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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제게 소설 읽기란 휴식과 같습니다"

'영혼의 슬픔' 저자 이종영 씨, 박범신의 '당신'과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를 꼽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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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한 분은 철학공부하시는 이종영 선생이라는 분이십니다.

가장 최근에는 '영혼의 슬픔'이라는 책을 펴내셨습니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신 분은 아니지만. /작가 김연수
지난 주에 나간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첫 주자는 김연수 소설가였습니다. 그가 일본 소설가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를 읽고 있다고 소개한 데 이어, 다음 순서로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한 사람은 이종영 씨였습니다. '영혼의 슬픔' 저자입니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했습니다. 책을 통해 저자와 독자로 만난 사이일 뿐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이종영 씨가 누군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약력을 소개합니다.
이종영
1957년 생으로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와 한국학대학원 사회학 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에서 사회학 D.E.A. 학위를 받았다. 1993년 5월에 파리 8대학에서 "맑스와 알뛰세르의 유기적 전체의 개념에 대한 비판과 재구성"이라는 논문으로 정치사회학-정치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공회대 연구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내면으로', '부르주아의 지배-원천·메커니즘·매개·효과', '사랑에서 악으로', '지배양식과 주체형식', '생산양식과 존재양식', '가학증, 타자성, 자유', '주체성의 이행', '욕망에서 연대성으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폭력의 고고학', '철학을 위한 선언', '윤리학', '맑스를 위하여' 등이 있다.

'영혼의 슬픔'을 비롯해 그의 책을 다수 출간해온 울력 출판사에 문의해 이종영 씨의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전화로 통화했습니다.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외에도 그가 집필 중인 책에 대한 이야기와 평소 생각에 대해서도 듣게 됐습니다. 그대로 싣습니다.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코너에서는 이런 의외성을 적극 수용할 생각입니다.)

이종영 씨가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요즘 전공서적 말고 제가 틈틈이 읽고 있는 소설은 박범신의 '당신'입니다.
얼마 전에 동네 책방에서 박범신의 '당신'을 샀어요. 천천히 조금씩 읽고 있는데 지금 200쪽 좀 더 읽었어요. 처음에는 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끝까지 다 읽을 생각이에요. 저는 처음에 조금 읽다가 때려치는 소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음의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또 박 씨가 저보다 열 살 정도 위인데 그 연배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읽고 있어요.
'당신' 도입부

소설 속의 몇몇 이미지가 좋았어요. 저는 소설의 줄거리보다 이미지를 즐기면서 천천히 읽는 편입니다. '당신'에서는 여자 주인공 남편이 가진 내면의 이중성을 그린 부분이 마음에 좀 와닿았어요. 저 자신도 이런 면이 있지 않나 뜨끔했어요. 박 씨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예전에 젊을 때 '풀잎처럼 눕다'를 읽을 때는 굉장히 모던한 점이 끌렸어요. 지금은 약간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당신'에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들이 나오는데, 그런 것들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게 다가왔어요. 저는 제가 사회과학을 해서 그런지 불행한 몫은 사회과학이 다루고, 소설에서는 행복한 내용을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당신'에 나오는 불행한 역사의 경우에는 차라리 완전히 심도 있게 다루면 맘속에 와닿을 수도 있을 텐데 풍경화처럼 스치듯 다루는 바람에 오히려 불편한 면이 있었어요.
'당신'은 올해로 일흔인 박범신의 마흔두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작년 2월부터 7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카페에 '꽃잎보다 붉던-당신, 먼 시간 속 풍경들'이라는 제목으로 매일 연재했던 작품을 단행본으로 냈습니다. 치매에 걸린 노부부를 통해 삶과 사랑과 관계, 그 현상과 이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치매가 선물이라는 역설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전하는 한편, 젊은 세대에게는 앞선 세대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전한다고 출판사는 소개합니다.

