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믈리에 탈락의 변 "이게 뭐라고"

조회수 2018. 7. 23. 16: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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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 치믈리에 시험 체험기
D-2, 서점에 들러서 교재를 사다.
D-1, 점심으로 치킨을 시키다.
D-0,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시험에 응시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과락했다.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자격증은 필기 30문제, 실기 10문제에서 각각 절반 이상 맞아야 주어진다. 그러니까, 벼락치기로 시험공부한 기자는 실기에서 0점을 맞았다. 와, 한 번호로 찍어도 1점은 맞았을텐데.

치믈리에, 이게 뭐라고

치믈리에는, 치킨 감별사다. 와인 감별사인 ‘소믈리에’를 패러디했다. 우아한형제들이 내린 정의로는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치킨의 맛과 향, 식감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치킨 전문가”이자 “치킨계에서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 이 치믈리에 정의는 22일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 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의 필기 4번 문제였다.

기자는 치믈리에 시험에 수험번호 511번으로 참석했다. 모의고사 만점자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데, 전국 58만명이 모의고사를 봤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보다 많은 숫자다. 이중 2만7000명이 만점을 맞아 시험을 신청했으며, 추첨을 통한 500명만 응시 자격을 얻었다. 모의고사는 한 번 떨어졌다고 끝이 아니라, 만점을 받을 때까지 무한정 재시험 볼 수 있다. 기자는 ‘바이라인네트워크’ 전 직원이 매달려 온라인 모의고사를 같이 풀었다. 통과했을 때 그 환호라니, 이게 뭐라고.

모의고사 만점을 맞으면 시험 신청자격을 얻는다.

필기와 실기 중, 그나마 더 빨리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영역은 필기라고 생각했다. 토플 시험에서도 말하기 보다는 필기가 단기간에 점수 따기 쉽지 않나. 시험 이틀 전, 배민이 발간한 ‘치슐랭 가이드’를 교재로 구매했다. 사실, 다른 대안도 없다. 금박의 화려한 표지를 펼치면, 거의 치킨 도감 수준으로 인기 치킨 50선이 사진과 함께 나온다. 지난해 치믈리에로 선발된 119명이 직접 고른 치킨이다. 그 외에 소소한 치킨의 역사 같은 것이 담겼는데, 국내서 처음 치킨이 도입된 이유라든가 프랜차이즈가 처음 등장한 곳 등등 알아두면 치믈리에 시험 외엔 별로 쓸데 없을 것 같은 지식이 가득하다. 본인의 치킨 덕력을 체크할 수 있는 문항도 마련되어 있다.

이게 뭐라고, 시험장엔 유명인도 많이 왔다. 아이오아이 출신 아이돌 김소혜는 배민 광고 모델인데, 친동생과 동행했다. 솔직히 얼굴 한 번 비추고 갈줄 알았는데 공개한 공부노트를 보니 다시 한 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우진영이 속한 남자 아이돌 그룹 HNB도 시험을 쳤고, 음식 다큐 누들로드를 찍은 이욱정 PD와 정치인 이준석 씨도 VIP 석에 앉아 있었다.

김소혜 씨의 치킨 공부 노트. 세상에, 이게 뭐라고.

김봉진 대표도 재수생으로 참여했다. 김 대표는 본지와 시험 직전 짧은 라이브 영상 인터뷰를 했는데, 올해는 자신있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자신은 없다. 공부는 했는데 치킨이 새로운 것이 너무 많이 나와서 다 예습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배민은 상반기 ‘신춘문예’와 하반기 ‘치믈리에’라는 굵직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신춘문예가 “치킨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 같은 이용자의 드립을 보는 재미를 준다면, 치믈리에는 뭔가 병맛같은데 진지한 체험형 즐거움을 준다.  배민 마케팅실을 이끄는 장인성 실장은 “(두 메인 이벤트 외에) 또 다른 재미있는 마케팅을 준비 중에 있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을 가득 채운 사람들.

생명에 관하여

주최측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시험 직전 일어났다. 

동물보호 단체로 추정되는 이들이 단상을 점거, 피켓 시위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이날 시험은 개그맨 

박수홍 씨의 사회로 진행됐는데, 필기 시험 직전 한 남성이 단상에 뛰어올라 “추가 전달사항이 있다”며 박수홍씨로부터 마이크를 건네 받은 후 벌어진 일이다.

이들의 주장은 “치킨도 생명이다, 죽음이 재미있느냐, 죽음을 유희화 하는 치믈리에 행사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위는 5분 이상 지속됐는데, 순간 장내 분위기는 조용해졌다. 배민 측은 예상치 못한 시위에 당혹해 하는 분위기였고, 행사는 곧 재개됐으나 가라앉은 분위기가 조금 더 이어졌다.

