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살기 위해 여장 택했던 그 남자"

조회수 2016. 2. 19. 17: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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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식 북디자이너, 10년간 숨어 산 부부 이야기 그래픽노블에 매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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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의 독서 근황을 알아보는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코너를 북클럽 오리진이 연재하고 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일기 릴레이입니다. 첫 손님으로 '소설 쓰는 사람' 김연수 작가에 이어 '영혼의 슬픔' 저자인 정치학자 이종영 씨가 다음 순서로 궁금해 한 사람은 출판기획자 조원식 씨였습니다. 책과 더불어 얼마나 풍요롭게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분 같습니다.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이종영 편

제가 요즘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한 분은 조원식이라는 사람입니다. 제 오랜 '친구'인데 역사비평사 편집부에서 일합니다. 최근에는 연락이 뜸했는데, 그전에 제게 진기한 책을 곧잘 소개해주곤 했습니다. 지금 뭘 읽는지 유일하게 궁금한 사람입니다. / '영혼의 슬픔' 저자 이종영
조원식 씨와는 이메일과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이종영 씨와의 관계를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종영 선생은 제 대학원 선배이자, <장 이뽈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 강의를 통해 철학과 사회학을 가르쳐준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그분을 통해 프로이트, 라깡, 알튀세르, 레비나스를 배운 경험은 지금도 삶의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참에 반가운 마음으로 연락해서 소주라도 한잔할까 합니다.
이런 조원식 씨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했습니다.
1962년생입니다. 문학과 철학을 전공하면서 오랫 동안 공부하다가 기묘한 인연으로 편집 일을 시작해서 지금은 디자인 작업까지 함께 하는 종합출판인입니다. 지금은 인문사회학을 다루는 '역사비평사'와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모비딕'에서 기획실장 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모비딕 홈페이지 바로가기

-최근에 읽었거나 혹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보통 여러 책을 늘 동시에 읽곤 합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또 손에 잡히는 대로, 계획을 잡아서 읽기도 하고, 또 마음 가는 대로 막 읽기도 합니다.

명나라 정민정의 '심경부주(心經附註)'처럼 해를 거듭해서 조금씩 읽는 책이 있는가 하면, 허먼 멜빌의 '바틀비'처럼 여러 번역본을 돌아가면서 읽는 책도 있습니다.

*심경부주:
남송의 진덕수(眞德秀)가 주요 고전에서 마음과 관련된 내용을 뽑아 송대 여러 학설을 주(註)로 달아 편찬한 책이 심경이다. 이 책에 명나라 정민정(程敏政)이 주를 달아 편찬한 책이 심경부주(心經附註)이다.

*바틀비: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중단편 소설. 1853년 작으로 원제는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여장 남자와 살인자'(클로에 크뤼쇼데 지음, 김희진 옮김, 미메시스)가 있습니다. 제가 그림이나 만화를 좋아하는데, 얼마 전 도서관에서 영화잡지 '시네21'을 읽다가 거기에 소개된 신간 표지를 보고서 "멋진 터치, 묘한 장면이다" 감탄하고는 곧바로 구한 그래픽노블입니다.
'살기 위해 여장을 선택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어느 정도 플롯이 드러나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장의 처참함에서 도망쳐 탈영한 뒤 파리에서 아내와 함께 10여 년간 숨어 살았던 남자와 그의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전쟁, 도망, 잠행, 여장, 성 정체성, 탐닉, 자유 등에 관해 한 인간의 변화와 고뇌가 드라마틱하게 '보이고' 읽혀서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화가이자 이 작품을 각색한 클로에 크뤼쇼데의 그림이 매우 고혹적인데, 펜의 터치, 음영, 농도, 구도, 배치, 색 등 그림 솜씨가 너무 좋아서 보고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림, 사진, 영화, 디자인 등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그쪽 작업을 하고 있어서, 이런 그래픽노블이나 웹툰 등의 가능성과 확장 면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이런 작업과 유사한 형태의 시도들을 해보려고 준비 중입니다.

