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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미니북] 나는 얼굴 없는 작가가 아닙니다

국내 완역 <나폴리 4부작>의 저자 엘레나 페란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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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의 [미니북]은 손바닥 안의 책 한 권입니다. 화제의 저자 인터뷰를 비롯한 긴 호흡의 글을 전합니다.


오늘은 '얼굴 없는 작가'로 유명한 엘레나 페란테 인터뷰입니다. 최근 국내에도 완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나폴리 4부작>의 저자입니다.


<나폴리 4부작>은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두 여성의 유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정과 인생사를 담은 대하 소설입니다.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출간 직후부터 세계 유수의 언론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기 시작한 엘레나 페란테는 '얼굴 없는 작가'로도 화제가 돼 왔습니다.


4부작의 마지막 편인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2016년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을 때 최종 후보로 경합했습니다.


오직 작품으로만 자신을 말하겠다는 뜻을 밝힌 페란테는 1992년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자신의 신원을 밝힌 적도 없습니다.


나폴리 태생으로 고전 문학을 전공한 뒤 해외에서 오랫동안 지낸 작가라는 사실 정도만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글과 출판사의 전언을 통해서만 간간히 소통해 왔을 뿐입니다.


<나폴리 4부작>의 국내 완역 출간에 맞춰 출판사인 한길사를 통해 저자에게 이메일 인터뷰 질문을 보냈고 저자는 해를 넘긴 끝에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작품 이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드문 기회입니다.


질문을 이탈리어로 옮기고 답변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폴리 4부작>의 번역자이기도 한 김지우 번역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폴리 4부작>이 2011년부터 매년 한 권씩 출간됐지요. 지금까지 몇 개국에 번역됐나요? 요즘도 인터뷰나 취재 요청이 많이 들어오나요?

네, 요즘도 인터뷰와 취재 요청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나폴리 4부작>이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고 있으니까요. 현재 전 세계 주요 언어로는 거의 다 번역이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폴리 4부작>은 주인공인 릴라와 레누, 두 여성을 중심으로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세밀하게 다뤘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꼼꼼히 써둔 기록을 모아서 작품화한 것 같습니다. 한 인터뷰에서는 원래 다른 책의 이야기에서 점점 발전된 것이라고 밝혔더군요. 작품을 구상하거나 집필하게 된 과정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쉽게 답변드릴 수 있는 질문은 아니군요. 이야기의 기원으로 보자면 아마도 저의 친한 친구의 죽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언젠가 제가 나폴리에서 참석했던 성대한 결혼식에서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저의 전작인 <어둠의 딸>에서 다룬 주제를 다시 다뤄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초고는 정신없이 1년 만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량은 많아도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다 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퇴고를 하면서 이야기가 확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편집자들과 함께 고민한 끝에 책을 한 권 이상으로 나눠서 출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소설은 한 번 쓰고 나면 저자와는 독립적인 것이 되어 스스로 독자를 찾아가기 마련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이제 한국에서도 전 4권이 다 완역되어 독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시는지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번역가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번역가는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무는 일을 합니다. 제 소설의 화자인 레누가 친구 릴라의 이야기를 한국어로도 들려준다니 정말 기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아직까지 한국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방문해보고 싶습니다.

-작품 전편에 걸쳐 전후 이탈리아의 격동적인 경제, 사회, 정치 변화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의 부침을 그렸습니다. 한국 사회도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나 역사에도 관심이 많습니까? 지금 이탈리아나 세계 전반의 흐름에 대해서는 의견이 있으신가요?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저는 정치를 좋아합니다. 문학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이라면, 정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틀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불행하게도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정치인들 역시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란 개개인이나 특정 집단 또는 특정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이익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현대 사회는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나폴리 4부작>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인간 내면에 대한 미시적인 정직성입니다. 인간과 삶의 어떤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나요?

원래 저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모순적이면서 조밀하게 짜인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인간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라 총체적인 면모를 파악해야 합니다. 저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만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행동은 결코 선형적이지 않으며 절대로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복합성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모든 화자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취약점입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릴라를 통해 '경계의 해체'라고 부르면서 묘사한 현상이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흔히 말하는 신경증이나 정신분열증과는 다른 의미인가요? 무엇을 이야기하려 한 거지요?

‘경계의 해체’란 인간 사회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증상입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한순간 액체화하거나 해체되거나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 존재의 상호연결성을 이야기하면서 ‘프란투말리아’(frantumaglia)라는 단어를 쓴 것을 봤습니다.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는 당신의 어머니가 자주 쓴 표현이라고도 했지요. 글쓰기에 관한 당신의 에세이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프란투말리아’가 무엇인지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프란투말리아’는 자아를 여러 개로 분리된 조각의 집합체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식을 한다는 것은 위기의 순간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제 소설 속 인물들이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거나 존재의 의미를 찾거나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좀 더 단단해지기 위해 어떤 행동에 나서는 순간은 바로 이런 느낌을 받았을 때입니다.

