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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인간은 이기적 동물인가

조회수 2018. 9. 2. 20: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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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학자 마이클 토마셀로의 '도덕의 기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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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은 영장류학자 마이클 토마셀로의 신간 <도덕의 기원>에서 골라봤습니다.


원제는 A Natural History of Human Morality(2016년)입니다.


현재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공동 소장인 토마셀로 박사는 인간의 사회성과 협력에 초점을 두고 인지 능력과 사고, 의사소통의 발달을 연구해 왔습니다. 앞서 <생각의 기원>에 이어 이번에는 <도덕의 기원>을 냈습니다.


인류가 무리를 이뤄 사는 과정에서 상호의존성 강해지면서 인간 특유의 사고 능력은 물론 고도의 도덕 심리의 진화로 나아갔음을 논증합니다.


저자는 인간이 경제적 동물이라는 개념의 확대 해석이나, 도덕과 호혜적인 행동이 이해득실에 따른 전략적 계산의 결과라는 해석을 반박하고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의 복합성과 탄력성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도덕은 단일체가 아니라 수백만 년에 걸친 인간 진화의 상이한 시기에, 상이한 생태적 압력 아래에서, 상이한 여러 원천으로부터 이어 붙인 잡다한 구성물이다.


따라서 오늘날 인간은 이기적인 나-동기(me-motive), 공감적인 당신-동기(you-motive), 평등주의적인 동기, 집단 중심적인 우리-동기(we-motive), 그리고 현재 지배적인 어떤 문화적 규범이든지 따르는 경향의 모든 각각의 사회적 상호작용 속으로 들어간다.


궁핍한 상황에서는 우리 대부분이 이기적이 된다. 다른 누군가가 아주 곤궁하면, 우리 대부분은 관대해진다. 동등한 협동의 상황에서 우리 대부분은 평등주의적이 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윔블던 대회 결승전에서 서로 경기를 하고 있다면, 누가 더 상금을 필요로 하는지, 또는 누가 더 대회를 위해 열심히 훈련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화적 규범은 누가 됐건 테니스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상을 받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동기에는 어떤 의미에서 언제나 이미 존재한다. 유일한 질문은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동기가 승리하는가이다. (중략)

사회과학에서는 종종 인간 개인을 오로지 구체적인 개인적 이득의 가능성에 의해서만 추동되는 합리적인 극대화 추구자, 즉 호모에코노미쿠스로 묘사한다. 이런 심리학 모델은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행동하는 개인들의 이른바 동기와 행위에 명시적으로 근거한다.


그러나 (인간 종이 존재한 시간의 95퍼센트를 특징짓는 평등주의적이고 공동체적인 사냥꾼-채집자 사회와 함께 시작된) 인간의 진화와 역사의 더 넓은 범위에서 보면, 자본주의적 시장 또한 협력적인 문화적 제도임은 분명하다.


시장은 규칙을 따르라고 합의하는 일단의 협력적 관습과 규범에 의해 창조되는데, 이 경우에는 다소 역설적으로 개인들이 일정한 맥락에서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개인적 이득을 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개인의 이기심에 힘을 부여하는 규칙은 따라서 경기에서 상대를 이겨야 하는, 즉 애초에 경기를 구성하는 협력적 규칙의 맥락 안에서 테니스 선수의 이기심에 힘을 부여하는 규칙과 같다. 오직 인간 행동의 문화적, 제도적 맥락을 무시할 때에만 경쟁적인 마차가 협력적인 말을 이끌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설명한 것처럼 진화에 토대를 둔 인간 행동으로 보자면 개인의 이기심을 협력적인 사회적 상호작용보다 한참 앞서고 훨씬 더 근본적인, 1차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할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자연선택의 논리는 물론 유기체들이 자신의 번식 적합도를 높이거나 적어도 떨어뜨리지 않는 일을 한다고 규정한다. 우리는 이것을 이기심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이기심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개인이 타인보다 자신을 더 선호하는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다. 지구상의 생명 형태들의 절대 다수는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지구 생명체들은 단지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향해 도구적으로 행동할 뿐이며, 성공적인 동물들에게 이것은 이런 목적이 자신의 지속적인 생존 및 번성과 양립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 동물들에게는 남들보다 자신을 선호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심리적 기제가 전혀 없다. 이런 문제는 아예 생겨나지 않는다. 이 동물들이 이기심에서 우러난 행동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최종적인 인과관계와 근접한 기제(개체가 어떤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부여되는 부수적 기제. 가령, 성욕은 번식의 근접 기제다-옮긴이)를 혼동하는 셈이다. (중략)

분명 인간 또한 이기심에서 우러난 행동을 할 능력이 있으며, 종종 그런 행동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심지어 어린이들조차 무척 자주 전략적 계산 없이 타인의 복지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인다고 주장하고, 그 증거를 제시했다.