다른 책으로는 '레버넌트'(마이클 푼케 지음, 최필원 옮김, 오픈하우스)가 있습니다. 그림처럼 영화도 좋아해서, 재미있게 본 영화의 원작을 종종 찾아서 읽곤 합니다.
얼마 전에 좋아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온몸의 근육이 죄다 굳어서 혼날 만큼 고통과 극한의 체험에 몰입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서 원작을 구했습니다. 영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텍스트를 통해 곰에게 깔리고 곰의 발톱에 할퀴고 살이 터져서 또다시 몹시 혼나고 있는 중입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모비딕(역사비평사의 장르 브랜드)에서 준비 중인 장편소설 '복수는 나의 것'(사키 류조 지음, 김경남 옮김 / 74회 나오키상 수상작)의 제목이 신약성서 로마서 12장 19절에서 따온 구절인데, 책을 구하고서 펴자마자 이 구절이 '레버넌트' 첫 페이지에도 나와서 묘한 감정이 생기더군요.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사키 류조의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감독이 이마무라 쇼헤이인데,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서 영감을 얻어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만 저로서는 복수보다는 생존이라는 주제가 더 절실하게 다가왔고, 상대적으로 안온하고 추상적인 위험에 더 시달리며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이 비교돼서, 이냐리투 감독의 다음과 같은 표현이 살갑게 여겨집니다.

"휴 그래스의 이야기는 삶의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삶이 곤란하고 곤혹스럽고, 지리하며 멸렬하다고 느껴지실 때 이 영화, 이 소설을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은 바람 쐬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조원식 씨의 책상
조원식 씨가 보내온 사진입니다. 안방 베란다 쪽에 자리잡은 책상 풍경입니다. 책상 위에는 김열규의 '아흔 즈음에'가 놓여있습니다. 그 주변으로 탁상용 종이달력 캘린더, 독서받침대, 안테나를 길게 뽑은 라디오가 보이네요. 아날로그 취향이 문씬 풍깁니다.
-다음으로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실 이 질문을 받고 맨 처음에 생각난 사람은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이었습니다. 제 방식대로 작년부터 '허우샤오시엔 영화제'를 하면서 계속 그의 영화를 찾아보고 있기 때문이겠죠.

제 삶에 굉장히 여러 방식으로 자극과 영감을 주고 있는 감독이라서, 그분의 지금 독서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대만에 계시고 중국어를 쓰니 오리진 운영자에게 괜한 수고나 번거로움을 끼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이참에 이 기획이 글로벌한 스케일로 커져서 더 좋아라 하시려나 등등 잡념이 생기더군요.
-저희도 그의 독서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만, 여건상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최근 그가 만든 영화 '자객 섭은낭'이 개봉되면서 방한 기자간담회, 트레일러 같은 동영상들이 여럿 나와 있더군요. 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제안을 주실 때 이미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복수'를 언급하셨으니, 일단은 허우 감독으로 정하고 다른 분을 생각해봤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영화와 문학, 또 '복수는 나의 것'까지 거론한 김에 그냥 자연스럽게 박찬욱 감독을 지목하겠습니다.

저 역시 박 감독과 일면식이 없지만 재작년에 모비딕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을 낼 때 박 감독이 추천사를 재미있게 써준 인연은 있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던 감독인 데다, 그때 그의 텍스트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애석하게도, 박찬욱 감독은 목하 신작 영화 '아가씨' 촬영을 끝내고 막바지 작업 중이어서 접촉이 도무지 곤란했습니다. 하여 부득이 조원식 씨에게 '제 3의 후보'를 추천해달라고 청했습니다. (박 감독은 애서가이자 탐독가로 출판계에도 소문이 나 있는 사람입니다. 영화뿐 아니라 글솜씨도 뛰어난 저자이기도 하지요. 영화 작업이 끝난 후 그의 책 이야기를 꼭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만화가이신 박흥용 작가가 궁금합니다. '검'이라는 기독교 이야기를 쓰고서 무척 (신도들에게) 시달리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또 어떤 글을 읽으며 새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지 많이 궁금합니다.

'내 파란 세이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청년사에서 나온) '박흥용 작품집' 등은 여전히 가까이 두고 보는 작품들입니다. 예전에도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많이 만드셨는데, 요즘은 또 다른 질곡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서 박흥용 작가의 작품이 더욱이 그립기도 합니다.
만화가 박흥용 작가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요? 다음 회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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