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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심각한 얼굴 뒤에 숨은 야만을 경계하라"

조회수 2016. 4. 16. 21: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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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제자 김주환 연세대 교수의 책 읽기와 학문 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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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의 독서 근황을 알아보는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코너가 예측 불허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일기 릴레이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에서 뜻밖의 독서 취향을 발견하고 의외의 책과 조우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소설가 김연수->'영혼의 슬픔' 저자 이종영->출판기획자 조원식->만화가 박흥용->임지훈 카카오 대표->이준익 감독->박정민 배우->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김봉진 '배달의 민족' 대표->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 편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김봉진 대표가 추천한 김주환 연세대 교수 차례입니다.

김봉진 '배달의 민족' 대표 편

김주환 연세대 교수를 추천합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의 저자이고, 다니엘 핑크의 '드라이브'의 역자이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리고 회사의 인사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김봉진 대표의 추천의 말

김주환 교수는 다채로운 이력과 관심으로 소문이 난 학자이기도 합니다. 대중적으로는 무엇보다 베스트셀러 '회복탄력성'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정치학도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학자로 일찌기 이탈리아 국비 장학생으로 볼로냐 대학에 유학 가서 움베르토 에코의 수업을 들으며 기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사회과학도로서 비교적 일찍 뇌과학을 응용한 커뮤니케이션 연구로 미답지를 앞서가기도 했습니다. 조리 있는 언변이 알려져, 한때는 TV 시사토론의 사회자로 '소통'의 실례를 보여주기도 했지요.

이처럼 다양한 그의 경력과 관심 때문에 문답이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인터뷰는 서래마을에 있는 그의 단골 북카페에서 진행됐습니다. 얼마 전 84세 나이로 타계한 에코와의 인연과 일화도 충분히 들어봤습니다.


-김봉진 '배달의 민족' 대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시죠?
제가 학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진행하면서, 혹은 비공식적인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내는 기업인들이 좀 있습니다. 그 모임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저의 책 '회복탄력성'을 이미 읽으셨다고 하더군요. 그런 인연으로 이번 학기에 제가 '소통 능력과 성취'라는 강의를 하는데 첫 번째 외부 강사로 모셨습니다.
-책은 얼마나 쓰셨죠?
여러 권 있기는 한데 대중서로 많이 알려진 것은 '회복탄력성'과 '그릿'입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에 관한 책으로는 앞선 편이었죠?
영어 'resilience'에 해당하는 '회복탄력성'이라는 번역어를 제가 처음 썼습니다. 당시 국내 학자들은 '자아 탄력성' '심리학적 탄력성' '회복력' '극복력' 같은 말로 다양하게 번역했어요. 저는 책을 내기 전에 칼럼에서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해서 책에도 제목으로 뽑았죠. 처음에는 그 개념이 어려운 말이기도 해서 책이 대중적으로 많이 팔릴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에 베스트셀러에도 들어가고 반응이 꽤 컸습니다.
-그 뒤로 '회복탄력성'이라는 말도 많이 퍼지고 관심도 높아졌지요.
유사한 책까지 나오고 일반적으로 많이들 쓰였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사전에 없던 말을 만들어 사용되게 했으니까요. 지난해 어느 신문에서 국내 학술 논문에 가장 많이 인용된 국내외 저서 목록을 뽑았는데 사회과학 분야에서 '회복탄력성'이 2위였다고 해요. 1위가 '정책학원론', 3위가 데이비드 헬드의 '민주주의의 모델'인데, 출간된 지 4년밖에 안 된 책이 2위를 했으니까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졌다는 뜻이겠죠. 지금도 이메일 문의가 와서 자문도 해주곤 합니다.
-책 이외에 자기 소개를 좀 더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지금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있습니다. 제 학부 전공은 정치학입니다. 학부 전공이라고 해봐야 사실상 전공 공부는 2년 정도에 불과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부 전공을 중시하다 보니 그게 정체성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저보고 왜 그런 연구를 하고 책을 쓰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할 때 지도교수였던 김홍우 (서울대) 교수님이 강조한 게 현상학이라는 철학입니다. 특히 메를로 퐁티의 '몸의 철학'을 보면 스피치 얘기가 많이 나오고, 'I am my body'라는 말과 함께 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런 철학적 훈련을 아주 많이 받은 상태에서, 그 다음 미국 유학을 갈 때 커뮤니케이션 쪽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공을 바꿨습니다.
-이탈리아 유학도 잠깐 하셨죠?
미국 유학을 가려고 GRE며 영어 공부를 한창 하고 있을 때, 학교 조교실에 이태리 정부 지원 장학생 공고가 뜬 걸 보게 됐어요. 1년치 생활비와 항공권을 주는 거였어요. 원래 이탈리아어 시험으로 뽑던 건데, 그해 처음으로 문호 개방 차원에서 영어 시험으로 장학생을 선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준비한 끝에 봄에 이탈리아 문화원 가서 시험을 보고 합격했어요. 당시 200대 1로 기억하는데 운이 좋았죠.

