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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미니북] AI 서사도 인간 추월할 겁니다

'언어인간학'의 김성도 교수 "지금 인문학 격자망으로 가늠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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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의 [미니북]은 손바닥 안의 책 한 권입니다. 화제의 저자 인터뷰를 비롯한 긴 호흡의 글을 전합니다.


오늘은 최근 <언어인간학>을 출간한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 교수 인터뷰입니다. 김 교수는 세계기호학회 부회장과 <세미오티카> 편집위원도 맡고 있으면서 현대 언어 사상을 비롯해 문화 이론, 매체 이론 등 다양한 영역을 학제적으로 깊게 연구해 온 학자입니다.


<언어인간학>은 인문-과학-예술 혁신 학교를 표방하는 건명원에서 했던 강의 내용을 묶은 것으로, 인류의 문명사를 언어의 진화 관점에서 독창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고대 동굴 벽화부터 인공지능, 한글과 세종대왕, 책과 인류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어학은 인문학 중에서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전공하시게 되셨지요?

제가 하는 언어학은 인문학, 철학에 가까워요. 학부 때 불어불문학과에 들어가서 소쉬르를 처음에 읽었어요. 그때 프랑스 인문학 책을 많이 읽었어요. 프랑스어 언어학이라기보다 일반 언어학을 한 거죠. 한국에선 좀 일찍 시작한 편이었어요. 대학 4학년 때 4.18 기념 전국 대학생논문경시대회에서 '소쉬르의 기호의 자의성 원리'를 주제로 글을 써서 당선되기도 했죠. 프랑스에 공부하러 가서도 미셸 푸코 책 같은 것 많이 읽으면서 흔들리지 않고 해나갔어요.

그땐 대학가가 데모로 소일했잖아요.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연애파도 아니었고, 약간 학구파에 속했어요. 지식욕을 채우기 위해 스터디그룹을 많이 했어요. 많을 때는 8개까지 했어요. 그런 학습욕에 찬 무리들이 있었어요. 그런 선배들하고 모여서 닥치는 대로 읽었죠. 그때 80년대에 고대에 김용옥 선생이 교수로 부임해서 동양학에도 한때 굉장히 심취했죠. 동양학, 중국학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는 프랑스가 압도적이었잖아요. 일본하고. 지금은 하버드 옌칭연구소로 헤게모니를 많이 뺏겼지만.

한때는 중국학을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어요. 프랑스 유학 가서도 자크 제르네라는 프랑스 중국학 계보를 잇는 대석학이 있었어요. '중국문명' 쓰신 엄청난 분인데 그분 강의도 듣고 그랬어요. 하지만 동양학 하고 난 후 진로 고민도 되고 해서 언어학을 했어요.

유학 기간이 6년이었는데 그 기간에 소쉬르를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죠. 6년 기간으로는 어림 없는 시간이긴 했지만. 보통 언어학 하는 분들은 개념적인 것을 연구하거나 프랑스어와 한국어 비교하는 연구를 많이 하는데 저는 언어에 관한 사상을 했어요. 소쉬르가 워낙 사상 쪽이었기 때문에. 언어사상사가 30년 동안 연구해온 제 전공이에요.

-일찍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외국어를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선교사를 쫓아다니고 그랬어요. 아버님도 그 시기엔 드물게 일찍 영어에 능통할 정도로 외국어에 대해서는 집안 내력이 있어요. 하지만 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꿔본 적도 없고 외교관이나 특파원 돼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었어요. 대학에 가서 공부하다 보니 재미있더군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 거죠. 그래서 혼자서, 또 선배들과 독학을 한 거죠.

-언어학이 왜 중요한가요?

언어라는 게 마치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일반인은 의식하기 힘듭니다. 간혹 언어에 장애가 생기면 중요성을 깨닫곤 하지요. 그 외에도 많이들 경험할 거예요. 사람이 말 한 마디로 얼마나 풀이 죽고, 영혼을 갉아먹고 하는지. 말이 일으키는 효과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거든요. 언어학에서는 '화용론'이라고 해서 그런 부분을 조금 연구하기는 해요.

하지만 주로 언표적 행위(locutionary act), 언표내적 행위(illocutionary act) 같은 것을 이야기하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언향적 행위(perlocutionary act)'라는 거예요. 가령, "날씨 좋다"라고 하면 이건 날씨에 대한 명제적 내용이 아니라 "외출하자" "놀러가자"라는 의향을 함축하고 있는 거지요. 이 부분은 연구가 많이 안 돼 있어요.

그리고 말이 사람의 정신에 미치는 효과도 대단히 큰데 이 부분도 연구가 많이 안 돼 있지요. 그 다음 언어와 권력의 차원도 굉장히 중요해요. 정치도 실은 다 언어 예술이거든요. 정치가 땅을 팝니까, 물건을 만듭니까, 하는 게 뭡니까. 결국 국민에게 꿈과 비전을 주는 것인데 그게 말로 하는 거거든요. 정치인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납니다. 하지만 정치학에서 언어를 안 가르치고, 언어학에서는 정치학개론을 안 가르쳐요. 사각지대인 셈이지요.

