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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부터 인셀 논란까지, <조커>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

조회수 2019. 10. 13.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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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찬얼 기자

온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 영화, <조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는 이변을 일으키더니, 히어로 영화의 불모지라는 일본에서조차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까지 독식하고 있다. 하지만 화제를 모을수록 <조커>에 대한 여러 논란과 우려들도 계속되는 상황. 영화를 본 관객들끼리 의견이 갈린 영화 속 내용과 작품 외적으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지점들을 정리해봤다.

※ 이하 내용은 <조커>의 결말을 포함한 구체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다.


<조커>의 결말은 현실? 망상?

출처: <조커>

기억 안나는 관객을 위한 설명하자면, <조커>의 마지막 씬은 정신병원에서 아서(호아킨 피닉스)가 상담가(에이프릴 그레이스)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갑자기 아서가 피식 웃자, 상담가는 왜 웃냐고 묻는다. 아서가 웃긴 농담이 생각났다고 하자 상담가는 무슨 농담인지 묻는다. 그러자 아서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복도에 피 묻은 발자국을 남기는 아서가 막판에 누군가에게 쫓기면서 끝.

현실이다

<조커>가 장면 배치를 다소 혼란스럽게 했어도,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선형적 구조로 진행된 것이 근거. 만일 <조커>가 의도적으로 플래시백이나 아서가 꾸는 꿈 등을 자주 삽입했다면, 결말에 관한 논쟁이 좀 더 뜨거웠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인셉션>처럼. 하지만 <조커>는 ‘망상이다’라는 암시를 보여주는 장면도 적고, 무엇보다 작품 전체가 망상이라면 당위성이 없는 공허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체적으로 현실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망상이다

<조커>의 결말이 아서의 망상이라고 주장하는 관객은 캐릭터와 몇몇 장면을 근거로 삼는다. 아서 플렉이란 인물이 극중 언급되듯 뇌를 다친 정신질환자이며 그렇다면 자신이 ‘조커’라는 우상으로 거듭나는 내용 또한 그의 망상일 수 있다. 초반 상담을 받는 장면에서, 상담가는 그가 정신병원에 갇혀있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 과거는 아서가 벽에 머리를 찧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시각화되는, <조커>에서 보기 드문 과거의 형상화에 해당한다. 특히 이 회상 속 공간이 결말의 그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실은 아서가 계속 정신병원에 있으며 전개 대부분이 허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출처: <조커>
이 공연 장면에서 실제로 어떤 농담을 했는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도 그의 망상증을 상기시킨다.
‘망상이다’의 반론

이런 장면은 영화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페니 플렉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과거를 현재의 아서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으로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켰고, 아서가 머레이에게 인정받는 망상 또한 구체적으로 그린 바 있다. 즉 갑작스러운 플래시백을 엔딩과 연관 지어 “아서는 정신병원에서 망상한 것이다”라고 확정 짓는 것은 오류라는 것. 마지막 상담에서 아서가 웃을 때, 브루스 웨인의 유명한 비극적 장면을 굳이 삽입했다. 굳이 웨인 부모가 살해되는 장면과 별개로 둔 것도 “아서가 계속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주장보다 실제 일어난 일임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감독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런 망상론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아예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이것은 조커의 여러 이야기 중 하나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고 말할 수도 있다” 즉 <조커>는 아서 플렉이 범죄자가 되고 정신병원에 갇힌 ‘닫힌 결말’의 영화 같지만 처음부터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게 설계된, 열린 결말을 의도한 영화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토마스 웨인이 한 말, 진실일까?

출처: <조커>
토마스 웨인(브래트 컬렌)

영화 <조커>가 기존 코믹스와 다르다고 명백하게 선을 긋는 설정. 아서는 엄마 페니 플렉(프란시스 콘로이)이 토마스 웨인(브래트 컬렌)에게 보낼 편지를 읽고, 자신이 토마스 웨인의 혼외 자식임을 알게 된다. 상류층의 행사에 숨어든 아서는 토마스 웨인을 만나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토마스 웨인은 페니 플렉이 망상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며 아서도 입양한 것이라고 다그친다. 이후 엄마의 정신과 치료 기록과 입양 기록을 확인한 아서는 토마스 웨인의 말이 믿게 된다. 하지만 극중 페니의 사진 뒤엔 “웃음이 예뻐. T.W.”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토마스 웨인의 말이 사실이다

사실 이견이 있을 이유가 없다. <조커>는 아서가 스스로 진실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관객이 납득할 수 있게끔 설계돼있다. 아서가 정신병원에서 빼돌린 페니 플렉의 진료 기록과 입양 기록은 관객들에게도 보이며, 그 안의 내용도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아서(와 우리)가 그 자료를 본 이상, 토마스 웨인의 설명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페니 플렉의 말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커>는 일부러 샛길을 만들어놓는다. 아서는 진실을 알고 분노해 페니를 죽인다. 직후 머레이쇼 출연을 앞두고 광대의 모습으로 분장하는 장면에서 그는 어머니의 과거 사진을 발견한다. 사진 뒷면엔 “웃음이 예뻐. T.W.”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T.W.가 토마스 웨인의 약자인 걸 잽싸게 알아챈 관객이라면 ‘혹시…?’하는 의문을 떠올릴 것이다. 재밌게도 아서는 이 문장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의 마음엔 불신의 씨앗이 움트고, 아서가 이 상황에 완전히 심취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제작진이 굳이 이 문장을 집어넣은 건, 적어도 토마스 웨인을 의심할 여지를 일부러 의도했다 볼 수 있다.

