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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북] "좋은 저자 책 위에 숟가락 얹는 게 꿈"

조회수 2016. 4. 3. 06: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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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에 70권, 과학책 전문 번역가 김명남이 말하는 글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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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의 '미니북'은 손 안의 책 한 권입니다. 화제의 저자 인터뷰를 비롯해 긴 호흡의 글을 전합니다. 이 순간만큼은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느긋하게  읽어가 보시면 어떨까요. 이번엔 번역가 이야기입니다.

뛰어난 작가 뒤로 팬이 무리를 이루는 것은 다반사다. 하지만 번역자 주변에서 비슷한 현상을 목격하는 일은 흔치 않다. 작고한 이윤기나 현역 김석희 같은 걸출한 번역가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소설 쓰기도 병행했던 터이니 열외다.

여기에 유독 번역가의 '본업'에만 충실하면서 여느 독립 작가 못지 않은 팬덤을 거느리는 글쟁이가 있다. 본인은 '글쟁이'란 호칭이 언감생심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일간지 서평 연재를 비롯해 군데군데에서 작가로 미동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년 만에 90권 번역에 70권 출간. 진면목은 양이 아니라 전문가들도 호평하는 품질이다. 작년 스티븐 핑커의 대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출판문화대상까지 받았다.

자신의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 활동을 통해서는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속절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과학 전문 번역가 김명남.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이라면 서가에 그의 이름이 올라있는 외서 한 권쯤은 있다. 아니라면 앞으로 그리 될 확률이 높다.

출판업계는 물론 독자들 사이에서도 줄기차게 호감을 쌓아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사실은 북클럽 오리진이 막 시작할 무렵인 연초였다. 이제사 내놓는다. 번역의 세계가 무엇이고 거기에 생을 건 사람의 심사는 어떤 것이지 엿볼 기회다.

김명남 번역가의 개인 블로그


-신문기자에 온라인서점의 편집자를 거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신문사는 아주 짧게 있었어요. 1999년 동아일보에 수습기자로 입사해서 근무는 2000년부터 했는데 그해에 바로 그만뒀어요. 수습 과정을 6개월 정도 거친 후에 '실전'에 투입됐는데 하자마자 그만뒀어요. 8개월 정도 했나?
-기자 일이 맞지 않았나 보죠?
전혀요. 기자 일을 잘 몰랐던 거죠.
-언론사 시험은 그냥 쳐본 건가요?
네. 저는 과학고 시절부터 계속 전공이 과학이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부는 더 못하겠고 취직은 해야겠는데, 뭔가 쓰는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 해에 동아일보가 전형에서 상식이랑 한문을 폐지했어요. 말하자면 논술 시험만 치면 되니까. 좀 수월할 것 같아서 봤어요. 사실 시험을 칠 때도 나는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붙고 나니까 한번 다녀보자 싶었죠. 신문사에 잠시라도 다녀본 것은 좋았어요.
-왜죠?
군대에 갔다 온 것 같았어요.(웃음) 그땐 너무너무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고. 배운 게 너무 많았어요. 그 기회가 아니었으면 그런 건 평생 모르고 살았을 타입이니까. 사실 그런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기자 경험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다른 건 몰라도, 짧은 시간에 아주 버거운 과제를 줘서 해내게 하는 것 같은 건 그 나름의 훈련으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김명남 번역가의 작업용 책상 풍경
-지금 하는 일로 치면 마감 시간 훈련이 됐겠네요.(웃음)
그럼요. 빨리 쓰거나 천천히 쓰는 능력과는 무관하게 우선 순위의 문제를 터득하게 돼죠. 어쨌거나 마감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더...

기자에게는 잘 쓰고 못 쓰고, 장문이고 단문이고를 떠나서 마감 시간이 우선이라는 게 박혀 있잖아요. 그때 입사 동기였다가 저처럼 전업으로 번역하는 친구가 또 있는데, 그 친구도 마감 시간 어기면 죽는 줄 알아요.(웃음) 기자 생활을 저보다 더 오래 했으니까.
-편집부 생활도 해보셨나요? 저도 거쳤는데, 그게 글쓰기에도 도움이 많이 되지요.
그런 것 같아요. 자기 글을 남에게 교정당하는 경험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는데, 바꿔서 남의 글을 자기가 다듬으면서 배우는 게 있죠.

그런 건 다른 사회 생활에서 배우기 힘든 거죠. 그리고 제목을 한번 달아보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시각이 확 달라지잖아요. 요즘은 그런 걸 글쓰기 학원 같은 데서 돈을 주고 배우잖아요.
-그러다가 바로 알라딘에 입사하신 건가요? 얼마나 계신 거죠?
알라딘은 2000년 8월에 들어가서 2006년 8월에 나왔으니까 꼭 6년이네요.
-어떻게 해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셨죠?
제가 동아 입사 전 대학원에 다니던 1999년에 인터넷 서점이 처음 생겼어요. 알라딘이랑 예스24의 전신이었어요. 대학원생이고 원래 책을 좋아했으니까 온라인 서점을 처음 써본 거예요.

그때 그 온라인 서점의 감각에 반해서 고객으로 있다가, 기자 일을 를 그만두고 난 다음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알라딘 채용 공고를 본 거예요.

저는 다니던 회사 사표를 낸 몸이니까 여기 안 붙여주시면 안 된다고 사정해서 들어갔죠.(웃음)
-그땐 뭘로 들어갔죠?
편집부라고 해서 아주 소박하고 순수하게 그 일을 하는 부서였어요.
-온라인서점에서 편집부라면 무슨 일을 하죠?
그땐 책 소개를 서점 편집부가 직접 썼어요. 요즘은 출판사에서 낸 보도자료를 가공해서 그대로 올리지만. 그때는 보도자료를 보내주는 출판사도 없기도 했고.

그냥 새로 나온 책을 서점 직원이 한 권씩 사서 훑어보고 소개를 썼어요. 편집부 사람들이 분야별로. 누구는 사회과학, 저는 그때 외국소설 담당이었어요. 그 일이 재미있고 좋았어요.
-그럼 그때부터 번역 일을 같이 하신 건가요?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서 번역을 했어요. 그렇게 하니 나중에는 체력이 안 되더라고요. 저는 번역이 좋은데, 1년에 한 권 그 정도로는 성에 안 차고.

결국 어느 순간에 결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나오게 됐죠. 너무 좋은 직장이었지만. 선택한 게 2006년이었죠. 올해로 꼭 10년이 되네요.
-지금 일을 아주 행복해 하시는 것 같더군요.
하하, 네 굉장히 만족해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웃음)
-온라인서점 편집자 일이 그 뒤 번역 일에도 도움이 됐나요?
네. 그전부터 개인적으로 책은 아주 좋아했지만, 책 읽는 사람은 흔히 편견이 있잖아요. 인문사회나 문학 책만 좋은 책이고 자기계발서 같은 것은 좋지 않은 거라는. 그런 통념적인 생각이 현장에서 많이 깨졌어요.