언어학이 과학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괴리가 생겨버렸어요. 소쉬르 선생은 기호학을 사회생활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기호들의 삶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봤어요. '삶에 방점을 뒀죠. 물고기로 치면 죽어있는 물고기를 해부할 게 아니라 팔딱거리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연구해야 한다고 봤던 거죠.

-언어학의 양대 산맥으로 소쉬르와 촘스키를 꼽는데요. 유럽과 미국의 학풍도 다르지요. 간략히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언어학은 유럽과 미국 전통이 크게 다릅니다. 제가 공부한 유럽 언어학은 기호학적으로 접근합니다. 반면에 미국은 언어학의 뿌리가 인류학입니다. 인류학과에서 언어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지요.

50년대 중반 노엄 촘스키 선생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독립적인 언어학과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기호학은커녕 역사언어학 같은 것도 잘 안 가르치고 순수 논리적인 측면에 집중합니다. 기호학은 커뮤니케이션이론이나 문학 이론 쪽에서 가르치는 정도이지요.
촘스키 선생의 기본 가정은 언어 구조라는 게 사회적 맥락이나 문화적 양상과는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것은 언어에서 아주 이질적인 것으로 보고, 오로지 언어 구조 자체만 보는 거죠.

소쉬르 선생도 언어의 내적 구조를 보지만 굉장히 신축적이에요. 역사와 문화를 다 아울러서 파악하지요. 또 언어를 사회적 제도라고 봐요. 그래서 얼굴 표정이나 옷, 예의범절, 그런 것을 다 관념과 생각을 표출하는 기호로 보고 '세미올로지(Semiology)'라고 해서 기호학으로 예견한 거죠. 상세한 이론까지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엔 기호학이라는 게 없었죠?

소쉬르 선생 본인도 '세미올로지(Semiology)'라는 말을 처음 지어낸 것이라고 했어요. 어원으로 보면 존 로크가 '세미오티케(semeiotike)'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지요. 그보다 앞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성 어거스틴에 이르는 기호학의 역사가 있어요.

학문 내용으로 보면 25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왔는데 그걸 기호학이라고 명명한 학자는 소쉬르와 미국 철학자 퍼스였어요.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가운데 거의 동시에 기호학을 시작했지요. 소쉬르는 '세미올로지', 퍼스는 '세미오티케(Semiotike), 세미오틱스(Semiotics)' 등으로 불렀어요.

-최근에 나온 책을 보니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라다더군요. 1866년에 파리언어학회가 언어 기원에 대해 온갖 설이 난무하자 연구를 금했지요. 또 비교적 최근인 2014년 5월 학술지 '심리학 최전선(Frontier in Psychology)'에 실린 '언어 진화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language evolution)'라는 공동논문에서 촘스키를 포함한 학자 8명이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관해서는 답을 얻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더군요.

거기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은데.. 1866년 파리언어학회는 세계 최초의 언어학회였어요. 그때 세계 최초 인류학회도 생겼죠. 파리가 지식의 정점이었던 거죠. 18세기에 언어학의 100년 논쟁이 대부분 언어 기원에 관한 사변적 성찰로 흘렀어요. 콩디악, 헤르더, 루소 같은 당대 최고 지성이 견해를 내놨는데 루소가 쓴 '언어기원론'이 백미죠.

하지만 증명할 길이 없잖아요. 19세기에 와서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중대 전환점이 산스크리트어 발견이었어요. 영국 언어학자 윌리엄 존스가 동인도회사 대표로 나갔다가 산스크리트어를 보게 됐는데 그리스어, 라틴어와 너무 똑같은 거예요. 인도유럽어가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걸 발표하면서 역사언어학의 기폭제가 됐죠. 이건 과학적인 연구 결과니까.

18세기 내내 언어기원에 몰두했다면 19세기는 언어 비교역사 연구가 붐이었죠. 그러다 20세기로 오면서 소쉬르가 21살 때 엄청난 대작을 냈어요. '인도유럽어의 원시 모음 체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인데, 20여 개 언어 자료를 수집해서 인도유럽어의 모음체계를 독창적인 연역적 추론으로 구성을 해냈어요. 그게 소쉬르가 죽은 다음에 힛타이트어 같은 게 발견되면서 증명이 돼버렸어요.

그런데 소쉬르는 인도유럽어를 연구하다가 중반에 가서 헛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어의 역사가 뭐 중요한가, 말하는 사람 의식 속에 역사가 어디 있나, 의문이 든 거죠.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언어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연구하는 것이라면서 패러다임을 전환해요. 자기부정을 감행한 거죠. 그 때문에 학문 메카인 독일에서 미움을 많이 받았어요. 너무 급진적이라고. 파리로 돌아와서 10년간 강의하다가 고향 주네브 모교로 갔어요.

