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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미니북]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의 정체성 2' 출간한 철학자 탁석산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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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의 [미니북]은 손바닥 안의 책 한 권입니다. 화제의 저자 인터뷰를 비롯해 긴 호흡의 글을 전합니다.


오늘은 한국의 정체성(Identity) 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해온 철학자 탁석산 박사와의 인터뷰입니다. 탁 선생은 2000년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의 주체성'을 잇따라 출간해 주목을 받은 후, 2004년에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2008년에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각각 펴냈습니다. 얼마 전에는 후속 신작 '한국의 정체성 2'를 들고 다시 독자를 찾았습니다.


그가 이런 문제에 그토록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번 책과 그간의 저술을 통해 우리 사회에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그 밖에 그의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들을 물었습니다. 긴 글입니다. 느긋하게 따라 읽어내려 가보시기 바랍니다.


거론되는 많은 쟁점들이 찬반 여부를 떠나 숱한 생각을 유발합니다. 그것이 철학의 사명이고 자신의 역할이라고 그는 강조합니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과연 한국적인 것이 존재하는가? 있다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표어가 과연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보는 것도 이 책의 과제 중 하나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세계화 시대에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교류가 잦아지고 다른 사람이 갖는 힘이 강할수록 우리는 과연 자신이 누군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청바지 입고 코카콜라 마시며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국의 주체성을 주장할 수 있다면 어떤 근거에서 가능할까? 일본 가요가 우리의 가요시장을 점령한다면 일본 가요가 우리 가요가 되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한국의 정체성에 관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의 정체성'(2000) 중에서
이번 책에서는 역사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남이 생각하는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다뤄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체성에는 과거에 우리가 겪은 일들, 즉 역사가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과거의 역사로 눈을 돌리되, 그 역사 속에서 남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았는가를 다뤄본 것입니다... 또한 이에 더하여, 정체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고찰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 만들기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했습니다.

이 책에는 네 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1화는 노나라의 유학자 재아가 들려주는 공자에 대한 이야기, 제2화는 송나라의 문신 서긍이 들려주는 고려와 조선에 대한 이야기, 제3화는 일본의 정치가 사이온지 긴모치가 들려주는 패전 후 일본에 대한 이야기, 제4화는 한국에 파견되었던 미 군정단 소속 장교가 들려주는 한국전쟁 때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2화와 제4화가 타자가 본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제1화와 제3화는 정체성이 어떻게 발명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정체성 2'(2016) 중에서

-일찍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해 오셨지요. 일과는 어떠신가요?

노동자처럼 일해요. 아침에 광화문에 작업실이 따로 있어서 출근해서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해요. 밤에는 쉬어요. 주말에도 놀고. 노동자하고 똑같아요.(웃음)

-강연도 많이 하시나요?

강연은 가끔 하지만 많지는 않습니다. 주로 글을 씁니다. 쓰는 데 들이는 시간에 비하면 결과물이 빈약한 편이죠.(웃음)

-지금까지 책은 얼마나 쓰셨죠?

1년에 한 권꼴로 쓰고 있습니다. 16년째 써왔습니다.

-주로 어떤 것들을 써오셨지요?

한국에 관한 것과 청소년 대상으로 한 실용서 두 가지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 2까지 상대로 한 글쓰기와 논리학, 직업 안내서. 그 외에는 주로 한국에 관한 이야기들이죠.

-학술적인 책과는 별도로 실용서를 써오신 것은 생계의 필요와 관계가 있나요? 아니면 나름의 학문적 전략이 있어서인가요?

일부러 갈라서 시작했죠. 왜냐 하면 사실, 실용서라고 해도 그게 다 교육에 관련된 거거든요. 마구 팔리는 쉬운 실용서는 아니예요. 직업이라든가 글쓰기에 관한 주제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썼고요. 한국적인 것과도 연결되긴 하지만 구태여 연결시키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직업 안내서 경우는 중고등학교 교과서 여러 군데에도 실렸고 나름 반향이 있었어요.

-일찌기 철학박사 학위도 받으셨는데 학교로 가실 생각은 안 하셨나요?

교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저는 전혀 가능성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죠?

제 성향 같은 걸 생각하면... 교수들이 좋아할 타입이 아니었으니까.(웃음)

-그래도 생계 문제도 있었을 텐데, 각오를 하셨나요?

그거야 당연하죠. 그땐 특별히 인생에 기대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어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웃음)

그것도 어떻게 되겠지, 생각했어요. 특별히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쓰신 책 후기를 보면 후원해주는 친구가 있는 모양이던데요?

네, 고등학교 친구예요. 시골의사면서 조그만 제약회사... 생활비를 많이 대주죠. (웃음)

-그러니 교수를 안 하셔도 됐겠네요.(웃음)

그건 아니고, 교수는 성향이 안 돼서 그랬던 거고. 그 친구 입장에서는 재수없게 저한테 얽힌 거죠.(웃음) 별 생산성도 없는 작가인데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저도 특이한 사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고등학교 때 아무 생각 없고 철 없을 때 만난 사이고 여태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그 친구 도움 없었으면 이런 책들 못 썼을 거예요. 한국에서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그냥 책 읽고 글만 써보겠다는 결심을 하기 어렵잖아요.

-전업작가로 그 정도 쓰시는데도 어려운가요?

책만으로는 어렵죠. 강연도 하긴 하는데. 제가 '주최측'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는 타입이 아니어서.(웃음) 회사 같은 데 가면 열심히 일하는 법, 성공하는 법 이런 걸 이야기해야 하는데 저는 좀 비딱하게 이야기하는 편이거든요.(웃음)

-철학은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요?

83년쯤부터? 부전공으로 철학을 했을 때부터였죠.

-서울대에 자연계열로 들어갔다가 중퇴하셨는데 특별한 사연이 있었나요?

한 1년 다니고 나니까 이건 아니구나 싶더군요.

-처음에 자연계 들어가실 때는 어떤 생각이셨나요?

그때는 특별한 생각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이과였는데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그런 생각은 없었으니까. 이과 갈 때는 의사 될 생각을 했죠. 대학 가보니까 자연계열은 아닌 것 같고 해서 다시 외국어대학교 영어과로 갔죠. 부전공으로 철학을 택해서 대학원까지 갔죠.

-한국철학이었나요?

처음엔 근대 서양철학, 영국 경험론을 했어요. 데이비드 흄으로 박사 논문을 썼어요.

-흄 말씀 하시니까, 선생님 성향이랑 좀 이해가 되는 것도 같네요.(웃음... 데이비드 흄은 상식적으로 당연시되는 인과관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냉철한 경험주의자이자 강력한 회의론자다)

하하(웃음)

-첫 책에 이어 이번에 '한국의 정체성'에 관한 후속작을 내셨습니다. 그 사이에도 비슷한 주제인 한국의 주체성과 한국의 민족주의 같은 것들에 대한 책을 내셨고요. 정체성 문제가 줄곧 큰 화두인 것 같아요.

한국에 관한 책을 몇 년에 한 번씩 내왔죠. 처음에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냈고, 몇 년 후에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몇 년 후에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냈고, 이번에 '한국의 정체성 2'를 냈죠.

-서양철학을 하시다가 한국의 정체성으로 온 동기나 관심의 흐름은 어떤 건가요?

원래 한국 문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걸 전공하고 싶었는데 철학과에서는 다루지를 않더군요. 학위 논문으로도 쓸 수가 없었어요. 지도교수와 상의했더니 그런 건 철학이 아니라는 거예요. 할 수 없이 논문은 영국 경험론으로 썼지만 관심은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한국에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시작해서 이어진 거예요.