직장 동료가 읽는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보니까 거기에도 굉장히 좋은 세계가 있고, 어린이책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제가 20대에 다른 데서는 접할 수 없었던, 그런 몰랐던 책의 세계를 굉장히 많이 알게 됐죠.

아주 소박한 독자 수준에서 좋은 책이란 게 뭔가, 또 출판업계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돼서 지금 번역가로 일하면서도 도움이 많이 돼요.

다른 분들은 그런 경험 없이 보통 대학원 졸업하고 나서 번역을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좀 통념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 쉽거든요. 저처럼 '업자 마인드'를(웃음) 갖고 있으면 같이 일하시는 출판사 분들이 아무래도 편해 하시죠. 우리 사정을 다 안다, 이런 분위기니까.
가운데 오른쪽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프리모 레비
-일찍부터 번역가에 대한 꿈이 있었다면서요?
네, 중학교 때부터요.(웃음)
-그 나이에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글이 좋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크면...
-보통은 글을 쓰고 싶으면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할 텐데요.
말하자면 문학 소녀였고 백일장에도 나가서 상도 받곤 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잘 쓰지는 못하는구나. 상은 받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나이에 엄청난 자의식인데요.
그걸 알겠더라구요. 그런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그래도 글에 대한 관심은 계속 있으니까. 제 좁은 세계에서 그런 걸 할 수 있는 것은, 또 영어도 좋아했으니까, 영어를 계속 공부해서 영문학 교수가 되거나, 영어 선생님이 되거나 여러 선택지가 있었겠죠.

그런데 그때부터 문학책 같은 걸 보면서 김석희씨나 유명한 번역가들 이름이 머리에 입력이 돼 있었고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거죠.

근데 그건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되는 것도 아니니까, '아, 그냥 열심히 살다 보면 한 마흔 살쯤이면 한 권쯤 번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미 70권씩 했으니...
하하. 그쵸. 전 이미 인생 초과 달성이예요.(웃음)

김명남의 번역서 목록

01. 마음이 태어나는 곳 / 개리 마커스 / 해나무 / 2004 (05)

02. 일렉트릭 유니버스 / 데이비드 보더니스 / 생각의나무 / 2005 (05)

03. 세계를 삼킨 숫자 이야기 / I. 버나드 코헨 / 생각의나무 / 2005 (05)

04. 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 / 존 리더 / 지호 / 2005 (06)

05. 시크릿 하우스 / 데이비드 보더니스 / 생각의나무 / 2006 (06)

0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 로버트 P. 크리스 / 지호 / 2006 (06)

07. 불편한 진실 / 앨 고어 / 좋은생각 / 2006 (06)

08. 특이점이 온다 / 레이 커즈와일 / 김영사 / 2006 (07)

09. 버자이너 문화사 / 옐토 드렌스 / 동아시아 / 2007 (07)

10. 갈릴레오의 아이들 / 아서 C. 클라크 외 / 시공사 / 2007 (07)

11. 마법 수학 / 아서 벤자민 / 민음in / 2007 (08)

12. 이보디보 / 션 B. 캐럴 / 지호 / 2007 (07)

13. 감염 지도 / 스티븐 존슨 / 김영사 / 2007 (08)

14. 양자 세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 케네스 W. 포드 / 바다출판사 / 2007 (08)

15.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 A. J. 제이콥스 / 김영사 / 2007 (07)

16. 지식의 책 / 북로드 / 2007 (08)

17. 위대한 발명 이야기 / 안나 클레이본 외 / 시공주니어 / 2007 (08)

18. 맛있는 정크 푸드, 왜 몸에 나쁠까요? / 케이트 나이턴 외 / 시공주니어 / 2008 (08)

19. 병들어 가는 지구, 어떻게 살릴까요? / 수잔 메러디스 외 / 시공주니어 / 2008 (08)

20. 다중인격의 심리학 / 리타 카터 / 교양인 / 2008 (08)

21. 월드체인징 / 알렉스 스테픈 외 / 바다출판사 / 2008 (09)

22. 갈릴레오 / 마이클 화이트 / 사이언스북스 / 2008 (09)

23.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놀라운 인체백과 / 데이비드 맥컬레이 / 을파소 / 2009 (09)

24. 내 안의 물고기 / 닐 슈빈 / 김영사 / 2008 (09)

25.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 제임스 D. 왓슨 / 이레 / 2008 (09)

26. 인체 / 스티브 파커 / 사이언스북스 / 2009 (09)

27. 식품 진단서 / 조 슈워츠 / 바다출판사 / 2009 (09)

28. 지상 최대의 쇼 / 리처드 도킨스 / 김영사 / 2009 (09)

29. 북극곰의 집이 녹고 있어요! / 로버트 E. 웰스 / 시공주니어 / 2009 (10)

30.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 문학동네 / 2009 (10)

31. 우리가 사는 지구, 왜 특별할까요? / 로버트 E. 웰스 / 시공주니어 / 2010 (10)

32. 물리와 함께하는 50일 / 조앤 베이커 / 북로드 / 2008 (10)

33. 버스트 /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 동아시아 / 2010 (10)

34. 황금분할 / 스콧 올슨 / 시스테마 / 2009 (10)

35. 마야력과 고대의 역법 / 제프 스트레이 / 시스테마 / 2009 (10)

36.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1, 2 / 존 엠슬리 / 사이언스북스 / 2008 (10)

37. 밈 / 수전 블랙모어 / 바다출판사 / 2009 (10)

38. 자연자본주의 / 폴 호큰 외 / 공존 / 2009 (10)

39. 프랜시스 크릭 / 매트 리들리 / 을유문화사 / 2011 (11)

40. 몸에 갇힌 사람들 / 수지 오바크 / 창비 / 2010 (11)

41. 코끼리에게 태양이 왜 필요할까요? / 로버트 E. 웰스 / 시공주니어 / 2011 (11)

42. 신기한 수학 나라의 알렉스 / 알렉스 벨로스 / 까치글방 / 2011 (11)

43. 지울 수 없는 흔적 / 제리 코인 / 을유문화사 / 2011 (11)

44. 여덟 마리 새끼 돼지 / 스티븐 J. 굴드 / 현암사 / 2009 (12)

45.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 리처드 도킨스 / 김영사 / 2011 (12)

46. 블러디 머더 / 줄리안 시먼스 / 을유문화사 / 2011 (12)

47. 다시 만들어진 신 / 스튜어트 앨런 카우프만 / 사이언스북스 / 2010 (12)

48. 3분 아인슈타인 / 폴 파슨즈 / 열린책들 / 2012 (12)