하지만 기원을 어떻게 빼놓을 수 있겠어요. 그 뒤로 진화론이며 인지과학이 발달하고, 고고학의 성과도 나오고 하니까 언어의 기원은 계속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어요. 저는 진화언어학, 진화인문학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생겨났죠.

그 성과가 40년간 엄청 쌓여있어요. 문제는 기록으로 남아야 하잖아요. 결정적인 약점이죠. 문자나 그래픽으로 남은 것은 3만6천 년 전 쇼베 동굴벽화예요. 그리고 1만8천 년 전 라스코 동굴이 있죠. 문제는 1940년에 발견된 라스코보다 1995년에 발견된 쇼베가 더 오래됐는데 훨씬 더 화려해요. 처음엔 다들 거짓말이라고 했을 정도예요. 방사선탄소 기법으로 시기가 입증되면서 의혹이 가라앉았죠.

쇼베 동굴 벽화

라스코 동굴 벽화

촘스키 같은 경우에는 언어 연구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어요. 구조, 사용, 기원. 자신은 평생 구조만 연구했어요. 하지만 이건 저만의 가설인데, 선사시대 쇼베 동굴 주인공이 호모 사피엔스거든요. 말만 한 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 솜씨와 말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거죠. 촘스키는 오직 음성언어(말)에만 주목했거든요. 그래픽에는 무심했어요.

하지만 저는 유기적으로 다 연관돼 있다고 봐요. 말을 못하면 수화로 하잖아요. 수화로 할 때 신호체계가 작동하잖아요. 지금 말을 받아적는 것도 일종의 신호 변환이거든요. 귀로 듣고 문자로. 이게 다 연결돼 있잖아요. 그런데도 현대 언어학은 음성언어만 떼서 연구하는 거예요. 왜 그래야 하죠? 저는 그 대전제에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음성언어로만 보는 것은 협소한 줄 알겠는데, 범위를 확장하다 보면 어디까지 언어로 포함시킬지도 의문이네요.

그게 기호학이죠. 소쉬르 선생의 사상인데 생각,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모든 수단을 연구 대상으로 보는 거죠.

-그러면 동물들 나름의 소통 방식도 포함되나요?

맞아요. 동물언어로 들어갑니다.

-컴퓨터 언어도?

당연합니다.

-그러면 너무 확대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 면이 있지요. 선택의 문제입니다. 너무 좁혀서 폐쇄적이 돼서 망할 것인지, 너무 확장해서 망할지. 중간은 없습니다. 물론 약간의 절충은 있을 수 있겠죠. 양쪽 다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저는 확장이라기보다 다원주의(pluralism) 입장입니다.

자크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서 60년대에 이미 언어 인플레이션이라고 했어요. 저는 언어를 문자언어, 그래픽언어, 디지털언어에도 붙일 수 있다고 봐요. 새로운 언어가 나타나고 있잖아요. 이건 정치적인 거예요. 누가 정의를 독점할 수는 없지요. 누가 정답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에요. 태도의 문제이지.

-그래도 최소한의 합의된 경계선이 필요하지 않나요?

저는 춤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바디 랭귀지'라고 하지 않나요?

바디랭귀지죠. 저는 이 책에서는 음성언어와 그 다음으로 수천 년 이어져온 그림과 그래픽을 포함시켰어요. 그림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아이들을 보면 쓰기 전에 그림을 그리잖아요. 반면에 그림에 관심 있는 동물은 없어요. 촘스키는 동물언어와 기계언어는 배제해요. 인간 언어는 너무나 창의적이어서 동물언어도 기계언어도 못 따라 온다고 봐요.

진화학자들은 인간 언어도 동물에서 점차 진화해서 온 것이지 갑자기 만들어질 수 없다고 보는 반면, 촘스키는 불연속론자, 단절론자예요. 인간 언어는 조금씩 진화해서 생길 수 없는 것이라고 봐요. 기계언어나 인공언어도 인간언어의 통사능력은 못 따라올 거라고 보지요. 저는 이 두 문제에 대해 답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촘스키도 동물에 대해서는 몰라요. 최근에 영장류나 돌고래, 특히 문어에 관한 연구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고 있어요. 저도 깜짝 놀라요. 동물 언어나 소통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언어학이나 인문학을 하는 것은 인식론적 빈곤이라고 봐요. 그런 분야는 모른 채 인간의 고유성을 이야기하면 대화가 어려워요.

이미 인간세계와 자연세계는 분리하기 어려워요. 인간과 자연과 동물은 뗄 수 없는 관계에 들어가 있거든요. 그런데도 우리 인문학계는 동물 세계에 대해서는 지식도 관심도 없어요. 동물학과는 인간을 배제한 채 동물 자체를 연구하지요. 그래서 학제적 연구가 필요해요. 자크 데리다가 마지막 쓴 논문이 동물론이었는데, 너무 후회스럽다고 했어요. 왜 좀더 일찍 동물에 관해 철학적 사유를 하지 않았을까 탄식했어요.