-보통 청소년기를 보면 자기 정체성으로 고민하는데 선생님은 한국의 정체성을 고민하셨다니 특이합니다.

물론 성장 과정에서는 당연히 자신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죠. 그 다음 고민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게 좀 의심스럽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이었죠. 그게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거죠.

-말씀하신 대로 국내에서 한국철학은 한국의 '현실'을 다루지는 않죠.

지금도 없는 것 같아요. 철학이란 것은 본래 당대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인데 왜 안 할까, 하려고 하면 그건 철학이 아니라고 하고... 이상하다 싶어서 제가 한 거죠.

-그 뒤로 나름의 한국 철학을 해오신 셈인데, 반응은 어떤가요?

제 느낌으로는 철학계는 냉담한 것 같고, 다른 분야에서는 그래도 조금 반응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예를 들어, 제가 한국의 정체성에 관해서 다음 책으로 준비하는 게 있는데, 얼마 전에 더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해서 한국의 근대 가요는 어떻게 된 걸까, 그 역사나 트로트의 정체성 같은 것을 다룬 학술 논문을 찾던 중이었어요.

그 중 한 논문에서 써놓기를, 어떤 저자가 한국 사람의 정체성 기준을 제시한 것이 있는데 나도 그걸 차용하겠다고 썼더라구요. 그게 사실은 제 얘기여서 좀 당혹스럽더군요.(웃음) 그런 분야에서는 약간 읽힌 것 같아요.

-쓰고 계신다는 다음 책은 뭐죠?

소위 '한국적인 것'들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제 책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전개하지 않았는데 구체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한국의 건축, 한국의 미, 한글에 대해서도 쓰고, 한국 철학은 왜 빈약한지, 이 네 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까, 선생님의 첫 책부터 시작해서 개론과 방향을 제시하고 그 뒤로 차곡차곡 작업을 진행해 오신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원래 그런 구상을 갖고 시작하셨나요?

네, 그렇죠. 작업 양도 많고 시간이 필요해서 한꺼번에 쓸 수 없으니까 공부를 해나가면서 쓰는 거죠. 단계별로. 이번에 낸 책은 한국의 정체성이 다른 나라와는 어떻게 되는가를 살펴봤죠. 그 다음 책에서 소위 한국적인 것들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논해보려는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들이 나오면 좀더 본격적인 논의가 벌어질 수도 있겠군요. 사실 첫 책도 그렇고 이번 책도 그렇고, 아주 큰 문제를 제기하긴 했지만 각 책의 내용은 시작하다 마는 듯한 인상을 받거든요. 이번 책도 제목은 한국의 정체성이지만 외국의 시각이나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좀 우회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요.

물론 그런 면이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도 약간의 오해가 있는데요. 철학이라는 게 원래 답이 딱 주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 한국은 철학을 비롯해 모든 인문학이 실용서처럼 변했어요. 손에 딱 쥐어주지 않으면 책이 명료하게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해요.

그런 분위기에 저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거든요. 철학책이라는 게 답이 있는 게 아니에요. 문제가 있고 이게 물을 만한 질문이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는 걸 제기하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 문제를 생각해야겠구나, 왜 생각을 안 했지, 이렇게 만드는 것까지가 철학인데, 우리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왜 답이 없냐고 물어요. 답은 자기가 찾아야 하는 거거든요. 자기가 공부도 하고.

사실 이런 분위기는 집필을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비판은 감내했죠. 제가 생각하는 바는 답이 없다는 것이고, 지금까지는 제 나름의 단계를 밟고 있는 거예요. 아마 다음 책에서 손에 구체적으로 쥐어줬을 때 더 당혹스러워들 할 거예요.

가령 우리가 한국의 미라고 하면 자연미를 대표적으로 꼽잖아요. 수더분하다, 자연스럽다고들 하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논해보자는 거예요. 아마 아무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을 거예요. 과연 그동안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 걸까, 사실은 모르는 말을 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런 물음에서 시작해서, 일본의 여러 작가나 전문가들 견해까지 한국의 미에 관한 논의를 일괄해보면 공통적인 게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전혀 다른 뜻의 얘기를 했고 알지 못하는 얘기였다는 게 드러날 수 있겠죠.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 단계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 하면 이제는 '한국적인 것'이 시원(始源)의 문제는 아니라는(한국에서 유래한 것이 한국적인 것이라는) 생각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거든요.

-네 기대가 되는군요. 이번 책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정체성 2'인데 1권과 연결해서 설명을 해주실 수 있나요?

1에서는 한국적인 것의 기준의 문제를 다뤘죠. 거기서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고요. 이번에 2권에서는 정체성이라는 게, 프랑스 현상학자 메를로 뽕띠가 말한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나도 진정한 내가 아니고, 남이 생각하는 나도 내가 아니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정체성을 다룰 때 남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해서 좀 잊어먹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시각을 빠뜨리고 있다,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간혹 남의 시각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잘됐을 경우에 '이것 봐라, 남들도 인정했다'는 식으로, 보조 역할로 동원이 되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게 굉장히 비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령, 최치원이 큰 학자인데 중국에서도 급제해서 이름을 날렸다고 설명하는데, 참 초라하게 보이더라고요. 그냥 훌륭한 학자면 그걸로 충분한 거지, 왜 꼭 중국에서도 인정받았다고 사족을 붙이는지 그런 태도가 못 마땅했어요.

그러면 그럴 게 아니라 중국에서 진짜로 우리를 어떻게 봤는지 한번 따져보자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우리 모습의 다는 아니더라도 뭔가 드러내는 게 있겠지. 그래서 우리와 연관이 깊은 나라들, 중국과 일본, 미국 이 세 나라가 각각 한국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펴보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남의 입장에서 한번 답해보자 한 게 이번 책이죠.

-정체성이 왜 중요하지요?

자신의 모습을 아는 거니까요. 자신이 누군지. 그걸 알아야 새로 뭔가 시작할 수도 있겠죠. 가령,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패했는데,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받아들여야 건설적인 게 시작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패배가 우리 탓은 아니고 다 남탓이라고 하면 진실이 덮히는 거죠. 그럴 때는 자기가 원하는 정체성만 내세우는 꼴이거든요. 그걸 바탕으로 해서는 발전이 어렵죠. 저는 우리 전체가 그렇지는 않은가 묻는 거죠.

진실을 외면한 정체성 논의가 과연 가능한가, 그러니 진실을 보자는 거죠. 그 진실이라는 게 우리 안에도 있겠지만 밖의 시각에도 있을 거라는 거죠. 양 쪽 다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 이번에는 바깥 얘기를 들어보자는 거죠.

-아까 메를로 뽕티를 인용하실 때 이야기한 '철학적 정체성'과, 지금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정체성은 좀 다른 것 아닌가 싶어요. 전자의 경우에는 정체성이라는 것이 실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인데 반해, 후자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전제가 돼있고 그것으로 우리와 적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명찰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둘은 다르죠. 다른 의미라고 볼 수 있죠.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정체성은 전자에 가깝지 않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만약 그런 철학적인 작업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런 책을 쓰지 않고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에 철학적 탐구를 했겠죠. 그러려면 대학에 남았어야죠. 인과론이라든가 여러가지를 가지고 그 작업을 했겠죠. 그걸 했으면 미국 학술잡지에도 실리고 했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문제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한국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어요. 처음부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철학적 사고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정체성을 철학적 주제로 끝까지 다뤄보겠다는 건 아니었어요.

-이번 책에서 제가 받은 인상은 네 개의 장이 각각 우리가 알아온 정체성의 허상을 부수는 작업 같았어요. 그렇게 보자면 정체성이라는 게 사실은 미궁 속에 있고 늘 형성 과정에 있고 본질적으로 열린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거든요.