49. 인체 완전판 / 앨리스 로버츠 외 / 사이언스북스 / 2011 (12)

50. 새로운 무의식 / 레너드 믈로디노프 / 까치글방 / 2012 (13)

51.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진화 / 제이 호슬러 외 / 궁리 / 2012 (13)

52. 쉽게 쓴 후성유전학 / 리처드 C. 프랜시스 / 시공사 / 2013 (13)

53. 포크를 생각하다 - 식탁의 역사 / 비 윌슨 / 까치글방 / 2013 (13)

54.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 앨런 프랜시스 / 사이언스북스 / 2013 (14)

55. 아주 작은 친구들 / 니콜라 데이비스 외 / 시공주니어 / 2013 (14)

56. 가지 / 필립 볼 / 사이언스북스 / 2013 (14)

57.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 / 새뮤얼 C. 플러먼 / 유유 / 2013 (14)

58. 하늘을 나는 어린 왕자 / 피터 시스 / 시공주니어 / 2014 (14)

59. 생명의 나무 / 피터 시스 / 시공주니어 / 2013 (14)

60.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스티븐 핑커 / 사이언스북스 / 2012 (14)

61.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 데이비드 실즈 / 책세상 / 2014 (14)

62. 젊은 과학도에게 보내는 편지 / E. O. 윌슨 / 쌤앤파커스 / 2014 (14)

63. 지구에 생명이 태어났어요 / 캐서린 바 외 / 시공주니어 / 2015 (15)

64.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리베카 솔닛 / 창비 / 2015 (15)

65. 문버드 / 필립 후즈 / 돌베개 / 2013 (15)

66. 소름 / 로스 맥도널드 / 엘릭시르 / 2013 (15)

67. 생명 그 자체 / 프랜시스 크릭 / 김영사 / 2012 (15)

68. 미래의 건축 100 / 마크 쿠시너 / 문학동네 / 2015 (15)

69.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 필립 후즈 / 돌베개 / 2014 (15)

70. 아인슈타인이 말합니다 / 앨리스 칼라프리스 / 에이도스 / 2015 (15)

71. 생명에서 생명으로 / 베른트 하인리히 / 궁리 / 2014 (15)

72. 지도 위의 인문학 / 사이먼 가필드 / 다산북스 / 2014 (15)

73.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창비 / 2015 (16)

-흠모했던 김석희 선생과 결국 같은 길에 들어섰는데, 한번 만나 보셨어요?
작년에 한국일보에서 주는 출판문화대상을 제가 받게 됐는데 거기 심사위원이셨어요. 시상식장에서 뵈게 돼서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최근에 소설도 다시 내셨죠.
네, 그것 보고 놀랐어요.
-왜요?
사람이 그렇게 꼭대기에 올라가 있을 때, 그분은 번역가로서 꼭대기에 올라가 계신 셈인데, 저 같으면 되게 조심스럽고 꺼려질 것 같거든요. 자기 검열이라는게 있으니까요. 안 돼봐서 모르겠지만. (웃음)
-아, 용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래서 질문을 드리자면, 번역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이 들진 않나요?
(약간의 주저도 없이 반 박자 빠르게) 없어요.
-전혀요?
(역시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네.
-아예 꺾어버린 건가요?
저는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요. 사람들한테 할 말이 없어요. 그러면 쓸 게 없는 거죠.

유일하게 있다면, 번역하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지만, 그것도 학술적인 의미에서 번역론 같은 게 아니라서, 그러니까 또 별로 의미가 없고. 그러니까 별로 할 말이 없죠.
-번역이라는 직업도 독특한데. 외국을 보면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면서 번역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김명남씨처럼 번역에만 몰두해서 하는 경우가 많이 있나요?
외국에도 있죠. 전문 번역가들. 사실 전문 번역가라는 말부터가 좀 이상하긴 한데. 그러면 아마추어 번역가도 있다는 말이냐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업' 번역가라는 말이 맞겠는데, 외국에도 많아요. 외국에는 대우가 오히려 우리보다 더 안 좋아요. 특히 미국 같은 데는 번역서가 잘 안 팔리잖아요. 그냥 미국 책 읽으면 되니까.

번역서에 역자 이름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약력은 당연히 없고요. 국내에는 흔한 옮긴이의 말 같은 것도 외국에선 학자의 글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렵죠.
-기술적인 작업으로 봐서 그런가 보죠?
네. 상대적으로 유럽은 덜하죠.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같은 데는 유명한 번역가도 있고 그래요. 특히 어려운 책, 에코나 보르헤스 책은 번역가도 이름도 알려지고 대우도 아주 잘 받아요.

그런 몇몇은 우리로 치면 김석희 선생이나 안정효 선생 정도고. 전체적인 산업으로서는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로 힘들죠. 그냥 좋아서 하는 분들일 것 같아요. 대개.
-지금은 영어만 하시죠?
네.
-분야는?
시작을 과학책으로 했고 과학을 전공했으니까, 과학책이 한 70%쯤 돼요. 나머지는 어린이책과 에세이가 30% 정도.
-번역은 연초에 계획을 세워서 하나요, 아니면 그때그때?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저는 1년 정도 잡아놓고 해요. 올해 일은 다 차 있어요. 프리랜서는 그렇게 안 하면 너무 불안해서요.
-일감이 들어오니까 가능하겠죠? 지금은 어느 정도 솎아낼 수도 있는 단계죠?
네, 잘난 척 같지만, 저는 이제 그럴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책을 고를 수 있어요. 출판사들이 주시면 그 중에서 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계획을 잡을 수가 있는 거죠.
-올해는 몇 권 내실 계획이죠?
일단 7권쯤?
-10년 동안 70권을 내셨다고 했으니까... 
실제로 번역은 80권 조금 넘게 했어요. 출판사에 들어가서 출간 안 된 것도 있고. 책으로 나온 것만 딱 70권이에요.
-번역해 놓고도 안 나올 수도 있나요?
영영 안 나올 수도 있죠.
-왜죠?
출판사가 책을 계약했지만 오히려 내는 게 돈이 더 들어가겠다고 판단이 되면 내지 않는 거죠. 소위 엎어버리는 거죠.

그런 경우에 번역가는 당연히 돈은 받지만, 돈이랑 상관없이 열심히 일한 원고가 사장되는 경우들이 흔하죠.

그러다가 한 5년 지나면 판권이 풀리니까, 다른 출판사가 다시 가져가서 이미 번역한 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연결이 돼서 나오기도 하고 그래요.
-10년 사이에 90권을 번역하셨다면 연 9권꼴이네요.
네, 매년 9권씩.
-처음부터 그 정도였나요? 아니면 속도가 더 붙어서 갈수록 많아진 건가요?
속도는 오히려 떨어졌죠. 체력이 떨어지니까. 20대 때보다는.
-오래 앉아서 작업해야 하는 일이니까?
네.
-작업 시간은 하루에 얼마나 되나요?
저는 회사원이라 생각하고 주 6일 9시에서 6시까지 일해요. 정확히 8시간을 근무 시간이라 생각하고 일하려고 해요. 물론 변동은 많이 있죠.

