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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
수백 쪽 잘 옮기고 한 줄 제목에 운다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2. 책의 요점도 살리고 눈길도 끌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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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작성일자2016.07.13. | 22,597 읽음

한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은 한 나라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것도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바로 보이고 제대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해외 양서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이 번역입니다. 자동번역기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외국어와 한국어 번역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개선도 좋은 번역문이 쌓였을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번역가가 존중받아야 하고 번역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북클럽 오리진의 새 기획 연재물 [번역의 세계]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그 역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두 번째 편입니다. 책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행여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번역한 책 자랑을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 새로 노승영 번역가가 번역해 출간된 책의 제목이 원서와는 다르면서도 인상적이어서, 이번 기회에 번역서의 제목 이야기를 풀어놔보라고 청했습니다.


이참에 무심코 지나쳤던 책 제목 이면의 사연에도 귀 기울여 보시지요. 원서와는 딴판인 번역서의 표지 디자인도 같이 비교 감상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번역서의 출간은 또 다른 창조입니다. /편집자 주

최근에 내가 번역한 책이 또 한 권 출간됐다. 제목은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 원제는 ‘The Social Behavior of Older Animals’이다. 직역하면 '늙은 동물의 사회적 행동'쯤 되겠다.


원서를 낸 출판사는 존스홉킨스대학 출판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름지기 대학교 출판부에서 내는 책들은 아무래도 무게가 있다. 이 책도 말랑말랑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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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늙은 동물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꾸 노인들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에 소개된 나이든 동물들의 지혜, 양육, 추락, 재기, 섹스, 죽음, 애도에 이르는 테마는 고스란히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대학출판부에서 냈다고는 했지만 이 책은 사실 본격 학술연구서라고는 할 수 없다. 저자인 앤 이니스 대그(이분도 할머니다!)는 ‘늙은 동물’에 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도서관의 관련 문헌을 모조리 뒤졌다. 모인 자료를 주제별로 분류하고 정리해 단행본으로 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독자적인 연구 성과를 담은 것이 아니라 기존 연구 성과들을 종합한 3차 저작물쯤 된다. 


그래도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충분히 내 관심을 끌 만했다. 번역 검토서를 써서 에이전시 뉴스레터에 실어 보냈다. 그때 붙인 번역 제목이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이었다. 한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여왔다. 판권 계약을 하고 번역을 시작했다. 2015년 2월 23일에 최종 원고를 보냈고 2016년 5월 9일에 교정지를 받았다.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제목을 두고 내부에서 이견이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과학책이니만큼 제목도 내용에 충실하게 붙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 직접 대안까지 제시해 왔다. ‘늙은 개체로 무리에서 산다는 것’, ‘나이 든 동물의 사회적 행동’ 등등. 그러면서 제목 회의 전까지 의견을 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잠시 그간 내가 번역한 책의 제목들을 열거해볼까 한다. 양해를 구한다. 어디까지나 제목 번역의 사례들을 소개함으로써 나의 고민, 나아가 번역가와 편집자 일반의 숨은 고민을 조명하기 위함이다.


지금껏 내가 번역해서 출간된 책은 총 49종이다. 이 중에서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음역(영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책이 7종, 원제를 (거의) 직역한 책은 19종, 독자적인 제목을 붙인 책은 23종이다. 비교를 위해 역서의 제목과 원제목을 나란히 소개한다.

음역(7종)


『페이퍼 머니Paper Money』

『머니 게임Money Game』

『컨슈머 키드Consumer Kids』

『숏북The Short Book』

『브랜드 버블The Brand Bubble』

『스토리텔링 애니멀Storytelling Animal』

『로드사이드 MBA Roadside 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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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19종)


『일Working』

『마오쩌둥: 실천론·모순론On Practice and Contradiction』

『트로츠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Terrorism and Communism』

『권력의 포르노그래피The Pornography of Power』

『정서란 무엇인가?What Is Emotion?』

『기적을 좇는 의료 풍경, 임상시험Chasing Medical Miracles』

『세상의 종말에서 살아남는 법How to Survive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통증 연대기The Pain Chronicles』

『상처 주는 학교Wounded by School』

『복제예찬In Praise of Copying』

『대중문화 5000년의 역사5000 Years of Popular Culture』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How Are We to Live』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Darwin’s Lost World』

