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길 따라 산책] 일찍부터 고아였고 프리랜서였다

조회수 2017. 3. 24. 14: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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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존 버거와 알베르 카뮈를 작가로 키웠던가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북클럽 오리진이 새로운 코너 [글길 따라 산책]을 시작합니다.


호젓한 책 속의 길을 따라 함께 걷는 시간입니다. 신구간 국내외 도서 중에서 함께 나눌 만한 단락, 구절들을 소개합니다.


글은 생각이 낸 길입니다. 저자가 홀로 앞장서 열어간 길을 뒤따라 걸으며 잠시 생각에 잠겨 봅니다.

글과 길을 결부지어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에 겪은 두 가지 일 때문입니다. 하나는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를 쓴 대만의 작가 탕누어와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인 <산책자>와의 교감입니다.


탕누어를 인터뷰하는 중에 그가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오랜 시간 산책을 한다고 했습니다. 작가나 학자나 예술가들이 자기만의 '리츄얼'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탕누어 역시 철저히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뷰는 조만간 별도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로베르트 발저 역시 산책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더군요. 이번에 번역돼 나온 책도 제목을 <산책자>로 붙인 데다가, 수록된 작품 중에는 '산책'이라는 빼어난 긴 글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산책과 사색 사이에는 여러 갈래의 친화성과 유사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그 점에 관한 한 내력도 깁니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고대 그리스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가 있었고, 근대에 와서 루소나 칸트도 하나같이 나홀로 산책을 즐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리가 걷는 길과 쓰고 또 읽는 글 사이에도 여러 유비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길'을 따라 걷는 산책이라는 뜻의 문패를 내걸었습니다.


첫 순서로 오늘은 최근에 번역된 존 버거의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골라봤습니다. 올초에 세상을 떠난 존 버거는 생전에도 수많은 글과 책을 썼고 국내에도 웬만큼 다 번역이 됐지만 이번에 나온 책에도 함축적인 글이 많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짧은 글 '당돌함'을 발췌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이 이야기꾼이 된 내력에 대해 더듬어보는 대목입니다.

최근에 알베르 카뮈의 놀라운 책 <최초의 인간Le Premier Homme>을 다시 읽었다. 그 책에서 카뮈는 자신을 어른으로, 그리고 작가로 만들어 준 무언가를 어린 시절을 비롯한 인생의 초반부에서 찾고 있다. (중략)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를 지금의 이야기꾼으로 만들어 준 건 무엇일까 자문해 보았다. 단서를 하나 찾았다. 카뮈가 발견한 것에 필적할 만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간략히 적어 둘 통찰은 하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고아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는 사랑을 베풀어 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건 약간 이상한 종류의 고아였다. 안쓰럽다고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물질적 환경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면에서는 부추키기도 했다.


나는 부모님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자랐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시장에 내다 팔 케이크와 과자를 만드셔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정작 나를 돌봐 준 사람은 뉴질랜드 출신의 보모였다.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얼마 전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에 등장했던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지요.

저는 자랄 때 공터가 너무 많았어요. 사실은 평범한 삶이 아니었어요. 엄마아빠의 사랑도 없었지만 간섭도 없었어요. 그게 나를 키운 것 같아요. 이젠 웬만큼 알려진 사실이지만, 저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만 5년 같이 살다가 돌아가셨거든요. 고모님이 나를 입양해서 키우셨는데 전혀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제게 공터를 만들어주신 분이죠.

시장바닥에서 가게 물건 파는 아주머니였는데, 나는 시장을 배회하거나 조그마한 가게의 다락방에서 지냈어요. 진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어서 항상 엎드려서 혼자 뭔가 끼적거리며 생각하고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다락방 소년 시기가 지금 나를 만든 원동력이었어요.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주철환 편

다시 존 버거의 어릴 적 회상입니다. 

나는 일찍부터 기숙학교에 다녔다. (중략) 가족들이 모이는 날은 크리스마스뿐이었다. 삼촌들, 이모들, 사촌들이 함께 모여 사흘간 신나게 먹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호화로운 크리스마스 만찬을 마친 후에는 내가 친척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며 웃겨야 했다. 나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별난 메신저가 된 것 같았다. (중략)


고아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와 함께 어떤 특별한 기술도 익히게 된다. 그는 혼자 살아가는 프리랜서가 된다.


네댓 살에 프리랜서가 된 후 줄곧 만나는 사람들 역시 나 같은 고아일 거라 생각하고 대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서 존 버거가 앞서 언급한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교차시켜 볼까요? 이 작품은 비운의 교통사고로 숨진 카뮈의 유작으로 유명합니다. 사실은 유작이라기보다는 초고 상태의 원고였지요. 당시 상황을 카뮈 연구와 번역으로 유명한 김화영 교수의 생생한 글로 떠올려보지요.