그때부터 이탈리아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해서 가을에 유학을 갔어요. 그때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어느 대학 갈 거냐고 묻더군요. 저는 그때 아는 이태리 사람으로는 움베르토 에코 한 사람밖에 없었어요. 저도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너무나 열심히 읽었기 때문에. 그래서 "에코가 있는 볼로냐 대학에도 갈 수 있느냐"고 했더니 "아무데라도 갈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볼로냐 대학에 기호학을 공부하러 가게 됐던 겁니다. 기호학은 커뮤니케이션이나 철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거든요. 1년 동안 기호학을 공부한 후에 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 유학을 갔어요.
-이탈리아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신이 나서 갔다가, 진짜 공부다운 공부를 거기서 시작했습니다. 제가 갈 때 이 사람들이 편도 항공권만 줬어요. 학점을 제대로 못 따면 귀국할 표도 못 받는 거예요. 생활비도 한 학기만 먼저 줬어요.
-공부를 하게 만드는 장치였군요.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이태리어 수업을 듣고 학점을 받아서 통과해야 돌아올 수 있는 거예요. 그냥 시험도 아니고 소논문을 써 내고 학생들 앞에서 발표도 해야 했어요. 정말 엄청나게 공부했어요. 그 덕에 처음으로 공부다운 공부를 했죠. 고3 때보다 더 열심히.(웃음) 게다가 자취 생활도 저는 처음이었어요.
-후회는 안 했나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는 거였으니까. 그때 들은 수업이 '완전어를 찾아서'였거든요. 역사상 인공어,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를 리뷰하는 수업이었는데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수업은 영어로?
이태리어죠. 그러니까 처음 한두 달은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어요. 가자마자 방도 구해야 하는데, 요만한 신문 쪼가리 광고 보고 전화하면 "다라라락" 뭐라 하고는 끊어버려요.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이러다 굶어죽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성당 앞에 앉아서 비둘기 보면서 좌절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이집저집 다녀보는데 어떤 집 주인이 영어를 완벽하게 하더군요. 시칠리 출신인데 미국에서 트럭 몰다가 돌아와서 자기 집에서 하숙 치는 사람이었어요. 그 집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생활하는데, 몇 달은 아주 힘들었는데, 계속 듣다 보니 이태리어가 라틴어 계열이어서 모음이 '아 에 이 오 우' 다섯 개밖에 없어서 듣는 거랑 철자랑 전환이 쉬워요.

점차 이해가 되면서 재미있어졌지요. 2학기 때는 박사 과정 수업도 들으면서 더 재미있게 했고. 기호학에 흠뻑 빠져서 처음으로 학술 논문도 썼고, 에코 선생 과목에서 최고 학점도 받았어요.
-에코가 지도교수였나요?
1년 공부하는 동안 저의 담당 교수였습니다. 기호학 수업에서 학점을 따려면 소논문을 써야 했는데 에코 교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이탈리아 대학은 원래 대학원 과정이 없어요. 학부만 졸업해도 닥터예요. 에코 같은 석학도 한국식으로 치면 학사 출신이에요. 석박사는 미국식 대학제지요.

반면에 졸업은 무지 어려워요. 모든 과목을 논문 발표하면서 통과해야 해요. 대학은 국가기관이어서 입학은 세금만 조금 내면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졸업은 아무나 못해요. 기호학 같은 경우는 너무 어려워서 여러 학기를 들어야 학점을 딸 수 있을 정도예요.

미국 영향을 받아서 '학사 이후 과정(Post-Laurea)'을 만들었는데 거기에도 석박사의 엄밀한 구분은 없어요. 그걸 마쳐도 학위가 있는 건 아니구요.

에코 선생은 저보고 계속 남아서 2년만 더 하면 포스트 라우레아 과정을 마칠 수 있을거라면서 공부를 더 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이 과정은 한국이나 미국식으로 보면 석사 과정밖에 인정을 못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 갔어요.
-에코 선생이 얼마 전에 작고하셨지요. 국내 팬들도 많이 안타까워했는데요.
대단한 분이셨어요. 다른 교수들은 가죽 구두에 멋진 가죽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이태리 특유의 패셔니스타들이에요. 수업도 10분은 기본으로 늦게 들어오고.

에코 선생만 시장 바구니 같은 나일론 가방에 책을 가득 담아 양손에 들고 와요. 다른 학생들과 같이 복도에 서서 앞 수업 끝나기를 기다려요. 옷도 맨날 감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 패션이고 뭐고 하나도 신경 안 써요. 그런 걸로 보면 이탈리아 사람 같지 않아요. 미국 교수 같아요. 실제로 인디애나대학에 오래 있으면서, 교환 교수도 오래 하고, 많이 미국화됐죠.
-그게 언제죠?
1991년도.
-이미 유명해졌을 땐가요?
이미 국민적인 스타였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1991년 크리스마스였는데 그때는 학교 문을 다 닫아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던 저 같은 자취생은 굶어죽을 처지가 돼요. 그때 이태리어 공부도 할 겸 대학 성당에서 교리문답을 배우고 있었는데, 같이 성당에 다니던 리카르도 빌란치오니라는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자고 했어요. 한국으로 치면 동해안에 인구 5천 정도 되는 소도시 카스텔 페레티라고 하는 곳에 가서 열흘 정도 묵었어요.

