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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 읽는다 갱생의 불을 지피려고

조회수 2018. 3. 26. 11: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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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 번역한 문광훈 교수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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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은 한 나라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것도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바로 보이고 제대로 보입니다.

[번역의 세계]는 외국어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그 반대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최근에 출간된 리온 포이히트방거의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을 번역한 문광훈 교수의 글입니다.


이국의 언어로 씌어진 한 권의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말을 바꿔 입고 독자의 손에 이르게 되는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책을 직접 옮길 때 번역자의 생각과 정성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책 맨 뒤에 '잔혹한 진리-포이히트방거의 <고야>'라는 제목으로 17쪽에 걸쳐 쓴 옮긴이 해설을 발췌했습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걸쳐 활동한 근대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 무렵 스페인 왕실은 권위적인 전제군주 아래 갖은 특권을 다 누렸고, 상류 귀족들은 사치스럽고 게을렀으며, 종교재판소는 신의 이름 아래 무자비한 탄압을 일삼고 있었다. 여기에 민중은 민중대로 갖가지 미신과 무지 속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리하여 18세기 이베리아 반도는, 여느 유럽 지역이 그러하듯이, 중세적 미신과 근대적 계몽정신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던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중략)


바로 이 잔혹했던 시대 현실 속에서 고야는 살다 갔다. 그는 82년의 생애 동안, 종교화든 초상화든 풍경화든 역사화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렸다. 또 매체가 무엇이건, 유화든 프레스코화든, 태피스트리나 동판화든, 가능한 한 모두 섭력하고 익혀서 최대의 표현적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애썼다. 이런 표현적 시도에서 그의 내면적 자아와 외면적 세계, 사실과 환상, 개인과 집단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 두 요소는 그의 작품 속에서 놀라운 색채와 창의적 구성을 통해 하나로 융합된다. 이것이 그의 작품에 담긴 혁신성이고, 이 혁신성이 갖는 근대적인 의미이다.


고야 작업의 의미는, 간단히 말해 표현 방식과 색채 구사에 있고, 이런 표현 방식의 바탕에는 동시대 현실에 대한 엄정한 인식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복잡한 이해가 있다. 이 엄정한 현실 인식과 복합적인 인간 이해에 입각한 그의 새로운 묘사 방법이 바로 회화사에서 새로운 근대의 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고 방법적으로 실험적이면서도 비전에 차 있는 고야의 그림은,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런저런 기이함과 모순, 병적 광기와 명료한 정신으로 뒤섞여 있다. 그리고 이 착잡한 세계상은 그 자체로 스페인적 열정의 어떤 원형적 표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리온 포이히트방거(Lion Feuchtwanger, 1884-1958)의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Goya, oder Der arge Weg der Erkenntnis>(1951, 이하 <고야>)은 바로 이런 고야의 예술적 삶을 묘사한 역사소설이다. (중략)

포이히트방거는 모든 것을 읽으려 했던 엄청난 독서가인 동시에 모든 책을 모으려 했던 놀라운 책 수집가이기도 했다. 그가 모은 책은 4만 권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이나 이 같은 도서관을 잃어야 했다. 독일을 떠나올 때 그는 베를린 도서관을 포기했고, 남프랑스 망명 시절에 만들었던 도서관은 미국행으로 다시 한 번 포기해야 했다. 그 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세번째 도서관을 세웠다.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압도적 무기력과 실낱같은 희망 사이에서 실향민으로서의 그의 나날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포이히트방거의 감각은 예민했고, 그의 현실 인식은 시대의 크고 작은 사건을 직시하려 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 진실을 '문학적으로' 탐색하고자 애썼다. 그때그때의 역사적 사건은 하나의 복잡다단한 총체로서 일거에 또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일정한 시간적 거리 속에서 좀더 편견 없이, 그리하여 더 높은 객관성 속에서 대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관심을 시종일관 끌었던 것은 인간의 열정과 그 열정의 파국적 결과였고, 약점과 균열에 차 있는 역사적 국외자가 어떻게 상승과 몰락을 오가는가였다. 각 시대의 뛰어난 예술가들이란 대개 이런 국외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고야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이히트방거는 자료의 세부를 충실하게 조사했고, 그에 관한 생각을 노트했으며, 시대적 총체에 자신의 시적 상상력을 뒤섞어 잊을 수 없는 여러 인물을 탄생시켰다. 이런 면모가 잘 나타나는 것이 그의 후기작 <고야>다. (중략)


