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레이션] 여행하는 마음

조회수 2018. 7. 2. 11: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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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폴 서루, 실뱅 테송, 문요한 여행 에세이 발췌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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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휴가철을 맞아 여행에 관한 글들을 골라봤습니다.


여행에 관한 대표적인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폴 서루의 <여행자의 책>, 실뱅 테송의 <여행의 기쁨>, 문요한의 <여행하는 인간> 등에서 주로 발췌했습니다.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장치 앞에서 앓고 싶어하며,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생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꿨다는 시인 샤를 보를레르의 말입니다. 그에게 여행이란 어떤 장소나 공간으로의 이동이 아닌 근원적인 욕망이었습니다.

왜 떠나는가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나는 집에서 우울할 때면 기차나 공항 버스를 타고 히드로 공항에 가서, 2번 터미널에 있는 전망대나 북쪽 활주로변에 있는 르네상스 호텔의 꼭대기 층에서 끊임없이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악의 꽃>에 대한 재판의 여파 속에서 애인 잔 뒤발과도 헤어지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보들레르는 1859년에 옹플뢰로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 두 달간 머물면서 부둣가 의자에 앉아 정박하고 떠나는 배들을 지켜보았다. "잔잔한 물 위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맴돌고 있는) 저 크고 아름다운 배들, 저들은 우리에게 소리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것 같지 않은가? '너희는 언제 행복을 향해 돛을 올릴 것이냐?'"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꿈을 꾸다 보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가구들은 자기들이 불변한다는 이유로 우리도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정적 환경은 우리를 일상생활 속의 나라는 인간,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닐 수도 있는 인간에게 계속 묶어두려고 한다.

폴 서루, <여행자의 책>


내가 보기에 여행에 대한 동경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그것은 움직이고 싶은 욕망, 호기심을 채우거나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싶은 욕망, 자신의 생활환경을 변화시키고 싶은 욕망, 이방인이 되고 싶은 욕망, 친구를 사귀고 싶은 욕망, 이국적인 풍경을 경험하며 미지의 것을 기꺼이 마주하고 싶은 욕망, 하잘것없는 자기애에 사로잡혀 비극적인 또는 희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증인이 되고 싶은 욕망이다.


체호프는 말했다. "고독이 두려우면 결혼하지 마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독이 두려우면 여행하지 마라." 우리는 여행에 대한 글 속에서 고독의 효과를 찾아볼 수 있다. 고독은 때로 애초롭기도 하지만 더 자주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며, 가끔은 예기치 않은 깨달음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여행 중의 발명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기쁨'이라는 시에서 아름답게 표현한 견해와도 같다. 우리가 세상과 마주할 때 "모든 것은 처음으로 생겨난다." "여성을 끌어안는 남자는 모두가 아담이며" "어둠 속에서 성냥을 켜는 사람은 모두가 불을 발명하고 있다"라고 한 것처럼, 스핑크스를 처음으로 보는 사람은 모두가 그것을 새롭게 보고 있다. "사막에서 나는 방금 조각된 젊은 스핑크스를 보았다... 모든 것은 처음으로, 그러나 영원히 생겨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러시아 문학 강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크고 작든 두 힘 사이의 갈등이 존재한다. 하나는 은밀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고 다른 하나는 넓은 장소로 나아가려는 충동이다. 하나는 내향성, 다시 말해 왕성한 사고의 환상과 내면세계로 향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외향성, 다시 말해 사람들과 구체적인 가치들이 존재하는 바깥 세계로 향한 관심이다.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 여행기>


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여행이 몹시 필요하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건전하며 너그러운 견해는 일생 동안 지구의 한 작은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실뱅 테송, <여행의 기쁨>


내가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세상을 관조하고 세상이라는 잔으로 세상을 마시고 그것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다. 괴테는 "여행을 할 때 나는 언제나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낚아챈다"라고 썼다. 여행은 여행자가 외부 세계에 감행하는 습격이며,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다. 약탈자라는 말을 들을 만한 여행자라면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할 수 없다. 그는 자기 밖에서 경탄할 만한 것들을 찾아다닌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라면 떠날 이유가 무엇인가?

괴테는 이탈리아를 여행하기 몇 해 전에 "나는 산과 평원 지역 사이를 심부름꾼처럼 오가며 길에서 사는 데 익숙해졌다"라고 썼다. 먼지 풀썩이는 길 위에서만 불에 덴 내면의 상처를 진정시킬 수 있는 젊은 시인은 친구들에게서 '반더러'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독일 단어는 다른 나라 말로 옮기기 까다로운 단어다. 이 세상에서 경이로운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매복하는 고전적인 여행자와 모든 장애물로부터 자유로운 유랑자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다. 탐색하듯이 길을 걸어가면서 내가 자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반더러라는 인물이다.


진정한 반더러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끈으로도 묶어둘 수 없는 사람, 자신의 포기한 것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밖의 부름에 응할 수 있는 자들이다. 밧줄을 자를 줄 아는 것보다 아예 밧줄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삶은 전환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의 전환을 맞이한다. 사는 곳을 옮기거나 부서를 옮기는 것과 같은 작은 전환도 있지만, 부모를 떠나 독립하거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거나 은퇴하는 등 큰 전환도 있다. 전환은 외부의 사건에 의해 촉발되기도 하고,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도 한다. 또한 내적인 각성과 결심으로 촉발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여행은 능동적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행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여행에서 '메타노이아(metanoia)' 즉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큰 마음의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어떤 '부름'을 들을 때가 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적 신호가 북소리처럼 울리면, 인생에 있어 전환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 시기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의식을 치르려 한다. 그 의식을 통해 지난 시기를 매듭짓고 새 시기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의식이 바로 여행이다.

