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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
책도 리콜이 되나요?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5. 전자책 통한 애프터서비스는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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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작성일자2016.09.21. | 30,046 읽음

한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은 한 나라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것도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바로 보이고 제대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해외 양서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북클럽 오리진의 새 기획 연재물 [번역의 세계]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그 역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다섯 번째 편입니다. '번역서의 오역'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번역은 창조적인 오역이란 말도 있습니다. 한 가지 말을 다른 말로 옮기는 작업이란 오역의 지뢰밭에 발을 내딛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그로 인해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번역가의 심정은 어떤 것인지, 그런 부담과 폐단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노력으로는 어떤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출처 : @Unsplash

애써 번역을 끝낸 후의 안도감도 잠시. 책이 출간되고 나면 다시 한번 신경이 곤두선다. 언론과 독자의 반응 때문이다. 으레 며칠 동안은 온라인 서점과 구글, 트위터 같은 곳을 살핀다. 내 이름이나 책 제목으로 검색도 해본다.


이럴 땐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기대감보다는 긴장감 때문이다. 누군가 치명적 오역이라도 지적하거나 번역투 때문에 책이 안 읽힌다는 글이라도 올라오면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한동안 일도 손에 안 잡힌다.

출처 : @myrfa

그래서 아예 번역 후엔 검색을 안 하는 번역가들도 있다. 나는 그보다는 오히려 위험을 먼저 감수하는 쪽이다. 오류가 있으면 고치고 오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물론 그러다 입은 마음의 상처도 없지 않다. 내 번역 인생에서 처음 접한 부정적 평가는 한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올라온 독자 리뷰였다.


“원서를 읽으려고 하다가 최근에 번역이 되어 손꼽아 기다린 책이다. 다른 책들에서 보면 『OOO』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인용되어 내심 기대가 컸다. but… 옮긴이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 그냥 번역이 아니라 마치 해석해 놓은 듯… 아무튼 좀 그랬다. (개인적인 차이가 많겠지만…)”


출판 번역에 갓 뛰어들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이 리뷰를 읽고는 주제를 파악하고 좀 겸손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출처 : @PublicDomainPictures

오역 지적도 많이 받았다. 이런 글이 올라오는 경로는 주로 세 가지다. 첫째, 일반인이 블로그나 SNS를 통해 인터넷에 곧장 공개하는 경우다. 한 네티즌(동료 번역가)은 내가 ‘corn’을 ‘옥수수’로 오역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다 쓴 적이 있다. 문맥으로 보자면 ‘밀’이나 ‘곡식’으로 옮겨야 옳았다는 지적이었다.


이처럼 오역을 집어내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블로그도 몇 개가 있다. 여기 운영자들은 대개 뛰어난 영어 실력의 소유자들이다. 원서와 번역서를 대조해가며 오역을 조목조목 지적하기 때문에 한번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둘째, 기자나 전공자 등이 매체를 통해 번역을 비평하거나 오역을 지적하는 경우다. 서평 말미에 지나가는 말로 한두 마디 던지기도 하는데, 이게 번역가와 책에는 뼈아픈 상처가 된다. 그 글을 읽은 독자의 머릿속에는 마지막 지적이 가장 생생하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어떤 독자는 번역가에게 직접 이메일이나 SNS 쪽지로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실은 이게 당사자로서는 가장 고마운 방식이다. 오늘은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출처 : @mojzagrebinfo

독자에게서 오역을 지적하는 이메일을 받으면, 번역가는 일단 고맙다는 답장을 쓴다. 그런 다음 오역이 맞을 경우에는 수정 방안을 고민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다음 쇄를 찍을 때 고치는 것이다. (그 독자에게는 개정쇄를 한 부 보내주는 게 좋겠다.)


문제는 책의 재고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경우다. 이것들이 소진되지 않는 다음에야 오류를 수정할 길조차 없다. 1쇄만 찍고 절판되는 책이 수두룩하니 이런 책들에 대해서는 오류를 지적해봐야 사실상 무의미하다.


내가 어릴 적에는 책에 오류를 바로잡는 스티커가 붙어 있거나 정오표라는 종이쪽지가 끼워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원고지로 원고를 받고 활판 인쇄를 하던 시절이니 지금보다는 오류가 많았을 것이다. 컴퓨터 조판이 보급되면서 오자가 부쩍 줄었고 정오표라는 것도 자취를 감추게 된 듯하다.


하지만 정오표가 퇴장했다고 해서 오타나 오역까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책이든 읽다보면 오류가 하나씩은 발견되기 마련이다. 몇몇 번역가는 자신이 번역한 책에서 오류를 발견하는 대로 인터넷에 올려 바로잡기도 한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2015)를 번역한 유나영 씨가 그런 경우다. ‘유나영의 번역 애프터서비스’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정오표를 올려뒀다.

출처 : @AllanW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출판사 차원에서 정오표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정오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2013년에는 일반인이 운영하는 오역 지적 웹사이트 ‘오역 위키’도 생겨 한동안 유심히 봤는데(http://www.oyukwiki.com) 방금 확인해보니 없어졌다.


나도 사람들이 오역에 대해 토론하고 출판사에 신고도 할 수 있는 ‘번역 소비자 연대’라는 네이버 카페를 만든 적이 있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2011) 번역을 두고 논쟁을 벌이던 중의 일이었다.)


오역에 대한 지적 자체가 오류인 경우에는 부당한 비난으로 번역가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토론을 거쳐 정제된 오역만 일반에 공개하고 출판사에 수정도 요구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카페였다. 하지만 생각만큼 활발하게 운영되지는 않고 있다. 원서를 입수해 번역서와 대조해 가면서까지 오류를 찾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개인적으로 오역 지적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아무런 경제적 보상도 없이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분들 덕분에 우리 번역 수준도 점점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출처 : @benmenting

번역의 오류를 발견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류를 수정한 개정판(또는 개정쇄)이 나오더라도 이미 구판을 읽은 독자에게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온라인에 정오표를 올려놓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독자가 그 사실을 모르면 헛수고다.


그래서 말인데, 출판사에서 공동으로 정오표 웹사이트를 운영하거나 중앙도서관 같은 정부 기관에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


전자책만 해도 오류를 수정하기에 좋은 형식인데, 기존 전자책은 종이책의 오류를 수정하기는커녕 종이책에 없는 오류까지 실려 있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는 전자책을 오류가 발견되는 대로 수정한 최신 판본으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기존 구매 독자에게 업데이트 서비스하면 개정쇄를 찍지 않더라도 종이책을 훌륭하게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책도 상품이다. 그렇게 보면 오탈자나 오역은 제품의 하자라고 할 수 있다. 흠 있는 물건을 팔았으면 리콜(불량품 회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결함을 공지하고 보완하는 것이 제조사의 의무 아닐까? 출판사들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들이는 정성의 일부라도 사후 관리에 쏟아주면 독자들이 무척 반길 것임에 틀림없다.

출처 : @wilhei

필자 소개



노승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한 후 컴퓨터 회사와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2006년에 출판 번역에 입문해 11년째 번역을 하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번역가이자 실력만큼 속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계형 번역가. 지금까지 50권가량을 번역했다. 편집자가 뽑은 《시사인》 2014년 올해의 번역가로 선정됐다.


주요 역서로는 멜러니 선스트럼의 『통증 연대기』, 노엄 촘스키의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 아룬다티 로이의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이단의 경제학』,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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