출처: <조커>
극중 페니 플렉이 전혀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지 않는 것도 페니 플렉의 말이 진실이라는 쪽에 무게를 실어준다.
배우의 대답

이 의문에 일말의 실마리를 준 건 토마스 웨인을 연기한 브래트 컬렌.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적어도 자신은 토마스 웨인이 페니 플렉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상정했음을 밝혔다. 아서가 친자인지는 고려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그 여지는 충분히 있다는 것. 그는 “나 자신은 토마스 웨인이 페니 플렉을 정신병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으니, 아서를 만났을 때 필요 이상의 까칠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꽤 명확해진다. 물론 브래트 컬렌만 이렇게 설명했을 뿐, 토드 필립스 감독이나 실버 스콧 각본가는 이 부분에 함구하고 있다. 다만 기존에 캐스팅됐던 알렉 볼드윈이 “도널프 트럼프 같은 인물을 연기하라고 출연하지 않았다”며 하차한 걸 보면, 토마스 웨인이 자신의 혼외 자식을 입양과 정신질환으로 숨길 만한 악독한 인물로 설정됐을 가능성도 있다.

출처: 알렉 볼드윈 공식 트위터
알렉 볼드윈은 토마스 웨인 역 하차 이유를 언급하며 ‘도널드 트럼프적인’이라고 언급했다.

<조커>, 인셀을 자극하는 위험한 영화?

6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은 산타바바라 총기난사 사건. 범인 엘리엇 로저이 남긴 유서를 통해 인셀 범죄임이 밝혀졌다.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가장 큰 논란은 ‘인셀’에 관한 것이다. 인셀은 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로 비자발적 독신을 뜻하는 단어. 어떤 이유에서건 연애나 성관계를 전혀 하지 못한 사람들을 뜻한다. 북미 사회에서 인셀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복합적인 이유. 첫째, 기본적으로 쉽게 총기를 취득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인셀 범죄자들이 스스로를 표준임에도 사회에서 배제된다고 느끼는 점. 북미 사회의 인셀들은 백인·20~30대·영어라는 지극히 평범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나 이성을 만나지 못하면서 그 분노를 이성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전이하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인셀들은 범죄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한 혐오 확산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출처: <조커>
위험하다

영화를 먼저 접한 평론가들이 <조커>가 인셀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서 플렉은 백인 남성이며, 극중 여성과의 교류가 없고(있었던 것조차 망상이고), 끝내 사회의 폭력을 이끄는 범죄자로 거듭난다. 물론 영화를 보면 아서가 조커로 변해가는 건 정신질환과 과거사 등 복합적 이유지만, 일부는 그를 둘러싼 사회의 냉대 때문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 <조커>를 본 관객들이 사회가 자신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서가 변했다고 읽는다면, 인셀이 아서에게 자신을 이입할 수 있다는 논지다.

그럴 이유가 없다

다만 개봉 후 영화를 본 관객들은 <조커>는 인셀을 자극할 만한 영화가 아님을 지적했다. <조커>는 아서 플렉이 원래 정신질환자라는 걸 명백하게 보여주며 시작한다. 또 전체적인 전개에서 자신의 태생이나 정신질환에 많은 영향을 받지, 이성 문제에 연연하며 시달리는 묘사는 거의 없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소피(재지 비츠) 또한 아서의 망상증을 보여주는 기능적인 역할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성적인 분위기가 없다시피 한 <조커>가 이성 문제에 시달리는 인셀들에게 방아쇠가 된다는 건 지나친 우려라는 반응이다.

재지 비츠가 연기한 소피는 미혼모로 섹슈얼한 이미지가 아닌 동질감을 중점으로 묘사됐다.
나는 그저 억울하다 (feat. 존 윅)
<조커> 현장에서 호아킨 피닉스(왼쪽)에게 연기 지시 중인 토드 필립스

이에 가장 억울한 사람은 토드 필립스 감독. 그는 그동안 코미디 영화를 해왔고, <조커> 또한 코미디와 애처로움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에 성공한 장면이 꽤 많다. 그럼에도 자신의 영화가 폭력성을 자극한다는 말에 그는 “이 영화는 80년 대풍의 가상 도시에 가상 캐릭터를 다뤘다”며 현실 범죄와 연관 짓는 건 불공평하다고 반응했다. 또 그는 ‘백인 남자’가 300여 명을 ‘죽이’는 <존 윅 3: 파라벨룸>을 보며 즐기면서 왜 <조커>에만 다른 잣대를 갖다 대는지 반문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 시절 오로라 총기 난사 사건을 간과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조커>가 ‘인셀’에게 자극을 준다는 평가는 재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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