그건 맞아요. 1권에서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하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아요. 그래서 이번에 다른 나라들의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서 이야기하면 우리가 알았던 것과 다른 내용도 나오니까 읽는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좀 놀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 고려청자에 대해 중국이 그렇게 높게 평가한 게 아니었나?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것에 대한 자부심에 상처가 될 수 있는 것들이죠.

-그러니까 결국 그동안 우리가 알던 우리 정체성에 대한 허상을 파괴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이번 책까지만 봤을 때는 정체성이라는 게 불확정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밀고 나갈 줄 알았는데, 아까 다음 책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선생님이 나름대로 생각하는 한국의 정체성이 있다는 얘기 같기도 해요.

다음 책에서도 구체적인 사례를 거론한다는 것뿐이지, 사실은 그런 고유한 정체성은 없다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이 책에도 장자를 끌어들였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어떤 게 정해지면 그와 반대되는 게 딱 튀어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니 어느 하나로 특정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하나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체성의 방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무엇보다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고 그런 것이 우리 정체성의 바탕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게 지금까지 너무 많았다는 거예요. 그걸 하나씩 부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국내 담론에서 이야기되는 정체성은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우리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남북 분단과 대치 과정에서 정체성 갈등의 골이 깊어졌어요. 이청준 소설에 보면 6.25 전쟁 중에 낮과 밤을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차지하면서 주민 얼굴에 전짓불을 들이대고 "너는 어느 편이냐"를 물어요. 거기에서 삶과 죽음이 오가지요. 지금도 정체성이라고 하면 "너는 어느 편이냐"는 물음으로 들립니다. 그런 고통이랄까 억압이 지금까지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게 기본적으로 열등감에서 나온 문제라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으니까, 상대에게 적이다, 아니다, 딱지를 붙이려는 거거든요. 서로간에 열등감이 없으면 타협과 화합도 가능할 텐데. 다 자신감이 부족하니까 그런 사람끼리 모여서 소위 '진영' 논리를 휘두르는 거죠. 우리는 저들과는 다르다고 하는 거죠. 한국에서 '다르다'는 것은 곧 '틀리다'는 거니까. 그렇게 딱지를 붙이고, 그게 적이 되는 거죠.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아버지가 백정이어서 우리 가문이 상놈 가문이면 어때요. 다들 양반 집 후손이라잖아요. 웃긴다고 생각해요. 몇 차례나 호적 매매가 있었으니 가짜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걸로 자부심을 갖고 그러잖아요.

그 정도로 곧곧에 열등감이 가득한 것 같아요. 그러니 그런 사람끼리 모여서 서로에게 딱지 붙이는 데 몰두하고 그게 과업인양 착각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딱지를 붙이기 전에 진실들을 보자는 거예요. 우리끼리만 하는 얘기에 너무 빠져 있으니까, 남들이 우리를 볼 때는 어떻게 보는지를 한번 살펴보자는 거예요.

-이번 책에서 미군정의 보도연맹 학살을 다룬 4장의 경우도 국내에서는 반응이 확연히 갈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가령 한국 군과 경찰이 학살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파 진영에서는 왜 인민군의 학살은 놔두고 이것만 다뤘느냐고 반문할 것 같아요.

그건 이미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책에도 그렇게 쓰셨던데, 그런 경우에도 그 말은 한 줄로 넘어가고, 반대편의 내용은 한 개 장을 쓰는 게 균형 잡힌 거냐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연히 나오겠죠. 그런데 그 얘기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에, 다 아는 얘기를 또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그랬지만, 최근에는 다시 한 쪽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어서 입장에 따라서는 반응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문제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그동안 해온 것처럼 그냥 묻어 놓고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봐요.이 문제를 정말 몇몇 사람만 아는 거라면 덮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이 들어서 알거든요. 하지만 공론화하지를 못하고 TV 프로그램으로도 정면으로 못 만들고 언론도 정면으로 잘 쓰지 않고, 가해자 이름도 거의 밝혀지지 않고. 우리가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할 문제인데 자꾸 회피만 하고 있어요.

이 문제가 환영 못 받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중요하다고 봐요. 한국에 많은 지식인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한국에서 1948-51년에 일어난 학살 문제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 그런 것이 지식인인지 여부를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생각해요.

학술서를 많이 본다고 해서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인이라면 외면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문제를 저는 어렸을 때부터 들었는데, 그때는 다들 말하기가 어려웠겠지요. 당연히. 다행히 이제는 저보다 앞서 많은 분들이 많은 자료를 수집해서 발표도 하셨고, 저는 그것에서 도움을 받아서 책에도 쓴 거죠. 단순이 이런 학살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그 학살이 구조적으로 왜 일어났는지, 전쟁 전과 전쟁 중의 미국 역할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조명한 거예요.

물론 비행기 폭격이란 게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오폭의 경우도 많이 있었겠죠. 그런 것까지 다 무조건 미군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기술적 한계도 충분히 고려해서, 그런 자료를 수집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죠. 다행히 몇 년 전부터 그런 자료들이 많이 나와서 이제는 정리해서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 문제를 그동안 다루지 못한 것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지금도 기피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전쟁의 '실상'이라는 것도 전체에서 어떤 부분을 조명하고 부각하느냐에 따라 인식에 차이가 있지요. 예전에 TV에서 방영한 '배달의 기수'나 '전우' 같은 프로에서는 선생님이 책에 쓰신 부분은 전혀 나오지 않죠. 이런 문제를 볼 때 좌우 진영이 서로 상대의 치부만 겨냥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게 평행선을 그리는 감이 있습니다. 가령 국내 우파는 좌파를 향해 왜 북한의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하느냐고 하고, 좌파는 이야기했다고 하고, 우파는 다시 언제 했느냐고 반문하고 그런 공방이 계속되지요.

저는 그런 것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물을 게 아니라 왜 남한 내 학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느냐를 물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왜 거기에 북한이 들어가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요. 그건 그 다음 문제지요. 학살에 관한 한 인권 탄압을 넘어서는 문제잖아요. 비인간적 범죄잖아요. 그러면 한국에서 벌어진 비인간적인 범죄에 대해 우파도 충분히 이야기한 다음에, 좌파를 향해 너희는 왜 북한 인권에 대해 침묵하느냐 그렇게 이야기해야 이야기가 먹히는 거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반면에,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거기에 우리가 어떻게 개입하겠어요?

-해결이 가능한지 여부 이전에 북한의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 표명을 하는 과정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느끼거든요.

그건 물론 있죠. 하지만 북한 문제에 왜 그렇게 몰두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보다 몇 십 년 전에 이 땅에 있었던 학살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야죠. 인권이 중요하다면 여기서 몇 십만 명이 죽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그 점에 관한 저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봐요.

-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의 학살 사건 이외 다른 곳에서 일어난 북한군에 의한 학살도 알려진 것이 있고 전시 상황이어서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해결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해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쪽에서는 이러이러한 군경 학살이 일어났고 가해자가 누구고 이런 걸 밝혀냈으니 북한 너희도 밝혀라 그렇게 이야기해야죠. 그렇게 해서 북한이 못 밝히겠다고 하면 북한을 비난하고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잖아요.

학살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데,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그 문제에 관한 한 좌든 우든 상관이 없어요. 죽은 사람이 있었다면 가해자가 밝혀져야 종결이 되겠죠. 그게 안 되니까 해결이 안 되고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점점 더 큰 문제가 되는 거죠. 과거 군사정권일 때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죠. 책에도 썼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인정해요.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그 정도는 우리 사회가 역량이 되지 않느냐, 자신감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자는 거예요.