시간을 앞뒤로 밀고 당긴다든지 하는 것은 프리랜서의 장점인데. 그래도 어쨌든 총 8시간은 확보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있어요.
-작업은 어디서?
주로 집에서 해요.
-침대에서 책상으로 출퇴근하시나 보죠?
네 바로 그거예요.(웃음) 그냥 혼자 사는 방 2개짜리 원룸 같은 곳인데. 침대에서 책상으로 이동하는 게 출근이죠.
-일과는 정해져 있나요?
아침 6시에 일어나려고 하는 편이고, 요가를 해요. 매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제가 일산 호수 공원 바로 앞에 사는데, 한 시간 정도 호수 주변을 산책하죠. 매일.

프리랜서니까 산책을 아침에 할 수도 있고, 저녁에 할 수도 있는데. 매일 하는 일과는 그거죠. 산책 그리고 일, 두 가지.
-그 외에는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은 거의 안 만나구요. 그 다음날 일할 것을 읽죠. 다음날 뭐 할 건가 준비하고요.
-그건 일이 아닌가요?
그건 일이 아니죠.(웃음) 그 다음날 일할 걸 미리 읽어놔야 그 다음날 딱 바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일에 필요한 독서를 하든가, 추리 소설, 신문 같은 걸 읽죠.
-그러면 8시간 일한다는 건 정확히 번역에만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이 그렇다는 건가요?
네, 타이핑하는 시간이죠.
-번역 일을 위한 책이랑 즐기기 위한 책은 구분이 되나 보지요?
저는 완전히 즐기기 위한 책이랑은 완전히 구분이 돼요. 제가 추리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일본 추리 소설을 많이 읽는데 그런 건 진짜 기분전환용 독서죠.

일 할 때 필요한 책들도 읽어요. 다른 과학책이나 참고용 도서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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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들은 공부를 위해 틈틈이 읽어두는 식이군요.
네, 그렇죠. 그리고 제가 한겨레 신문에 한 달에 한 번 북 칼럼 쓰는 게 있는데, 그걸 쓰려면 적어도 2권은 읽어야 해요. 어떤 책을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적어도 2권은 읽게 되죠.
-일상이 거의 읽기군요.
네.
-원래 책을 많이 읽는 집안이었나요?
아빠엄마는 그냥 굉장히 평범하셔서 따로 독서가 취미이거나 하진 않았는데, 엄마가 책을 엄청 많이 사주셨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니까.
-집에서 몇 째죠?
딸 둘인데 첫째예요.
-동생도 책을 좋아했나요?
아~니요.(웃음)
-그러면 집에서 유독 혼자만 책벌레였나 보네요?
네. 아기 때부터 책을 읽어주면 저는 집중해서 듣고, 그러니까 엄마는 좋아서 계속 책을 사주는데 동생은 책을 장난감으로 여기고는 가져가서 찢으려고 그랬대요. 그때부터 다르구나 생각하셨대요.(웃음)
-읽고 쓰고, 그 뒤로 백일장 나가서 상도 받고?
사회부적응적 문학 소녀 그런 거죠.(웃음) 영어 공부를 좋아했어요. 그때는 사실 영어 말고 다른 외국어는 잘 모르니까. 팝송 많이 듣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죠.
-그런데 어떻게 과학고를 갔죠?
아, 저는 중학교 때 생활이 좀 힘들었거든요. 사회성도 없고..
-책에 너무 빠져서 그랬나요?
그건 아니고. 제가 학생회장 같은 걸 했는데, 회장을 하면서 '아, 나는 이런 걸 못하겠구나' 하는 자각이 든 거예요. 사람들 만나고 나서고 하면서, 자기 주도성 같은 건 별로 없는 굉장히 수동적인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뭔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정말 공부 이런 건데 그런 걸 좀 편하게 하면서 학교 생활을 하려면 특수고가 좋을 것 같더라구요. 선생님들 압박도 좀 덜할 것 같고...

만약 요즘처럼 외고가 있었으면 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외고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제가 부산 출신인데, 마침 그때 부산과학고가 새로 생긴 거예요. 그래서 한번 쳐보자 싶었는데 붙었죠.
-과학고는 좋았어요?
아~주 좋았어요.(웃음) 굉장히 좋았어요. 2년밖에 안 다녔지만. 집 나와서 기숙사 생활하는 것도 너무 좋았고.(웃음)
-왜 2년이죠?
과학고는 2년만 하고 나면 3학년은 안 하고 카이스트에 진학할 수 있거든요. 다른 대학은 안 되고. 카이스트 시험 쳐서 붙으면 갈 수 있었죠.
-영특했나 보네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웃음) 과학고에서 제일 좋았던 건 기숙사 생활 하고 남녀 공학인 점도 좋았지만, 여중에서 못한 경험이었니까...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것은 세상에 똑똑한 애들이 이렇게 많구나, 나는 똑똑한 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일찍 깨달은 거죠. 만약 제가 일반고에 갔으면 대학에나 가서 깨달았겠죠. 고등학교 가서 보니 뭐 공부 잘하는 애들 수두룩하고, 저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웃음)
-책 좋아하고 문학소녀였으면 왜 인문대나 영문과로 갈 생각은 안 했나요?
고등학교 다닐 때도 사실 영어 공부를 제일 열심히 했거든요. 재미있으니까 그게. 다른 친구들보다 수학 과학은 못하기도 했고. 그래서 인문계로 전학해서 영문과 같은 데를 진학할까 이런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서울대를 못 가면 집에서 사립대를 보낼 형편은 안 되니까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는 싫고, 과학고 2학년만 마치고도 대학에 바로 갈 수 있는 곳을 찾은 거죠. 그때만 해도 지금과는 달리 대학 졸업 후에 뭘 할까 이런 생각까지는 안 하고 가던 때라서... 놀러 간 거죠 뭐.(웃음)
-카이스트 가서는 어땠어요?
카이스트도 굉장히 좋았는데. 입학 후에는 좀 본격적으로 생가해보니 과학을 계속할 재능은 안 되는 것 같았아요. 그래서 과학사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건 인문적인 거니까.
네, 제가 잘하는 것을 살리면서 두 가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카이스트에는 과학사 학과 같은 게 없었어요. 교양 과목 교수님만 있었던 거예요.