고야는 오직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있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하고, 이 자기 충실에의 욕구를 그리고자 한다. 현존적 진실에 대한 이런 표현적 열망에는 드넓은 인정에 대한 사회적 갈구가 있다. 그리하여 예술가의 주관주의는, 바로 이 표현적 진실의 변증법에 힘입어, 시대적 삶에 대한 객관적인 증언으로 변모한다. 고야가 때때로 자신의 의지와의 다르게, 자기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그 진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략)

어느 시대 어떤 현실이든, 그 현실에서 사는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간단할 수 없다. 그것은 서로 어긋나는 여러 면모들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총합적 체계이고 그 혼란스러운 산물이다. 예술은 그 복잡다기한 현실을 모순된 혼란으로부터 꺼내어 어떤 새로운 차원-통일된 형상 차원으로 옮겨놓는다. 이 형상의 차원이란 어떤 질서의 차원이고, 그래서 형식화된 의미의 상태에 가깝다. 예술은 삶의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활동-의미부여적 형상화 활동이다.


고야는 왕실 귀족을 그렸듯이 거지와 정신병자도 그렸고, 카니발과 심문 장면을 그렸듯이 환상 속에 떠오르는 온갖 유령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이 중층적 현실과의 여러 모순된 경험 그리고 그 착잡한 인간 이해로부터 점차적으로 결정화된 기록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예술적 진실을 얻기 위해 그가 지불했던 것은 귀먹음과 고독이었다.


그렇듯이 소설 <고야> 또한, 이것이 고야 그림의 개인적/실존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시대적 차원에 대한 이중적 탐색인 한, 그의 주요 그림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면밀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고야 회화의 발생사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해석적 재구성이다. 이 해석의 핵심에는 하나의 통찰-위대한 예술작품은 오직 인간과 그 삶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한 '혹독한 길'에서만 마침내 빚어질 수 있다는 통찰이 들어 있다.


이 대목에서 언급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포이히트방거의 서술 방식이다. 그의 언어는 대체로 짧고 매우 명료하다. 장식이나 수사가 최대한 절제되어 있고, 그 때문에 그의 언어는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언어가 지닌 객관성은 바로 이 무미건조한 문체에서 올 것이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식이란 제대로 설명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잘 설명하기 위해 쉼 없이 읽었다. "나는 아주 즐거이 읽고, 매우 많이, 매우 철저히, 그리고 매우 천천히 읽는다." 이렇게 읽은 것에 조사한 자료를 더하고, 시적 환상과 이념을 덧붙여서 그로부터 결코 잊을 수 없는 인물이 생겨나도록 그는 무진 애를 썼다. <고야>나 <카예타나>는 그런 인물일 것이다. (중략)

포이히트방거는, 마치 고야가 300년 전에 귀먹은 상태로 과거의 영광과 동시대의 비참을 회화적 작업 속에서 느꼈을 것이듯이, 지나간 시대의 현재적 의미를 소설에 기록했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과 문화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민 그리고 향유의 충동 없이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고야가 걸었던 '인식의 혹독한 길'은 곧 포이히트방거의 경로이기도 했을 것이다.


고야의 시대와 포이히트방거의 시대는, 마치 중세적 몽매에 포박된 스페인 궁정 사회와 피레네 산맥 이북의 프랑스로부터 불어오는 근대의 바람이 접해 있듯이, 서로 겹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예술적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지나간 시대를 오늘의 감각으로 최대한 충실하게 '다시 살펴보려는', 그리하여 자신의 시대를 '새롭게 살아보려는' 삶의 감정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생활감정으로 역사로부터 '불'을 끄집어내려 했다. 포이히트방거는 썼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재가 아니라, 불을 끄집어내길 원한다."