-4장 이야기를 먼저 했습니다만, 1장 이야기를 해볼까요. 공자의 신화를 깨는 내용인데요. 맨 먼저 쓰신 '한국의 정체성'에서도 그 문제를 언급하셨지요. 우리가 아는 공자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는 김경일 교수도 책을 따로 낸 적이 있는데요. 참고문헌에는 소개가 안 보이더군요.

그 책은 읽은 적이 없어요. 제가 듣기로는 공자가 갖고 있는 권위주의 이런 것을 비판한 책이라고 들었어요.

-김 교수는 죽간 고문서를 전공한 학자인데 논지가 비슷해 보입니다.

아뇨.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고고학을 바탕으로 한 것이거든요. 죽간은 거의 근거로 등장하지 않아요. 죽간이 발견된 건 물론 알고 있습니다. 논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죽간 문제가 나오거든요. 그건 문제의 일부이지요. 제가 주로 근거로 삼은 것은 고고학적 증거들입니다. 그걸로 공자 시대를 재구성해보자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공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거죠. 저는 고고학적 근거가 우선한다고 봐요.

-고고학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죽간도 포함되지 않나 싶은데요. 우리가 아는 사서삼경이라는 게 사실은 진시황 이후에 편집된 것이라잖아요. 최근에 나오는 사료들도 공자가 실제는 다른 인물이라거나 당대의 풍습이 달랐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김경일 교수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담겼고요.

저는 모든 문서는 당대 기록이라고 봐요. 후대에 만들어진 문서일수록 더 앞서 만들어진 것처럼 조작을 하거든요. 그래서 문서에 나오는 게 굉장히 그럴 듯해보이지만 항상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아요. 반면에 무덤 같은 것은 달라요. 자기네가 진지하게 만든 거니까. 당시를 잘 보여줘요. 그게 고고학이거든요. 무덤을 발굴해보면 생활양식이 드러나고 거기에 연도 같은 근거가 있으니까.

공자가 살았던 시대 무덤들을 연구한 저작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걸 바탕으로 저도 들여다본 거죠. 그렇게 해서 봤더니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를 굉장히 비꼬고 풍자한 거예요. 그런데도 지금은 마치 공자의 진짜 생애인 것처럼 읽고 있잖아요. 사실은 공자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이러이러한 게 있는데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시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닌지를 따져본 거죠.

-그 문제를 첫 장에 내세운 이유는 우리가 아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신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일반적 교훈을 이야기하기 위한 사례로 삼은 겁니까, 아니면 유교나 공자에 대한 생각 자체가 한국인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인가요?

후자는 아니고요. 정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작위적인 건가를 밝힌 거죠. 공자라는 인물에 대해 사람들이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는데 그게 정말일까 도전해본 거죠. 정체성이라는 것도 생성되고 소멸되고 덧붙여지고 시대 요구에 맞춰 변화하는 것이지 불변하는 것은 없다, 그런 걸 드러내기 위해 공자를 이용한 거죠.

-국내 전공자들 반응은 어떤가요? 이쪽 연구자들이 많아서 반론과 의견이 꽤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이죠. 그분들은 주로 문헌을 공부하신 분들이고, 저는 고고학 책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결은 좀 다르겠죠. 장자를 전공하시는 분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팟캐스트를 하자고 하시던데요. 아직 날짜는 못 잡았어요.

-2장이 중국사에서 본 한국인데요. 옛날부터 중국이 우리를 얕봤다는 주장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한일 합방 때도 일본이 중국의 종주권을 넘겨받는 것으로 나와있다시피...

그렇죠.

-그렇다면 이 문제를 새삼 거론하신 이유가 있나요? 혹시 요즘 사드(THAAD, 미군의 탄도탄 요격유도탄 체계) 배치 논란과도 관련이 있나요?

그런 건 아니고. 우리가 중국에 관해서는 유독 굉장히 너그러운 경향이 있어요. 얼마 전에도 중국 대사가 과격한 간섭을 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반중 데모라는 게 없어요. 반미, 반일 데모는 많이 하는데. 왜 그럴까. 제가 볼 때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대사가 그렇게 무례한 말을 함부로 하는 걸 봤으면, 주권국가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인데 데모도 없고, 언론도 굉장히 순하더라고요. 평소에 그렇게 애국심 넘치는 언론들이.

그런 문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었어요. 중국이 역사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봐왔는지. 그래서 중국 정사를 정리해서 거기에는 조선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훑었어요. 그게 그동안 중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볼 수 있겠죠. 막상 읽어봤더니 생각보다 상황이 더 처참했어요.(낮춰봤다는 뜻) 처음엔 굳이 책을 쓸 생각을 한 건 아닌데 다 읽고 나니까 이건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사에서 이 정도로 다룰 정도면 생각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우리가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환상이 있었구나 싶었어요.

-환상이라는 것은 뭘 말씀하시는 거죠?

우리가 역사적으로 중국과는 잘 지냈고, 중국이 우리를 약간 특별히 대우했다는 생각 같은 거죠. 그래도 오랑캐들 중에서는 중국 다음의 문명국이고 따라서 가장 우호적인 나라로 존중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있잖아요. 읽어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최근에는 중국의 시장 규모나 경제 가치 면에서 중시되는 분위기입니다.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높다든가, 중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와서 치킨을 얼마나 먹고 갔다는 게 큰 뉴스가 되지요. 중국에 대한 우리 경제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그렇죠. 그런 게 있는데, 그러니까 중국은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죠. 그 사람들의 본심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가 묻고 싶었던 거죠.

-그렇다면 예전부터 있어온 중국에 대한 '환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일종의 자존의 방편으로 생각한 걸까요?

우리 스스로 중국에 속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나 싶어요. 우리가 특별히 중국에 관해서 독립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식이 아주 오래된 거죠. 지금도 그런 게 남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중국의 명사(明史)인가에 보면 이인임(이성계의 아버지 이름을 오인한 것)이 등장하는데 한 200년간 계속 이어지거든요. 조선에서 '이인임'이 아니라고 했고, 황제가 고치라고 했는데도 안 고쳐져요. 중국 정사 기록에 계속 틀린 채로 나와요. 왜 그렇게 오래 끌었을까. 그러니까 별 관심이 없었던 거예요.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내면 되는 거고,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가보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러니까 변방 중 하나로...

네. 중국 정사를 보면 우리가 그렇게 중시하는 이순신 장군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와요. 명사에서도 조선과 관련해서 기록이 가장 많은 부분이 임진왜란인데, 왜냐 하면 자기네가 직접 참전한 일이니까, 그런데도 거기에 이순신 이름이 없어요. 이건 아무래도 이상한 거죠. 적어도 우리 생각과는 다른 거예요.

중국 기록에서는 계속해서 자기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 군비를 어떻게 확충하고 준비를 했다는 것들만 나와요. 심지어 "너희가 기술 좋은 사람을 천시했으니 문제가 있다, 글 잘하는 사람 뽑지 말라"는 것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해요. 이걸 읽다 보면 상대를 나라로 봤던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죠. 그만큼 중국과 우리의 인식 차가 컸어요. 우리는 중국의 변방 중에서 좀 다른 변방으로 생각했는데, 중국은 과연 그랬는지 정사로만 보면 의심이 간다는 거죠.