본문 속 한 단락을 인용합니다.
그는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하나의 인격은 자애와 헌신과 인내로 시종한 관용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의 인격은 상처와 분노와 슬픔 등 보편적 희노애락을 날것으로 갖고 있는 얼굴이다. 거의 평생 나와 인혜에게 그는 첫번째 인격으로 대응했으며, 이 방에 들어와 혼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두번째 인격의 실체와 맞닥뜨리거나 그것의 해방을 경험했을 터이다. 때로 혼자 울고, 때로 분노를 참지 못해 주먹으로 벽을 치고, 또 때로 그 모든 감정을 가지런히 하려는 고통스러운 내적 투쟁과 정면으로 마주쳤겠지. 치매가 깊어진 다음 그가 보여준 그 본능적 반응들. 이 방에 간직된 것들은 그러므로 그가 환자가 되기 전 한사코 감춰온 그의 이면에 대한 생생한 증거들이다. 한 지붕 아래에서도 그는 두 개의 인격으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시시때때 그로 인한 내적 분열을 거듭해왔다는 뜻이다. /259쪽 

이종영 씨는 최근에 읽기를 마친 또 한 권의 소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소설을 늘 읽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는 미야모토 테루의 신간 '금수'가 있습니다. 읽는 내내 행복했어요.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사람들의 그리움을 다뤘는데 굉장히 탁월해요.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미야모토 테루(宮本輝, 1947년 생)의 작품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로도 각색되어 유명해진 '환상의 빛'에 이어 이를 모티프로 쓴 본격 서간문학으로 꼽힙니다. 이혼 후 10년 만에 만난 두 남녀가 주고받는 편지 글입니다. 금수(錦繡)는 수를 놓은 직물이나 아름다운 시문을 뜻하기도 하고 단풍이나 꽃을 비유하기도 한 말로 다의적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소설을 많이 읽으시는가 보군요. 평소 독서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
공부하는 책들은 계속 읽습니다. 직업이니까요. 그런 책들은 일반 독자들한테는 재미가 없을 겁니다. 소설은 제가 쉬려고 읽는 겁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여태 계속해온 겁니다.
-김연수 작가와는 교분이 있었나요?
전혀 없습니다. 이번에도 저를 지명했다고 해서 뜻밖이었습니다. 김연수 작가 소설을 저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특히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시들이 좋습니다. 얼마 전에 인용된 시가 좋아서 김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라는 소설을 헌책방에서 사려고 찾아봤는데 없어서 못 샀어요.
-약력만으로 사람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자기 소개를 좀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동안 그냥 어려운 글들을 좀 써온 사람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폭력적인' 내용의 글들을 많이 써온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진실에 거의 접근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쓴 두 권의 책은 그나마 책 같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 두 권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헌정할 수 있었어요. 그 전에 낸 책들은 많이 부족해서 챙피하게 생각합니다.
-저자로서는 지금 어떤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까?
그전까지 오랫동안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좋아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몇 가지 명제를 정치심리학적으로 설명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가 우리가 하는 사랑이라는 게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사랑이라는 게 여기(지구)에는 없구나 하는 생각에 이른 거지요. 사랑도 일종의 지배 현상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 후에 일종의 신비주의자가 됐습니다.

신비주의자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종교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종교의 교리와 조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경계 속에서 개인적으로 신을 추구하는 일군의 사람들 말이지요. 저는 공부를 하다가 반(反)종교적인 유신론자가 됐어요. 2009-2010년쯤 일입니다.

예전엔 정치심리학만이 유일한 학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가령 경제학에서 경쟁이니 독점이니 하는 개념들이 나오는데 그 자체로는 설명이 안 되거든요. 독점이라면 기본적으로 남에게 뺏길까 겁내는 두려움이 동기로 작용합니다. 이것들을 정치심리학적으로 설명해야 비로소 완전해진다고 생각한 거지요. 정치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정치심리학적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지금은 인간 내면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우리가 여전히 우리 마음의 작용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의 심리 작용들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플라톤부터 스피노자, 헤겔,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의 전통이 사물의 뿌리로 내려가는 것인데, 저는 사물의 뿌리 속에는 우리의 영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신비주의자라는 겁니다. 왜 '반(反)종교적' 신비주의자이냐면, 종교는 신을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것 같아서예요. 물론 제 주변만 해도 훌륭한 종교인들도 굉장히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종교라는 것은 가짜 신을 만들어내서 사람을 종속시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신의 문제에 대해 개인들이 독자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런 생각도 사실은 저를 드러내고 싶은 욕심에서 나오는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 제목이 '마음과 세계: 유배지에서 성스러운 삶이 가능할까'예요.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동안 서양철학사와 세계종교사에서 '이 세계가 왜 있는지' '우리가 이 세계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관해 많이 다뤘잖아요. 그에 대한 답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눠 볼 수 있어요.

