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레이션] 소셜 시대의 민주주의

조회수 2018. 6. 10. 16:3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의 신간 '위험한 민주주의' 발췌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오늘의 큐레이션] 최근에 번역돼 나온 미국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의 신간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발췌했습니다.


원제목은 The People vs. Democracy: Why Our Freedom Is in Danger and How to Save It입니다. 지난 3월 출간됐습니다.


야스차 뭉크는 폴란드계 독일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정치 제도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이 책에서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이 기세를 더해가는 시대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도전적 요인과 해법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본문 중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반이자 주요 변수로 떠오른 소셜 미디어에 관한 대목을 발췌 소개합니다.

중세 말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전파하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고 번거로웠다. 전문 필사가나 수도승이 원본 원고를 단어 하나하나 일일이 복사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서면 정보는 특정 고위층들만 접근할 수 있었다. 서면 정보 전파의 기술적 한계는 정치적, 종교적 정통을 강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각 페이지의 마스터판을 만들어, 그것으로 여러 페이지를 훨씬 싸게,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몇 번이든 찍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의사소통의 구조적 조건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사상 처음으로 '일대다' 방식의 의사소통을 상당수가 누릴 수 있게 되면서, 관련 기술 및 필요한 자본만 있으면 자신의 생각을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동시에 전달할 수 있었다.


인쇄기는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 중 하나로 칭송받을 만하지만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기도 했다. 새로운 종교적 사상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종교적 투쟁도 확산되었다. 체제 반대의 목소리가 예비 추종자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얻으면서 폭력적인 정치 반란을 선동할 수 있는 능력도 커졌다. 한마디로 인쇄술은 읽고 쓰는 능력뿐만 아니라 죽음, 불안정, 해방과 혼란을 널리 퍼뜨렸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출현으로 의사소통의 구조적 조건은 다시 한 번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일대다 의사소통은 이제 다대다 의사소통으로 변했다. 다대다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 바닥의 거물 플레이어들이 일반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공감시키거나 메시지의 확산을 통제하던 능력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25년 전만 해도, 전통적인 방송사들은 고양이의 웃긴 장난이라든지 테러 집단이 저지른 참혹한 참수와 같은 수백만이 관심 가질 만한 영상은 방송을 거절해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런 내용은 방송을 거부할 수 있고, 실제로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지기로서의 힘은 거의 사라졌다. 기간 방송사의 방영 여부와 관계없이, 바이러스성 콘텐츠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거침없이 전파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디지털 통신 기술의 발명이 실제로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암시한다.

미국 정치의 전통적인 문지기를 우회하는 트럼프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거운동을 보면 소셜 미디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예전 같으면 방송사들은 이민자, 종교 소수자 및 정적들에 대해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나 비방을 늘어놓는 그를 화면에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트위터 덕분에 트럼프는 전통적인 언론 매체의 기반 시설이 필요 없게 되었다.


트럼프 피드는 트럼프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었고, 그것은 이념적인 혹은 금전적인 이유로 행동하는 중견 전문가들의 분산 네트워크로 한층 강해졌다. 이들은 진실을 전하기보다 센세이션을 일으킴으로써 대중에게 어필하고자 했다.


소셜 미디어는 그 자체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또한 소셜 미디어는 본질적으로 관용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지도 않는다. 단지 소셜 미디어는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기술적 격차를 해소할 뿐이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대기업들은 대중매체를 통한 과점 행위를 즐겼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허용 가능한 정치적 담론의 기준을 정할 수 있었다.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이러한 기술적 특권은 거의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권위주의 국가에서 민주적 반대파는 오랫동안 확고하게 군림해온 독재자를 전복시킬 더 많은 도구들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혐오의 선전꾼, 허위를 파는 상인들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 더 쉬워졌다.


소셜 미디어가 어떤 맥락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다른 맥락에서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동일한 기본 역학의 결과이다.


디지털 기술은 외부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전 세계의 정부 고위층들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한다. 이런 효과는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신기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를 약화시키고 있는 포퓰리스트다. 그들은 구식 매체 시스템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은 채 기꺼이 거짓말하고, 혼란을 주고, 시민들에게 증오심을 부추기는 등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독재를 전복한 민주화 운동가들이 승리의 공고화 과정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했듯이, 주도권을 잡은 포퓰리스트들은 기술적으로 달라질 미래가 그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도전적이라는 것을 아직은 모를 수도 있다.


조지 오웰은 일찍이 "지금 승리하는 사람은 항상 무적처럼 보일 것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일단 포퓰리스트가 정권을 잡은 뒤 공약의 상당수를 깨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그들의 지배에 반대하는 새로운 외부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소셜 미디어의 잠재력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포퓰리즘이 부상한 큰 이유 중 하나가 기술적인 것에 있기 때문에, 해결책 또한 기술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지난 수 년간 첨단 기술 기업들이 사회 및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교정 노력은 놀랍게도 유사하다. 대서양 양쪽의 활동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혐오 발언과 가짜 뉴스를 총체적으로 금지하도록 이들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첨단 기술 기업의 경영진들은 효과적으로 가짜 뉴스를 식별하거나 혐오 발언의 경계를 식별하는 것은 알고리즘의 힘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해로운 생각들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과거의 검열과 흡사한 방식을 취하는 불쾌한 조정자 부대를 고용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반대론은 특히 정부의 개입 전망에 초점을 맞춘다. 정부는 처음에는 사심 없이, 진짜 문제가 많은 정치적 발언을 검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언론 자유 옹호자들의 타당성 있는 반론처럼, 정치인들이 결국은 공공담론을 형성하고 비판을 규제하기 위해 도가 넘는 권력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근거가 어디 있는가?


거슬리는 규제 또는 노골적인 검열이냐, 아니면 무대책 또는 체념이냐. 사실은 이 양극단을 보완할 실용적이고 납득할 만한 대안들이 있다.

첫 번째는 과거 영화와 텔레비전업계에서 더 엄격한 정부 규제를 피하는 과정에서 했던 자기 검열 모델을 모방하는 것이다. 만약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이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한다면 정부는 기업들에게 넓은 범위의 자유 재량권을 줘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플랫폼이 직접적인 검열 없이도 가짜뉴스나 혐오 발언의 확신을 막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 플랫폼들은 현재 상업적인 이유에서 사용자들이 보는 게시물들을 선별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응용하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신뢰할 만한 정보 게시물을 권장할 수 있고,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나쁜 게시물에는 경종을 올릴 수 있으며, 혐오 집단의 광고 제의를 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사람과 봇의 유해 발언을 구분하는 것이다. 트위터와 같은 플랫폼에서 퍼지는 거짓 정보와 혐오 발언의 대부분은 '봇'에 의한 것임이 연구에서 밝혀졌다. 그런 봇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개개인의 발언을 규제하는 것보다 도덕적 부담이 작다.


가짜 뉴스와 혐오 발언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음모론은 오랫동안 사라지기 힘든 정치 현실이었다. 음모론의 확산을 막는 효과적 수단 중 하나는 좋은 정치의 전통적인 형태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민주주의 안정적인 생존은 게임의 기본 규칙을 준수하려는 중요 정치인의 의사에 달려 있다. 또한 공민교육이 권위주의 체제로의 유혹에 대항하는 필수적 보루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늘 그랬듯이 어린이들을 시민으로 만드는 임무를 진지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시민교육은 그 자체의 이상에 더 충실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의 명과 암을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전자를 지키고 후자를 바로잡게 해야 한다. 위선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흔히 성의 없이 언급되는 중요한 원칙들을 지나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그런 원칙들을 실현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


[북클럽 오리진] 컨텐츠 카톡으로 받아보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