-중국 정사에서 이순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국내 인식과 확실히 차이가 큰 부분인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도 공자 못지 않게 신화적인 요소가 많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면이 많지 않나 싶어요. 저는 이순신 전문가는 아니니까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중국 역사 기록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예요. 일본에도 언급이 없었거든요. 제 책에도 썼지만 '징비록'이 일본에 번역된 후에야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일본에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일본도 이름조차 몰랐다는 거예요. 좀 이상하잖아요. 우리는 영웅으로 아는데, 참전 당사국에는 왜 기록조차 돼 있지 않은가. 이름 정도는 남아야 할 것 같은데.

-예전에 박정희 정부 시절에 이은상 선생이 충무공을 예찬하면서 국가적으로 선양 작업 같은 걸 벌인 적이 있지요.

제가 어렸을 때였죠.

-그 후에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나오고, 최근에는 영화 '명량' 같은 것이 인기를 끌면서 이순신은 민족의 구국 영웅으로 굳어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우리나라에서는 비판적으로 쓰면 안 되는 역사적 인물이 몇 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중국 역사에도, 일본 역사에도 안 나온다,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봐요. 역사서에 나오는 사실이니까.

-예전에 선생님 책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항일 민족주의'와도 관계가 있을까요? 일본이 두려워한 유일한 장군이 충무공이었니까 부각시킬 만하다고 생각했다든가.

글쎄 그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 그 문제는 임진왜란 전체에 대한 전문가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진왜란 전쟁은 모두 7년을 치렀는데 이순신이 활약한 기간은 마지막 1년이었거든요. 6년 동안은 한산도에 있었어요. 활약에 나섰을 때는 이미 전쟁의 승패가 결정났을 때였고, 이순신의 활약이라는 것은 전쟁 전체의 승패와는 무관했어요.

그래서 중국과 일본 양쪽에서 다 기록하지 않은 것 아닌가, 그렇게 추측해요. 당시 임금도 이순신을 탓할 때 그런 얘길 했죠. 이순신이 한산도에만 계속 있었다, 거기서 게으름 피우고 있다가 내가 출병을 명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에 그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원균이 대신 나가서 싸우다 죽었죠.

전체 그림으로 보면 승패는 이미 7년 전쟁 중에서 앞의 2-3년 내에 결판이 났거든요. 나머지 기간은 강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명분을 찾는 구체적인 협상 기간이었고, 마지막 협상 기간에 일어난 전라도 수전이라는 것은 중국과 일본 양쪽에서는 대세에 별 영향이 없는, 그러니까 별 사건이 아니라고 본 거죠.

-책에서는 그 대목을 아주 짧게 언급하셨는데, 우리에게 각인된 이순신의 상을 통째 흔드는 것으로 읽히더군요. 짧지만 거대한 문제를 건드린 것 같아요.

네 그렇죠.(웃음) 원래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 대한 의심이 많았어요. 이거 좀 이상하다,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랬죠.

그때도 학생들이 아산 현충사인가에 가고 그랬을 땐 데, 70년대에 막 지어졌죠. 당시에 김진규 주연의 임진왜란 영화가 나왔는데 비웃음을 산 이유가, 거북선과 싸우는 왜군의 함선에 지금 일본 국기가 달려 있는 거예요. 전투 장면에서도 병사들이 손목시계를 차고 도망가는 걸 보고 웃었던 기억 나요. 어쨌든 저는 임진왜란 전문가는 아니니까, 그냥 제가 본 중국과 일본 역사서 기록에 나오는 것만 토대로 의심을 제기한 거죠.

-이번 책 3장은 일본 정체성을 다뤘는데요. 일본에 자주 가시는 것 같더군요.

1년에 한두 번 갑니다. 2007년에 도쿄에서 1년 정도 산 적도 있어요. 거기 도쿄 도립대학 캠퍼스 내 기숙사에서 살았죠. 어렸을 때부터 일본 소설 같은 것 읽기도 좋아했어요. 2000년 좀 전에 처음으로 일본에 가봤는데 좋더라고요. 책도 읽으면서 좋아하게 됐죠.

-일본 정체성의 경우에는 근대국가로서 국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조명했습니다. 그것도 공자 신화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사례인가요?

그것과는 조금 다른데요. 일본의 경우에는 정체성 형성이 타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체성은 내가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일본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보면 타자의 강압이라는 게 엄청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 한국적인 것을 이야기할 때 보면 타자의 영향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 정체성도 외부 영향이 크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뤘고, 일본을 통해 정체성이 타자에 의해 어떻게 강요되고 형성되고 변형되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도 같은 처지인데 우리보다 일본이 조건이 더 좋았어요. 더 좋은 조건에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강요받은 정체성을 어떻게 소화하고 내면화했는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강요받은 정체성이라면?

일본이 패전 후에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였죠.

-그렇다면 근대 국가 성립 이전에 일본 나름대로 오래 유지해온 민족이나 정치공동체 단위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그것이 근대국가 성립 과정에서 변했다는 건가요?

그것조차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18세기에 일본에 국학파라는 게 생겼는데 처음으로 일본적인 것의 고유함 같은 걸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특별히 일본적이라는 의식이 없었어요. 서양의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국학파가 생겨났던 거죠.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그 대응이 옳았다, 우리 정체성이 확고할 뿐 아니라 옳다고 믿었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2차대전까지 치닫았는데 패망하고 만 거죠.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 고민하던 중에 승자(미국)가 너무 센 거예요. 결국 승자의 강요에 의해 헌법 개정에 들어갔는데 그 과정을 제 책에서 자세히 다뤘어요. 일본으로서는 자기네가 생각했던 정체성도 지켜야 했고, 미국의 새로운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응 방식은 어땠는지를 살펴본 거죠. 그게 정체성 확립의 과정이었던 거예요. 그때 확립된 것이 지금까지 일본을 그대로 이끌고 있다고 봐요.

-그렇게 생겨난 정체성의 특징은 뭐지요?

헌법 개정 후에 소책자로 만들어 2천만 부를 집집마다 돌렸어요. 거기에 평화, 민주주의, 문화 이 세 가지가 지침으로 나와요. 그게 지금까지 일본을 끌고 온 거죠. 특히 문화와 평화가 일본의 캐치프레이즈였죠. 그게 미국이 이야기한 거였어요.

'전쟁하지 말고 평화', 그리고 문화라는 것은 자존심을 세워준 거죠. 그건 아주 순한 거니까.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그게 미국의 지침이었는데, 일본은 그걸 교묘하게 마치 자신들이 추구해왔던 것처럼 세심하게 잘 포장을 했어요. 물론 맥아더도 그 점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런 과정을 더 자세히 쓰려고 했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을 것 같더군요. 일본 헌법 개정 과정에 그만큼 세세하게 관심이 있을까 싶었어요.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도 아베나 극우 인사들의 돌출 발언이 나올 때만 관심을 갖곤 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제가 출판사에도 이야기했어요. 이런 내용의 책은 팔리지 않을 거라고.(웃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일본 헌법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몇 사람이나 관심이 있겠나, 그랬어요.

공자의 신화에 관한 장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자님 좋은 말씀 실천하기도 바쁜데 거기에 의심을 제기하는 것은 싫어할 거다. 이런 얘기는 인터넷에 공짜로 올려도 안 볼 거다 그랬어요. 출판사에는 미안하죠.(웃음)

-아까 일본의 정체성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근대 국체 정립 과정에서 강요에 의해 평화헌법을 채택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본래 평화애호국인 것처럼 포장해야 했다고 하셨지요. 지금은 다시 또 미국의 전략적 필요와도 맞물리면서 평화헌법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지요.

그렇죠. 미국의 필요에 의한 게 강하죠. 그래서 지금 반대 운동이 심하잖아요.

-그렇게 보면 일본은 다시 정체성 혼란에 빠진 거고요...

