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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브 리뷰] 폭염의 사각지대

조회수 2018. 8. 15. 08: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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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둘째 주의 주목할 만한 신간들을 소개합니다.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주목할 만한 신간들을 살펴보는 '리뷰 오브 리뷰'입니다.


책과 저자에 관련된 정보 중심으로 전해 드립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자 생각의 디딤돌입니다. 애써 다가가야 할 이유입니다.


*소개할 만한 신간 추천도 받습니다. journey.jeon@gmail.com으로 알려주세요.

10여년 전 여름 미국 시카고에서 폭염이 일어났을 때 벌어진 상황을 사회학적으로 진단한 책입니다.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는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같은 대학교 공공지식연구소 소장입니다. 국내에도 번역된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1995년 시카고에서는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되며 700여 명이 숨진 참사가 일어난 상황을 다뤘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 무더위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취급된 적이 없었습니다. 홍수나 폭설처럼 대다한 장면을 연출하지도 않고 희생자는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폭염 사망자들이 실려온 한 부검소에서 조사를 시작한 저자는 관계자 인터뷰, 자료 분석 등을 토대로 폭염에 의한 사망이 ‘사회 불평등’의 문제이자 시민사회가 서로를 보살피지 못한 공동체 부재의 문제라고 진단합니다.


폭염이라는 기상 이변과 독거노인과 1인 가구 수 증가, 경제·문화적으로 양극화된 도시 구역의 사회적 분리 현상 등이 빚어내는 현상을 종합적으로 다룬 논픽션 수작입니다.


원제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 Second Edition. 2002년 출간.

시카고에서 일어났던 일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며, 도시 괴담의 하나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1995년의 폭염은 일종의 사회극이며, 늘 존재했지만 알아채기 어려웠던 일련의 사회적 조건을 드러낸 사건이다.

일본 지식인이 한중일 역사 인식의 갈등과 대립 구도를 넘어서길 희망하며 쓴 책입니다.


저자 오누마 야스야키(1946년 생)는 일본의 원로 국제법학자입니다.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법학박사(국제법 전공) 학위를 받고 도쿄대학 교수와 메이지대학 특임교수, 아시아국제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도쿄대 명예교수입니다.


공동 저자인 에가와 쇼코(江川紹子, 1958년 생)는 가나가와신문사 기자를 지낸 저널리스트입니다.


이 책에서는 도쿄재판, 전쟁책임과 전후책임, 난징사건, 사할린 잔류 한국인, ‘위안부’ 문제 등을 국제법과 역사학의 관점에서 연구해온 내용을 바탕으로 한중일 간 논쟁의 대상인 ‘역사인식’이란 테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독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역사 조감도를 조금이라도 다시 생각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 조감도를 대조해보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령, 위안부 희생자의 대부분이 속아서든 강제로든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은 학문적으로 실증되었기에 ‘강제는 없었다거나 위안부는 공창이었다’는 일본내 일부의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거의 실증된 학문적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태도이며, 일본의 국제적 평가에도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역사적 갈등 현안에 대한 일본 내 인식과 온건 진보 지식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원제 歷史認識’とは何か. 2015년 7월 출간.

이번에 한국어로 출간되는 《‘歷史認識’とは何か》는 도쿄재판, 전쟁책임, 전후책임, 사할린 잔류 한국인,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한 나의 지금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일 및 중일 간에 격렬하게 논의되고 각각의 국내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역사인식’이란 테마에 대해서 대화체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 책의 간행으로 ‘역사인식’ 문제에 관한 한일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가 깊어지고, 문제의 정치화와 불필요한 대립을 막는 작은 노력의 일환이 될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여성의 분노를 금기시하는 편견을 깨고 발전의 계기로 삼도록 조언하는 페미니즘 심리학 책입니다.


저자 해리엇 러너(Harriet Lerner)는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입니다. 뉴욕시립대에서 임상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30년간 메닝거클리닉에서 일하며 치료, 강연, 저술 활동 등을 펼쳐 왔습니다.


저자는 “분노는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이자, 현명하게 풀어 나가기 힘든 감정”이지만 “변화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분노는 어떤 신호,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는 신호”이자 “정말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메시지”이며, 이 경고 신호를 잘 알아차려서 자신의 성장과 변화의 도구로 삼는다면, 분노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확실하고 강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거지요.


특히 여성의 분노를 금기시하는 사회에서 ‘말없는 복종’과 ‘비효율적인 싸움과 비난’이라는 기존의 분노 처리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익혀 실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분노를 만들어 내는 원천인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조언으로 자기 자신을 분명히 하는 법, 적절한 대화 기술,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법, 변화를 거부하는 저항 반응, 과거로 돌아가려는 반응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원제 The Dance of Anger. 1985년 출간.

