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세계] 외국어 사전 읽기가 취미인 그 사람

조회수 2016. 10. 14. 11:0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6. '괴물 번역가' 신견식 씨 이야기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한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은 한 나라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것도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바로 보이고 제대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해외 양서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북클럽 오리진의 기획 연재물 [번역의 세계]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그 역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제 6화 '외국어의 귀인' 신격식 씨 이야기입니다. 영어부터 각종 유럽어에 중국어, 일본어, 라틴어에 이르기까지 15개 외국어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자라는군요. 출판계와 번역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파다한 이름입니다.


우리말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소개한 책과 사이트 정보도 요긴할 것 같습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 여름 무렵이었다. 이미 온라인 카페에서 Waga Jabal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일찍이 번역가들 사이에 명성이 드높았지만, 나는 페이스북 친구를 맺으면서 비로소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한 일간지는 인터뷰 기사에서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번역가 신견식씨(41·사진)는 여러 외국어를 해독할 수 있는 ‘언어 괴물’이다. 그가 해독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 핀란드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그리스어, 일본어, 중국어, 라틴어 등 대강 헤아려도 15개가 넘는다.”

신견식 번역가 인터뷰 기사 바로가기

번역을 하다보면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작업이 외래어 고유명사 표기다. 나는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 용례와 규칙, 표준국어대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신문, 잡지, 독일의 『두덴발음사전』, Forvo 같은 발음 웹사이트 등을 참고한다.


하지만 원하는 표기를 찾을 때보다 찾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외래어표기법 규칙조차 정해지지 않은 아랍어 같은 언어는 영어 발음을 참고해 주먹구구식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신 씨를 알게 되면서 사정은 바뀌었다. 그 뒤로는 외래어 표기가 막히면 수시로 그에게 ‘질문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때마다 그는 명쾌한 설명과 함께 올바른 표기를 알려준다. 나는 그를 ‘번역계의 귀인貴人’이라고 부른다.

출처: KT&G 상상마당 홈페이지
신견식 번역가의 강연 장면

어릴 적부터 사전을 수집하고 읽는 게 취미였던 신 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언어학으로 석사 과정까지 수료했다. 지금도 사전과 언어학 논문을 읽는 것이 취미다.


그가 첫 저서의 원고를 탈고한 후 며칠만 좀 쉬어야겠다는 글을 올렸기에 “설마 사전이나 논문 읽으면서 쉬시는 건 아니죠?”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그것만 하는 건 아닙니다”라는 답변이 올라왔다. 그의 부인은 “저희 집에 감시 카메라 다신 줄”이라고 덧붙였다.

대개는 취미가 일이 되면 더는 취미로 즐길 수 없게 되는데 그에게 언어 공부는 여전히 일이자 취미다.


그러면서도 그는 해박한 언어 실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언어에 능숙한 사람들 중에는 외국어 발음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원음주의라 한다.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도 원음주의를 원칙으로 하지만 표기에 쓰는 자모의 개수를 제한해 발음을 쉽게 한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수도를 ‘파리’가 아니라 ‘빠리’나 ‘빠히’로 표기하는 식이다.


하지만 신 씨는 외국어 발음에 대한 높은 식견에도 불구하고 원어민의 발음보다는 한국어 사용자끼리의 소통을 더 중시한다. 내가 노르웨이의 벽난로 회사 ‘Jøtul’을 ‘예툴’로 표기하는 게 옳은지, ‘요툴’로 표기하는 게 옳은지 물었더니 그는 “‘요툴’로 통용되면 발음 차이도 별로 없으니 그렇게 써도 되겠죠”라고 답했다.

신견식 번역가 페이스북 홈페이지

신 씨는 블로그에 언어 관련 글을 꾸준히 올리다 지금은 페이스북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여기 올린 글을 보면 표기법과 어원을 소개하는 것과 더불어 각국 언어의 발음을 이용한 언어유희도 곧잘 구사한다. 주옥같은 글을 온라인에서만 읽고 마는 것이 안타까웠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단행본으로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책이 나왔다.


그동안 콩글리시를 비판하고 올바른 영어 단어를 쓰자는 책은 많았지만 영어 강박에서 벗어나 콩글리시를 어엿한 우리말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책은 그의 『콩글리시 찬가』가 처음 아닌가 싶다.

인터넷 공간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다. 실력은 의심스러운데도 자신을 번드르르하게 포장해 인기를 얻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내실을 닦다가 뒤늦게 빛을 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보기에 신 씨는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동안 그에 걸맞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웠는데 이번 책을 계기로 그의 진면목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어찌 됐든 그는 상관없이 사전이나 언어 논문을 뒤적이고 있겠지만.


덧붙임:

한국어 어원에 대해 학술적으로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2012년 타계한 이남덕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의 『한국어 어원 연구』(이대출판부)를 추천한다. 홍윤표 전 연세대학교 교수의 『살아있는 우리말의 역사』(태학사)는 국립국어원 소식지 《새국어소식》 연재글을 모은 것으로, 학문적 근거를 갖췄으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외래어 표기를 알아내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한글라이즈’라는 웹사이트(http://www.hangulize.org)를 이용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 규칙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했다. 나도 한때 ‘읽어봐’라는 표기법 서비스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이 웹사이트가 훨씬 낫다고 판단이 돼 작업을 중단했다.

한글라이즈 바로가기

읽어봐 바로가기


매월 책 1권은 읽는 북클럽 오리진 회원이 되세요.


카톡 선물하기를 통해 회원권을 구매하시면 오리진의 고급 콘텐츠는 물론 월 1권 도서 배송과 함께 북토크에 우선 초대받으실 수 있습니다.


회원권은 직접 도서 결재에 쓰셔도 좋고 다룬 분에게 카톡으로 선물을 해도 좋습니다.


책을 통한 성장과 소통을 꿈꾸는 오리진의 일원이 되실 수 있습니다.

북클럽 오리진 회원권 안내


[북클럽 오리진] 컨텐츠 카톡으로 받아보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