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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출시한 111만원 짜리 자동차가 있다?!

조회수 2018. 3. 17.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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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자동차 브랜드의 첫 출시 모델

제가 기억하는 우리가족의 첫 차는 자주색깔의 현대 쏘나타였습니다. 자동차를 애지중지 아끼던 아버지는, 흠집이 나면 엄마의 자주색 매니큐어를 빌려 그 위에 칠하며 관리하셨었죠. 그리고 저의 첫 차는 쌍용의 뉴 코란도였죠. 사고 나도 크게 다치진 않을거라며 아버지가 엄마께 사주셨던 건데 외려 제가 더 많이 몰고 다녔더랬습니다.


첫차라는 인식때문인지 더욱 더 각별하게 여겨졌던 첫 차. 몇 년이 지난 후 그을린 외관이 무색할 정도로 저와 제 가족에게 첫 차는 여전히 설레는 시작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첫 차를 구매하는 이용자만큼이나, 첫 차를 출시하는 브랜드 입장에서도 첫 차가 갖는 의미는 상당했을텐데요.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국산차들의 조상들, 이른 바 그들의 ‘첫 차’를 파헤쳐보기로 했습니다.


보통 현대자동차의 첫 차로 떠올리는 포니는 현대자동차의, 그리고 우리나라의 첫 독자 생산 모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량 생산 자동차로, 엔진과 섀시는 미쓰비시의 것을 사용하였고,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는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디자인으로 만든 바디를 가졌죠.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실제로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모델은 코티나입니다.


유럽 포드와 기술 제휴하여 만든 모델로, 포드 코티나 2세대를 베이스로 만들어졌습니다. 

현대는 첫 번째 생산, 판매할 자동차로 심사숙고하는데요. 당시 경쟁상대였던 신진자동차의 코로나에 비해 크고 넓으며 여유로워 결정하게 됐죠. 


하지만 코티나는 이내 '밀어야 하는 차', '골치나'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엄청난 혹평에 시달리게 되었는데요. 주 고객이던 택시회사에서 특히 많은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조사 결과, 코티나는 유럽의 포장된 아스팔트 노면을 기준으로 설계되었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는 시멘트 포장이 고작이고,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도로였기 때문에 실정이 맞지 않았고, 1969년의 대홍수로 현대가 보유하고 있던 모든 부품이 침수되고, 이 부품들로 만들어진 차량들이었기 때문에 고장이 더욱 잦아질 수밖에 없었던 거였죠.


결국 출시 3년 만에 1대 코티나는 단종되었지만 이후 포드 코티나 3세대 베이스의 2대 코티나를 생산하면서 현대의 오명을 씻어주었고, 이 기술들을 기반으로 현대는 포니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전신은 철강 배관 및 자전거 부품 제조업체인 경성 정밀 산업입니다. 처음 회사를 설립하고 만든 것은 삼천리란 이름의 자전거였습니다. 


하지만 1952년 기아 산업으로 이름을 바꾸며 일본의 혼다, 마즈다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각각 바이크와 소형 트럭 및 자동차를 만들게 됩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이후 1973년, 소하리에 자동차 조립 공장을 만들게 되고, 이 공장에서 기아의 첫 차, 브리사가 탄생하게 됩니다. 

산들바람이라는 뜻을 가졌지만 이내 우리나라에서 그 이상의 바람을 일으키게 되는데요. 브리사의 이름으로 나온 첫 번째 스타일은 승용차가 아닌 픽업트럭이었습니다. 이후 세단과 왜건 형태도 각각 출시되었죠. 특히 세건 타입은 현대의 포니보다도 1년 앞서 출시되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성적을 보인 브리사였지만, 이후 전두환의 자동차공업 통합 조치로 인해 생산 중지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주인공인 만섭 역의 송강호의 택시가 바로 이 세단 타입의 브리사입니다. tvN의 '응답하라 1988'에서는 브리사 픽업이 소독차의 모습으로 등장했었죠.


