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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과 두 자매의 위험한 동거

천일야사와 함께 보고 듣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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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A 작성일자2018.01.12. | 322,58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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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라의 법흥왕이 

태자이던 시절로 가봅니다.

신라 법흥왕의 태자 시절,

그는 여자들을 너무 좋아해서

그의 태자비인 보도부인이

마음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사랑에 빠진 금사빠 원종.

(훗날 법흥왕)


그 때 원종의 처소에
태자비인 보도부인이 급습했고
그녀는 다른 때보다 더 흥분했다.

원종이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바로

보도부인의 동생 오도였기 때문이다.

오도와 보도부인은 자매이지만

친부가 다른 자매였는데.


오도는 자매의 어머니가

승려와 사통하여 낳은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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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이 지났다.

오도가 후궁을 책봉 받았고,

매일같이 보양식을 즐긴 태자 원종.

그가 얼음판 위에 올라갈 정도로

정력에 목숨을 건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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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무리를 하던 태자 원종은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하지만 그는 아플 때마저

오도를 아끼는 마음을

마음껏 펼쳐보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태자비 보도부인은 위화랑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했고.


갑자기 오도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나타난 

오도를 보고 태자비 보도부인은

놀랬는데....


한 달 가까이 아픈 태자 원종을

위해 약재를 직접 구하러

갔다온 것이라고 말하는 오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도의 회임으로 자매의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말았다.


한밤 중 은밀히 궁중 약방을 찾은 보도부인.

그 소식을 들은 태자 원종은 

오도와 보도부인을 찾아나섰고.



놀랍게도 원종은 

오도의 따귀를 때렸다.


오도를 그토록 아끼던 원종이 돌변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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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추국장으로 끌려온 오도.


원종이 오도의 회임 소식에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병석에 누워있는 근래,

달포가 넘도록 오도와 합궁을 

하지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러했다.


위화랑과 오도의 이런 사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된 것이었고,

오도는 위화랑의 아이를 회임했던 것.


하지만 보도부인은 이미 

위화랑과 오도의 사이를 알고있었다.


진짜 사모하는 것은

위화랑이 아니냐며

어쩌자고 태자 앞에 

나타난 것이냐고 보도부인이 물었지만,


오도는 그간 쌓아온 언니에 대한

복수심을 보였는데.....

진심으로 오도를 생각했던 보도부인.

위화랑과 떠나 오도가 행복하길 바랬던 그녀.


그런 보도부인의 진심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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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과 보도부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화랑세기에 

기록이 되어있다.


기록에 의하면 법흥왕은 

태자시절 부터 수많은 여인들을 

총애했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킨 보도부인.


그래서 법흥왕도 점점 그런

보도부인에게 신뢰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보도부인의 내조 덕분에 

법흥왕은 부사히 왕에 

즉위하는데 성공한다.


신라에서 최초로 불교를 공인한 그.

더 나아가 그는 조카에게 왕위를

넘기고 불교에 귀의했자.


법흥왕이 불교에 심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릴 때부터 

불교를 접한 보도부인 때문이었다.


보도부인의 내조 덕분에 

불교를 공인하면서 왕권을 강화했다.


강화된 왕권을 계기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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