고야가 예술의 진실을 추구하면서 사랑을 잃고 귀까지 먹게 되었듯이, 포이히트방거 역시 소설 <고야> 때문에 갖가지 비난과 오해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그러나 작품 <고야>는 18-19세기 고야의 당대 현실뿐만 아니라 20-21세기 오늘의 시대에 대한 거대한 성찰적 벽화다. 두 예술작품은, 그것이 고야의 그림이든 포이히트방거의 <고야>이든, 단순히 지나간 시대의 억압적 정치 질서나 잔혹한 종교 정책에 대한 고발일 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 인간의 허영과 어리석음 그리고 사회정치적 부자유에 대한 놀라운 안티테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소설 <고야>가 오늘날까지도 신선한 긴장과 열도를 잃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삶이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자기모순과 역설에 차 있고, 그 때문에 그 착잡함이란 때때로 진실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집요하지만, 그럼에도 그 혹독한 진실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아니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삶의 진전을, 그리하여 역사와 문화의 성숙을 우리가 믿는 까닭일 것이다. 또 그렇게 믿는 한, 우리는 포이히트방거적 의미의 교육적 계몽적 선의를 외면할 수 없다.


진실의 혹독한 길은, 프리스가 옳게 지적했듯이, "작가의 교육적이고 계몽적인 의도 속에서 독자의 길이어야 한다." 우리가 지나간 삶에서 '재'가 아니라 '불'을 피워내려는 이유는 진리가 불가능하게 보이는 삶의 순간에도 악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 그리하여 진실의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기 위해서다. 책을 읽는 이유도 그렇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 퇴행의 재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갱생의 불을 지펴내기 위해서다. (중략)

이 책 <고야>는 한국어 초역(初譯)이다. 리온 포이히트방거의 작품은 아직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1998년 판 <고야>의 앞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책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번역하고 싶다. 그런 후 '고야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30-50쪽의 글을 쓸 것이다. 1999년 7월 26일."


포이히트방거의 <고야>를 나는, 독일에서 학위 논문 심사와 구술시험이 끝난 후 귀국을 한 달쯤 앞두고 있을 무렵, 어느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그 당시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머리가 어지러우면 잠시 나와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이런저런 골목을 산책 삼아 돌아다니곤 했다. 그 때 이후 약 19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제야 이 책을 번역해 세상에 내놓는다.


이 책의 번역은 서너 해 전에 마쳤다. 2013년 일 년 내내 나는 매주 3, 4일, 하루에 두세 시간씩 <고야>를 번역해 그해 말에 초고를 완성했고, 그 뒤 두세 차례 퇴고했다. 이 번역에 몰두하던 2, 3년 동안 나는, 내가 탐독했던 책에서 대개 그러하였듯이, 행복했다.


때로는 시간을 잊은 채 고야를 만났고, 그의 삶과 예술을 사랑을 떠올렸으며, 그가 체험했던 유령 같은 현실과 그가 느낀 자기모순에 공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사무칠 때면 가끔 그의 화집을 다시 꺼내 들춰보기도 했다. 2014년 네이버 강연에서 "예술 경험과 '좋은' 삶"이라는 제목으로 고야의 판화집 <변덕>을 다룬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고야가 여든두 살에 죽기 전에 그린 한 소묘의 제목은 <아운 아프렌도Aun Aprendo>-'아직도 배운다'였다. 이 말을 나는 오랫동안 마치 주문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나는 배우며 살 것이고, 배우며 사랑하고 견뎌낼 것이고, 또 배우며 죽을 것이다. (중략)


포이히트방거의 이 소설은 위대한 화가 고야나 근대 스페인의 사회정치적 현실에 관심을 가진 독자뿐만 아니라, 예술의 근대성이 무엇인지, 예술은 과연 무엇을 표현하고 또 표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좋은 성찰적 사례가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2018년 2월 문광훈

문광훈 교수는 고려대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충북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 <조용한 삶의 정물화>, <가장의 근심>, <렘브란트의 웃음>, <심미주의 선언> 등이 있으며 역서로 <한낮의 어둠>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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