당시에 김동원 교수님이 강사셨는데 그분한테 찾아가서 이것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 분이 저를 조교 비슷하게 써주셨어요. 2학년 때부터 3,4년 동안 그분이 주시는 책 읽고 이러면서 과외로 과학 서적을 좀 읽었죠.
-그뒤 서울대 환경대학원으로 가셨지요?
그 무렵에 서울대와 고려대만 대학원에 과학사 협동 과정이 있었어요. 4학년 때 그걸 쳤는데 떨어졌어요. 어떡하지 하다가 일단 1년 더 다니면서 이듬해에 고려대랑 서울대를 다시 쳤어요.

그때 서울대는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환경에도 관심이 있어서 환경대학원을 쳤죠. 고려대 과학철학-과학사회학 협동과정도 합격은 했는데 어차피 학비 때문에 못 다닐 것 같고 해서, 서울대 환경대학원 진학했어요.
일산 호수공원 산책로 풍경
-환경대학원은 어땠어요?
재미없었어요. 사실 별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실망도 별로 안 했지만. 거기는 전문대학원이라서 대학과 연계가 없고 그냥 교수들이 알아서 가르치고 학생들은 자유방임하는 편인데, 저랑은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딴짓만 하다가 논문도 안 쓰고 수료만 했지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특별하게 있지는 않아요. 다양하게 좋아하는 편이에요.
-최근에 좋게 생각하는?
최근이라면 단연 앤드류 솔로몬이라고, 작년에 번역돼 나온 '부모와 다른 아이들' 저자예요.
-직접 번역하신 건 아니죠?
그렇진 않고. 그 사람 첫 책 '한낮의 우울'부터 애독자였어요.
-그 사람 책도 번역하고 싶겠네요?
아-(얕은 숨까지 몰아쉬면서, 이번에도 반 박자 빠르게) 당연하죠!

하지만 그분이 10년에 한 번 책을 한 권씩 쓰기 때문에, 제게는 영영 기회가 안 올 것 같아요. 팬으로서 번역을 한번 꼭 해보고 싶죠.(웃음)
-그 저자의 어떤 점이 좋죠?
첫 책 '한낮의 우울'이 너무 좋았는데, 요즘은 그렇게 스타일리스트의 문장을 쓰는 작가가 거의 없잖아요. 요새 논픽션들은 대개 저널리스트가 취재해서 쓰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경우 문장 같은 것보다는 잡지의 특집 기사를 확장한 듯한 그런 논픽션을 많이 읽게 되는데 갈수록 그래요.

하지만 이 저자는 정말이지, 루소가 책을 썼을 것처럼 그렇게 책을 쓰는 사람이에요. 에세이스트로서 논픽션을 쓰는 사람, 그게 너무 좋아요.
-하나의 완결적인 작품으로 쓰는?
네. 자기 이야기. 세상을 취재해서 쓰는 것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자기의 이야기로 쓰는 사람. 그 인간 자체의 매력이 근저에 있는 거죠.

그게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고 화려한 문장으로 나오는데 그게 거북하거나 책 두께가 부담스럽거나 하지 않고 그 저자의 카리스마와 아우라에 흠뻑 빠져서 읽게 되죠.

그런 옛날의 책이 주었던 경험 같은 것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작가죠. 그런 사람은 두껍게 쓸수록 좋아요. 하하.
-좋은 영화는 상영시간이 길수록 좋은 것처럼?
네 네. 몇 시간이라도 상관없는 것처럼.(웃음)
-특별히 많이 번역한 저자가 있나요?
많이는 아니고, 리처드 도킨스 책을 두 권 번역했어요.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 책은 작년에 출판대상 받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하나뿐이었나요?
네. 지금 하나 더 하고 있어요. 글쓰기 책인데 'The Sense of Style'이라고.
-아, 그 책을 맡으셨어요?
네, 올해에 나와야 하는데... 일정이 막 밀려가지고.(웃음)
-동시다발로 진행을 하나보죠?
그건 아니고, 한 번 할 때는 한 책만 하는데. 출판사 사정이나 일정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그래요.
-올해 번역하시는 책 중에 나름의 기대작이라면?
여러 개가 있는데요, 하하하. 사실 이런 얘기는 저만 재미있는 얘기일 수 있는데..(웃음) 한 일주쯤 뒤에 치마만다 응고치 아디치에라는 나이지리아 여성 작가가 테드에서 인기를 끈 강연이 있거든요. 그걸 소책자로 만든 게 있는데 그게 나올 거예요. 제목이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입니다. (인터뷰 후에 책이 출간됐고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어떤 책인가요?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운 간결하고 짧은 21세기 페미니스트 선언서예요.
-21세기 페미니즘이라.. 궁금하군요.
페미니즘이면서도 굉장히 쉽고 다정하게 쓴 책이에요.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이 소책자를 16세 고등학생 전원에게 선물로 나눠줬어요.

남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글이 너무 좋아서, 소책자는 우리나라에서 내기 어려운데, 제가 창비와 연이 있어서, 내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내게 됐어요.
-21세기 페미니즘이 뭔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사실은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는 건데요. 그러니까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권신장이나 이런 게 아니라 우리가 젠더를 생각하는 태도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예요.

여자만 변하거나 제도만 변해서 되는 게 아니고 정말로 모두의 생각이 변해야 한다는 걸 얘기해요. 그래서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초대하는 거예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지금의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자에게도 너무나 구속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가령,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 식의 남성성의 굴레 같은 게 있죠.

그런 걸 굉장히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줘요. 나이지리아 상황에 빗대서 이야기하는데 우리나라랑 똑같아요.
-어떤 부분이 똑같죠?
거기에도 문화적으로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규범이 있는데, 여성은 여성다워야 하고 요리 잘해야 하고 남자보다 잘나면 안 되고, 이런 걸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에게 가르친다는 거예요.
-그건 가부장제 사회에 공통된 것 같은데요.
메시지 자체는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이 아주 훌륭한 작가거든요. 소설도 굉장히 좋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뻔한 메시지를 너무나도 포용력 있는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 글 자체가 굉장히 좋은 거예요.
-감화력이 있나 보죠?
네, 테드 강연이 워낙 좋아서, 그 강연 일부를 팝가수 비욘세가 자기 노래에 피처링해서 썼어요. 그 정도로, 표현하신 것처럼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그 글에.
일산 호수공원 산책로
-그런 글은 번역에도 신경이 많이 쓰이겠네요?
네, 그래서 초조해요. 하하
-초조하단 건 왜죠? 어떻게 평가받을까 해서요?
뭐, 저에 대한 평가는 상관이 없는데, 더 좋은 분이 번역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지요. 제가 틀린 걸 지적받을까봐 하는 건 전혀 상관이 없어요. 아무래도 글로는 말의 맛을 100% 살리기 어려우니까...
-그 점이 번역자로서는 늘 고민일 것 같아요. 내 글이면 내가 제일 잘 아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책임지면 되는데, 번역은 발신자가 따로 있다 보니까 그 결과물에 대해 누구라도 토를 달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그런 사정에 대처하는 방식도 번역가마다 다양한 것 같아요. 제가 아는 노승영이라는 분은, 그래서 살아있는 저자의 책만 번역하신다고...(웃음)
-직접 물어볼 수 있으니까?
네, 아주 많이 물어보시면서 작업을 하세요. 이메일로 왔다갔다. 근데 저는 완전히 반대예요. 저는 제가 어떤 면에서는 저자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해요.