이태리 시골집들은 어떻게 살고 성탄절은 어떻게 보내는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죠. 그때 어느날 갑자기 그 집에서 "너네 교수 돌아가셨다"고 해요. 9시 뉴스 톱이 '에코 심장마비로 사망'으로 나온 거예요. 그 시골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빅 뉴스였어요. 물론 아시다시피 하루도 안 돼서 오보였다고 나왔지요. 급체로 입원한 건데 와전돼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TV 뉴스에 나올 정도였으니. 그때 '야, 이분은 그냥 교수가 아니고 스타구나'라고 느꼈어요.
-직접 대화도 해보시니 어떻던가요?
처음 가서 면담 신청했을 때가 잊히지 않는데, 그 여비서 이름까지 기억해요. 저를 엄청 구박하고, 에코 선생 바쁘다면서 못 만나게 하고 그랬거든요. 어떻게 해서는 뚫고는 결국 만났어요.(웃음) 한국에서 가져왔다면서 인삼차를 드렸죠. 그러자 부인이 좋아하겠다면서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생각나요. 아주 인간적이고 가정적이라는 걸 느꼈죠.

에코 수업은 학부 수업인데도 박사 과정 제자들은 물론이고 머리가 허연 교수들, 프랑스며 이태리며 미국에서 온 학자들도 여러 명 들어와서 수업 들었던 기억이 나요.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 내용은 어땠나요?
좋았죠. 정말 신기한 걸 많이 알려주셨어요. 옛날 책들을 시장 바구니에 잔뜩 들고 와서 보여주는데, "이게 말이야 1700 몇 년대 누구 책인데" 이러면서 설명을 해줘요. 그 수업 결론이 뭐였냐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문자 시스템은 다 죽었다"는 거였어요.

무슨 뜻이냐면 옛날부터 사람들은 여러 문명권에서 쉽고 간단한 인공적인 표기 체계를 만들어서 소통하기 좋게 하려고 했어요. 그게 어떤 나라의 언어일 수도 있고, 암호 체계일 수도 있고 밀교도 많이 있었죠. 하지만 모든 인공적인 문자 체계는 다 죽었다는 게 결론이에요. 지금까지 살아남은 문자체계는 한자든 알파벳이든 아라비아 문자든 다 자연발생적이라는 거예요.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부터 쓰였는지도 모른 채 수천 년 써온 것만 살아남았다는 거죠.

그러면 제가 딱 무슨 생각이 나겠어요. 한글. 훈민정음. 이건 우리가 자연발생적인 문자인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막 쓰잖아요.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었는지가 정확히 기록으로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한글은 세계사적으로 희한한 예외적인 일이에요.
-에코 선생한테 얘기해봤나요?
당연히 했죠. 처음엔 안 믿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동생이 서울대 박사과정이었는데 규장각 도서관에 가서 훈민정음에 대한 자료, 되도록 영어 자료와 논문을 다 보내달라고 했어요.

놀랍게도 그때가 91년인데,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15세기 음운론'인가 하는 한글 논문이 좀 있었고, 훈민정음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이었어요. 음운론적으로 분석한 영어 논문은 거의 없었어요. 요즘은 달라졌지 싶은데. 그때만 해도 찾기 어려웠어요.

그나마 있던 자료를 복사한 것 받아서 에코 선생한테 드렸어요. 다음부터는 이런 강의 하실 때는 단 예외가 있으니 한국 문자는 인공적으로 만든 게 확실한데 자연발생어처럼 쓰인다고 해달라고 말씀 드렸죠.
-미국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기호학 공부를 계속 했죠. 석사 과정 때 기호생산 이론을 영어로 써서 커뮤니케이션 학회 최우수 논문상도 받기도 했고. 그때 지도교수가 엘리후 카츠라고 해서 커뮤니케이션학의 대가인데 '2단계 유통 이론', '미디어 이벤트' 같은 큰 이론을 만든 분이에요.

이분이 에코랑도 잘 아는데, 정치 커뮤니케이션, 정치적 대화(political talk)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 학위 논문 주제가 '사적인 정치적 대화가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었어요. 여론조사 기법도 새롭게 실험적인 방법을 써보기도 하고 데이터도 많이 얻고 하면서 정치적 대화 이론에 심취하게 됐어요.

그게 메를로 퐁티나 하이데거, 하버마스의 철학적 이론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집안에서든 술집에서든 우리가 나누는 일대일 대화는 사적인 영역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도 공적 이슈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 현상은 신문 이후, 저널리즘 이후에 생겨난 현상이에요.

그전까지는 "너 오늘 뭐 먹었니" "너희 집은 어때" 이런 얘기밖에 안 했는데 지금은 총선 이야기하고 그러잖아요. 그게 저널리즘의 여파인 거죠. 또 사적 대화가 여론 형성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그때 여러 이론을 보고 실험 결과도 보면서 논문에서 강조한 게 뭐냐면, 사람들은 머리 속에 고정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여론조사의 기본 전제는 사람들이 머리속에 확정된 견해를 갖고 있다는 거거든요.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든가, 어떤 이슈에 찬반이라든가. 그런 고정된 생각을 질문을 통해 뽑아내는 게 여론조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연구 결과들을 보면, 사람들의 평소 의식은 흐물흐물한 상태일 뿐이에요. 질문을 던지면 답을 하는 순간, 머리속에 있던 흐릿한 생각 덩어리들이 비로소 구체적인 생각으로 결정된다(crystalized)는 거죠. 그때는 자기가 내뱉은 말에 따라 신념이 따라가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 사전 전제가 뭐냐에 따라 답이 확확 달라져요. 20% 찬성률이 80%가 되기도 할 정도로. 그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인지심리학과도 관계가 되고 기호학과도 관계가 되는 문제지요.
-그래서 뇌과학이나 IT 쪽에도 일찍부터 관심을 가져오신 거군요.
박사 논문을 쓸 때가 1994-95년이었는데, 그때 막 인터넷이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학내에서는 처음으로 html로 개인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어요. 제가 다니던 애넌버그 스쿨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최고 명문이었는데도 그때까지 학교 웹사이트가 없었어요. 제가 개인 사이트를 만들어서 학장 찾아가서 이런 걸 해야 한다고 얘기까지 했어요. 컴퓨터 학생 대표를 맡아서 제작 아이디어도 주곤 했어요.