인공지능의 세계는 더 요지경이에요. 제가 서사에 관심이 많아 가르치는데 그전까지 서사는 인간의 고유성으로 봤거든요. 그 전제가 이제는 저도 헷갈려요. 인공지능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 보니까. 최근에 관련 논문을 준비하면서 봤거든요.

외국 공대 교수들이 언어학자 그레마스, 소쉬르 이론, 이런 걸 다 꿰고 있더라구요. 그걸 모델로 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회사를 세웠는데, 여기서 영화 시나리오 만드는 기계 진화 속도가 이제는 사람이 만든 거랑 구분 못할 정도가 된 거예요. 조만간 알파고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서사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간 문제 같아요.

-그동안 인간의 고유함으로 간주해온 경계 자체가 인간중심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둘 와해되는 것 같아요. 인공지능이 모방에 이해서든 자기학습에 의해서든 빠른 속도로 인간의 능력을 잠식해들어온다면 휴머니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60년대에 이미 '인간의 종언, 죽음'이라는 말을 푸코나 데리다가 했죠. 물론 그때 인문 지형에서 휴머니즘의 종언은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죠.

미셸 푸코

-그렇죠. 그땐 인공지능도 출현하기 전이고, 동물에 대한 이해도 깊지 않았고. 서양사상사적 전통에서 '주체의 죽음'이었지요.

그렇죠. 그때는 철학적 사유 내에서 휴머니즘의 죽음이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어요. 갈수록 이 자연세계, 환경생태계, 인공지능의 세계가 확장되고 있는데, 이게 학문적인 독서의 격자로 읽히지가 않거든요. 아까 말한 서사 같은 것도 기본 전제가 기계는 도저히 못 만들 거라고 봤던 건데 지금 만들고 있거든요. 더 잘 만들 거고.

-'언어인간학'이라는 책을 쓰실 때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고유함을 말하려고 하신 것 아닌가요

어려운 질문인데.. 그 인간의 고유함이라는 게 참 어려운 문제거든요. 저는 고유함이 있긴 한데 좀 더 다원적으로 보자는 입장입니다. 인간의 고유함이 있어야 인간학이 성립하겠죠. 그런데 그 고유함에 대해 한번쯤 재고해보자, 기존 학문체계를 해체하고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부터 차례로 호모 그라피쿠스, 스크립토르, 로쿠엔스, 디지털리스로 명명하셨는데요.

제일 중요한 기점이 호모 사피엔스인데 화석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서 유동적이긴 하지만 일단 30만년 전쯤이에요. 지금 말한 상징체계, 가상체계,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만드는 능력을 보인 시기는 10만 년-5만 년 전으로 추정해요. 그런데 3만6천년 전 쇼베 동굴 벽화를 보면 그게 처음이 아니라 절정기의 것임을 알 수 있어요. 5만 년 전의 기호도 출토됐어요. 사피엔스 단계에 완전한 상징 체계로 그래픽을 구사했어요.

-말과 글의 선후 관계는 어떻게 보세요?

동시라고 봐야죠.

-근거는 뭐죠?

아기를 보세요. 말 옹알이를 시작하는 시기와 그림을 그리는 시기가 똑같아요. 이건 본능이에요.

-둘 다 의사표현이라는 점에서?

그렇죠. 촘스키 선생이 보편문법 이야기를 했잖아요.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도 프랑스에 가면 자연스럽게 그나라 말을 배워요. 애들은 한국이든 프랑스든 사회환경에 따라 언어 코드만 바꿔주면 돼요. 지금 태어난 아이는 전 세계 존재하는 7500개 언어 어떤 것이든 다 배울 수 있어요. 그걸 관장하는 삶의 시스템이 있고 이걸 인류의 생래적 능력으로 보는 거죠.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세 살쯤 되면 다 그려요.

그 다음에 문자가 탄생합니다. 이미지 같은 것은 전 세계에 걸쳐 기원전 만년에서 7-8천년까지 올라가는 것은 무지 많아요. 우리나라 울주 반구대암각화 같은 것은 비일비재해요. 오대양 육대륙에 다 있어요.

문자만 해도, 지금 가장 오래된 것이 3600-37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나온 쐐기 문자인데 어느날 갑자기 출현했다고 보는 것은 좀 이상하죠. 점진적인 뭔가가 있었을 거라고 봐야죠. 물론 문자와 그래피(graphy, 낙서)는 달라요. 문자는 엄청난 추상적 체계이기 때문에 한 단계 더 인지적 도약을 전제로 하는 거거든요.

-흔히 최초의 문자는 상업적 행정적인 용도에서 사용됐다고들 하는데요, 선생님은 책에서 이견을 제시했지요.

지금까지 정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온 최초 문자가 상업적인 것이었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최근 이집트 학자 연구를 보면 권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의 문헌이 더 빠른 것으로 나와요.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게, 페르시아에서도 내가 여기를 정복했다는 과시용 기록이 발견됐어요. 문자는 기본적으로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요.