첫째, 순례의 관점이에요. 우리가 이 세계에 온 것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학교다. 이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온전히 배우면 다시 우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입장이죠. '그곳'이란 영적 실재, 천국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죠.

둘째는 유배의 관점입니다. 이 세계는 지옥이라는 것이고, 여기서 배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이 세계에서 배운 것들을 완전히 지워야만 다시 원래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지요. 저는 유배 이론 쪽입니다.

신이 유배지를 만들었을 리는 없다고 봤을 때, 우리 자신이 어떻게 이곳을 유배지로 만들어가는가에 대해 책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세계 속에서 우리가 어떤 관계에 말려들고 사로잡히고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유배지를 만들어가는가를 다루고, 유배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없는가의 문제를 다뤘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책에서 제시하나요? 혹시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답을 하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유배지에서 성스러움이 당연히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솔직히 저 자신은 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 책은 제가 진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아서 쓴 책이 아닙니다. 지금 다 쓰고 생각하니까 내가 뭘 제대로 알고 쓴 게 아니라 머리 속으로 겨우 이해한 걸 억지로 썼구나 싶어요. 하기야 제가 성스러운 사람이라면 그런 책을 쓰겠습니까. 그렇지 못하니까 쓰는 거지요.

후기에도 썼습니다만, 제가 살아오면서 진정한 기쁨은 뭔가 성스럽게 여겨지는 어떤 것들로부터 받았던 것 같아요. 많은 기쁨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어떤 잔인한 기쁨, 누구는 떨어졌는데 나는 붙었다든가 하는 거거든요. 사회적 성취라는 것은 대부분 잔인한 기쁨이에요. 그런 기쁨들은 오래 가지도 않아요. 내 맘 속에 오래 남는 진짜 기쁨은 성스럽게 여겨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스러움에 대한 끌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유배지 안에서도 성스러움은 가능하다고 얘기했는데, 알고서 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책을 내면서도 두렵습니다. 옛날에 책을 쓸 때는 이렇게 어둠 속에서 쓰지 않았어요. 뻔하게 아는 것들을 썼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책은 여튼 좀 그래요.(웃음)
-혹시 다음 책도 구상하고 계신가요?
이번 책이 마지막일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다음 책을 쓴다면 '말하기와 듣기'에 대해 쓰고 싶어요. 제가 경상도 군인 집안에서 나서 굉장히 폭력적이에요. 올해로 나이 60인데 평생 살면서 말로 사람들한테 엄청난 상처들을 준 것 같아요. 그런데도 정작 제 맘에 있는 이야기들을 대부분 못했어요.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던 거지요. 오히려 그걸 감추도록 교육을 받아왔던 거에요.

그래서 마음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 제 경험과 한국인의 말하고 듣는 방식과, 그리고 제가 공부한 신비주의적 관점을 결합해서 말하기와 듣기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요.
-그 책도 꼭 쓰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의 다음 순서로 궁금한 분이 있습니까?
조원식이라는 사람입니다. 제 오랜 친구(조원식 씨는 나중에 "친구가 아니라 제가 후배이고 제자"라면서 "편하게 그렇게 지칭하신 모양"이라고 했다)인데 역사비평사 편집부에서 일합니다. 최근에는 연락이 뜸했는데 그전에 진기한 책을 제게 곧잘 소개해주곤 했습니다. 지금 뭘 읽는지 유일하게 궁금한 사람입니다.
이종영 씨가 유일하게 궁금해하다고 한 조원식 씨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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