그렇죠. 그래서 정체성과 주체성은 분리될 수 없다는 거예요.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은 나중에도 견디는 힘이 있는데 강요된 정체성은 나중엔 결국 분열이 생기거든요. 치유하기도 힘들어요. 지금 일본이 그걸 겪는 거라고 봐요. 정체성이 형성된 후 시간이 지나고 시대 환경이 변했어요. 미국이 다시 헌법 개정을 요구하기 시작한 거죠.

제가 알기로는 10년 정도 일본이 거부한 걸로 알아요. 지금은 협조적인 총리가 등장한 거죠. 그래서 개정을 하려는 거고. 일본 사람들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니까, 오에 겐자부로 같은 사람들이 작년엔가 도쿄 집회에 나와서 개정 반대 연설을 했잖아요. 강요에 의한 정체성이라는 것이 어떤 위험을 안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외부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내면화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겠죠. 그 사회의 리더들도 있고 사회 여론을 상대해야 하니까. 그 과정에서 강요자의 의도가 다시 굴절될 수도 있을 테고..

네 그렇죠.

-예전에 어디선가 "우리가 일본처럼 선진국이 되는 데 대해서는 비관적"이라고 쓰셨던데. 일본이 문명적으로 앞섰다고 보시는 건가요?

제가 일본을 평가하는 부분은 기초에 강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노벨 화학상을 받거든요.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해요. 일본에서는 최신 논문도 일주일 내로 일어로 다 번역이 돼 나와요. 영어를 못해도 과학을 공부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그런 시스템이 훌륭하다고 봐요.

우리나라는 과학이나 공부를 하려면 영어를 먼저 공부하고 논문을 읽어야 하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부담을 덜어줘요. 영어 공부 대신 연구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거니까. 그점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섰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든 것을 개인이 해결해야 하잖아요. 영어도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일본은 그런 문제를 시스템이 해결해주니까. 크지 않은 회사에 다니는 연구원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거죠. 그 사람이 수상 연설을 영어로 어떻게 할지 걱정한다고 할 정도니. 어떤 사람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여태 여권이 없었다는 것 아녜요. 그런 기초가 잘 돼 있는 시스템은 우리가 따라가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번 책에서 "중국과 미국, 일본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비대칭이고 일관성이 없다"고 이야기하셨더군요. 중국에 대해서는 거의 사대에 가깝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다르다, 이걸 항일민족주의와 감정적인 것과 연결시켰는데,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이세요? 언젠가 "민족주의는 걷어차야 할 사다리"라고 하셨지요.

그렇죠. 민족주의에 대해서 그렇게 썼죠.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 문제 같은 것들은 어떻게 보세요? 강점기의 근대화 문제라든가 위안부 문제 같은 것들...

그 문제는 당연히 해결돼야 할 것들이죠. 요즘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정치적 타결보다는,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또 하나의 방법으로 문학을 생각해요. 우리가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 가혹했던 일에 관해서 그 시대를 담아낸 정말 뛰어난 소설이 나온다면 한일 양쪽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거예요. 지금은 그런 게 부족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오키나와 같은 문제도 일본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거든요. 그런데 오키나와 출신의 뛰어난 소설가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이들이 2차대전 때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많은 억울한 일들에 대해서 아주 잘 그려냈어요. 그러면 그런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감동이 되거든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는 이러이러하게 해석되지만 오키나와의 진실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거죠. 그러면 공감대가 형성됨으로써 해결책을 찾는 데 훨씬 도움이 돼요.

그래서 저는 한일 문제도 정치에만 맡겨두지 말고 문학도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시대를 다룬 뛰어난 소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혹독한 식민 지배를 겪었는데 거기에 상응하는 뛰어난 소설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런 것은 세계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가 되거든요.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 경험을 했으니까. 저는 그 점에서 우리 소설의 역할이 좀 미흡하지 않은가, 아쉽게 생각해요.

저는 모든 문제는 사실이 있고 진실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관계는 정치가 다룰 문제지요. 하지만 진실은 문학이 다뤄야 할 문제예요. 전쟁터에서 어떤 사람이 굉장히 용감하게 싸웠다면 그건 '사실'의 문제예요. 그런데 진실이란 것은 그 사람이 어떤 강박증에 쫓겼다거나 다른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랬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잖아요. 그건 진실이거든요.

우리가 역사적 사실도 열심히 추구하고 밝혀야 하지만 진실의 영역도 다뤄야 해요. 이건 문학이 다루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이나 시의 역할인데. 우리는 지금 모든 문제를 다 너무 정치 쪽으로만 밀어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한국에서 모든 문제가 잘 풀리려면 소설, 문학에서 좀 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그게 문학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이고, 어떤 것보다 위대한 힘일 텐데요. 그래서 드는 생각이 현재 한일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아까 얘기한 국내에서 일어난 과거 학살 문제 해결에도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위대한 문학이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이 더 경청하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동의해요. 그래서 제 책에도 썼지만 그런 걸 다루는 소설이 '밤의 눈', '순이 삼촌' 같은 게 몇 권 있어요. 물론 용기 있게 많은 조사를 해서 쓴 훌륭한 소설이긴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아쉬운 점은 너무 사실에 가깝게, 거의 현장 르포처럼 사건 보고서처럼 썼어요. 단계를 거쳐서 다음 단계인 문학의 세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우린 그게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학살 문제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책임 관리를 밝히라고 하는데 그건 사실 수준의 이야기예요. 그렇게만 해서는, 말씀하신 대로, 종결이 안 돼요. 분한 마음이 좀 풀릴 수는 있겠죠. 학살당한 사람이 있는데 가해자가 나왔으니까. 하지만 그건 해결 방법 중에서 가장 초보적인 단계라고 봐요. 그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우리 마음에서 앙금이 사라져야 하거든요. 우리 세대가 사실은 직접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잖아요. 몇 십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거지.

그러면 우리가 그 문제를 우리 속에 녹여내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우리 사이에서 재발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저는 소설이 나와야 한다고 봐요. 누가 봐도 뛰어난 소설이고 감동적인 소설. 뼈아픈 소설이지만 끌리는 게 있어서 읽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런 소설을 많이 읽으면 서로 마음이 통할 거예요.

'그래, 옛날에는 가해자도 가해자의 사정이 있었겠지'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게 소설이에요. 어느날 옆집 사람이 악마처럼 돌변해서 가해자가 되는 일은 없다고 봐요. 뭔가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그 사람도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테고, 또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저항하기 힘든 집단의 힘이 있거든요. 내가 그 집단에 섞여 있으면 그 힘에 따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대통령 혼자서 어느날 갑자기 가만있다가 '그래, 내가 우리 국민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다 죽여야겠다' 그랬겠어요? 어떤 상황 전개가 있고 외부에 어떤 압력이 있고, 사태를 파악해보니 이건 어쩔 수 없다든가, 여러가지 변수가 있었겠죠. 그 속엔 누군가의 잘못도 있을 수 있고.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있겠죠. 이런 포괄적인 문제를 누가 다루겠어요?

결국 해결책은 소설과 시에, 문학에 있다고 봐요. 저는 능력이 없어서 그런 작품은 못 쓰지만 소설가들이 이런 걸 좀 써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서. 사실보다는 진실. 인간은 악한 존재,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이기 이전에 약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루해질 수도 있는 그런 존재, 그런 것이 진실이잖아요. 그걸 소설은 드러낼 수 있지만 사실 관계만 따지는 법정에서는 다 드러낼 수 없어요.