쌍용자동차의 시작은 하동환자동차제작소로 볼 수 있습니다. 트럭과 버스, 그리고 미군을 위한 '찝차'를 만들며 역사를 시작했죠. 하동환자동차제작소는 곧 동방자동차공업(주)를 합병하여 하동환자동차공업(주)를 출범시킵니다. 이후 신진자동차공업과 업무 제휴를 맺었고, 하동환자동차의 지프차 생산 기술은 신진지프자동차공업에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신진지프자동차에서 국내 최초로 만든 민간용 지프가 출시되는데요. 이름은 아직이지만, 이때부터 이미 코란도의 외형이 자리 잡혀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69년도에 출시된 지프를 코란도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신진지프가 거화자동차로 바뀌고, 거화에서 KORANDO라는 상표를 채택하며 코란도의 역사에 윤곽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출시 당시의 이 검은색 지프는, 군사정권의 관용차로 쓰이며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때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 늘 등장했는데요. 당연히 이 당시의 신진 지프는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늘 쌍용 시절의 초기 코란도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으로만 봐도 신진의 지프가 쌍용 코란도의 뿌리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죠.


대우자동차의 시작은 신진공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진공업이 이후 인천에 있던 새나라자동차의 공장을 인수했고, 새나라자동차는 일제시대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자동차회사인 국제차량제작소를 인수했었으니, 대우자동차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시작의 역사에 밀접하게 닿아있습니다. 

신진자동차는 미국 GM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GMK(GM Korea)를 설립하고, 사업부진으로 GMK의 신진 지분을 산업은행이 넘겨받으며 회사의 이름은 새한자동차로 바뀌었다가 다시 산업은행의 지분을 대우가 인수하고, 이후 GM으로부터 경영권까지 인도받으면서 정식으로 대우자동차가 탄생하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진만큼, 대우자동차의 첫 번째 자동차를 뭘로 하면 좋을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저는 제미니를 꼽아볼까 합니다.

새한자동차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제미니는 GM의 월드카 개념으로 출시된 자동차 카데트가 원형으로, GM의 지분이 있는 우리나라에도 함께 출시되었습니다.


안정성과 넓은 트렁크 공간 등을 셀링 포인트로 삼아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현대의 포니에 밀려 힘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잦은 고장과 높은 연비로 이내 단종되는 수순을 밟았죠. 하지만 제미니는 이후 꾸준한 인기를 얻었던 맵시의 발판이 되어 주었습니다.


다른 브랜드들과는 다르게, 삼성자동차의 시작은 꽤 늦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건희 회장은 1990년 초부터 꾸준히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시도를 하지만 정부의 제지로 번번이 실패했고, 1994년에서야 간신히 허가를 받아 삼성자동차(주)가 출범하게 됩니다.


자동차 기술이 전무한 삼성이 회사가 만들어지고 오래지 않아 양산 모델을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닛산의 기술 협력 덕분이었는데요. 삼성 SM5는 닛산의 맥시마의 플랫폼을 가져와 만든 모델이죠.

이건희 회장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모델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급 사양이 채택되었는데요. 덕분에 1997년 IMF 이후 수입차를 타기 어려웠던 분위기 속에서 국산차면서도 편의사항과 품질은 수입차에 버금가는 자동차로 알려졌고, 좋은 품질과 삼성이란 브랜드 파워로 금세 괄목할만한 실적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SM5은 명차라고 불리고 있죠. 아직까지도 1인 소유의 차량이 다수 존재하고 있을 정도로 품질과 내구성이 훌륭한 모델이었습니다.


무엇에나 시작은 있기 마련인데요. 특히 사람이 만들어낸 물건에서의 '초기작'은 시작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만들어낸 사람의 꿈과 포부가 물건에 담겨있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한 회사의 가치가 담겨있기도 하죠.


대한민국의 대표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한 현대, 기아자동차부터 한때 위기를 겪었지만 멋지게 다시 일어선 쌍용자동차,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의 시작과 함께 했던 대우자동차, 큰 포부를 안고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끝내 펼쳐보지 못했던 삼성자동차까지.


각각의 브랜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에 엄연한 시작점인 ‘첫 차’가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함께 되짚어 보니, 모든 첫 차에는 그들이 가고 싶었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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