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수 없어 더 친한 스타트업, 스팀헌트

조회수 2019. 4. 17. 19: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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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더블린에서 블록체인 커뮤니티 공동창업하다

4월 2일 오후 3시 57분. 을지로 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홍차 케익 한 조각을 시킨 후 전원 코드가 있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페이스북에 접속해 메신저 창을 열었다. “저는 지금 준비가 됐어요, 준비 되시면 천천히 말 걸어주세요.”

1분 후, 김동혁, 조영휘 스팀헌트 공동 대표가 차례로 메신저에 접속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도 준비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터뷰를 하러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만났다. 김동혁 대표는 서울 역삼 위워크, 조영휘 대표는 아일랜드에서 일한다. 셋이 함께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를 하긴 어렵다. 올 초에는 김 대표가 조영휘 대표의 얼굴이 담긴 노트북 모니터를 열고(화상채팅) 인터뷰를 했다고 했다. 영정사진을 들고 다니는 것 같았다, 고 하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이렇게 생겼다. 왼쪽이 조영휘 대표고,오른쪽이 김동혁 대표다. 이 사진은 합성이다.

“스팀헌트는 어떤 회사인가요?”

묻자 김동혁 대표가 미리 준비했던 답을 복붙(복사하여 붙여넣기) 했다. 준비된 자.

스팀헌트가 말하는 스팀헌트
스팀헌트는 얼리어답터들이 자신들이 발견한 새로운 제품을 공유하면서 투표를 통해 매일매일 쿨한 제품의 순위를 매기는 랭킹 기반 테크 얼리어답터 커뮤니티입니다. 스팀헌트에는 얼리어답터와 테크 인플루언서, 리뷰어들이 모여 있는데요, 이 유저들은 현재 프로덕헌트, 레딧, 유튜브, 블로그, 킥스타터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유저들을 토큰 경제를 통해 제품을 만드는 메이커 기업들과 연결시킨다면 인플루언서 마케팅, 크라우드펀딩 등을 아우르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헌트토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의 설명처럼, 스팀헌트는 랭킹 기반 테크 얼리어답터 커뮤니티다. 그런데, 랭킹 기반 얼리어답터 커뮤니티는, 이미 많지 않았나?

“있죠. 프로덕헌트라는 곳이 유명해요. 2012년에 얼리어답터의 커뮤니티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주로 제품 제작사에서 직접 제품을 포스팅하는 경우가 많아서 홍보용 플랫폼으로 변질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초기부터 사용하던 헤비 유저들은 실제로 많이 떠난 상태이고요. 아무래도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제품이 1등을 하는 거에 대한 직접적인 이익이 큰 반면에 제품을 포스팅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경우에는 사실 1등해서 좋은 거 외에는 직접적인 이익은 없거든요.”

♦ 블록체인의 토큰경제가 커뮤니티를 살린다

스팀헌트가 프로덕헌트에 비해 가지는 강점은 ‘보상’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묶어 놓으려면, 노력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스팀헌트에서 보상은 이미 잘 알려진 ‘스팀’과, 자체 코인인 ‘헌트’로 이뤄진다. 스팀 보상의 경우 기존 스팀 블록체인의 규칙 그대로 지분과 정비례하는 투표권 행사를 통해 분배된다. 이건, 스팀헌트에서 손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자체 코인인 헌트의 경우 이용자의 신뢰도와 기여도 지표인 ‘유저스코어’를 기반으로 제공된다. 포스팅을 하거나 댓글을 달고, 제품을 공유하거나 스팀헌트를 홍보하는 등의 행위를 하면, 주어진다.

프로덕헌트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아이디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이 프로덕헌트의 헤비 유저였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잘 나가던 커뮤니티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속상해하다가 사업 기회를 포착했다고, 조 대표는 말했다.

“커뮤니티의 순수 사용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유저의 동기부여를 유지하고 기업의 마케팅 니즈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블록체인과 토큰 경제’를 봤어요.”

