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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내가 찾은 삶의 법칙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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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작성일자2018.11.11. | 5,311 읽음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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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은 캐나다 심리학자 조던 B. 피터슨<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골라봤습니다.


올초 영미권에서 출간되자마자 뜨거운 화제와 함께 논쟁의 초점이 됐던 심리학자의 책입니다.


현재 토론토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맥길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교수를 지냈습니다. 당시 출간한 첫 책 <의미의 지도>는 종교심리학 서적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2013년부터 강연 동영상으로 대중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후 인터넷 문답 사이트인 ‘쿼라(Quora)’에 올린 답문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그 내용이 이 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터득한 인생의 진리를 심리학, 생물학, 신화, 철학, 종교 등을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원제목은 12 Rules for Life입니다.


그중에서 7번째 법칙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에서 발췌 소개합니다.

관련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
12가지 인생의 법칙
저자
조던 B. 피터슨
발행일
2018.10.30
출판사
메이븐
가격
정가 16,800원보러가기

삶은 고통이다. 분명한 사실이고 반박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진실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낙원에서 쫓아내면서 그들에게 내린 저주이기도 하다.


저주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간단하고 명확하며 직접적인 해법은 무엇일까? 쾌락을 추구하라! 내적인 충동을 따르라!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아라. 편한 것만 선택하라. 거짓말하고 기만하고 훔치고 속이고 조작하라. 들키지만 말라. 궁극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세계에서 우리가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새삼스러운 의문은 아니다. 삶은 비극이고 고통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즉각적이고 이기적인 쾌락을 쫓는 삶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되었다.


쾌락은 순간적이고 덧없을 수 있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이다. 한때의 즐거움은 삶의 두려움과 고통에 견줄 만하다. 옛 속담이 말해 주듯이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모두 자기 일만 생각한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먹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그런데 더 설득력 있고 매력적인 대안은 과연 없을까? 조상들은 이런 의문들에 심오하고 세련된 답을 다양하게 내놓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답들이 대체로 함축적이기 때문이다. 주로 종교적 의식과 형태로 남아 있고, 명확한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그 답들을 실행에 옮기고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하고 구체적인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무리 지어 살아가는 침팬지들이고 떼 지어 다니는 늑대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그 이유가 무엇이며, 누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경험을 통해 그런 것들을 배웠다. 우리가 가진 지식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습관적인 절차와 행동 양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다른 사람들이 대체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습관적 절차와 양식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확립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양식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진화한 것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누구도 그 습관적 행위가 어떠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의 행동 양식에 대해 끊임없이 조언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의 어느날 정신을 차렸다. 우리는 이미 뭔가를 하고 있었지만,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기 시작했다. 또 우리는 도구를 통해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모방하고, 극화하기 시작했다. 종교적 의식이란 것도 만들어 냈다.


그뿐만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연극을 꾸몄다. 살면서 관찰한 것, 깨달은 것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행동에 스며들던 정보가 결국에는 이야기로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우리는 즐거움을 뒤로 미룰 수 있고 그것이 더 좋다는 걸 무척 어렵게 깨달았다. 만족 지연은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내재해 있는 동물적 본능과 반대되는 것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현실 세계에서는 즉각적인 만족이 더 중요하다. 문명이 지연된 보상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안정된 상황에서만 만족 지연이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인간 사회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며 변화했을 것이다. 이야기와 역사가 글로 쓰이기 전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만족 지연과 교환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관습이 천천히 생겨난다. 만족 지연과 교환은 종교적 의식과 희생이라는 은유적 이야기를 통해 표현된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함축적이어서 인지되지 않는 가치가 먼저 있었다. 수천수만 년 동안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를 무수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은 만족을 뒤로 늦추고 미래와 거래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부터 이와 관련된 생각들이 한층 분명한 이야기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의식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 자의식 덕분에 인간은 스스로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자의식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야기한다. 그 고통으로 인해 이기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중요시하는 생각, 즉 편의주의에 빠져든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회와 자연의 무자비한 횡포가 삶을 고통스런 비극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사회와 자연은 사실 고통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다. 심지어 주된 원인도 아니다. 악의 문제를 생각해보야 한다. 불확실함이 가득한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행위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이런 이유로 희생의 의미는 더욱 복잡해진다. 단지 가난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하고 희생하며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악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와도 관련이 있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즈의 말처럼 "삶은 지저분하고 야만적이다. 그리고 짧다." 그러나 악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삶이 더욱 황폐해진다. 야만적인 면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다. 무엇을 어떻게 희생해야 하느냐를 고민하는 이유는 삶의 고통뿐만 아니라 사악함까지 줄이기 위해서다. 사악함은 고의적으로 최악의 고통을 유발한다.


1984년 나는 데카르트와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같은 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데카르트와 어찌 감히 동질감을 가질 수 있겠는가. 다만 온갖 의혹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웠다는 점은 비슷했다. 진화론의 핵심을 이해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에 배운 기독교 교리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그 후로 나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와 소망적 사고를 구분할 수 없었다. 기독교 신앙의 대안으로 사회주의에 잠깐 관심을 두었지만, 사회주의도 실체가 없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위대한 작가 조지 오웰을 통해, 사회주의적 사고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에 대한 증오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덕분이었다.