아이들은 남이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고, 공정하게 자원을 나눠 가지며, 공동 헌신을 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어기겠다는 허락을 구하고, '우리'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며, 아마 집단 중심적 동기에 근거해 제3자에게 사회규범을 강제하고, (공감에서부터 분한 감정, 충성, 죄의식에 이르기까지) 이기적인 계산에서 나오지 않는 진정으로 도덕적인 감정을 갖는다.


이런 경험적 연구 결과와 또 다른 학문 분야의 많은 연구 결과는 인간이 타인을 소중하게 여기고 타인의 안녕에 투자하도록 생물학적으로 진화되었음을 시시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에 대한 설명은 인간 개인들이 타인과의 상호 의존과 이것이 자신의 사회적 의사 결정에 대해 갖는 함의를 인식한다는 것임을 주장했다.


인간 개인들은 (1) 가능할 때면 언제나 파트너와 동료를 도와주는 것이 옳은 일이고, (2) 타인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실재적이고 자격이 있으며(그리고 이와 동일한 인식을 그 대가로 기대할 수 있으며), (3) 사회적 헌신에 의해 만드어진 '우리'가 자신과 소중한 타인들을 위해 정당한 의사 결정을 하고, 이를 통해 도덕적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정당한 의무가 생겨난다는 점을 의사 결정에서 고려한다는 점에서 협력적으로 합리적인 존재가 되었다. (중략)

어떤 사람들은 또한 세계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사람에게 인간의 부도덕을 보여주기 때문에 인간 도덕에 고나한 우리의 그림이 너무 장밋빛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훔치며,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일 날이 없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훔치는 사람들은 단지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그 개인의 이기적인 동기가 승리를 거둔 사례일 뿐이다. 거짓말쟁이-얌체-도둑은 아마 그 일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꼈을 테고, 따라서 가해진 피해(또는 피해의 부재)를 창의적으로 해석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분명 다른 경우의 다른 상황에서는 도덕적인 일을 많이 했을 것이며,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거의 백 퍼센트 도덕적인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 관해 말하자면,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대규모 교전은 상황을 '우리'와 '그들', 이를테면 한 나라와 다른 나라의 대결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소행이다. 또한 다양한 이유(대개 식민주의 같은 외부의 영향과 관련된다) 때문에 같은 정치적 우산 아래 공존을 강요받는 서로 다른 종족 집단들 사이에도 많은 분쟁이 벌어진다.


이것들 역시 내집단/외집단 충돌의 사례이며, 이번에도 역시 이런 충돌에 관여하는 이들이 일상적으로는 동료들과 많은 도덕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도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쟁 같은 충돌은 다른 많은 유형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쇠퇴하는 것이 분명하다. (중략)

지나치게 장밋빛이라는 비판의 마지막 논점은 우리가 사람들 사이의 등가성이나 평등의 감각을 인간 도덕의 토대로 가정했다는 것이다. 기록된 인간의 역사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서구의 사회이론가들이 모든 개인이 어떤 면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 평등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세우기 시작했다고 지적할 것이다.


물론 지난 1만 년 동안 시민사회가 부상한 끝에 사회계약에 관한 명시적인 정치적 사고가 나탔다는 점에서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직전 시기에(10배 이상 긴 시간 동안) 존재한 사냥꾼-채집자 사회는 어떤 면에서 보아도 대단히 평등주의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개인들에게 어떤 이기적 동기도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일반적으로 해당 문화집단의 모든 성원들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가운데 서로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함께 일을 했다는 말이다. (중략)


도덕이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타인에게 공감과 공정을 보이는 자연스러운 성향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때로 이기적이다. (중략) 우리가 도덕적인 것은 기적이며, 우리가 똑 이런 모습이어야 했던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체로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대체로 더 많은 아이를 낳은 것은 우연일 뿐이다.


그리하여 또한, 이상한 말이지만(그리고 니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덕이 우리 인간 종과 우리의 문화, 우리 자신들에게-적어도 지금까지는-어쨌든 좋은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그저 감탄하고 축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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