그런 점에서 레비 스트로스의 말이 맞아요. 문자는 지식(확산)혁명을 가져왔다기보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먼저 사용됐다는 겁니다. 스트로스는 인류 문명에서 진정한 혁명을 신석기 혁명으로 봤는데, 농사가 시작되면서 잉여가 생겼고, 자연을 관찰했고, 문자가 생기면서 사유재산이 심화되고 가신, 사제, 권력 집단이 생겼다는 가설을 내놨죠.

실례로, 남미의 추장 이야기를 하는데 글쓰는 법을 가르쳐주니까 선 긋기를 시작하더니 족장을 불러서 과시를 하더라는 거예요. 아는 척을 하는 거죠. 이게 일만 년 전 최초 문자 사용의 모습일 거라고 이야기해요. 처음 배운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과시한다는 거죠.

문자 자체를 깨치기는 쉬워요. 알파벳은 한 시간이면 배워요. 그런데도 알파벳이 보편화된 데는 2천년이 걸렸어요. 종교혁명도 성서 해석을 독점하고 있는 데 대한 반발로 나왔지요. 그게 문자에 담긴 권력의 속성이에요. 그런데 최근에 발굴된 최초의 문자마저도 상업이 아니라 궁전에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썼다는 거예요 아쉽게 우리나라는 최전선 연구자가 없어서 저도 간접적으로 연구 결과를 인용해서 쓴 부분이에요.

-그런 다음에는 서사가 등장하고 인간의 사고가 심화되는 수순으로 간 건가요?

그렇죠.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가 최초의 서사로 꼽히잖아요. 다만 문자와 서사는 다른 문제예요. 문자 없이 구술로도 서사는 가능해요. 문학은 문자를 전제로 하지만 꼭 문자가 있어야 문학이 가능한 건 아니예요. 오히려 문자가 발명되면서 먼저 나온 것은 법제였어요. 성문법을 통해 사회 규칙을 정하기 시작했지요. 문자혁명은 국가 성립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인지 혁명도 중요하게들 보지요. 문자해독(literacy) 혁명. 논리적 추상적 사고도 문자를 통해 가능해졌다는 이야긴데, 사실 이 부분도 의견이 엇갈려요. 구술로도 얼마든지 문자에 버금가는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어요.

월터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이분법에 대해서는 반론도 많아요. 아직 결론을 못 내린 것이 고대 그리스의 지적 혁명인데 그때 철학, 문학, 기하학이 가능했던 것은 페니키아에서 문자를 들여와서 사용한 결과라고 봤는데, 그전 시기에 이미 문명이 꽃을 피웠다는 반론도 있어요. 문자 사용을 문명의 척도로 삼는 것도 결론 못 내렸어요. 누구도 확실하게 단정 못 해요.

-과거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 갔다가 최근에 다시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구술 문화가 복귀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책과 같은 긴 텍스트를 피하고 단문을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60년대부터 책은 죽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런데도 건재했지요. 제 책에도 썼는데 오히려 세계적으로 도서관을 더 많이 짓고 있어요. 사람도 더 많이 모이고. 가상공간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회 참여자는 더 늘고 있어요. 그러니 기술결정론으로 예단하기는 힘들어요. 문자의 경우 하이브리드를 채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요.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와 텍스트가 융합되는 과도기적 행태를 보이고 있고 문자가 구술화되고 있어요. 그런 기술적인 분야는 제 연구 영역은 아니에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하이퍼미디어에서 핵심은 물적 집적체라는 것의 의미를 없앤 거예요. 하버드 도서관이 얼마전에 지하 8층까지 파들어갔더군요. 또 언젠가 다 차겠죠. 인류에게 가장 큰 문제가 저장이었어요. 하이퍼 시대의 핵심은 이런 저장의 문제를 해소한 거예요. 저도 박사학위 심사 논문을 아이패드에 담아 들고 다니다 보니 왜 이렇게 편한 걸 진작 안 했나 싶더군요. 도서관 문명은 지속가능한 건 아니에요. 요즘도 책을 소각한다고 해요. 이런 저장 문제를 단숨에 클라우드로 해결했지요.

물론 이 말도 절반만 맞아요. 클라우드도 완전한 가상은 아니에요. 어마어마한 데이터센터가 따로 있지요. 우리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어딘가에 천문학적인 부피를 차지하고 있어요. 프랑스 도서관장 말로는 디지털 유지 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강조하더군요. 그러니 이 문제도 더 지켜봐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더 이상 물리적인 것을 갖고 다닐 필요는 없어졌죠. 그리고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증강했지요. 그런 점에서 세 번째 혁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자 혁명, 쿠덴베르크 활자 혁명, 디지털 혁명이지요.