조 대표는 토큰을 공유하는 여러 플랫폼을 엮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블록체인이 아닌 기존 커뮤니티에서는 각자의 플랫폼을 하나로 묶을 수있도록 이용자를 끌어모을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블록체인에서는 ‘토큰’이 있다. 지금의 리뷰 랭킹 커뮤니티인 스팀헌트를 운영하면서 앞으로 리뷰헌트, 아이디어헌트 같은, 이용자의 결이 같은 또 다른 서비스를 계속 만들어 붙여 나간다는 계획이다.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 블록체인에 트랜잭션을 기록하는 유저가 1만6000명이다. 스팀헌트에서 열심히 포스팅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말한다. 직접 글을 쓰지는 않고 정보만 보는 유저를 포함해 현재 월이용자(MAU) 기준으로 50만명 정도의 트래픽이 발생한다.

의미 있는 것은, 스팀헌트가 글로벌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용자 절반 이상이 미국과 유럽에 있다. 그래서 영어로 운영된다. 두 사람이 사는 나라가 다르고 밤낮이 다르다보니, 오히려 다양한 문화권을 커버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스팀헌트에서 풀타임은 공동대표 둘 뿐이다. 커뮤니티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매니저 2명과 모더레이터 10명이 함께 일한다. “탈중앙화 프로젝트에 어울리게, 팀 운영의 일부를 커뮤니티로 이양해서 운영중”이라고 조 대표가 말했다.

모더레이터는 콘텐츠 검수를 해주는 사람들이다. 하루에 수백개 이상 올라오는 헌팅 포스트가 자체 가이드라인에 맞는지를 검증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표절 등의 문제가 여기서 걸러진다. 회사에서 직접 검수를 하면 검열에 대한 이슈가 생기고, 그냥 둘 경우 콘텐츠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모더레이터는 자신의 활동에 따라 토큰으로 보상 받는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쓰다보니 모더레이터의 국적과 상황도 모두 다르다.

베네수엘라 모더레이터가 한명 있는데요

한번은 저한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서.. 스팀헌트 덕분에 가족들이 밥걱정 안하고 살 수 있다고 정말 고맙다고..

저희가 주는 토큰 보상이라 해봤자 한달에 20만원 정도 수준인데 좀 놀랐어요

모더레이터들중에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아무래도 모티베이션이 훨씬 크기도 하고

이게 글로벌 사업이고, 토큰 이라는 매개로 엮이는 경제이다 보니, 그런 베네수엘라 등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능력과 시간을 기여하고 보상을 받는 새로운 방식의 워킹 형태가 등장하는거죠

기존 체계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입니다

정말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게 체감이 되고 있습니다 ㅎㅎ

스팀헌트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어뷰징이었다. 지난 1년간 코인을 보상하는 시스템을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거치고, 어뷰저들과 싸워가면서 2000번의 업데이트를 했다. 보상이 걸린만큼 어뷰징 면에서도 동기가 수백배 강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개선하는데에도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김 대표가 말했다. 김 대표는 개발자라서 그런지, 이 말을 하는데 한이 느껴졌다.

스팀헌트는 최근 30일간 공헌도를 정량 측정해 스코어에 반영하는 시스템이다. 일정 스코어를 넘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 점수에 따라 보상액이 달라지므로 잘못된 방법으로 스코어를 올리려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계정 간 서로 투표를 하는 셀프 보팅을 막기 위한 ‘다이버시티 스코어링’ 시스템을 만들어 검증하고, 모더레이터와 커뮤니티 매니저가 이를 검수한다. 만약 포스팅에 대한 투표가 잘못된 방법을 이용했다는 것을 발견하면 패널티를 걸어 점수를 오히려 깎아버린다. 이 과정에서 스팀헌트는 나이지리아의 이용자들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지금은  랭킹과 보상과의 상관관계를 끊고 유저스코어에 의해서만 보상이 결정되는 시스템이 됐다.

 

♦ 스팀헌트가 코인공개(ICO)부터 먼저 하지 않은 이유
김동혁 대표

“ICO의 특성상 기존에는 제품 개발단계별로 받는 씨드(Seed), 시리즈 A(Series-A), 시리즈 B, C 등 몇 년에 거쳐 나누어 받아야 하는 펀딩을 제품의 아이디어 단계에서 한꺼번에 받는 구조인데요, 아이디어 단계의 스타트업은 실패 확률이 99% 이상이잖아요. 그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조영휘 대표

“로드맵이라는건 일단 초기에 제품을 사랑하는 열성 유저와 화학작용이 있어야, 거기서 니즈를 발견하고 로드맵을 구상 가능한건데, 지금까지 관행은 거꾸로였던거죠 ㅎㅎ”

“제품이나 서비스가 먼저 나와야 한다” “제품도 없는 상태에서 시리즈 A, B 이상의 펀딩을 받고 제품을 개발한다는것 자체가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 두 대표의 공통된 생각이다. “큰 돈이 한꺼번에 들어오게 되면 모럴 해저드도 생길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여러가지 불필요한 비용들을 낭비하게 될 가능성이 커질 수도 있을것 같다”고도 말했다.