웹도 일종의 대화 같은 거예요. 다만 매개가 있죠. 원래 자연 대화는 매개 없이 이뤄지는 건데, 인터넷은 매개를 통해 사적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이죠. 그런 관점에서 연구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인터퍼스널(interpersonal)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보스턴 칼리지에 운이 좋게, 박사 논문을 마치자마자 정년보장심사대상(tenure-track) 교수도 됐어요. 2년 동안 계속 대인 커뮤니케이션 쪽으로 연구하던 중에, 한국에서 BK(해외 인재 유치) 사업으로 해외 젊은 학자 특별 채용을 하면서 국내 대학으로 오게 됐죠.

여기 와서도 개인간 커뮤니케이션, 소통 능력에 관심을 갖다가 결국 소통은 인지적인 것이고 그것은 뇌과학을 통해서 할 수 있겠다 싶어서 10여 년 전부터 fMRI를 활용한 연구를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최근 논문들은 방송이나 언론학 쪽보다는 뇌과학이나 신경학, 정신과 쪽과 공동 연구하는 논문만 나오고 있어요.

그런 와중에 개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설득 잘하고 관계 잘 맺는 소통 능력이 회복탄력성의 가장 핵심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회복탄력성이라는 게 그저 오기나 끈기가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인간 관계를 잘 맺고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높다는 거죠.

책도 원래는 소통 능력에 대해 썼다가 회복탄력성을 앞에 내세우는 쪽으로 편제를 바꿨죠.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결국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딴짓 하는 게 아니라 개인간 커뮤니케이션을 뇌과학과 함께 깊이 연구하고 있다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수업 과목도 '소통 능력과 성취', '말하기와 토론',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사랑, 대화, 민주주의' 이런 것들을 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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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를 공부해 오셨으니 말씀인데요, 지금 콘텐츠 산업이 격변기입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세요?
지금 우리가 아는 저널리즘은 종이신문 이후에 생긴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일간지라는 정기간행물이 나오면서 쓰는 사람, 저널리스트가 생긴 거지요. 처음 역할은 지역 소식 전달이었습니다. 로컬 매체였죠.

그 다음 등장한 강력한 매체가 텔레그래프, 전신이에요. 그와 더불어 전국지가 생겨나지요. 그전에는 LA에 지진 난 걸 뉴욕타임스가 실을 수가 없었어요. 기차로만 일주일이 걸리는 거리니까. 전신이 나왔을 때 AP, 로이터 같은 회사들이 그걸 발판으로 큰 통신사가 됐죠.

지금으로 치면 뉴미디어에 승부를 걸었고 그 전략이 성공했죠. 그후로 신문들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소식도 실을 수 있게 되면서 의미가 바뀌게 됐어요. 그때부터 전국지가 되고 그야말로 매스미디어가 됐죠. 그러니까 신문이 대중매체가 된 것은 전보 덕분이었어요. 그래서 기사를 '타전했다'고 하죠. 그런 의미에서 신문은 종이매체가 아니라 처음부터 디지털 매체였다고도 할 수 있어요. 전신이 없었으면 지금 아는 신문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그 다음 방송이 나왔죠. 라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 신문은 다 망했다고 했어요. 라디오를 실제로 '일렉트로닉 뉴스페이퍼(전자신문)'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라디오는 스트레이트 뉴스, 신문은 해설 심층 보도나 사설 칼럼 같은 논평을 강화하는 길로 갔죠. 그 다음 TV가 나왔고.

그 다음 인터넷이 나와서 모든 것을 흡수 통합하는 매체가 되고 있죠. 지금 신문사나 방송사의 기자, PD들은 마치 타이타닉호을 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일 거예요.

사실 저널리즘이라는 기능은 선사 시대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신성한 장소인 '소도' 같은 데서 성직자 같은 사람이 칸(정치지도자)의 말이나 정보를 전파하고 공동체를 통합하는 기능을 했죠. 그게 권력자든 성직자든 공동체의 구심이 돼서 갈 길을 제시하거나 규칙을 전달하고, 어떤 사건이 나면 그 의미를 해석해주는 식이었죠. 그게 다 저널리즘 기능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 기능을 특정 형태로 키운 게 근대 저널리즘이에요. 그 고유한 기능은 앞으로도 사회에서 계속 요구될 거예요. 다만 매체의 변화에 따라 생각도 바꿔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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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변화가 실로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지요.
여러 분야에 변화가 있지만, 종이 매체를 기반으로 한 또다른 주요 사업이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것이 대학교예요. 놀랍게도 아직도 19세기적인 시스템으로 버티고 있는 공룡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신문만 해도 이미 온라인으로로 많이 가고 있잖아요. 얼마 전 슈피겔과 온라인 슈피겔이 싸우는 것만 봐도 그래요.