만일 기존의 익숙한 분노 처리 방식이 우리에게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범주 중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모두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좋은 여자nice-lady'와 '나쁜 여자bitch'라는 범주가 그것이다. '좋은 여자'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며 분노를 회피하고 참는다. 반면 '나쁜 여자'는 쉽게 화를 내지만,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싸움과 불평, 비난에 매달린다.

이 두 가지 분노 처리 방식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두 방식 모두 다른 사람들은 보호해 주는 대신 자기 자신은 명료하게 드러내지 못하며, 결국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행동경제학을 함께 개척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유별난 우정과 협력을 그린 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입니다.


두 사람은 1969년 봄 히브리대학 한 강의실에서 만나 학계에서 손꼽히는 단짝이 됩니다. 하지만 성향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카너먼은 어렸을 때 홀로코스트를 겪었고, 트버스키는 거드름을 피우기 좋아하는 이스라엘 토박이였는가 하면, 트버스키는 항상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반면 카너먼은 그 반대였습니다.


둘은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주면서 더 좋게 발전합니다. 공동 연구를 통해 인간의 모든 판단과 결정에는 ‘이성’과 ‘합리성’이 아니라 ‘심리’와 ‘감정’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카너먼이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업적도 사실상 6년 전인 1996년에 전이성 흑색종으로 세상을 뜬 트버스키와의 혁력물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두 사람의 인간적인 일화들이 감동적으로 소개되는 한편, 행동주의 심리학의 제왕 B. F. 스키너부터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련 지식인들도 등장합니다.


원제 The Undoing Project: A Friendship That Changed Our Minds. 2017년 1월 출간.

아모스는 비논리적 주장에 철퇴를 가하는 사람이고, 대니는 비논리적 주장을 들으면 ‘거기에서 어떤 진실이 있을까?’ 묻는 사람이었다. 대니는 비관적이었다. 아모스는 낙천적일 뿐 아니라 낙천적이 되려고 무척 노력했다. 비관주의는 어리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즐겨 하던 말이 있다. “비관적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면, 나쁜 일을 두 번 겪게 된다. 걱정할 때 한 번,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한 번.”

'문명 이야기'로 유명한 윌 듀런트의 마지막 원고를 묶어 펴낸 유작입니다.


듀런트 사후에 소재를 알 수 없어 거의 사라질 뻔했다가 30여 년이 지나 극적으로 발견된 스물두 편의 짤막한 글들을 묶었습니다.


삶과 죽음, 청춘과 노년, 신과 도덕, 전쟁과 정치, 예술과 교육 등 인생의 여러 단계를 통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20여 가지의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저자 윌 듀런트(William J. Durant)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입니다. 독실한 신학도에서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로, 후에 다시 자유주의자로 전향하는 등 부단히 묻고 탐구했던 그는 평생 대중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삶과 지식, 대중과 엘리트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 집대성으로 인류 문명사 전체를 11권으로 담아낸 대작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는 유명합니다.


이번 책에서는 우리 인생의 시작, 청춘, 중년, 노년, 죽음, 영혼, 신, 종교, 도덕, 여성, 성, 전쟁, 정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예술, 과학, 교육, 역사의 통찰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원제 Fallen Leaves: Last Words on Life, Love, War, and God. 2014년 9월 출간.

우리가 죽음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개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種)의 일시적인 도구이며, 생명이라는 몸속의 세포일 뿐이다. 생명이 젊고 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는 죽어서 떨어져 나간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성장이 억제되고, 청춘은 지상에서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죽음이란 멋 내기와 똑같이 쓸데없는 잡동사니를 제거하는 과정, 불필요한 것을 잘라 내는 과정이다.

과학자란 무엇이며 현실적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되는지 국내 과학자가 안내하는 책입니다.


저자 남궁석은 고려대 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충북대 축산식품생명과학부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서 과학 지식을 전파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과학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스테레오타입 대신 실제로 겪는 인생을 소개합니다. 학부를 거쳐 대학원(석사과정, 박사과정, 석박사 통합과정)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가이드와 대학원 졸업 이후의 가능성(포스트닥, 연구책임자, 기업연구원, 다른 길)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저자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나오는 모습과는 달리, 현실 속 과학자의 겉모습은 일반적인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과학과 공학은 최첨단의 학문이지만, 과학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마치 무협지에서의 스승과 제자 같은 도제식 교육 시스템을 따르고, ‘과학자가 되는 방법'에서 배워야 할 마지막 기술은 언제 어떻게 과학자를 그만두느냐일지도 모른다고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과학자의 길은 매력적이며, 그 과정의 훈련은 다른 길을 선택할 때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학 입학 과정이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보일 만큼 큰 난관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극복해 나갈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진로 지도서’는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직업인으로서 과학자가 되는 데 필요한 여러 과정과 거쳐야 할 수많은 선택을 ‘대리 체험’해 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멀고도 험한 과학자의 길을 손쉽게 통과하는 요령이 수록된 비법서는 결코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그저 과학자로서의 장래를 선택한 이들이 앞으로 겪을 가능성이 있는 여러 가지 일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것이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장이 37년간 사전 편찬 일을 하면서 체험한 이모저모입니다.


