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소식] 박찬욱 감독이 '궁극의 키스신'을 선보이겠다며 찍은 장면은?

조회수 2019. 10. 9.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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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은진 기자

부산국제영화제엔 영화 상영 외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아시아 독립영화인들이 모여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연대와 협업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도록 마련된 교류의 장 ‘플랫폼 부산’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즐길 수 있는 행사 중 하나다. 지난 10월 6일(일)엔 특별한 손님 두 명이 ‘필름메이커 토크’로 아시아의 영화인들을 찾았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감독, 제작자부터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까지 참여해 눈을 반짝였던 자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에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는 건 물론, 여러 영화인들의 고민과 질문에 정성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필름메이커 토크 행사에서 오간 두 감독의 인상 깊은 말들을 정리해봤다.


“영화란 태어나기 위한 시점에 태어나는 것 ”

필름메이커 토크 1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10월 6일 오전 10시 30분, 벡스코 제2전시장 이벤트룸
출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비행기 안에서 구상했다. 상공에서 까뜨린느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의 역할을 구체화시켰고, 그로부터 3년 후 영화를 완성했다. 기획부터 촬영까지 빠르게 진행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그가 16년 동안 품고 있던 스토리였다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희곡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야기”라고 밝히며 “비가 내리는 날, 대기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고지식한 노 여배우와 젊은 시절 세상을 떠난 그녀의 라이벌 친구였던 여배우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 작품”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후 이야기가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아 그를 묵혀둔 채 다른 영화 작업을 해나갔다고. 이 이야기가 부활한 게 바로 하네다와 파리를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이야기의 무대를 대기실이 아닌 파리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고, 여배우와 라이벌 여배우의 이야기를 여배우와 여배우가 되지 않은 딸의 이야기”로 변경했다. 이후 “생각의 문이 열린 느낌”처럼 제작이 수월하게 이어졌다.

출처: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역시 “시나리오를 처음 쓴 건 1989년이고, 영화화가 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영화감독이 된다면 이 작품을 데뷔작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방송국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신인 시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눈여겨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영화감독이 된 후에도 “<아무도 모른다>의 제작을 맡은 회사가 부도가 난다든가, 프로듀서가 사라지는 일이 계속”됐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런 일들의 연속으로 “<아무도 모른다>는 영화가 될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말 많고 탈 많았던<아무도 모른다>가 현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됐다는 점이 인상 깊을 따름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마 내가 하고 싶었을 때 만들었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됐을 거다. 영화란, 태어나기 위한 시점에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필름 메이커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명언을 건넸다.


“5년 동안 매년 영화를 찍고 있거든요.
그 외의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영화 작업을 하지 않을 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 대답을 내놨다. “5년 동안 매년 영화를 찍고 있거든요. 그 외의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어 자신만의 휴식 규칙에 대한 귀여운 비하인드도 털어놨다. “비행기를 타면 대본을 고치고 있고, 책을 읽어도 영화를 위한 책밖에 읽지 않아요. 쉴 때는 어떤 걸 해야 하는지 목록을 작성하는 타입인데, 쉴 때 하려고 했던 것을 했느냐 안 했느냐 따지면 이게 쉬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곤 해요” 5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재정비를 위해 1∼2년 정도 휴지기를 가질 것임을 공지하기도 했다. “앞으로 만들어나갈 영화를 지금 이상의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누구와 함께 어떻게 그런 것들을 만들 수 있을지 구상할 예정”이라고.


“내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영화의 아버지 같은 존재다”

출처: 씨네21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허우 샤오시엔, 이창동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배우의 즉흥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던 도중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이름을 꺼냈다. “촬영장에서 제가 정해놓은 카메라 포지션 때문에 배우가 움직임에 제한을 받았던 적이 있었어요.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은 영화만 보고도 현장을 파악하시고,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해주셨죠. 이후부터는 배우의 연기에 맞춰 촬영 동선을 정하고 있어요” 이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을 털어놨다. 대만의 남쪽에서 자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속 풍경을 보며 “아버지는 이런 풍경에서 자랐구나” 생각했고, 그의 영화에 친근감을 느끼게기 시작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에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어떤 존재인지 털어놓으며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전 방송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계에서 스승으로 모실 감독님이 없었어요.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이 제게 영화의 아버지 같은 존재죠. 그래서 감독님은 제게 정말 특별한 존재예요”


“<아무도 모른다> 촬영 당시
현장을 게임처럼 만들었다”