하지만 국내 대학은 아주 더뎌요. 이제는 교육 서비스도 디지털 매체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 내용이 클라우드로 가야 한다는 거죠.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온라인 기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캠퍼스는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잠시 모이는 공간 정도라고나 할까요. 강의실이나 종이책이 쌓여있는 도서관이 대학의 핵심인 상황은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화를 두고 의견도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모델이 바뀌고 있는 중이죠. 대학이 그나마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은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해줘서가 아니라 졸업장이나 학위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오는 거예요. 지금처럼 학위증을 파는 사업 모델로는 오래 못 버틸 거예요. 제대로 된 교육 콘텐츠 제공 서비스로 바뀌지 않으면 대학이라는 기관도 오래 못 버틸 거예요. 이 말에는 굉장히 여러가지가 함축돼 있어서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려워요. 결국에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뇌과학을 연구해오셨는데, 요즘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알파고 얘기부터 해볼까요. 사람들이 그걸 보고 앞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컴퓨터가 인간을 통제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까지 하잖아요. 맞는 부분도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대국 이전부터 당연히 5대 0으로 이세돌이 질 거라고 했어요. 이세돌이 이기면 그건 개발자가 프로그램을 잘 못 만들어서 그렇지 잘 만들면 당연히 이긴다고 봤어요. 바둑 역시 체스보다 훨씬 복잡할 뿐이지 정확한 승패와 규칙이 있는 게임이에요. 바둑도 계산인 거죠. 정확하게.

끝내기 수 같은 것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어떤 프로 기사도 당할 수 없을 정도의 프로그램이 수학적으로 만들어졌어요. 저의 대학 친구인 김용환 박사가 UC버클리에서 90년대 중반에 바둑 끝내기로 수학박사 학위 논문을 썼어요. 그때 게임이론으로 다 정리가 된 거예요. 끝내기를 조금씩 앞으로 당기면 결국 인간이 이길 수 없게 되는 거예요. 바둑의 수는 아직 모른다는 것 뿐이지 분명한 답이 있어요. 한정적인 게임이기 때문이에요.

알파고가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황당 수를 두고 나니까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했는데, 그건 알파고의 위대함이 아니에요. 사람의 어리석음도 아니에요. 사실은 바둑이라는 게임의 위대함을 보여준 거죠. 정확한 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사람들이 들여다봐도 아직 모르는 영역이 있는 게임이 바둑이라는 거니까.

컴퓨터는 계산에 뛰어나니까 사람보다 잘 찾아낼 수밖에 없는 거죠. 다만 생소한 게임인 바둑을 해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것뿐이죠. 아직도 완전히 해석은 안 됐지만. 하지만 그런 인공지능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진짜 인공지능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러면 알파고의 승리가 의미가 없느냐. 아니죠, 있죠. 우선, 그것 때문에 직업이 많이 날아갈 거라고 봐요. 예를 들어, 의사가 진단을 내린다고 봅시다. 진단이라는 게 기호학에서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가 말한 가추법(abduction)이에요. 셜록 홈즈가 단서를 보고 추론하는 거랑 같죠.
그걸 하려면 정확한 데이터가 많을수록 좋아요. 그것만 확보되면 병을 진단하는 데도 인간이 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을 거예요. 의사라는 직업도 위험해지는 거예요. 이건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단순한 컴퓨터 계산기만으로도 날아가는 거예요. 주산 학원 선생들이 계산기 하나로 직업을 잃게 된 거랑 같은 원리예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컴퓨터의 계산 능력의 확산이지, 인간을 통제하고 명령을 내릴지도 모르는 그런 인공지능은 아니에요. 그런 것은 컴퓨터가 몸을 가져야 하고 감각 자료(sensory data)를 모아야 해요. '몸을 갖춘 의식(embodied consciousness)'이 구축되면 그게 진정한 인공지능이 될 거예요. 그건 결국 생물학적인 문제예요. 바이오 컴퓨터가 만들어지면 인간의 뇌를 재생하는 것도 가능해지겠죠. 지금은 아직까지 강력한 수퍼컴퓨터라고 생각해요.

직업이 대량으로 없어진다는 건 맞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 같은 것이 등장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봐요. 물론 예방 규제는 필요하겠죠.
-지금은 사람들간의 소통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대화가 아니라 주로 소셜이나 문자 채팅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을 얘기할 때 흔히 떠올리는 게 SMCR 모델이에요.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고 채널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는 구조죠. 이 모델은 1930년대에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과 워런 위버(Warren Weaver)가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책에서 정보 이론이라는 걸 주장하면서 처음 인류 역사에 등장했어요.

정보 이론의 목적은 정보량을 계산하는 거예요. 원래 그전까지 정보는 양이 아니라 의미와 결부된 거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정보의 양을 계산할 필요가 생긴 거죠. 딱 하나. 전신 때문이에요. 텔레그래프는 정보를 다 이진법으로 바꾸니까요. '비트(bit)'라는 개념이 거기서 나와요. 비트가 'binary digit(2진수)'의 약자잖아요. 섀넌 & 위버가 만든 말이에요. 이진법 기호를 통해 알파벳을 계산할 수 있게.