『문화 유전자 전쟁Meme Wars』

『철학 한입 더Philosophy Bites Back』

『수사학Rhetoric』

『새의 감각Bird Sense』

『테러리스트의 아들The Terrorist’s Son』

『그림자 노동Shadow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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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23종)


『잘되는 자녀는 아버지가 다르다It’s a Guy Thing』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A Life Decoded』

『흙을 살리는 자연의 위대한 생명들Life in the Soil』

『이단의 경제학Stability with Growth』

『스핀닥터,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기업 권력의 언론 플레이Thinker, Faker, Spinner, Spy』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Hopes and Prospects』

『나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The Right to Know』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In Defense of Animals』

『측정의 역사World in the Balance』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The End of Growth』

『자연 모방Harnessed』

『숲에서 우주를 보다The Forest Unseen』

『총을 든 아이들, 소년병Child Soldiers』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Listening to Grasshoppers』

『산부인과 의사에게 속지 않는 25가지 방법Expecting Better』

『만물의 공식The Formula』

『누구를 구할 것인가?The Trolley Problem』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Intuition Pumps and Other Tools for Thinking』

『여자로 태어나길 잘했어!Why It’s Great to be a Girl』

『왜 인간의 조상이 침팬지인가The Third Chimpanzee for Young People』

『소셜 미디어 2000년Writing on the Wall』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The Long and the Short of It』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The Social Behavior of Older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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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영화 포스터를 보다가 원제를 그대로 음역한 제목을 보면 혀를 차곤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내가 책 제목을 두고 고민할 때도 원제를 음역한 것 말고는 마땅한 제목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컨슈머 키드’라는 책만 해도 처음에 제목을 놓고 출판사에서는 한국어로 문장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내가 음역이 좋겠다고 주장한 경우다. ('소비자 아동'? '소비하는 아동'? 얼마나 밋밋한가 말이다.)


반대로 ‘로드사이드 MBA’는 애초에 나는 ‘길 위의 MBA’를 제안했으나 출판사에서 음역을 선택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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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을 그대로 음역하는 경우를 두고 '게으르다'거나 '무책임하다'고 이야기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령,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라는 제목을 친절하게 우리말로 옮겨 ‘이야기하는 동물’로 고쳐 달았다고 치자. 독자가 선뜻 책을 집어들고 싶어 했을까? 사후 정당화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아무래도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이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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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난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보자면 원제를 그대로 직역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원서가 출간된 사회의 문화 맥락과 번역서가 속한 사회의 문화 맥락이 다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원서를 우리말로 직역한 ‘문화 유전자 전쟁’의 경우가 그렇다. 문화 유전자를 일컫는 ‘밈’ 개념이 어느 정도 일반화된 영미권과는 달리 아직은 독서 대중에게 생소한 우리나라에서는 금방 이해되지 않는 아쉬운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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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의 제목을 완전히 새롭게 창작하는 것은 어떨까. 이 경우는 가장 까다로우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칫 오역 시비가 일기라도 하면 제목부터 걸고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제목에 ‘낚였다’라는 비판을 부를 위험성도 다분하다.


하지만 때로는 제목의 번역 과정에서도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원제는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원서의 제목도 저자가 정한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원서의 저자와 편집자가 제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일 수는 있지만 저자의 제목이 늘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편집자는 저자보다도 제 나라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제목을 정한다.


그렇다면 번역서의 편집자 역시 책을 읽게 될 국내 독자를 감안해 제목을 정하는 게 마땅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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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우의 성공 사례로 들 만한 책이 있다.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이다. 원서의 제목은 ‘The Long and the Short of It’이었다. 


이 영어 제목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자체가 ‘요점’을 뜻하는 영어의 관용 표현인 동시에 '수명의 길고 짧음'이라는 뜻도 담고 있어 언어 유희의 효과가 있다. 이런 제목을 한국어로 그대로 직역하면 그 효과를 살릴 수 없게 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라는 우리 속담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원서의 것과 전혀 다를 뿐 아니라, 도무지 수명을 연상시키는 효과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이라는 멋진 제목은 담당 편집자의 머리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출판계 사람 여럿이 무릎을 쳤고 나도 탄복했다. (그때 내가 먼저 제안한 제목은 ‘왜 늙는가’와 ‘노화의 진화’였다. 면목 없다.)