출처: <아무도 모른다>

토크 행사에 참석한 필름메이커들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가장 궁금해했던 건 <아무도 모른다>의 촬영 비하인드였다. “아이들의 마법 같은 연기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냐”는 질문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이들끼리 찍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에 카메라를 계속 돌려놓은 상태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노는 장면을 촬영했고, 연기를 하던 중에도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디렉션을 주곤 했다” “카메라가 돌고 있을 때와 돌고 있지 않을 때 상황의 차이가 없는 것을 우선시했다”고 밝혔다. 자판기에서 남은 거스름돈을 찾는 신을 촬영할 땐 현장을 게임처럼 만들었다고. 당시 스태프들은 특정 자판기에 동전을 미리 숨겨놨고, ‘찾는 사람이 임자’라는 조건을 걸어 아역 배우들이 열의를 다해(!) 동전을 찾게 만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playing) 연장선의 연기(play)를 원했다”고 밝히며 “아이들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우들이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민했다”는 노하우를 밝혔다.


필름메이커 토크 2 : 박찬욱 감독
10월 6일 오후 3시 30분, 신세계 백화점 문화홀

(<친절한 금자씨> 속)
금자씨는
‘프로듀서 라이터 디렉터’다”

출처: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의 필름메이커 토크는 박찬욱 감독이 사랑하는 영화적 요소가 많이 반영되어있는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 속 두 시퀀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박찬욱 감독이 꼽은 <친절한 금자씨>의 시퀀스는 유괴범 백 선생(최민식)에게 부모들이 복수를 하는 장면.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를 메타 복수극”이라고 설명하며, “<친절한 금자씨>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후반부에서 금자 씨는 거의 조연이 된다. 구경꾼의 위치로 스스로를 퇴각시키는데,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복수극의 주인공인 줄 알았던 사람이 물러나고 조연으로 비친 유족들이 임무를 수행한다” “복수극을 만드는 제작자, 각본가, 감독인 저의 입장이 투영된, 그래서 이 영화의 금자 씨는 프로듀서 라이터 디렉터(Producer Writer Directer)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금자 얼굴의 반을 가리는 하이넥 트렌치코트 역시 영화 속 그녀의 위치를 담아낸 의상. 박찬욱 감독은 “사전 제작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의상이 바로 금자의 트렌치코트”라고 밝히며, 이 장면에서 금자의 코트 깃을 올려 그녀의 눈만 보이게 만든 건 “그녀가 이 단계에선 관찰자임을 강요하기 위한 컨셉”이었다고 털어놨다.


“이것이야말로 키스 중의 키스,
영화 역사상 최고, 궁극의 키스신을 선보이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출처: <박쥐>

“해피 버스데이, 태주 씨” 박찬욱 감독이 꼽은 <박쥐>의 시퀀스는 상현(송강호)와 태주(김옥빈)의 혼연일체, 흡혈 키스 신으로 막을 내린다. 자신을 병균이라 말하는 태주를 홧김에 죽여버린 상현. 죄의식에 사로잡힌 것도 잠시, 피 향기에 미친 그는 죽은 태주의 피를 마구 빨아먹는다. 그러다 그녀를 되살려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 태주가 흡혈하게 만들어 그녀를 뱀파이어로서 부활시킨다. “여기서 혈액형은 따지지 말자고요”라며 위트 있게 장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 박찬욱 감독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이 광기에 치달았을 때 일심동체를 넘어 피로 하나가 되는 모습, “궁극적인 단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상현이 자신의 혀에 상처를 내 태주의 흡혈을 돕는 장면을 구상하며 박찬욱 감독은 “이것이야말로 키스 중의 키스가 아닌가 싶었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궁극적인 키스를 선보이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밝혔다.


“무모한 도전, 여기에 희열이 있다”

출처: 유은진 기자
(왼쪽부터) <씨네21> 김혜리 기자, 박찬욱 감독

필름메이커 토크는 예비 영화인, 혹은 이제 막 현장에 발을 들인 영화인들이 박찬욱 감독에게 조언을 구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만드는 것이 배우는 데엔 지름길이며 즐거움을 느낄 좋은 기회도 많다”고 입을 연 박찬욱 감독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우연한 사건, 변덕에 의해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어떤 것들, 이전의 것을 통째로 버리고 새로 만들어내는 무모한 도전, 여기에 희열이 있다”고 밝혔다. 단, 이를 당황하지 않고 처리하기 위해 사전의 세심한 계획은 필수임을 강조했다. 동시에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이 후배 영화인들에게 전한 애정 어린 마지막 멘트를 덧붙인다. “크루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나왔어도 그들에 의해 수정되고, 그들이 자신의 것이라 느끼게 만드는 것.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여러분께 그런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출처: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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