저자 존 심프슨(John Simpson)은 1976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사 사전부에 편집 어시스턴트로 합류해 37년간 재직하다 2013년 은퇴했습니다. 마지막 20년간은 편집장을 지내며 사전의 온라인화를 도왔습니다.

 

‘역사 사전(historical dictionary)’으로 불리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은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발달 순서와 용법까지 알 수 있는 자료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884년에 1권을 시작으로 하여 1928년에 12권을 출간하면서 초판이 완간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개정과 보충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21,728쪽에 60여만 어휘를 자랑합니다.


저자는 37년간 겪은 사전 편찬자의 일을 탐정 업무에 비교해가며 재미와 흥분을 이야기합니다. ‘단어 탐정들’이 어떻게 단어의 역사를 쫓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발견을 하는지 일련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줍니다.


원제 The Word Detective. 2016년 10월 출간.

크라우드소싱에 참여한 ‘독자들’은 결코 유명 학자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영어에 대한 탐구를 옥스퍼드와 나누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 독자들의 명단이 기록된 옛날 장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제 그들의 이름은 대부분 잊혔지만 언어 지식이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믿은 목사들과 그들의 아내들, 저녁 식사나 당구 게임 전에 잠깐씩 시간을 때우려던 런던 클럽의 회원들, 오후 내내 시간 많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유로운 계급 출신의 나이 지긋한 독신녀들, 때로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린 소설가 샬럿 영(Charlotte Yonge) 같은 문인들까지도 책을 읽다가 발견한 단어를 옥스퍼드 편집자들에게 보냈다.

독일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Jenny Erpenbeck)의 신작입니다. 독일어권의 문학 작품을 번역 소개해온 작가 배수아가 2010년 이 작가의 『그 속에 집이 있었을까』를 처음 번역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 두 번째 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1999년 작가로 데뷔한 저자는 21세기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서사적 소설가로 꼽힌다고 합니다. 확고한 역사의식과 특유의 여성적 목소리로 자신만의 언어 세계를 구축하며 “거장급의 맹렬한 서사”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한 가족의 일대기를 통해 기이한 고독과 죽음을 그려내면서, 동시에 사회와 국가가 개인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원제 Aller Tage Abend. 2012년 출간.


이수명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입니다. 『마치』 이후 4년 만입니다.


이수명 시인은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이래 일곱 권의 시집과 다수의 시론집, 평론집 들을 출간해 왔습니다. 감정을 덧입혀 대상을 왜곡하는 화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로지 대상을 중심으로 세계를 읽어내는 언어의 발견에 집중해 왔다는 평을 받아왔습니다.


총 열 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에서는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그에 따라 어떤 행위를 하는지 명확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행위들이 무한히 반복하는 공간으로서의 물류창고를 보여줍니다. ‘무효’로 수렴하는 시적 언술을 향해 전진하는 말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물류창고에서 만났지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차려입고
느리고 섞이지 않는 말들을 하느라
호흡을 다 써버렸지

물건들은 널리 알려졌지
판매는 끊임없이 증가했지
창고 안에서 우리들은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다른 방향으로 갔다가
돌아오곤 했지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했어

첫 번째 「물류 창고」 부분

강성은 시인의 세번째 시집입니다.


강성은 시인은 2005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동화적 상상력을 낯선 방식으로 풀어낸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2009)와 무의식적 주체를 통해 잠재된 감각을 탐구한 『단지 조금 이상한』(2013)으로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기존에 보여주었던 초현실적 상상력을 뒤틀어 현실 세계를 내파함으로써, 미세한 균열을 통과해 자신만의 불가해한 시공간을 탄생시키는 데 이르렀다고 설명합니다.

 

‘저음질’을 뜻하는 『Lo-fi』 제목처럼 독자들을 한순간에 정체불명의, 나직하고 깊은, 확신이 불가능한 시공간으로 데려다놓습니다. 세계에 대한 확신을 걷어낼 때 비로소 가능한 삶의 자리입니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영원히 젊어 보였다
죽음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누구도 거절하지 못했다
죽어야만 가장 먼 곳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달에 다녀온 사람도 알지 못했다
때로 깊은 밤
극장의 어둠 속에서만 눈물을 흘렸다
창밖으로 미끄러져가는 빙하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지구만큼 오래된
한없이 깊은 잠

그런 밤이면 연필을 깎고
나는 백지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오래 잠들어
꿈이 나를 떠났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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