스팀헌트가 지난 1년을 운영하면서도 제품의 큰 방향이나 세부 내용이 수없이 많이 바뀌었는데 이걸 아직 검증도, 시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몇 년간의 로드맵을 짜서 대규모 펀딩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뜻이다.

스팀헌트는 어느정도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ICO가 아니라 IEO를 준비한다. IEO는 Initial Exchange Offering의 약자로, 기존 ICO처럼 프로젝트 팀이 토큰을 직접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거래소를 통해서 판매를 하고 펀딩을 하는 방식이다. 현재 토큰의 10% 이하만 씨드 라운드 정도 규모로 필요한 자금만 모집하고 있다.

김 대표는 “프로젝트 팀 입장에서는 ICO를 대비한 마케팅이나 구매자 정보(KYC), 세일즈 컨트렉트 제작 등을 위해 소모되는 자원을 줄일 수 있으니 더 경제적인 방식이기도 하다”며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기존 거래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번 필터링된 프로젝트들을 개인정보를 직접 스타트업에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더 쉬운 방법으로 투자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 앞으로의 계획

“사실 스팀헌트를 처음 만들때는 이런 로드맵까지 생각을 했던건 아니고요” 라고 말했지만, 이미 큰 그림을 그린 상태다. 지금 운영하는 스팀헌트 외에 올 6월에 리뷰헌트를, 그 이후에는 아이디어헌트를 출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토큰의 구매 수요라는 것이 대부분 투자자들이 시세차익을 위해 구매하는 것 말고는 별로 없었다는 것을 감안, 리뷰헌트를 통해 비투자자 구매 수요, 즉 기업의 마케팅 예산이 토큰 구매 수요로 연결되는걸 최대한 빨리 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방법은?

“아직 고민 중”이다. 다만, 리뷰헌트에서 기업이 마케팅 예산을 써서 헌트 토큰을 구매하면 스팀헌트에서 그 구매를 대행해서 거래소로 연결하는 형태를 생각 중이라고 했다. 대다수의 기업이 암호화폐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이 없을 뿐더러, 기업보고 거래소에서 헌트토큰을 사서 리뷰헌트를 사용하라고 하면 장벽이 너무 높을 것이라는 건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스팀허트가 중간에서 결제 솔루션을 붙여주고, 예산 사용이 거래소의 헌트 토큰 구매 주문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형태를 유력하게 본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요, 아니 실제로 만난 적은 있나요?”

멀리 떨어져 사니 서로 소통은 원활히 될까 싶어 물었는데, 나쁘진 않아 보였다. 역시 자주 안 보는 것이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  지름길인가.

둘은 4년 전 해커톤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났고, 뜻이 맞아 비즈니스 관계를 시작했다. ‘바크’라는 앱을 만들어 공동창업했단 뜻이다. 바크는, 한 번 개처럼 짖어보자는 뜻인데, 모르는 주변사람들과 멍멍이처럼 짖어서 친해지자는 큰 철학적 배경이 있다.

짖기도 하고 간단한 메시지도 남기고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 쉽게 소통을 하면서.. 좀더 가까워보자 이런 취지였어요 ㅎ 똥 메시지를 떨어뜨릴수도 있죠.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랑 주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화를 하긴 쉽지 않잖아요? 개들처럼 말할 필요 없이 그냥 서로 짖는 것만으로도 친근감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ㅎㅎ 뭔가 시골에서 개 한마리가 짖으면 동네방네 개들이 다 따라 짖는 걸 보면서.

바크에 집중할 때만해도 두 사람은 한국에서 같이 일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은 멀리 따로 떨어져 일한다. 국내 거주하는 김동혁 대표가 개발을 맡고 있고, 아일랜드 거주자 조영휘 대표가 디자인과 마케팅을 담당한다. 반 강제 리모트 근무인데, 그래서 이 회사는 회식이 없다. 두 사람 모두 업무 만족도가 높은데, 회식이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고 김 대표가 말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회식 때 김동혁 대표 좀 불러주세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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