동물보호 단체의 시위

행사에 지장이 생긴 것은 안타깝지만, 이들의 주장 역시 곱씹어볼만하다. 닭은 오랜 기간 식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가장 보편적인 육류이기도 하다. 그러니 닭 자체를 먹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닭이 식용으로 사육되는 환경이나 조건은 돌아봐야 한다. 시위에 나선 동물보호단체 측은 닭이 치킨이 되기 위해 품종이 개종되거나, 빨리 성장하도록 조작 당해 비정상적 신체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글로 치킨을 배우면 망한다

시험이 시작됐다. 진짜 수능시험지처럼 생긴 문제지와 답안지를 교부 받으며 사람들이 쓸데 없이 진지해졌다. 시험 시간 동안 화장실 출입은 금지되며, 휴대폰은 압수는 아니지만 사용 자제를 권유했다. 답안은 OMR 카드에 작성하며 틀릴 경우 답안지 교체나 수정 테이프를 요청할 수 있다.

시험지 교부 직전. 현장 스태프가 문제지와 답안지를 들고 대기중이다.

필기 시험 어려웠다. 지난해보다 난이도가 올라갔다고 했다. 출제위원은 배민 내부 임직원에 외부 자문위원이 더해져 구성됐다. 내 장담한다. 이 출제자들도 문제 미리 안 보고 시험 쳤다면 만점은 어려웠을 거다. 솔직히, ‘다음 치킨들을 출시일 순으로 나열하시오. BBQ 꼬꼬넛 치킨- 네네치킨 숙주 샐러드 치킨 – 페리카나 와사비톡- bhc 갈비레오 – 멕시카나 오징어짬뽕 치킨’ 같은 문제를 어느 치킨 변태가 맞힐 수 있겠나(맞히신 분 죄송합니다. 당신은 치킨 천재, 아니 치킨 초사이언).

그런데 실기 시험이 시작되고 나서 필기가 쉽게 느껴지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10조각 치킨이 지급되고,

점심 대신 잘 먹었다

이런 문제를 만났다.

이야, 제 입에서 후라이드 맛이 나 후라이드라 하였사온데 어느 후라이드냐고 물으시면 전 그냥 찍지요. 이 치킨도 옳고, 저 치킨도 옳구나. 시험 시간이 식사 시간이 되고, 배가 불러올 때 쯤 실기 시간 20분이 거의 다 되가는 통에 급하게 OMR 카드 마킹을 마무리했다.

시험이 끝나고 어려웠다는 문제 10개를 함께 풀이했는데, 가장 극적인 반응은 듣기 평가 풀이에서 나왔다. 듣기평가 2번, “다음은 매장에서 치킨을 튀기는 소리이다. 잘 듣고 치킨을 총 몇조각 튀겼는지 맞히시오.” 정답 영상이 공개되고, 여덟개의 치킨 조각이 기름에 떨어진 것이 확인되는 순간 터져나오는 함성. 나 원 참. 이게 뭐라고. 다들 그렇게 짜릿해 하더라.

기자는 30점 만점에 과락을 겨우 면한 17점을 맞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특히 듣기 평가에서 영어 문제 나올지 몰랐다(맞혔다. 헤헤). 그렇지만 글로 치킨을 배운 결과는 참담했다. 실기 0점. 내가 실기 0점이라니, 내가 치킨 XX라니…

어서와, 컴퓨터용 수성 싸인펜은 오랜만이지?

치믈리에 수험생들에게 고하는 말

치믈리에가 된다고 치킨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월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동네 치킨집에서도 알아주지 않을 거다. 다만, 합격하면 민간 자격증을 얻는데 이게 올해부터 공식 자격증이 됐다. 물론, 이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도 전세계 극소수만 가진 자격증을 땄다는 건  꽤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지 않을까. 참, 지난해 합격자들은 ‘치믈리에일’이라는 치킨에 가장 어울리는 맥주 개발에 참여했고, 치슐랭 가이드 책에 인터뷰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성과는, 내 입맛에 맞는 치킨을 알았다는 것이다. 나는 1번 후라이드가 제일 맛있었다. 가장 바삭한데다가 속살에 아주 살짝 양념이 배어 있어 감칠맛이 났다. 이정도만 해도, 하루 놀다 간 보상은 충분히 받은 것 아닐까?

다음은, 치믈리에 맛보기 보너스 – 현장 사진이다.

치킨엔 콜라
사회를 맡은 개그맨 박수홍 씨. TV보다 사회가 더 재밌었… 아.. 아닙니다.
아이돌도 시험볼 땐 어렵다.
양념반 후라이드반을 몸으로 형상화한 행위예술
예쁘다.
시험 문제 난이도가 절레절레
시험을 마치고. 저 노란 종이 가루는 하나하나 닭다리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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