왜 계산이 필요하냐면 한 구리선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느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였어요. 그래서 SMCR 모델을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본 뜻이 아니에요. 전신에서 나온 거란 말이죠. 하지만 이제는 거꾸로 사람들의 대화도 전신 모델로 보기 시작한 거예요.

커뮤니케이션의 어원은 '카뮤니카레'라는 라틴어예요. '공유한다'는 뜻이에요. 경험의 공유가 커뮤니케이션의 원 뜻이라는 거죠. 서로 경험했던 것 또는 우리가 얘기하는 이 상황을 공유하는 거예요. 그런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물이 '커뮤니티(community, 공동체)'이고 '커먼 센스(common sense, 상식)'예요. 'COMM'이라는 어근이 들어가는 단어가 다 그런 뜻이에요. '코뮨(commune)'도 그렇고.

공동체라는 게 공동의 경험에서 나오는 거예요. 한 지역에 살면 지역공동체가 되고, 같은 학교를 다니면 학연 공동체가 되고. 신문이나 방송 같은 매스미디어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내죠. 저 뉴스나 연속극을 보고 내가 좋고 재미있으면 저 사람도 그렇겠구나 싶은 거죠.

소셜미디어는 그런 경험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전통적으로 사람들의 소통은 매개가 없는 대면 소통이었어요. 대중매체 시대는 매개된 소통. 지금 소셜미디어는 매개를 통한 개인간 소통(mediated interpersonal commuication)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매개를 통한 소통과 대면 소통의 두 영역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거라고 볼 수 있죠.
-소셜미디어에서 말하는 소통이나 공유가 오히려 끼리끼리 문화를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글쎄요. 풍성해지고 확장되는 것이 꼭 좋은 건지, 그게 어떤 뜻인지, 그런 게 과연 가능할지, 인류 역사상 그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의문이에요. 커뮤니티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기본 개념이 '끼리끼리'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서너 명일 수도 있고 몇백 만 명이 될 수도 있지만.

끼리끼리가 인간의 원래 모습이죠. 물론 그것 때문에 갈등이 심해지는 건 문제겠지만. 사람은 원래 어떤 그룹에 속하고 싶어하고 거기서 편안함을 느끼죠. 그건 본능적인 거예요.

뇌과학에서도 재미있는 연구가 있는데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때 뇌는 몸의 고통을 느끼는 것과 똑같은 부위가 활성화돼요. 몸에 위해가 가해지면 고통을 줘서 피하라고 반응하는데, 왕따를 당하는 것도 신체에 대한 위해만큼이나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반응하는 거예요. 매튜 리버먼의 '사회적 뇌'에 그런 내용이 잘 나옵니다.
어원적으로 보더라도, 공동체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파문(excommunication)'이라고 하는데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뜻하죠. 단순히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단절되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에서 추방당하는 거였어요. 사형보다 더 두려운 형벌이었죠. 차라리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동호회를 만들고 무리를 짓고 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부작용도 있겠지만.
-아까 말씀하신 대로 대중매체가 그 사회의 공통 관심사나 의제를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파편화된 상태에서 각자 자기 의제를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에코 선생이 인터넷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새로운 중세가 도래하고 있다"고. 근대에 와서 대중매체가 만들어 낸 것이 민족주의이고 민족국가예요. 이태리, 독일, 프랑스가 통일된 것은 다 신문 때문이었어요. 그게 베네딕트 앤더슨이나, 얼마 전에 돌아가신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Elizabeth Lewisohn Eisenstein, 1923-2016) 같은 분이 얘기한 거에요.
이태리에서도 그전엔 피렌체인이라고 생각하지 이태리인이라는 자각이 없었어요. 그건 19세기에 와서 가리발디가 통일하고 이태리어를 만들고 해서 생긴 거예요. 원래 베니스말, 시실리말, 로마말, 지방 사투리는 우리 제주도 저리가라예요. 표준어를 통한 언어 통일도 인쇄매체 때문에 가능했죠. 억양이 잡힌 것도 TV나 라디오가 나오면서예요.

재미있는 게 '민족주의'라는 말은 번역이 잘못 된 거에요. 혈연을 뜻하는 '족(族)'이 들어갔잖아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은 원래 '복수 종족(multiple races)'이 인종, 종족 초월해서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는 걸 말해요. 신문 같이 읽고 뉴스 같이 보는 사람들이 국가 상징 안에 모이는 게 내셔널리즘이에요.

그런 민족국가끼리 결국 전쟁까지 하게 된 게 1차대전이었죠. 언론학자가 보기에는 신문이나 방송 같은 대중매체가 없었다면 세계 대전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국지전만 일어나고 말았겠죠. 국가 대 국가 전면전은 완전히 대중매체 영향인 거죠.

그렇게 보면, 예전처럼 KBS만 보고 있었으면 국민이 다 중요한 국가 의제를 똑같이 공유하겠죠. 그게 좋을까요? 아니면 조각조각 난 게 좋을까요.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봐요. 다만 우리가 민족주의라고 할 때 착각하면 안 되는 게 있어요. 우리는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라고 해요. 그건 종족주의예요. 근대 민족주의는 그게 아니거든요.