저자가 준 퍼즐 조각을 맞추는 걸 너무 좋아해요. 그런 이음매를 스스로 알아내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거든요 저는.
-아까부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해석학자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완결성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는 말도 그렇고, 지금도 책을 작가와는 독립된 텍스트로 보고, 심지어 작가 자신도 몰랐던 것을 캐내는 게 번역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래서 저는 늘 주장하는 게 있어요. 번역을 마친 시점에서는 저자보다 그 책을 제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해요. 저자는 자기가 잘 모르고 쓴 표현 같은 것도 있고, 저자가 모르는 헛점도 있죠.

하지만 저는 조사를 하면서 번역을 하니까 그러다 보면 틀린 것도 당연히 많이 잡아내고, 팩트 틀린 것은 부지기수고, 저자가 쓴 문장 같은 것도 저자가 어떤 무의식에서 이렇게 썼을 것이라는 감이 와요. 물론 확인받을 수는 없지만. 그럴 때 '찰칵' 하고 그 순간 희열이 있어요.

물론 그건 저의 생각이고, 다른 번역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죠. 그건 당연한 거고, 다만 저는 저의 번역을 변론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면 좋은 거고. 모호한 부분은 계속 있겠죠. 완전히 겹쳐지지는 않는 거니까.
-자신의 번역도 진화한다는 걸 느끼나요? 초보 때에 비해?
아.. 과정이 있어요. 처음엔 정말 멋 모르고 하다가, 저는 뭐 학원에도 다니고 했지만, 그런 데서 배운 거랑 상관 없이 실전을 하면서 한 몇 년은 실력이 는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근데 그 다음에는 계속 의견이 혼자서도 오락가락하다가 한 10년쯤 되니까, 최근 들어서는 다시 '아, 발전하는 건 아니고 계속 그냥 변하면서 처리해 나가는 것일 뿐이구나' 하고 깨닫게 됐어요.

10년 전에 제가 좋은 우리말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거랑 지금은 또 다르니까요. 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이해도도 달라지고. 깊어진 면도 있지만 달라진 면도 있고.

그래서 업무적인 요령은 훨씬 더 많이 늘었는데, 번역 자체의 질이 더 나아졌느냐, 하면 저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번역의 질의 우열은 말할 수 없다. 변화는 있겠지만?
네. 그 변화란 것도 다른 텍스트를 읽으면서, 가령 우리말 소설 같은 걸 읽으면서 우리말의 목표가 달라진 것도 아주 크죠.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저는 신문 기자 시절에 배운 게 머리에 남아서 무조건 단문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그래서 남의 글인데도 막 단문으로 끊고.(웃음)

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게 달라져요. 단문 물론 좋지만 장문 잘 쓰면 더 좋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바뀌면 번역도 최대한 살려서 긴 문장도 넣고 그런 식으로 달라져요. 앞으로 또 달라지겠죠.

지금도 제가 가진 문장의 맹점이 있거든요. 무의식적으로 자주 쓰는 표현이 있고. 그런 걸 계속 의식하고 깨야 제 번역이 안 늙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아, 저 사람은 계속 저런 표현을 쓰네' 이런 말을 듣게 되면서 굉장히 심심한 번역이 돼버려요. 문장이 늙는 거죠. 어떻게 하면 안 늙고 70살까지 할 수 있을까, 그게 숙제죠. (웃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는 상록수 같은 번역서가 목표네요.
네 네, 그렇죠.
-번역한 책 중에는 아쉽거나 후회가 되는 책이 있나요?
무~지하게 많죠. 어마무지 많죠.(웃음) 그래도 저는 좀 덜한 편인 게, 과학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 만약 문학책이었으면 더 많을 것 같아요.

단적으로는 비속어 같은 것만 해도 그렇죠. 10년 전 유행했던 비속어를 그냥 써버리면 10년만 지나도 자기부터 읽기가 싫어지거든요.

번역을 처음 할 때는 그런 걸 자유자재로 시의성 있게 끌어들여 번역하는 걸 잘하는 걸로 착각해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실수들이 많이 있죠.
-반대로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책은 있나요?
제일 마음에 드는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예요. 그 책은 결과물도 결과물이지만 영어 문장을 봤을 때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어요. 번역하는 동안 '이 사람은 어려운 걸 정말 잘 읽히게 쓰는구나' 하는 느낌, 문장이 머리로 고민하지 않아도 저한테 딱딱 붙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번역문에도 잘 살아 나온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게 책마다 다르거든요. 어떤 책은 영어로 읽었을 때는 너무 좋았는데 막상 제가 한글로 쓸 때는 덜거덕거리고, 거꾸로 영어는 그냥 그랬는데 (다른 번역가들이) 한글로 너무 번역을 잘하셔서 좋은 책이 되는 경우도 되게 많죠.

사실은 그건 약간의 사기인데.(웃음) 그런 것도 딱히 좋은 거라고는 생각이 안 들어요.
-아 그래요?
못 쓴 건 못 쓰게 번역해야죠.(웃음) 월권을 하면 안 되죠.
-아까 저자보다 내가 더 잘 알 수 있다고도 하셨는데, 최종 목적지인 독자한테 잘 읽히게 하면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나요?
번역자는 영원히 저자 뒤에 있어야 해요. 제가 그렇다고 해서 '이건 필요없어' 하고 형용사 하나를 빼거나 부사를 하나 넣는다거나 하면 안 되죠.

그런 걸 안 하는 수준에서 해석을 해야지. 그런 걸 하기 시작하면 좋은 번역가가 아니죠. 있는 그대로 번역해야죠.
벽에 붙여놓은 화학원소 주기율표
-현실적으로는 두 벼랑 사이 협곡을 지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네. 그래서 결국 영원한 만족은 없긴 한데, 어떤 번역의 모토는 확실히 있어요. '손은 대지 않는다. 추가하거나 가필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볼 때 가장 알맞은 문장으로 번역한다'...

뭐 어떤 출판사들은 번역서 가져다가 축약본을 내기도 하잖아요. 어떤 출판사 사장님은 많이 윤색해서 번역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분도 있어요.

옛날에는 그래서 더 좋은 책이 될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건 아니 것 같아요. 남의 글이고 거기에 남의 자아가 들어 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그 사람이 한국어 못 읽는다고 그러면 안 되죠.(웃음)
-아까 대표 번역서로 꼽은 도킨스 책은 조금 의외인데요, 보통 누가 봐도 대작이거나 고전, 베스트셀러를 내세우지 않나요?
제가 쓴 한국어 문장의 느낌이랑 영어책의 느낌이 별로 다르지 않아서 좋은 번역을 했던 것 같아요.