-정보 과잉도 요즘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제 책 마지막 부분에서 잊힐 권리를 이야기했어요. 유럽에서는 도입했고 우리도 법제화를 준비 중인데 쉽지 않은 모양이에요. 저는 인간학적 관점에서 보는 거죠. 흔히 과거를 망각하면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인간이 망각하지 못할 때는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소설에 이런 게 나와요.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병을 얻는데 모든 걸 다 기억하는 증상이 나타난 거예요. 그러자 이 사람이 결정을 못해요. 아무것도 못 해요. 인간에게 망각이 왜 중요하냐면 용서 때문이에요. 용서를 하려면 잊을 수 있어야 하거든요. 디지털의 운영 단위가 전대미문의 규모인데, 기억의 용량 자체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어느 순간까지 커버할 수 있을지도 문제죠.

-우리의 기억 활동도 사실은 매번 재구성, 편집되는 거라고 하잖아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게 의미 있는 기억이 될까요?

기억도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 기억, 개인적 기억으로 나뉘는데 디지털 기억이라는 것은 제 4의 범주 같아요. 사회적 기억 그 이상 같아요. 생물학적 기억은 적정 시기에 잊히게 돼 있고, 개인적 기억은 삶 속에서 추억으로 남을 뿐이고, 사회적 기억은 기념일이나 역사로 남죠.

하지만 디지털 기억이라는 것은 망각할 줄 모른다는 데 문제가 있죠. 과잉 정보라든가 정보 비만 같은 메타포가 나오는데, 망각할 줄 모르는 기계가 우리의 망각과 기억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잊힐 권리라는 것도 등장했잖아요.

-이번 책을 보면 사피엔스와 한때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것도 언어와 관련성이 있다고 나오더군요.

거기엔 식인설 등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저는 언어 요인으로 보는 거죠. 사파엔스처럼 언어로 소통되는 족과 그게 안 되는 족 간에는 경쟁이 안 됐을 거예요.

-차이가 발성 구조에 있었나요?

그렇죠. 사피엔스는 발성 구조가 완벽한 수직이었던데 반해 네안데르탈인은 조금 미진했어요. 매장 문화도 있었던 걸 보면 상징적인 활동의 문턱까지 갔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피엔스처럼 작전 같은 것을 구사할 정도가 못 됐던 거죠. 아마 네안테르탈인은 초보적인 언어와 몸짓을 함께 구사했던 것 같고, 사피엔스는 몸짓 없이도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생존에 우세했을 거예요.

-네안테르탈인의 언어 구사 능력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더군요.

누구도 단정할 수 없어요. 최초 인간은 울부짖었을 테고 처음엔 손짓발짓 섞어가며 소통하다가 어느 순간 언어 능력이 폭발했겠지요. 본질적으로는 이중분절음이 관건인데 사피엔스만 가능했을 거예요. 의미와 소리의 결합 능력이 정교해지면서 소통 능력, 협동력의 차이로 귀결된 거지요.

재잘대는 인간, 호모 나랜스(Homo Narrans)가 등장한 거죠. 최근 설명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은 자기 정보를 남에게 알려주지 않아요. 인간만이 정보를 타인에게 나눠주고 받으면서 상호성이 발달했다고 보는 거죠.

-언어가 본질적으로 권력과 관계 있다고 썼더군요.

언어가 권력 행사라는 것은 미셀 푸코의 핵심 테제지요. 말년에 고대 그리스의 언어 사용에 주목했어요. 특히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뜻하는 '파레시아'(parrhesia)와 경청 사상. 파레시아는 동양에서는 직언이죠. 천년 동안 잊힌 단어였어요. 그걸 왜 연구했을까. 목숨을 걸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아들이 아버지에게, 신하가 왕한테는 해당되지만 그 반대는 아니에요. 권력의 문제지요. 그걸 발견하고는 그것만 연구했어요.

-초기의 문자가 권력의 과시였다는 것은 최근 연구인가요?

문자가 권력의 과시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권력의 과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최근 이집트 문자 연구를 보니까 그렇더라는 거죠.

-대학에 들어가서 교양 국어 시간에 교수님이 세종의 한글 창제를 두고 권력 관계로 설명한 것이 기억나는군요. 그전까지는 한글 반포를 세종의 애민사상으로만 이해하다가 지적 충격을 받았어요.

아마 학계 주류에서는 들고 일어날 거예요. 얼마전에 고려대 정광 명예교수가 '한글의 발명'을 냈잖아요. 한글과 몽골 파스파 문자를 비교한 건데 비슷해요. 옛날엔 가설이었는데 직접 런던 영국도서관 가서 몇년 동안 연구했죠. 한글은 한자음 표기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했는데 주류 학회에서 비판을 받았죠. 한글의 독창성을 훼손한 것처럼 수용이 됐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덧붙이자면 저도 한글의 도상성에 관해 연구한 것을 독일에서 나온 책에 발표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 한글창제 해례본과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를 놓고 나란히 비교해서 설명했어요. 15세기에 일어난 동시대 사건이거든요. 10년 밖에 차이가 안 나요. 그런데 문자 사상사를 보면 백성을 어여삐 여겨 소통수단으로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있기 어려운 일이에요. 관념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한글도 보조수단으로, 한자의 발음기호로 만든 게 분명해요.