당시의 냉전 상황은 나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냉전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악몽에 시달리고, 광야에 내몰려 암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세계가 크게 두 파당으로 갈려 서로 죽도록 싸우게 된 과정과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시스템은 똑같이 독단적이고 부패하지 않았는가? 단지 견해 차이 때문에 그토록 극단적인 대치 상황이 벌어진 걸까? 가치 체계는 결국 권력의 포장에 불과한 것 아니었는가? 아니면 모두 미쳤던 것일까?


20세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는가? 도대체 왜 신념과 이데올로기에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했을까? 귀족 계급과 부패한 종교적 믿음을 대체하겠다고 나온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우리 사회를 더욱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아는 한 누구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도 데카르트처럼 무수한 의혹에 시달리다가 반론의 여지가 없는 답을 찾아 나섰다. 내가 찾아낸 답을 뒷받침해줄 확실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런 의심이 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이런 추론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도덕률을 정리할 수 있었다. 높은 목표를 지향하라. 주의하고 집중하라. 고칠 수 있는 것이면 고쳐라. 현재의 지식에 교만하지 말라. 겸손한 마음을 가져라. 전체주의적 자만심은 무자비와 억압, 고문과 살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인지하라. 나의 내면에 감추어진 비겁함과 악의, 원한과 증오를 인정하라. 남을 비판하기 전에,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기 전에 나의 잔혹한 심성을 살펴라. 어쩌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 탓일 수 있다.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는 모든 행위는 선한 것이다.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나의 신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도덕적 가치 체계의 가장 높은 곳에 놓은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불피요한 고통을 완화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닥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20세기가 바로 그 결과다.

편의주의는 맹목적인 충동을 따르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선택이다. 편의주의로 얻는 이익은 오래가지 않는다. 편의주의는 본능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자신을 속이는 행위다. 편의주의는 어떠한 고귀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유치하고 무책임하다.


편의주의를 분별력 있게 대체할 때 삶의 의미를 얻는다. 의미는 충동을 통제하고 조절할 때 생겨난다. 의미는 세계의 가능성과 세계의 가치 체계가 상호 작용할 때 생겨난다. 가치 체계가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를 향할 때 생겨나는 의미는 삶을 지속하는 데 힘이 되어 준다. 의미는 혼돈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해독제다. 의미로 인해 삶의 모든 순간이 중요해지고, 삶의 모든 순간이 나아질 것이다.


바르게 행동하면 심리적인 안정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로 인해 다인 자신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당신이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일관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모든 것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선순환이 완성된다. 인생의 의미는 더욱 충만해진다.


의미는 경험으로만 느낄 수 있다. 단지 정보를 모으고 재현하는 감각으로는 알 수 없다. 의미는 편의주의보다 강하다. 의미는 언제나 모든 충동을 넘어선다. 그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편의주의는 모든 해골을 벽장에 감추는 것이다. 자신의 어두운 비밀을 감추는 짓이다. 당신이 카펫에 방금 흘린 피를 덮는 것이고,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짓이다. 쉬운 길만 선택하는 편의주의는 비겁하고 천박하며 잘못된 것이다.


편의주의가 반복되면 사악한 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편의주의는 당신의 저주를 다른 사람이나 미래의 당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늘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하는 당신 하나 때문에 당신의 미래,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미래가 더욱 암울해진다.


편의주의적 행동에는 신념도, 용기도, 희생도 필요하지 않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세상은 이런 행동과 생각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쉬운 길을 선택해서 원하는 것을 갖는 것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의미 있는 것을 갖는 것이 훨씬 낫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의미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 의미는 저절로 모습을 드러낸다. 의미를 억지로 만들어 낼 수 는 없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속임수일 뿐이다. 의미를 찾았다는 것은 혼돈과 질서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힌다. 삶의 모든 요소가 최적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의미가 생겨난다.


편의적인 것은 일시적으로만 효과가 있다. 즉각적이고 충동적이고 제한적이다. 한편, 편의적인 것들도 높은 목표에 맞게 잘 선택하고 조절하면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의미는 언어로 잘 표현되지 않는다. 언어보다 훨씬 강력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의미는 원자부터 세포와 기관, 개인, 사회와 자연 및 우주까지 '존재'의 다양한 층위의 기능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각 층위의 움직임은 다른 모든 층위의 움직임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런 식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꺼번에 조화를 이룬다. 무의 세계를 뚫고 나와 햇살을 향해 열리는 장미꽃 봉오리처럼 의미는 깊은 심연에서 태어나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의미는 주변의 모든 것이 하나의 고귀한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생겨난다.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하루하루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는 주변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인간이 경험한 모든 고난가 역사의 모든 끔찍한 투쟁마저도 선하고 강력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의미는 혼돈과 질서의 궁극적인 균형이다. 한쪽에는 변화와 가능성으로 충만한 혼돈이 있고, 반대편에는 오염되지 않은 절제된 질서가 있다. 의미는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다. 더 순수하고, 더 안정적이며, 더 생산적인 새로운 균형이 탄생한다.


의미는 한층 풍요로운 삶으로 향하는 길이다. 의미는 사랑과 진실만이 가득한 곳, 사랑과 진실 외에는 바랄 것이 없는 그런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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