사실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인과관계가 있고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는 건데 진실이라는 것은 특정되기 어려워요. 그런 문제를 다루는 소설이 나와야 해요. 지금까지도 좋은 소설이 나오긴 했지만, 저도 빠짐없이 읽어봤어요. 하지만 제가 아는 사건의 개요 그런 것보다 조금 더 자세히 썼을 뿐이지 그걸 넘어서 '이게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건 못 봤어요.

저도 이번 책에서 약간 소설의 형식을 빌린 이유가, 사실만 나열해서는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백의 형식을 취해봤어요.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강한 존재가 아니다, 다 약점이 있고 회한이 있는 존재라는 걸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게 보고서와 문학의 차이일 텐데요. 보고서는 아무리 정치하게 써도 불편하면 그냥 외면하고 말거든요. 하지만 문학은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지요. 고통스럽지만 응시하게 만들거든요. 일본에는 그런 작품들이 좀 있다고 하셔서 하는 말인데요, 국내 독서가들이나 심지어 문인들도 일본 작품을 꽤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실제로 영향도 많이 받고. 물어보면 야스나리, 소세키, 겐자부로 좋아한다고들 하고. 지금도 일본 문학이 번역도 많이 되고. 반면에 일본에서는 우리 작품이 얼마나 읽히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비대칭 아닌가요. 반일 감정은 아주 강한데.

문화 역량과도 관계가 있다고 봐요. 제 책에 일본 소설이 많이 등장하잖아요. 어쩔 수가 없죠. 그쪽에 좋은 작품이 많이 있으니까요.

-개인 차원에서는 일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소비도 하면서, 사회적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열등감과 관련이 있는 거예요. 자기가 자신감이 있으면 그렇지 않겠죠.

-'한국의 정체성'에서 정체성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기준 요소로 현실성과 대중성, 구체성을 꼽으셨습니다. 하지만 '대중성'의 경우에는 요즘 같으면 순수하게 대중의 자발적 선호도를 반영하기보다 마케팅 힘에 좌우되지 않나요? 선생님도 대중성을 상품성과는 구분하셨지만, 지금은 마케팅이 대중의 취향까지도 좌우하는 상황 같은데요.

이번 총선에서 여론조사가 다 틀렸잖아요. 예상 외로 야당에 압도적인 지지가 갔잖아요. 저는 그런 게 대중성이라고 봐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게 가만히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드러내요. 다만 기회가 없으면 드러낼 수가 없었겠죠. 선거라는 게 그런 걸 한꺼번에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대중성을 말하는 거예요.

-잠복된 대중성을 말하는 거군요.

네. 상품성이라는 것은 표피적인 거거든요. 그건 돈을 많이 투여하고 광고를 많이 하고 많이 노출시키면 생기는 거예요. 하지만 맘 속으로는 나는 실은 다른 가수 좋아해, 이게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저는 민주주의 시대에 대중성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맘속에 지지하는 게 있다고 봐요. 그것이 대중성이라는 거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과 혼동할 수도 있는데 인기하고 마음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TV에 예쁜 연기자나 잘 생긴 젊은 남자가 나왔을 때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실생활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건 다르다고 봐요.

-요즘 출판계나 콘텐츠업계에서 중요 개념이 '발견성의 위기'인데요. 워낙 많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걸 말하는데, 선생님께서 말하는 대중성이란 것도 어떤 의식적 노력 없이는 확인하기 힘든 것 아닌가 싶어요.

네, 그런 게 있죠. 하지만 책 같은 걸 예로 들면, 결국에는 책은 책의 힘으로 팔린다고 생각해요. 많이 노출되고 광고도 되고 인터뷰도 되고 화제에 오르면 많이 팔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래 팔리느냐는 거예요.

오래 팔리려면 진정한 독자를 만나야 하거든요. 진정한 독자를 만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말하는 대중성이라는 것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거예요. 제가 듣기로는 우리나라 고급 독자는 5천명 선이라고 해요. 시간을 길게 놓고 봤을 때 어떤 책이 살아남는가를 보면 그게 대중이 원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처음에 눈에 안 띄면 그걸로 끝인 경우도 많다고 해요.

그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10년 동안 책을 내봤는데, 주목받은 책은 없어요. 출판사가 광고를 한 것도 아니고. 그래도 꾸준히 사람들이 소리없이 사 봐요. '한국의 정체성' 첫 권도 지금 41쇄인가 그래요. 20쇄 넘는 것들이 꽤 있어요. 광고도 안 하고 아무 행동도 없었는데.

-선생님도 인기 저자 반열에 올랐으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이 책을 읽어보고 이 책 괜찮다 싶으면 소개를 하잖아요. 그게 짧은 시간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한국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한국인의 정신 세계를 현세주의, 감각적 실용주의, 허무주의 등으로 정리하셨던데요. 지금도 같은 생각이세요?

7-8년 전에 한국 철학에 관한 뼈대를 세워보려고 한 건데 잘 안 됐어요. 보통 한국 철학사라고 하면 주자학, 불교까지 다 포함해서 쓰거든요. 저는 거기에 반대예요. 철학은 단절로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주자학은 불교를 내쳤잖아요. 단절 후에 발전했고. 주자학은 이제 단절됐다고 봐요.

그 다음에 뭔가 형성됐어야 하는데 없잖아요. 그 자리를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대신했죠. 그게 철학 행세를 하는데, 그것 말고 다른 뭔가 철학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근현대 한국철학사를 봤는데 건질 만한 게 없었어요. 여전히 주자학, 불교 해석하고 있더군요. 그걸 대체할 만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일종의 가건물 같은 생각으로 책을 썼죠.

현세주의라는 것도 가건물로 세워본 건데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에세이 정도로는 봐줄 만한데 한국 철학이라고 얘기할 만한 뼈대나 내용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극히 의심스러웠어요. 그래서 그 다음을 모색하고 있어요.

한국인이 살고 있는 실제 모습과 지향하는 것. 저는 언제나 당대의 우리 문제로 고민하는 게 철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고민까지는 하는데 철학은 그걸 좀 넘어서서 지향하는 바가 있어야 해요. 거기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을 못 하고 있어요. 당대 우리 모습을 넘어서는 것, 그걸 세우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어요.

-철학이라면 이성에 호소해야 하고 논리적으로 끌어내야 할 텐데, 그렇다면 결국 보편적인 어떤 이념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네, 보편적으로 가는 것은 좋은데, 그게 우리 선택에 의해 우리 환경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거죠. 수입하지 말고. 우리가 만들고 보니까 보편적인 것과 맞닿아 있다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냥 우리 것이 없으니 프랑스나 미국, 일본에서 가져와서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건 잘 안 될 것 같아요.

-기존의 한국의 철학자들이 나름대로 해온 작업들이 그런 것 아닌가요? 인간에 대한 존중 전통이라든가.

그렇게 해봤더니 잘 안 되더라는 거예요. 한국에 철학자가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밑에서 시작해서 지향하는 바라든가 이념을 만들었는데 그게 세계적인 보편성과 맞닿는다면 더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진도가 만족할 만큼 안 나가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이라도 살펴보자고 해서 이번 책을 쓴 거예요. 도움이 됐어요. 다른 나라 시각을 면밀하게 보니 재미있는 게 많더군요. 일본에도 철학자는 없었어요. 사상가는 있어도. 그쪽도 답답함이 있어요. 일본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근대에 와서 삶의 질서가 헌법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서양에서 들여왔잖아요. 그게 보편적인 내용이어서 다들 수용했고 우리도 그랬던 건데. 사실은 그게 내면화에 성공했는지가 관건 아닌가 싶은데요.

그것까지는 받아들이는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바에 대해서는 우리 문제가 드러나야 한다는 거죠.