-디지털 시대로 오면서 모바일 중독과 주의 분산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인간은 집중과 중독, 분산과 해체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요?

디지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잘 사용하면 그만이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통제하는 것은 정치가가 할 일이지요. 물론 디지털 시대가 거대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이윤을 취하도록 방치한다는 것을 뜻한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갈수록 소형화되는 전자기기와 어플리케이션에 중독되어 점점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고 최면에 걸린 것 같은 상태에서 살아갈 테니까요.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요소들 중 하나가 폭력성입니다. 남성의 육체적 폭력뿐 아니라 크고 작은 언어폭력, 그리고 그로 인한 정신적 외상도 자주 등장합니다. 심지어 따뜻한 말이나 표면적인 선의의 행동도 대개는 복선이 깔려 있거나 냉소적인 인상을 주곤 합니다. 인간의 선의는 취약하고 믿을 것이 못 된다는 뜻인가요?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의야말로 우리의 강점이지요. 하지만 선의를 갖는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균일하지 않은 요소들로 구성된 존재입니다. 그러니 결속력이 강하지도 않고 일관적이지도 않지요. 몸짓 하나, 예기치 않은 감정만으로도 일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선의를 지향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존경할 만한 특성입니다.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장점을 지켜가야 합니다.

-수많은 등장인물을 통해 시간의 격랑을 건너는 다양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돈과 지식, 사랑, 시기, 질투, 탐욕, 연민이 교차합니다. 그런 가운데 순수한 사랑이나 희생 같은 숭고한 가치는 뒤로 밀려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현실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신가요?

아닙니다. 저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비판할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상낙원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상적인 세상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근거 없는 눈먼 낙관주의입니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 굽실대며 뭐 그렇게 불평불만이 많냐고,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더 나아질 게 뭐가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친구와 연인, 가족 사이에 욕설이 오가고, 폭력, 섹스, 불륜 장면도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대목은 ‘막장 드라마’ 같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시시콜콜 쓴 것은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저는 독자들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제가 알고 있는 기술을 총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 속에 들어오면 독자들은 잘 만든 대중소설에서 나올 법하다고 기대했던 예상이 모두 빗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저는 ‘진짜’에 관심이 있지 진짜와 유사한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독자들을 잠들게 하지 않고 소설가로서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들을 존경합니다. 소설이 정말로 생명력을 잃는 것은 독자가 생명력을 잃을 때입니다.

-두 주인공 릴라와 레누의 우정 어린 성장사를 다뤘지만 둘 사이에는 끊임없이 애증이 교차합니다. 인간은 누구와도 온전히 화해할 수는 없다는 뜻인가요?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책에 투영하고 여기에서 필요한 부분을 취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작품 속에 그려진 것처럼 끝없는 상호충돌과 자기분열이 세상의 숙명이라면 개인이나 공동체는 어떤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인생은 충돌이 아니라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만남이 좋지 않은 만남보다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끔 충돌이 불가피할 때가 있죠.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충돌을 만남으로 승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중요한 것은 선한 의지입니다. 우리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범지구적인 통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릴라와 레누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면서 어떤 점, 특히 글쓰기, 학습욕, 세상을 바꿔보려는 의지 등은 비슷합니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서로 경쟁합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레누보다는 타고난 릴라를 특별한 존재로 설정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릴라는 스스로 '특별한 삶의 욕망은 없는'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릴라라는 캐릭터를 통해 특별히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었나요?

저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전할 뿐입니다.

-요즘 미국을 필두로 곳곳에서 남성의 성폭력이 문제가 되면서 여성 피해자의 폭로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작품은 마치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런 실상을 묘사했습니다. 소설 속에는 남자가 여성을 한낱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 가르치려 드는 태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소설을 쓸 때 그것을 의식하고 다뤘나요?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여전히 가부장적입니다.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도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성을 종속적인 존재로 여기며 남성의 성적 욕구에 따라 마음대로 다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문제에 관한 한 지금 상황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남성들 중에는 자신이 여성을 대상으로 행사한 폭력 행위에 대해 수치심을 느껴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수치심을 느끼기는커녕 그러한 폭력이 남성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성 추행의 원인을 제공하는 쪽이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남성들에게 맞서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입을 열고, 이들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과도함 때문에 오히려 정당성이 약화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남성입니다. 당신의 작품 속 묘사를 통해 여성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여성의 복잡한 심리 묘사가 탁월합니다. 그에 비해 남성에 대한 묘사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본래 그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참모습을 잘 모릅니다. 물론 모든 남성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성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자신조차도 정형화된 스테레오 타입에 끼워 맞추는 것을 선호합니다.

남성은 아직도 운명의 파도를 헤쳐 나가는 자신들을 다재다능한 율리시스(=오디세우스)라고 생각하죠. 그에 비해 아내인 페넬로페의 임무는 그저 베틀로 직물이나 짰다가 다시 풀기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이제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날수록 남성의 지위는 위험할 정도로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과 남성 그리고 인류 전체에 위험합니다.