똑같이 생긴 한국인끼리 모여 잘살자, 이건 종족주의예요. 똑같은 한국인끼리 통일하자, 이것도 종족주의예요. 원래 민족주의는 다른 종족들이 합치는 거예요. 이태리만 해도 남부와 북부는 완전히 생긴 게 달라요. 저쪽은 키큰 금발 게르만족이고 이쪽은 키 작은 흑발, 알 파치노 같은 사람들이 합쳐진 거에요.

우리도 이제 진짜 본래 의미의 민족주의가 필요해요. 왜냐 하면 다문화 가정이 많아졌잖아요. 다르게 생긴 사람들 그걸 통합하는 것 그게 민족주의예요. 프랑스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 자녀들이 주류 사회에 통합되지 못해 폭동까지 일어났잖아요.
-통합과 분할,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데, 지금 상황은 어떻다고 보세요?
소셜미디어 자체는 'value-free',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고 봐요. 잘 사용하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봐요. 예전에 제가 방송 토론 사회를 볼 때 항상 들은 얘기가 왜 결론이 안 나느냐는 거였어요. 서로 반대 의견만 표출하고 끝나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 서로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걸 서로서로 알고, 토론이라는 것은 나랑 반대되는 사람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입장이네, 하고 아는 거죠. 그렇다고 상대를 꼭 따라가라는 건 아니지만 존중은 해야죠. 나랑 다른 의견도 있구나. 그게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랑 의견이 다르면, 미친 놈이고, 말도 안 되는 거고, 저 사람은 머리 속에 뭐가 들었나, 하면서 얘기할 필요도 못 느끼고, 서로 미친 놈이야, 해버리면 그게 더 문제가 되는 거죠.
-방송 토론 사회는 얼마나 하셨죠?
2001년인가 KBS2 TV 토론에서 1년 좀 안 되게 진행을 했고요, 3년 후에 EBS에서 토론 카페를 만 2년간 했어요.
-그 뒤로 우리 TV 정치 토론 문화가 좋아진 것 같나요?
별로 좋아진 것 같지는 않아요. 토론이나 말하기는 교육을 해야 해요. 우리나라는 학교 교육에서 그런 교육을 안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2005년부터 학교 본부에 말하기 과목을 작문 과목만큼 교양 필수로 해야 한다고 했어요. 해외에는 그렇게 하는 유명 대학들 많거든요.

그런데 잘 안 되고, 가르칠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아요. 그래도 말하기 토론을 한 학기만 가르쳐 보면 확 늘어요. 어른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안타까워요. 우리나라 리더들은 말을 잘 못하잖아요. 읽기만 하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도 건배사나 음담패설은 있어도 스프치나 토론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예요. 클린턴이나 오바마 이런 사람들도 어릴 때부터 대학 때까지 계속 말하기와 토론 교육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고.

그래서 저는 2005년부터 연세대 토론팀을 만들어서 지도를 해왔어요. 이번 TVN 주최 대학 토론 대회에서도 또 1등 했어요. 학생들에게 계속 이야기해주죠. 소통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토론이다. 토론을 잘 하려면 나와 다른 의견을 듣는 자세,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 이런 걸 잘해야 토론을 잘할 수 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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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중에게 미치는 교육 효과도 클 텐데 지금은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으니 어떡하겠어요. 동창회나 어느 자리에 가서도 보면, 틀에 박힌 우스개소리 비슷한 건배사나 하고 말거든요. 그럴 때도 목소리나 동작, 표정 같은 것을 보면 해줄 말이 정말 많거든요. 조금만 바꿔도 달라지는데.

그래서 비학위과정으로 리더들이 제대로 말하고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볼까 구상 중에 있어요.
-우리가 안고 있는 소통 문화의 문제 중 하나가 댓글 문화인데요.
악성 댓글은 문제가 많죠. 하지만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블로그나 댓글을 누구나 쓸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변화예요.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글은 1990년대 이전에는 소설가나 작가, 기자만 쓸 수 있었어요. 그 사람들만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었던 거죠. 그걸 이제는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된 거죠.

기자가 무슨 글을 쓰면 바로 밑에다 '이게 기사냐'라고 쓸 수 있는 권력의 분화가 일어났어요. 이제는 누구나 글을 올리고 인기도 얻을 수 있게 됐어요. 그런 점에서 기자나 작가는 본질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어요. 허울만 남은 거죠.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의 경우에는, 사실 디지털 세계에는 근본적으로 익명성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IP주소 추적하면 다 나와요. PC방에서 몰래 올리고 튀는 것 외에는 불가능해요. 예전에는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적인 글쓰기는 화장실 낙서밖에 없었어요. 그것도 사실은 화장실에 오는 소수의 사람들만 봤죠.

지금은 한 줄 내갈긴 글 때문에 스타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니까, 누구나 권력의 짜릿한 경험을 누릴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갑자기 누리게 된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자칫 자신에게 해로도 돌아올 수 있고, 이 행동의 의미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구 댓글을 쓰게 된 거예요. 실제로 악성 댓글 쓴 사람을 잡고 보면 평범한 직장인, 대개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이 사람도 사실은 어떤 점에서는 피해자인 거죠.