두 가지가 다를 수 있잖아요. 두 언어를 다 하는 분들은 차이를 느낄 수 있을 텐데 그걸 최소화해서 좋은 것 같아요.
-또 그런 식으로 뿌듯했던 책이 있나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죽음, 노화, 같은 것에 대한 과학적 팩트를 넣은 자기 회고 에세이 같은 거예요.

처음에 편집자는 과학 팩트가 많이 나오니까 제가 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맡긴 거였어요. 막상 보니까 그 책은 문장이 너무 중요한 책이었던 거예요.

굉장히 포스트모더니스틱한 면도 있고 단절적인 면도 있고. 그게 제겐 큰 숙제였는데 그래도 잘 나온 것 같아요. 그것도 똑같은 기준에서 원서를 읽었을 때의 느낌을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출판문화대상을 받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대작인데, 어떻게 하게 됐죠?
그 책도 사실 내용보다, 핑커라는 저자이니까 당연히 할 수 있으면 영광이죠. 그래서 덥썩 받은 것 같아요. 사실 그렇게 분량이 두꺼운 책은 전업 학자가 아닌 전업 번역자 입장에서는 좋지는 않아요. 시간은 많이 걸리는데 소득은 적으니까. 핑커라서 했는데 의외로 아주 수월하게 했어요.
-얼마나 걸렸죠?
앞의 준비 과정이랑 교정 과정까지 다 합치면 6개월쯤 걸린 것 같아요.
-보통 단행본은 어느 정도 걸리지요?
평균 한두 달씩 잡아요. 1년에 아홉 권도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 게, 그림책 같은 것도 있거든요. 그런 건 일주일이면 하니까.
-그 정도면 번역가 중에 꽤 빠른 편 아닌가요?
저는 빠른 편이라고들 하세요. 그게 작업 자체가 빨라서도 있지만, 아직 미혼인 데다 부모님 모시거나 하는 일 없이 혼자 사니까.

따로 하는 부업이나 강의도 전혀 없고. 심지어 특별한 취미도 없고 하니까 가능한 측면이 훨씬 크죠. 다른 번역가들도 저같은 환경이 구축되면 충분히 하실 수 있죠.
-번역가 중에 모범이나 준거로 삼는 분이 있나요?
번역의 내용에서는 없는 것 같아요. 번역은 너무나 개인적인 일이라. 저는 강주헌 선생님 번역이 굉장히 맘에 들어요. 그분 번역 강좌도 들었거든요. 처음 일 시작할 때.

사실 그런 데서 배워도 자기가 직접 번역할 때 롤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개인마다 달라서. 다만 선배로서 저렇게 자기 관리를 해서 책을 잘 골라서 오래 하시는 분들이 있구나, 하는 의미에서 존경하는 선배들이 계시죠.
-번역 교육 과정도 거치셨나 보죠?
네. 알라딘 다닐 때 과정도 다니고. 대학 때도 교재 같은 것 사서 보고 그랬어요.
-번역가를 위한 준비를 틈틈이 하신 셈이네요.
네, 자격증 시험도 치고.
-자격시험도 있어요?
네, 공인된 시험은 아니고 그런 게 몇 군데가 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도움도 안 돼요. 공인된 양성소가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해보는 거죠.
-요즘 번역가 지망생은 많은가요?
네. 지망생은 늘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간 분들은 다 영어는 어느 정도는 하시고, 특히 대학원에서 공부 글을 타신 분들은 다 번역을 해보셨기 때문에 번역을 수월하게 생각하시죠.

요즘은 예전에 비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인가에서 하는 양성과정이 잘 돼있거든요. 그런 데서 수강을 많이 해서 데뷔하시는 분들도 많아졌죠.
최근 번역을 마친 올리버 색스 유작 'Gratitude'
-실제로 번역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다고들 하잖아요. 어떤가요?
힘들죠. 가장의 직업이 되기는 아주 힘든 것 같아요.
-예전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제 경우는 비슷하거나 조금 못한 것 같아요.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운 게, 제가 직장을 10년 더 다녔으면 얼마를 더 받았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기본적으로만 생각해봐도 직장 경력이 15년이면 지금 수입이야 턱도 없죠.
-번역 쪽도 양극화 경향을 보이죠?
아무래도 그렇죠. 능력도 능력이지만 일단 이름이 알려지는 게 중요해요. 두 개가 일치하진 안잖아요. 이름이 알려진 분들에게 일이 계속 들어오니까.
-그 반열에 들지 않았나요?
하하. 반열이라니까 좀 우스운데요. 일이 끊길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로서는 일을 좀 줄이고 단가를 높여서 여유있게 일하고 싶죠.

근데 그건 또 나름의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저는 아직 그렇게는 못 하죠. 매년 9권을 하는 게, 빨리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회사원이라고 생각하고 기본적인 소득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있어요.
-번역서 이외 독서는 어떻게 하세요?
저는 인터넷서점에서 일했으니까 어떤 게 지금 화제작이고 잘 팔리고 이런 건 늘 알고 있어요. 또 신문사에서 일했으니까 북섹션도 아주 열심히 보고.

기사 보면 대충 느낌이 오죠. 이건 뭣 때문에 쓴 것 같다는 걸 알지요. 이건 그냥 화제성으로 썼다, 이건 의의로 썼다, 아 이건 진짜 기자가 재미있어서 썼겠구나, 이런 게 보이니까. 많이 골라 읽죠.
-국내 저자 중에 꼭 읽는 사람이 있나요?
서경식 선생님. 일본어를 번역한 우리 글이긴 하지만, 그분을 제일 좋아해요.
-어떤 점이?
그분도 에세이스트인 게 좋은데요. 일단 자신이 아는 이야기만 한다는 점. 자신이 겪은 이야기만 한다는 점.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저자라서요.

그분은 살아온 궤적이나 너무나 특이하세요. 제가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Michele Levi, 1919-1987)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분을 서경식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됐어요.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경식 선생님이 그런 레비 같은 분 같아요. 그런 분 책을 사람들이 많이 읽어야 하는데...(웃음)
-과학 쪽은 어떤가요? 요즘 과학에 대한 국내 도서도 많이  나오는데.
과학책은 당연히 어떤 책들이 나오는지 다 보는데, 사실 저의 고루한 취향으로는 아직 딱히 만족스런 국내서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일단 국내서들은 칼럼 같은 걸 모은 게 압도적으로 많아요. 재밌게는 읽지만 인생의 책이 되기는 힘들잖아요. 그런 책으로서의 저자는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번역은 물론 계속 일로 하실 것 같긴 한데.
딱히 그런 건 없구요. 정말 좋은 저자에게 숟가락을 얹고 싶어요. (웃음) 정말 좋은 저자의 책을 잘 골라서 제가 훼손하지 않고, 절판 안 되고 10년 20년 팔리는 그런 책을 만들면 좋겠죠.