조셉 캠벨<신화와 인생>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만일 우리가 부름에 대해 떠나지 말아야 할 어떤 이유를 생각해 낸다거나 두려움을 느끼고 안전한 사회 속에 남아 있는 경우, 그 결과는 부름을 따랐을 때에 생기는 결과와 판이하게 달라진다. 여러분이 떠나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이다.

부름을 거부할 경우, 일종의 말라붙음, 즉 삶의 감각이 상실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여러분 속의 모든 것은 요구되는 모험이 거부되었음을 안다. 그로 인해 분노가 형성된다. 여러분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기를 거부한다면, 결국 그것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여행의 유형


니체<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여행자의 등급을 나누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여행자를 다섯 등급으로 구분한다. 가장 낮은 등급의 여행자는 여행하면서 오히려 관찰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행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며 동시에 눈먼 자들이다. 다음 등급의 여행자는 실제로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등급의 여행자는 관찰한 결과에서 그 무엇을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그다음 등급의 여행자는 체험한 것을 자신 속에 가지고 살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다.

끝으로 최고의 능력을 가진 몇몇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관찰할 모든 것을 체험하고 동화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 그것을 여러 가지 행위와 작업 속에서 기필코 다시 되살려 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여행자에 대한 이 다섯 부류에 따라 대체로 모든 사람들은 삶의 모든 여정을 지나간다.

나는 니체의 분류의 착안해 다음과 같이 여행의 등급을 6단계로 나눴다.


1단계 둘러보는 여행: 많은 곳을 둘러보는 여행을 말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곳을 가는 것이 중요하기에 유명 관광지를 중심으로 이동해 재빨리 사진을 찍고 또다른 관광지로 이동한다.


2단계 관찰하는 여행: 자세히 살펴보고 기록하는 여행을 말한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하며 여행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생생한 정보를 추가함으로써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더욱 체계화시켜 나간다.


3단계 체험하는 여행: 오감과 신체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여행이다. 이들의 감각은 열려 있기에 더 깊이 경험하고 감동을 느낀다. 이국의 맛과 예술을 즐기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가슴 뛰는 화동에 도전하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4단계 각성하는 여행: 열린 마음을 통해 깨닫는 여행이다. 이들의 의식과 자아는 열려 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과 경험에 열려 있고, 새로운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자기와의 대면을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힌다. 이들은 여행을 통해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다.


5단계 체득하는 여행: 여행하는 자각이 체화돼 삶과 연결되는 여행을 말한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여행에서 배우고 깨달았던 것을 몸으로 실천하고, 여행자 정신이 살아 있어 일상을 보다 새롭게 바라보고 가꾼다.


6단계 삶으로의 여행: 여행과 살밍 하나가 돼 삶 전체를 여행으로 보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삶 전체가 여행이기에 여행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에도 여행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평생 자기 길을 찾고 자기 세계를 만들어간다.


또다른 여행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1790년 봄, 스물일곱 살의 프랑스인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자신의 침실을 여행하고, 나중에 그것을 <나의 침실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만족하여 1798년에는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밤에 여행을 하여, 과감하게 멀리 창문턱까지 나아갔다. 그 문학적 결과물은 <나의 침실 야간 탐험>이었다.


사비에르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지금까지 감히 여행을 떠나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여행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여행은 생각도 해본 일이 없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예를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돈도 노력도 들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 출발하는 일을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드 메스트르의 작품은 심오하고 의미심장한 통찰로부터 출발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의 심리를 우리 자신이 사는 곳에 적용할 수 있다면, 이런 곳들도 훔볼트가 찾아갔던 남아메리카의 높은 산 고개나 나비가 가득한 밀림만큼이나 흥미로운 곳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하는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적인 태도가 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게 된다.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고 간다...


이와 대조적으로 집에 있을 때는 기대감이 별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동네에서 흥미 있는 것은 모두 발견했다고 자신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우리가 10년 이상 산 곳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 우리는 습관화되어 있고, 따라서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다.

드 메스트르는 우리의 이런 수동성을 흔들려고 했다. 방 여행을 기록한 두 번째 책 <나의 침실, 야간 탐험>에서 그는 창문으로 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는 그 아름다움을 보고 좀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흔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않는 이유는 전에 그렇게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우주가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습관에 빠져 있다. 실제로 그들의 우주는 그들의 기대에 적당히 맞춰져 있다.


80년 뒤에 드 메스트르의 책을 읽고 그에게 감탄했던 (그리고 자신의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니체는 그 생각을 이렇게 밀고 나아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게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그 숫자는 얼마나 많은지!-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도 늘 그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 있다. 이런 것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좋은 여행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행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이후의 일상에 달려 있다. 좋은 여행은 여행자 정신을 유지하고 일상을 보다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다. 그에 비해 여행 때는 좋았더라도 여행 후의 일상이 더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고달프거나 빈곤해져 간다면 이는 좋지 않은 여행이다.


타고르의 시에서처럼 여행에서 돌아와 자기 집 앞의 '잔디에 맺혀 있는 반짝이는 이슬방울'을 보고 감탄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좋은 여행은 끝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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