인터넷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서는 제대로 학습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댓글 맘대로 다세요' 이렇게 되니까 일어난 상황이죠. 우리나라처럼 아무 뉴스마다 댓글 다 달도록 열어놓은 데도 많지 않을 거에요. 엄청난 민주화죠. 글쓰는 사람이 자기 권력을 확 포기하고 다 나눠준 엄청난 상황인 셈이죠.

초기엔 이렇게 됐지만, 결국 악플도 자꾸 달다가 벌금도 내고, 이게 익명성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점점 수렴하게 될 거라고 봐요. 그야말로 글쓰기의 평등함을 누리면서,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 되면 나도 에티켓을 지켜야겠구나, 하는 자각이 들면서 나아질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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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보니 딴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볼까요? 요즘 무슨 책을 읽으시죠?
명상에 관한 책인데요, 차드 멩 탄의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를 읽고 있어요. 그리고 '장자'도 틈틈이 읽어요. 오래 전에 나온 이원섭 선생의 삼중당 문고본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요즘 버전으로는 김창환 선생께서 번역하신 장자를 읽습니다.
또 최근에 읽은 것 중에는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가 있어요.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 좋아서 책까지 사보게 됐어요. 법륜 스님을 그전까지는 '안철수의 멘토' '청춘 콘서트'를 하는 명사 정도로만 생각했다가 그분 강의 40-50분짜리 55편을 내려받아서 한강변을 조깅하면서 다 들었어요. 금강경을 읽으면서 거기에 커뮤니케이션 본질이 다 들어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다음으로 좀 실망하면서도 재미있게 보는 것은 하루키 책.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최근에야 '해변의 카프카'를 다 읽었어요. 뒤로 갈수록 실망했는데 앞 부분은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앞에 고양이 얘기가 나와서 또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막 읽기 시작했고요.
-소설은 의식적으로 읽는 편이세요?
예전부터 학술서라든지 제가 연구하는 뇌에 대한 책을 읽으면 잠을 못 자요. 읽다가 '오, 이런 연구가 있었어' 하면서 메모를 해야 하고, 그러면 일이 돼버리니까. 쉬려면 소설을 읽어야죠. SF 영화를 보거나. 지구를 구하는.

소설로 치면 제일 좋아했던 작가는 최인훈이에요. 대학때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최인훈의 소설을 다 읽고서는 반드시 이런 소설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회색인'이나 '총독의 소리',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런 것 보면, 거기에 담긴 유머가 좋았어요. 씩 웃을 수 있는.

그 유머 감각이라는 게 아무리 뜯어봐도 이게 왜 웃기는지는 몰라요. 예를 들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보면 '창경원'인가 하는 데 이런 대목이 나와요. '어느 봄날 구보씨는 창경원에 가서 짐승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환장하게 치밀어 올랐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해요. 이걸 보고 저는 배를 잡고 웃는 거예요. 근데 이게 왜 웃길까요? 그건 유머예요. 저는 유머라고 생각해요.
그런 유머 감각이 글에 재미있게 깔려 있는 작가가 또 알랭 드 보통이에요. 그 사람의 영어 책을 다 읽었어요. 이상하게 주로 화장실에서 읽는데.(웃음) 그 사람 책을 보면 뭘 느끼느냐면, '이런 문장은 영어로만 가능하겠구나' 혹은 '영어가 이 사람에게 감사해야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기호학을 해서 그런 걸 더 민감하게 포착하는 건가요?
그것보다는, 저는 모든 위대함에는 웃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말이 아니라 미하일 바흐친이 한 말이에요. 옛날에 어디선가 봤는데, "모든 근엄함, 진지함 뒤에는 폭력성이 있고, 활짝 웃는 거기에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다"고 했어요. "웃는 얼굴이 위대하다"고.

같은 이야기가 '장미의 이름'에도 나와요. 윌리엄 수도사가 마지막에 가서 아드송에게 하는 말이 "심각하게 진리를 신봉하는 사람을 주의해라. 진리를 위해 제 목숨을 받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먼저 또는 자기 대신 남을 죽게 하는 법이다"라는 거예요. 진리에 대한 근엄한 신봉이 폭력성을 가져온다는 거죠.

저는 그래서 활짝 웃는 위대함에 민주주의의 핵심이 있다고 봐요. 활짝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봐요. 지나친 진지함이나 심각함, 나와 다른 의견은 다 죽여 없애야겠다는 태도, 여기에 야만이 있다고 봐요.

그래서 최인훈이나 알랭 드 보통이나 그런 유머 감각을 구사할 있는 작가가 좋아요. 그게 바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얘기하는 '감성 민주주의(emotional democracy)'이죠.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사적이고 감성적인 차원에서 편하고 자유로워져야 해요.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무슨 책 읽는지 궁금한 분으로 어떤 분을 추천해주시겠습니까?
재활전문의사인 서동원 원장을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기도 한데 지난 런던올림픽 국가대표 주치의를 맡았습니다. 아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두 번째 북토크 모임을 엽니다.

4월 29일 저녁 7시 석촌호수 옆 배달의민족 본사 키친에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을 가지고 김봉진 대표와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김주환 연세대 교수가 '일과 삶의 새로운 설계'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질문에 답합니다.

음식과 소정의 투어도 마련됩니다. 참가비 1만원에 정원은 50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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