1960년 1월 4일 월요일 오후 1시 55분 상스에 파리로 가는 국도 7번.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블르뱅 마을 어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양편에 늘어서 궁륭을 이루고 있는 국도상에서 돌연 알 수 없는 '끔찍한 소리'가 쾅 하고 들렸다. 자동차 한 대가 육중한 가로수를 들이받고 섰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미셸 갈리마르는 물론 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작가 알베르 카뮈도 현장에서 사망. 마흔일곱 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 3년 뒤였다. (중략)


사고 당시 차 안에 있던 물건들 중에는 충격으로 인하여 현장에서 무려 1백 50미터나 되는 먼 곳까지 튕겨 나간 것도 있었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카뮈는 남프랑스의 뤼베롱 산기슭 작은 마을 루르마랭의 시골집에서 새로운 소설 집필에 여념이 없었다. 휴가를 맞아 시골집에 함께 내려와 있던 가족들--부인 프랑신 카뮈, 쌍둥이 남매 카트린과 장--은 아이들의 학교 개학에 맞추어 파리로 막 떠난 뒤였다. 카뮈 역시 가족과 함께 파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마침 절친한 친구 미셸 갈리마르 부부가 자동차 편으로 파리에 돌아간다면서 동행을 권했다. 이리하여 카뮈는 미리 사둔 기차표를 주머니에 넣어 둔 채 가족들과는 별도로 미셸 갈리마르의 자동차에 동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략)


자동차가 가로수와 충돌하여 멎는 순간 이제 막 깊게 갈아엎은 길 옆의 밭고랑으로 튕겨나간 것들 중에는 검은색의 작은 가방이 하나 있었다. 그 가방 속에는 카뮈가 루르마랭을 떠나기까지 열중하여 집필하고 있었던 육필 원고가 담겨 있었고, 그 '작품'이 바로 지금 여기 번역하여 출간하는 <최초의 인간Le Premier Homme>이다.

<최초의 인간>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대목으로는 아래의 단락을 꼽습니다.

그가 오랜 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서는 저마다가 다 최초의 인간이었다. 또 그 땅에서는 그 역시 아버지 없이 혼자서 자랐을 뿐, 이야기를 해도 좋을 만한 나이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서 집안의 비밀을, 혹은 오랜 옛날의 고통을, 혹은 자신이 겪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그런 순간들...


열여섯 살이 되어도 스무 살이 되어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해주지 않았고 그는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잠재적 능력만을 지닌 채 자라고, 혼자서 자신의 윤리와 진실을 발견해내고 마침내 인간으로 태어난 다음 이번에는 더욱 어려운 탄생이라고 할, 타인들과 여자들에게로 또 새로이 눈뜨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고장에서 태어나 뿌리도 신앙도 없이 살아가는 법을 하나씩하나씩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결정적인 익명성으로 변한 나머지 자신들이 이 땅 위에 왔다가 간 단 하나의 거룩한 흔적인, 지금 공동묘지 안에서 어둠에 덮여 가고 있는 저 명문을 읽을 수도 없는 묘석들마저 없어져 버릴 위험이 있는 오늘,


모두 다 함께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눈뜨며 새로이 태어나는 법을, 자신들보다 먼저 이 땅위를 거쳐 갔고 이제는 종족과 운명의 동지임을 인정해야 마땅할, 지금은 제거되고 없는 정복자들의 저 엄청난 무리들에 눈뜨며 새로이 태어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듯이.


<최초의 인간>, 203-204면

김화영 교수는 <최초의 인간> 옮긴이 후기에 이런 해석을 덧붙입니다.

한 차원 더 넓혀서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사실 아버지 없는 '고아'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인간은 다 어느 만큼은 '주워 온 아이'이다. 필연적인 '죽음'에 의하여 삶의 의미가 무화(無化)되게 마련이고 보면 모든 인간은 스스로, 그리고 혼자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타인에게로 '눈뜨며' 다시 태어나야 하는 '최초의 인간'이다.

/김화영, <최초의 인간> 옮김이의 말 중에서

다시 존 버거의 글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권유의 말과 함께 글을 맺습니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아들끼리의 공모를 제안한다. 우리는 서로 윙크를 나누고, 위계를 거부한다. 모든 위계를,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세계를 무시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당돌하다. 우주의 별들 중 절반 이상이 그 어떤 성운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별이다. 모든 성운을 다 합친 것보다 그 별들이 내는 빛이 더 많은 셈이다.


당연히 우리는 당돌하다. 그리고 내가 독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방식 역시 그럴 것이다. 마치 여러분들도 고아인 것처럼 말이다.

버거와 카뮈 둘 다 일찍부터 찾아든 고아 의식에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버거의 마지막 다짐, '당돌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카뮈도 이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반항하는 인간'을 내세웠지요.


'존 버거의 스케치북'전이 지금 서울 종로 자하문로 온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4월 7일까지라네요. 그의 스케치와 글, 동영상을 함께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존 버거의 스케치북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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