세종이 위대한 왕인 것은 틀림없어요. 놀라운 게 한글 창제 후에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같은 책을 찍으면서 새 활자 꼴을 만들었어요. 문자를 만들면서 새로운 타이포를 만들었어요. 서양만 해도 오래 필사로 해오다가 타이포를 만들었어요. 한글은 문자를 발명하자마자 새 타이포에 담았어요. 유례가 없는 일이에요. 활자꼴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게 해례본이에요. 지금도 그런 게 안 나와요. 해례본에 한글과 한자가 온전히 스며들어가 있어요. 세종은 문자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활자 만든 왕이라는 점이 부각이 안 됐어요.

그런 세종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책은 100부밖에 안 찍었어요. 그 말은 세종조차도 책은 국가 독점 시스템으로 둔 거예요. 백성은 근본적으로 교화의 대상으로 본 거예요. 백성에게 지식을 줘서 맞먹게 한다는 것은 서양에도 없었어요. 구텐베르크 활자가 보급되고 나서야 지식혁명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갑자기 임금이 문자를 발명해서 백성에게 나와 토론해보자고 한다? 이건 사실과 너무 거리가 먼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세종이 집권 초기에 한글을 만들었으면 그 후 상황 전개를 보고 의도를 우리가 파악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알다시피 한글 창제 후 3-4년 후 돌아가셨으니 정확한 의도는 알 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팩트는 가장 위대한 문자, 가장 아름다운 활자를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문자를 만든 의도가 모든 지식을 백성과 나누기 위해서라는 것은 사실과 달라요. 한글 창제 후에도 500년간 엘리트가 독점했잖아요. 보편적인 문자교육, 읽고 쓰는 능력 교육은 서양도 17세기 와서 시작됐어요.

-디지털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고도 얕아지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인간학의 입장에서 그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기보다 중립적으로 봅니다. 디지털 시대는 그래픽 시대로서 선사시대의 회귀라고 책에도 썼지요. 인간은 원래 이미지를 사랑해요. 그러니 영화를 만들었잖아요. 다른 동물도 그런지 모르겠어요. 이미지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에요. 디지털 시대에 이미지와 영상으로 가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지요.

이미지와 문자의 가장 근원적인 차이는 세 가지예요. 인류는 문자 문화로 오면서 세 가지를 잃었어요. 첫째, 직선적 사유가 됐어요. 반대는 다차원적 사유예요. 아인슈타인만 봐도 비슷한 물리학자는 수천 명이었는데 직선적 사고로는 돌파구가 안 나왔어요. 다차원적 사고였으니까 가능했죠. 다차원적 사유라는 것은 어디에서 답이 나올지 몰라요. 이미지를 보세요. 그 자체가 다차원적이에요. 문자 시대로 가면서 그걸 잊어버린 거죠.

두 번째는 표음화예요. 알파벳 글자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죠. 반대가 한자나 이집트의 상형문자 같은 거죠. 이집트는 특히 가장 오랫동안 그림 문자를 고집했는데 결국 사라졌지요. 한자는 흔적은 좀 남았죠.

세 번째, 추상화예요. 이미지는 구체적인 반면 문자는 추상적이에요. 디지털 시대는 어떤가. 다시 되돌아가는 경향을 보이죠. 다차원적으로, 이미지로, 좀더 구체적으로, 표음보다 뜻글자 같은 것들, 이모티콘이나 이모지 같은 걸로 가는 거죠.

-사고 경향도 문자 이전으로 가게 될까요?

더 지켜봐야죠. 그건 예민한 질문이어서.. 책의 우수성을 전제로 했을 때는, 책과 문자를 경시하면 뭔가 도태될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것만 해도 문자 중심 사고지요. 문자 없이도 문명을 구축한 시도들이 있었거든요. 책을 통한 보편적 문해력(리터러시)가 인간을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가 휴머니즘적 '독사(doxa, 억견)'이죠.

-그 부분이 물음표로 남아요. 책을 중시하는 태도 역시 어떤 시대적인 것이고 그것을 고집하는 것은 경직된 측면이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밀려나거나 약화되도 좋은 것인가 말이죠. 가령 이미지나 영상으로 가더라도 그것에 대한 평론은 결국 글로 쓸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학문 활동도 그렇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도 말로는 구술과 영상 시대를 이야기합니다만, 문자 중심으로 살고 있거든요. 가령 입학생 면접을 보는데 압도적으로 말을 잘하는 학생과 어마어마한 지식을 쌓은 학생 중에 누굴 뽑을 것인가. 지금 우리가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사실 앞으로 어떤 인간이 만들어질지 몰라요. 당장에는 책을 모르면 대학도 못 가게 돼 있죠. 이 세대가 더 갈 거예요.

하지만 포스트-디지털 시대에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몰라요. 우리가 보편적 문해력을 누리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돼요. 서양도 17세기로 잡으면 삼백년 역사밖에 안 돼요.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예요.