그렇지 않고 금방 절판되거나 하면 제가 들이는 시간이 너무 허무할 것 같아요.(웃음)
-절판된 책도 있나요?
한 20권 되는 것 같아요.
-번역하신 책은 집에 모아 두셨겠네요.
크~.(웃음) 저의 '에고 셸프(ego shelf)'가 있죠. 자아의 선반이 있죠.(웃음)
-보고 있으면 뿌듯하겠네요.
사실 처음에 그걸 만든 것은 뿌듯하려고 만든 건 아니고, 독자들이 지적을 하잖아요. 이거 잘못 된 것 같다고, 그렇게 해서 출판사랑 소통해야 할 일이 계속 생기니까, 원서랑 번역서랑 나란히 꽂아 두기 시작한 건데. 올해 책꽂이 하나를 다 채웠어요. 원서랑 번역서랑 140권이니까. 뿌듯하죠.
-오역 지적이 많이 오나요?
그렇게 많이는 안 오는데. 예전에는 역자 옆에 메일 주소도 넣고 해서 바로 오기도 하고 출판사를 통해서 오기도 하고, 요즘은 소셜로 직접 오기도 하고.

그러면 확인해 드린 다음에 제가 잘못이 있으면 적어놓고, 적어놓은 게 있으면 나중에 개정쇄를 내거나 하면 반영하죠.
-칭찬이나 감사 인사도 오나요?
네 많이 와요.(웃음)
-그럴 때 또 뿌듯하겠네요.
뿌듯한데, 사실 뿌듯한 것보다는 무서운 게 더 커요. 속으로 '잘 읽으셨겠지. 근데 틀린 것도 분명히 보셨겠지' 생각하죠.

사람들은 나쁜 말은 안 하잖아요. 돈 들여서 책 읽고 굳이 나쁜 말 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웃음) 그래서 좀 겁도 나죠. 사실은 무반응이 제일 마음은 편한데 그러면 안 돼죠. 좋은 책은 반응이 많아야 좋은 거죠.
-인터뷰 청했을 때 "지은 죄가 많아서 겁난다"고 하신 게, 그런 뜻이군요. 70군데나 뿌려놨으니 어디가 지뢰밭이 돼서 터질지 모른다는..(웃음)
네. 그리고 제 머리 속에는 제 잘못한 게 다 들어있기 때문에...
-잘못한 게 들어있다는 건 무슨 뜻이죠? 아쉬운데도 그냥 내보낸 걸 말하나요?
책은 한번 찍어내면 끝이라는 것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니까 그런 건 별로 없는데. 나중에 돌아서서 잘못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예를 들어 10년 전에는 제가 그 영어 숙어를 몰랐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엉터리로 번역해 놨다가 그 단어나 숙어를 새 책에서 보고 깨닫고는 5년 전의 일이 막 떠오르기도 하지요.(웃음)
-그러고 보면 영어도 참 어렵죠? 공부를 따로 하시나요?
공부는 안 하는데. 그래서 제 책 말고 가디언이나 외국 신문 기사를 많이 읽으려고 해요. 또 가끔 출판사가 계약 전의 원고를 읽어보고 출간할 만한지 의견을 달라고 의뢰해 와요.

그러면 아무리 바빠도 웬만하면 하려고 해요. 다른 영어들을 많이 볼 수 있으니까. 아주 최근에 쓰인 살아있는 글들. 그걸 따로 할 시간은 없으니까요.
-정말 막힐 때는 어떻게 해요?
진짜 막히면 저자한테 물어보죠. 에이전시나 통해서. 친구에게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고요.
-원어민이나 영문학자한테는...
저는 과학책을 많이 해서 문장과 관련해서에 막힐 일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내용, 과학적인 팩트를 설명해 놨는데 뭔지 모르는 경우가 있죠. 그건 제가 과학을 전공했으니까 아는 선배나 후배한테 물어보긴 해요.
-과학 분야는 양날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은 정확한 번역이 가능하니까 모호한 여지가 없을 수 있는데, 자칫 전문가들이 봤을 때 문제 삼을 여지가...
전문가들은 책을 안 읽으시니까 괜찮아요. 하하 (웃음)
-특히 개념이나 용어 같은 경우 새로 등장하는 게 많으니까.
맞아요. 사실 그게 제일 어려워요. 번역어가 없는 것. 요즘은 어지간하면 아예 영어로 써버리잖아요.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하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번역의 기초를 놔버린 거죠.
네. 그게 마음에 너무 안 들죠.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갈수록 그게..
-혼자는 불가능한 지경에 와버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벽돌에 해당하는 번역의 기본어들이 안 된 상태이다 보니.
네, 맞아요. '에코' 같은 접두사나 접미사로 상용되는 단어들을 그냥 받아들이고 나니까 거기서 파생되는 단어들은 덩달아 그냥 하는 수밖에 다른 여지가 없어요.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는 어떤 게 있죠?
작년에 사망한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글 잘 쓰는 과학자들은 말하자면 저의 밥줄인 셈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잘 쓰는 분이 돌아가셔서 많이 아쉬웠어요.
-번역 작업 이외에 지금 읽고 있는 책으로는 뭐가 있죠?
여러 권을 읽고 있는데, 스티븐 제이 굴드의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는 올리버 색스 자서전에 나오는 책이에요. 자신이 너무 감동 깊게 읽은 데다가 이 책을 계기로 굴드와 친구가 되었다고 말한 대목이 있어서 다시 읽고 있습니다.
존 치버의 '존 치버의 일기'는 자기 전에 몇 쪽씩 읽고 있어요. 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 지 몇 년째인데 실행을 못 하는 저 자신을 타박하면서...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번역하신 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요?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중 프롤로그입니다.

"이것은 내 몸의 자서전이고, 내 아버지 몸의 전기이고, 우리 두 사람 몸의 해부학이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아버지의 그 지칠 줄 모르는 몸 이야기이다"

(This book is an autobiography of my body, a biography of my father's body, an anatomy of our bodies together-especially my dad's, his body, his relentless body.)

두 쪽밖에 안 되는 이 프롤로그를 번역하느라 이틀이 걸렸던 기억이 있어서 잊지 못하는 문장입니다. 어떤 번역이든 처음 도입은 마치 시동을 거는 것처럼 가속이 붙지 않고 유달리 어려운 법인데, 이 책은 특히 그 도입의 시동 걸기에 아낌없이 시간을 쏟아 최선을 다했던지라 다시 하라고 해도 꼭 이렇게 번역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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