 숨어 총을 숨기는 은행가 톰(킬리언 머피)까지. 자넷의 집에 모두 모인 지인들. 하지만 예측하지도 못한 폭로와 얽히고설킨 관계가 드러나면서 파티의 끝은 점차 벼랑 끝으로 가게 되는데. 엉망이 되어버린 파티의 중심에서 빌은 나지막이 말한다. “우리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오롯이 언어로만 러닝타임을 밀도 있게 채운 <더 파티>는 그 어떤 영화보다 빈틈없이 휘몰아치는 71분을 선사한다.

출처: <더 파티>

토리노의 말 The Turin Horse, 2011

출처: <토리노의 말>
출처: <토리노의 말>
감독 벨라 타르 / 드라마 / 15세 관람가 / 146분
출연 에리카 보크, 야노스 데르즈시

1889년 1월 3일, 카를로 알베르토 거리 6번지 집에서 외출을 나선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로부터 멀지 않은 한 시장에서 마부가 말에게 채찍질하는 것을 본다. 니체는 인파를 헤치고 마차에 뛰어들며 말의 목에 팔을 매달고 엉엉 울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침대에서 꼬박 이틀을 조용히 누워있다 어머니에게 한 가지 말을 남긴다.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이후로 니체는 10년간 정신이 나간 상태로 얌전히 누워 살다 숨을 거뒀다.


헝가리 출신의 거장 감독 벨라 타르는 니체가 울분을 토해낸 그 사건 속 말과 마부로부터 출발해 영화 <토리노의 말>을 만들었다. 벨라 타르의 10번째 작품이자 은퇴작인 이 영화는 늙은 말과 마부, 마부의 딸 세 사람의 단조로운 6일의 일상을 비춘다. 매섭게 휘몰아치는 바람과, 묵직하면서도 황량한 첼로 소리, 버석거리는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흑백의 화면까지. 지독하리만큼 숨 막히는 롱테이크를 통해 존재들의 처절함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국내에선 정식으로 처음 공개된 벨라 타르의 작품이며 제6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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