문학사상 7월호에 책의 운명에 대해 글을 쓴 게 있어요. 책 없이 인문학이 가능한지, 책이 꼭 필요한 건지. 제가 말한 책은 매체로서였어요. 내용은 당연히 있어야죠. 무겁고 버거운 부피의 책에 대해 썼는데, 제 연구실이 15평인데 6-7천권으로 꽉 찼어요. 꿈의 장서가 만권이라잖아요. 3만권이 있는데. 어떻게 할지 고민이에요.

어느 한순간 물리적인 책이 마이너 기술로 물러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분기점이 되면. 그게 언제인지는 누구도 예측을 못하죠. 사회적, 정서적 요인이 결합하고 디지털 네이티브가 주류가 되면서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책을 클라우드로 보지, 왜 들고 다니느냐고 하겠죠. 물리적 소재의 책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가설은 오래 못 갈 것 같아요. 백년 안에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백년의 시간이면 훨씬 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인간 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를 테니.

-디지털이라는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이것을 주도하는 산업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지 않나 싶어요. 가령 플랫폼 기업들이 콘텐츠 품질과는 무관하게 규모를 늘리고 산업적으로 독과점과 우위를 강화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지요.

산업의 측면은 조심스러워요. 인문학의 취약점이기도 하죠. 산업에 대한 인식이 약해요. 대학에서 그 부분에 대한 교육이 약해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파베르라고도 하잖아요. 인간 역사는 산업의 역사거든요. 학자들은 물질 측면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산업은 물질의 문제를 다뤄요.

산업과 인문학의 갭이 너무 커요. 세상을 산업이 주도하고 있는데, 인문학도 경제학과 산업을 알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너무 관념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공부를 하게 돼요. 저는 그런 교육을 못 받았는데 필요하다고 봐요.

-번역도 많이 하셨는데, 인공지능 시대 번역의 미래는 어떻게 보세요?

그것도 말하기 힘들어요. 10년 전만 해도 힘들 거라고 했는데 지난번 번역 대결 보니까 전문가의 60% 수준까지 왔더군요. 사실 음성 인식만 해도 언어학적으로 기계가 알아듣긴 불가능할 거라고 봤어요.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추상화시켜야 하거든요.

반면에 기계는 물리적 주파수에 맞추는 거니까, 조금만 벗어나도 읽지 못해요. 인간은 감기로 목소리가 바뀌거나 발음이 서툴러도 알아들어요. 추상화해서 이해하니까. 기계는 물리적 정확도가 중요하다고 봤죠.

그런데 음성인식 서비스 나온 걸 보니까 가능해졌더군요. 추상이 아니라 엄청난 데이터를 융합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어요. 번역도 영어 텍스트가 엄청나게 많으니까 일취월장하고 있죠. 시간 문제라고 봐요. 다만 인간처럼 감정이입을 통해 감동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문제는 남겠죠. 문학 쪽은 어렵겠지만, 최소한의 솔루션은 인간을 능가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60년대에 이미 프랑스에서는 "만약 연극작품이나 시를 쓸 수 있는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인류는 계산이 끝난 것"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그때가 되면 딱히 휴머니티라고 할 만한 뭐가 있겠느냐는 뜻이죠. 일단락될 거라고 본 거죠.

-시를 휴머니티의 정점으로 본 거군요.

네. 저로서는 흥미롭게 지켜보는 입장입니다. 제가 흐름을 막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다양한 현상들에 흥미를 갖고 목격하고 기록하고 설명하는 거죠. "영상시대는 나빠" 이런 규범적 태도는 아닙니다. 큰 흐름 속에서 인간 본성, 본질은 뭐였는지 보여줄 뿐입니다. 그전까지 미시적으로 보던 것을 터널을 뚫어서 언어의 다른 풍경을 제시한 거죠.

-전망에 대해서는 열린 입장이라는 거지요?

네. 이번 책은 강의를 묶은 거예요. 문자인문학에 대한 책을 쓴다면 천 페이지 이상 나올 거예요. 호모 그라피쿠스도 더 나올 거고. 언어지정학도 있어요. 한국인들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지정학적 사유가 약하다는 거예요. 제 책에서 사실 가장 강조한 것 한 단어만 꼽으라면 지정학적 사유예요. 지정학적 사유라는 게 꼭 정치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이런 인문적인 것에 대해서도 지정학적 사유가 필요해요.

그저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보니까 '문자의 지정학'이라는 글을 어떤 필자가 잘 썼더군요. 전 세계 23개 주요 문자 지도를 다 그렸더라구요. '제국의 후예들'은 그렇게 사유하거든요. 제 책의 내용이야 풍경을 제시했지만 행간의 의미는 지정학적 사유를 하라는 게 메시지예요. 단위를 지구로 삼아라,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봐라. 한국 인문학의 약점이 지정학적 사유를 막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유하는 사람은 돈키호테 취급을 받기 십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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