-우리 문제라는 게 한국의 개별 특수성을 가진 것일 텐데, 요즘 세계가 직면하는 일들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점점 비슷해져가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세계화, 환경, 자동화의 문제라든지.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리적인 차이만 있지 요즘은 시차도 거의 없이 직면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우리만의 문제라는 게 뭔지도 의문입니다.

저도 똑같은 고민을 해서 쓴 책이 바로 '행복 스트레스'예요. 그게 자본주의를 다룬 책이에요. 요즘 사람들은 다 행복을 위해 살잖아요. 그 구조를 한번 파헤쳐보자고 쓴 게 그 책이에요. 자본주의의 힘이 얼마나 큰지, 행복도 상품화해서 팔고, 그게 또 민주주의나 개인주의와도 결합돼 있어서 아주 강력하다, 그런 문제를 다뤘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우리만의' 문제가 어디 있냐는 거죠.


그렇게 해서 행복 문제를 탐구해보니 진짜 강력하더군요. 그래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거에요. 우리만의 문제가 뭘까 고민하다가 행복 문제로 간 거에요. 그게 우리만의 구조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본주의, 개인주의, 이런 게 다 묶음이거든요.

-결국 '한국적인' 문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걸로 남은 것들은 대개 역사와 관련된 것 아닌가 싶어요. 지금도 우리가 진통 겪고 있는 것 중에 다른 나라에서 이해 못 할 것들이 다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잖아요. 우리 내부의 문제든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라든지.

그래서 제 책에도 역사 문제가 나오잖아요.

-그런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문학일 수 있다는 거고요?

네, 그런 입장을 취한 거예요. 우리 역사 문제 중에서 학살이라든가 중국과의 문제나 일본과의 관계 같은 것들을 해결하는 제일 좋은 해법이 문학인데, 그 단계 이전에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 이런 게 선결돼야 해요. 우리가 역사에 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것에 관해서는 잘 몰라요. 디테일하게 알면 느낌이 확 달라요.

-한일간 역사만 해도 안다고 생각했던 것의 다른 면을 다룬 책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도 그런 책 같았어요.

그게 재미있는 게, 1965년에 정창화 감독이 만든 '사르빈강에 노을이 지다'라는 영화가 있어요. 신영균, 김혜정 주연이었는데. 그게 2차대전 일본군이 버마전선에 갔을 때 이야기인데 김혜정이 위안부로 나와요.

신영균이 일본군 학병인데 한국 사람이고. 자기가 한국인인 걸 깨닫고 탈출해서 독립군으로 가는 영화거든요. 그걸 보고 당시에 (위안부를 다룬) 저런 영화가 어떻게 제작됐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개봉이 됐나요?

그럼요. 유명한 영화예요. 기록 영화 같은 데도 있어요. 흑백 영화인데. 그게 다 세트에서 찍은 영화예요. 정창화 감독은 홍콩에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라는 영화를 만들어서 유명해진 감독이에요. 그게 액션 영화였는데 미국에서 그해 10대 히트 영화에 들어갔어요. 그 다음에 액션 스타를 찾아라, 이렇게 돼서 발굴된 게 이소룡이었어요.

그만큼 정창화가 대단한 감독인데, 지금도 살아있어요. 그분이 버마전선의 위안부 영화를 만든 때가 60년대 초반이고 한 50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인식이 많이 달라진 셈이잖아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그 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에요. 예전에 위안부가 나왔던 영화라든가 소설 같은 것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왜냐 하면 영화라는 게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성이 있으니까 그게 용인됐으니까 만들고 개봉됐을 것 아녜요. 제 기억에 당시 그 영화에 대한 비판이 별로 없었던 것 같거든요. 어렸을 때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는데, '어, 저게 위안부라는 존재야? 버마까지 한국 여성이 따라가서 저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런 모습이랑, '제국의 위안부'에 나온 모습이 닮은 면이 있어요.

-책은 어떻게 보셨어요?

저도 '제국의 위안부'를 다 읽어봤는데, 우리가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는 측면이 상당히 많이 있어요. 하지만 중간에 한국인 업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자가 거기에 너무 집착했던 것 같아요. 좀 더 큰 구조를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일본 제국의 구조적인 문제 같은 걸 이야기하면 되는데, 한국인 업자에 너무 방점을 둔 거죠. 그 문제는 소설로 다루면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일본의 전범 책임에 대한 물타기처럼 비친다는 말씀이죠?

네, 한국인 업자 문제는 소설로 다루면 엄청난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 하면 그 사람도 내면에 갈등이 있었을 것 아녜요. 여러가지 복잡한. 본래 중간에 있는 사람이 가장 갈등이 많잖아요. 하지만 주목의 대상은 아니거든요. 인문사회서에서는 특히 주인공이 될 수 없죠.

-아마 저자는 일제에 대한 우리 내부의 협력자를 이야기하면 그 부분에 대한 자책을 통해 양국 화해로 갈 걸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발을 사지 않았나 싶어요. 일제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논리에 불과하다는 역공을 받고 있지요. 저는 책 뒷편에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국내 정치 동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분석한 부분에 관심이 갔어요. 그동안 위안부 문제 협상이라는 것도 단순히 한일 정부의 양자 방정식이 아니라 두 나라 국내의 강온파가 어떻게 부딪히고 다시 굴절돼왔는지를 설명한 부분이 있더군요.

그 문제는 원래 일본의 좌파가 발굴한 건데 우파가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죠. 제가 보기엔, 저자는 양국 화해의 걸림돌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타겟 삼은 것 같아요. 문제 해결 과정에서 도움이 되기보다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을 담은 것 같았어요.

차라리 목표를 그 단체로 명확히 해서 문제를 지적했으면 많은 호응을 얻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 너무 여러 군데 타겟을 삼았고 게다가 한국인 업자에 집중하니까 반발을 초래한 것 같아요. 원래 일본에서 인터넷으로 연재될 때도 한국에도 이런 사정이 있다고 약간 인정하면 그러니 일본 너희도 흔쾌히 잘못을 인정해라 이런 뜻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본 내에서 댓글이 올라오고 반응이 좋으니까 책으로도 묶어냈는데 한국에서는 반대 반응이 나온 거죠.

-책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은데, 어떤 체계를 갖고 읽으세요?

그냥 읽고 싶은 대로 읽어요. 작업을 시작하면 그때 필요한 책을 그때그때 추가로 구해서 보죠. 제가 관심 있는 걸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서 교보에 가서 봐요. 신간에 별 관심은 없어요.

가령, 최근에는 근대 국문이란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때 동아시아에서는 어떤 의식이 싹트고 있었는지에 관한 책을 봐요. 중국, 일본, 한국의 자기 나라 말이나 글자에 대한 인식들, 아니면 개화기 과학 교과서에 관한 책들, 이런 것들 사서 읽어요. 그리고 고려대출판부에서 나온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 이런 것 읽죠. 거기에 보면 일본어 원어가 뭐였고 처음 용례는 뭐였고 중국어는 뭐였고 하는 것을 정리해놨어요.

-앞으로 쓰실 책은요?

인생철학사전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인생에서 가장 궁금한 문제들을 철학의 관점에서 사전처럼 쓴 거예요. 가령 늙는다는 것은 철학에서는 변화의 하나로 보니까. 변화에서 시작하지만 시간과도 연관이 되고, 단어 중심으로 연결시켜서 설명해나가는 식이죠.

철학을 어렵게들 생각하는데, 인생에 적용해서 설명하면 어떤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결혼은 뭘까, 사랑은 뭘까, 거기에 대한 철학자들 의견들이 참 다양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연결지어 설명하는 책이 될 겁니다.

작성자 정보

북클럽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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