-당신의 소설 속에서 연인과 가족마저 개인에게 족쇄이자 낙인이 되고 마는 것을 봅니다. "확실한 것은 정절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동거의 시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끝났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남녀 관계나 결혼,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설과 마찬가지로 가족이라는 관계는 항상 위태로워 보이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가족이라는 개념에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본질적인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젠더의 개념과 성 역할, 부부라는 전통적인 동거 형태, 결혼 서약의 의미마저 많이 변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예전보다 유통 기간이 짧아졌고, 생식의 방식도 달라졌죠. 그 외에도 변한 것이 많습니다. 가족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개념과 형태는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런 변화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작품 속에서 지식과 학습이 중요한 도구로 등장합니다. 한국에도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그 말을 의심합니다. 지식은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와 등식화되고 있습니다. 상속받은 재산이 후손의 장래를 결정한다고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지식과 학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제 소설에서도 학습은 이미 신분 상승의 수단이 아닙니다. 사실 레누가 이룬 업적도 실망스러운 것이죠. 따지고 보면 레누와 니노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둘은 기득권에 의해 선택받을 뿐 정작 정말로 중요한 계층의 중심부에는 편입되지 못합니다.

저는 릴라의 무정부주의적인 방식을 선호합니다. 릴라는 학습을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아니면 단순히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여러 인생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학습을 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고전학을 공부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 세계관이 고대 그리스 비극과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을 이야기하는 이 첨단의 시대에 여전히 고전적 인간관과 세계관이 우리에게 말해줄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포스트’나 ‘트랜스’ 같은 접두사가 붙는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이죠. 예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다면 굳이 ‘포스트’나 ‘트랜스’ 같은 접두사를 붙이지 않고서도 그에 알맞은 명칭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글쓰기를 투쟁이라고 표현했더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처음에 ‘이야기’는 혼란스러운 상태이며 가공되지 않은 원료에 불과합니다. 적합한 형태와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합니다.

-꿈을 꾼 후에 기억나는 것들을 적어보는 것이 좋은 글쓰기 훈련이 될 수 있다는 말도 했지요. 작가 지망생들에게 그 외에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위대한 고전을 읽으면서 배우고, 글쓰기 연습을 최대한 많이 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꿈을 충실히 글로 옮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단어와 문법과 문장으로 번역하는 순간 실제 꾼 꿈을 왜곡하게 될 테니까요.

-<나폴리 4부작>이 TV 드라마로 각색되고 있지요. 대본 작업에도 직접 참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진행되었습니까? 작업 과정에서 힘든 점은? 소설과 차이가 있나요? 어떤 점을 부각시킬 생각인가요?

글쎄요. TV 드라마는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지요. 책을 쓸 때는 작가가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통제합니다. 하지만 영상을 위한 이야기는 다양한 능력과 수많은 사람의 의견이 감독의 지휘 하에 조율되어 완성되지요. 각본은 이런 다양한 능력을 취합한 결과물에 들어가는 한 가지일 뿐입니다. 영상을 만들기 위한 이야기를 구축하되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각본이 중요하지만 영화의 결정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수많은 단계 중 하나일 뿐이죠.

-당신이 나고 자랐다는 나폴리는 한국인에게 이탈리아 가곡과 경치 좋은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는 나폴리를 "역사 발전과 진보, 민주주의의 이상은 허구임을 일찌감치 보여준 환멸의 도시"라고 표현했더군요.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이가 많으신 것으로 압니다(위키피디아에는 1943년생으로 올라 있더군요). 살아오면서 시간에 따라 인생관이나 글쓰기에 대한 변화가 있었나요? (*다른 인터뷰의 답변과 글을 보면 연로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저라면 위키피디아 정보를 그대로 믿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세월이 흐르면서 사상적으로 비타협적이 된 것 같습니다. 글쓰기로 말하자면 다양한 시도를 해본 결과 근본적으로 제 문장의 리듬은 열여섯 살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작품 후반부에서 "명예도 돈도 없는 노년의 불안"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지금 남은 생을 보며 드는 소회를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까?

어떤 나이를 말씀하시는 거죠? 위키피디아에 나온 나이 말씀인가요?

-최근에 후속 작품을 집필 중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혹시 어떤 작품인지 간략히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글쓰기 연습일 뿐입니다. 저는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얼굴 없는 작가'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신원을 밝히지 않는 것은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가 불가피하게 야기하는 소란스러움 속에 얽히기 싫어서인가요? 이제는 오히려 자신을 숨기는 것이 더 힘들거나 불편해지진 않았나요? 평생, 심지어 사후에도 얼굴 없는 작가로 남고 싶으신가요?

저는 얼굴 없는 작가가 아닙니다. 제 이름은 엘레나 페란테이고 꽤 많은 분량의 글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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