과학과 문학, 유머를 버무린 품위 있는 책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 코너에 "역시나 낚였다"고 불평하는 독자가 있었다. 아마도 제목에서 연상하고 기대한 내용과 책에서 읽은 내용이 달랐다는 불만의 표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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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왜 인간의 조상이 침팬지인가』라는 책 제목에도 사연이 있다. 이 책은 다이아몬드 교수의 베스트셀러 『제3의 침팬지』를 청소년용으로 개작한 책이었다. 그래서 원서의 제목 역시 ‘청소년을 위한 제3의 침팬지The Third Chimpanzee for Young People’라고 붙여서 출간했다.


하지만 국내 번역서는 원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긴 제목을 붙였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제3의 침팬지』 개정판이 나와서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제3의 침팬지』를 구입한 독자가 '전혀 별개처럼 보이는' 이 책도 사줬으면 하는 의도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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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사상이 집대성돼 있으면서도 『총, 균, 쇠』보다 압축적이고 가독성이 높은 『제3의 침팬지』를, 그것도 청소년까지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문체로 풀어 쓴 수작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좀더 많은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책인데, 그에 걸맞은 제목을 붙이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출간 당시 나는 역자 증정본을 받고서야 한국어판 제목이 그렇게 결정된 사실을 알았다. 한 독자는 “번역자 노승영 씨, 기독교인이세요? 원제를 무시하고... 지으셨나요?”라는 촌평을 남기기도 했다. 억울하지만 어쩌랴. 표지에 이름이 박히는 대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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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모방’도 아쉬운 제목이다. 원래는 ‘응용하는 뇌’라는 제목으로 돼 있었다. 나는 스티븐 핑커의 『언어 본능』에 착안해 ‘자연 본능’을 제안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자연 모방’으로 낙착됐다.


최종 시안을 급하게 결정하느라 ‘자연 모방’이라는 말의 기존 용법을 꼼꼼히 살피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단어는 새의 날개를 흉내 낸 비행기처럼 자연을 모방한 기술을 일컫는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었다.


인간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언어와 음악이 진화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는 독창적인 책에 어울리는 제목을 달아줬어야 했는데, 두고두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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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제목 중에서 내가 지은 것으로는 ‘측정의 역사’, ‘만물의 공식’, ‘여자로 태어나길 잘했어!’,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이 있다. 번역서의 제목까지 뽑는 것이 번역자의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번역자가 제목을 짓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번역자가 원제와 본문에 치중해 제목을 고민한다면, 편집자로서는 우리 독자에게 책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관점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출처 : @Noppakaw

처음에 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아무리 고민해도 더 나은 제목은 떠오르지 않았다. 출판사에도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제목 회의에서 대다수가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을 지지했다고 했다.


책이 출간된 뒤 신문 서평을 읽어봤다. 내 의도대로 읽은 기자도 있었고 제목에 아쉬움을 표한 기자도 있었다. 늙은 동물의 삶을 인간의 노년에 빗대어 읽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이번에도 ‘낚였다!’라며 불평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본문의 요점을 정확히 담아내면서 사람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제목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의젓하면서도 애교 많은' 자식을 바라는 것과 같다.


두꺼운 책의 본문을 애써 번역해놓고도 표지의 제목 한 줄 때문에 번역자는 물론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의 노고까지 허사가 되는 수가 왕왕 있다. 오늘도 출판사 사람들이 제목 회의에 그토록 목을 매는 이유는 이처럼 애달픈 사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독자들은 아실지.

출처 : @Unsplash

필자 소개



노승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한 후 컴퓨터 회사와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2006년에 출판 번역에 입문해 11년째 번역을 하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번역가이자 실력만큼 속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계형 번역가. 지금까지 50권가량을 번역했다. 편집자가 뽑은 《시사인》 2014년 올해의 번역가로 선정됐다.


주요 역서로는 멜러니 선스트럼의 『통증 연대기』, 노엄 촘스키의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 아룬다티 로이의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이단의 경제학』,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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