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레이션] 가면 뒤의 삶을 드러낼 뿐

조회수 2018. 5. 28. 16: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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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타계한 미국 작가 필립 로스 '파리 리뷰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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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지난 22일 타계한 미국 작가 필립 로스(1933-2018)의 생전 인터뷰입니다.


필립 로스는 미국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힙니다. 국내에도 그의 주요 작품이 다수 번역돼 나와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이 된 <네메시스> 출간을 끝으로 7년 전 글쓰기에서 은퇴를 선언했던 그는 올초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 모든 재능에는 기한이 있다. 50년 작가 생활은 엄청난 고독과 침묵의 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85세인 지금은 "잠들기 전 미소지으며 생각한다. 오늘 또 하루를 살았구나. 8시간 후 일어나 또 한 밤을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미소짓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인터뷰는 세계 유명 작가의 심층 인터뷰로 정평이 난 미국 문예지 '파리 리뷰Paris Review' 1984년 가을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국내 출판사 '다른'이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3권짜리 선집으로 묶어 번역 출간하면서 1권에 실었습니다.


인터뷰어는 영국 태생의 영문학자이자 평론가인 허마이어니 리입니다. 지금은 옥스퍼드 대학교 울프슨 칼리지 학장입니다.


그중 인상적인 대목 일부를 발췌 소개합니다. 아래 파리 인터뷰 원문과 함께 그의 작품을 다수 번역해온 정영목 번역가의 강연 내용, BBC의 다큐멘터리 동영상도 링크했습니다.

-글쓰기가 잘 되는 어느 특정한 시간대가 있나요?

저는 하루 종일 글을 씁니다. 아침, 오후, 거의 매일 글을 씁니다. 제가 2년 내지 3년 동안 그렇게 앉아 있으면, 마침내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되지요.

-다른 작가도 그렇게 오랜 시간 작업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다른 작가들의 글 쓰기 습관은 묻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 문제에는 관심이 없답니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어디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가들은 서로에게 언제 작업을 시작하는지, 언제 끝내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점심을 먹는지 물을 때,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그도 나만큼 미쳤나?'라는 점이라고 하네요. 그러니 저는 그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당신이 읽은 것이 글을 쓰는 데 영향을 미치나요?

저는 글을 쓸 때 내내 책을 읽는답니다. 주로 밤에요. 이것이야말로 제 회로를 열어두는 방법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하던 일을 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면서 쓰고 있는 작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책을 읽는 것은 글쓰기라는 전반적인 강박관념에 연료를 주입하는 것으로 책을 읽는 만큼 글쓰기에 도움이 됩니다.

(중략)


-필립 로스가 네이던 주커먼(로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 로스의 분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으로 바뀔 때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네이던 주커먼은 일종의 연극입니다. 분장의 예술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소설가의 기본적인 재능입니다. 주커먼은 포르노 작가 역할을 하면서 의사이기를 원합니다. 저는 포르노 작가이고자 하는 의사이길 원하는 작가입니다.

또 여러 가지 역할을 결합하면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려고 유명한 문학비평가인 체하는 작가이고, 이 역할을 그리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입니다. 제 삶은 가짜 전기나 가짜 역사를 쓰고 제 삶의 실제 드라마에서 반쯤 상상력에 의존한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이러한 작업에는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 어떤 인물의 역할을 맡는 것,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것, 음흉하고 교활하게 가장하는 것, 복화술사라고 생각하는 것, 말을 하긴 하는데 목소리는 자신과 떨어져 있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작가가 등장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작가는 그가 만들어내는 예술로부터 아무런 즐거움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예술은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요. 동시에 서로 다른 사람일 때 그는 가장 자기 자신인 거지요. 소설이 끝나면, 사실 그는 앞에서 언급한 누구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가로서 다른 사람으로 분장하는 역할에 참여하기 위하여, 작가는 꼭 자신의 전기를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가가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더 흥미로워질 수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전기적 삶을 왜곡하고, 희화하하고, 패러디하고, 고문하고, 전복하고 이용하는데, 이 모든 것이 전기에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낸 삶을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차원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문학이라는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않고서도 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런 식의 삶을 삽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진짜 얼굴이라는 가면 뒤에서 어떤 거짓을 유지하는지를 생각하면 정말로 놀랍습니다.

바람피우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보통의 남편과 아내가 무대 위에 오른다면, 그들은 엄청난 압박하에 연기를 잘할 가능성이 없이 자의식으로 얼어붙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집이라는 극장에서는 속고 있는 배우자라는 관객 앞에서 완벽하고 극적인 솜씨로 결백함과 충실함이라는 역할을 수행하지요. 참으로 놀랍고 멋진 연기가 아닙니까?

가장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으로 고안된, 완벽하고 세심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아마추어들이 해내면서 아주 위대한 연극이 탄생합니다. 사람들은 멋지게 '그들 자신'인 체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가장하는 것은 가장 미묘한 형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직업상 가장하는 사람인 소설가가 아내를 속이는 둔감하고 상상력이라곤 전혀 없는 교외에 살고 있는 회계사보다 덜 능숙하거나 더 믿을 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중략)

물고기가 헤엄치거나 새가 나는 것과 달리 제게 글쓰기는 자연스런 일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어떤 종류의 자극 또는 특별한 긴박감하에 이루어집니다. 글쓰기는 정교한 가면을 씀으로써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 행위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 단어의 두 가지 의미인 공적이며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글쓰기는 당신의 도덕적인 성품에는 낯선 특질을, 당신이란 존재를 통해 빨아올리는 매우 고된 정신적인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만큼 작가에게도 고되지요. 복화술사나 공연 배우보다는 칼을 삼키는 사람처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은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자신에게 더 심하게 굴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작가는 사람들이 뭘 보여주길 원하고 뭘 숨기고 싶어하는지 방향을 정해주는 보통 인간의 본능을 따를 여유가 없답니다.

(중략)

저는 인류 전체의 선을 위해서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나, 선을 위해서 사람들이 하고 있다고 가장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오류라곤 없는 이론가들의 체계적인 효율성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은 사람들이 정말로 하는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작가로서 무기력하다고 느끼진 않으셨나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권력에 이르는 길이 아닙니다. 제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소설이 몇 명 되지 않는 작가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심각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지 않습니다. 몇 명 되지 않는 작가들의 소설 역시 다른 소설가들의 소설에 의해 심각하게 영향을 받긴 하지만요. 저는 보통 독자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없으며, 또한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소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반 독자에게요?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지요. 기껏해야 작가는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꿀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또한 충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깊고 독특한 기쁨이며, 성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는 흥미롭고 신비로운 인간 활동입니다.

-그럼 다른 영향은 없을까요?

제 소설이 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거라면 그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분명한 스캔들은 좀 있었지만, 사람들은 늘 그런 일로 분개하지요. 이것은 그들에게 삶의 방식일 뿐입니다. 이것은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 소설이 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길 바라는지 묻는 거라면, 그 대답은 여전히 '아니요'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을 때 소설에 푹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작가들이 하지 못하는 그런 방식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싶습니다. 그러곤 그들을 바꾸고 설득하고 유혹하고 조절하려고 애쓰는 그런 세상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겁니다.

최고의 독자는 이런 소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소설이 아닌 다른 모든 것에 의해 결정되고 둘러싸인 의식을 풀어주기 위해 소설의 세계로 오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책에 홀딱 빠진 어린이들이 즉각 이해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 설명이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유치한 견해는 결코 아닙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 자신을 어떻게 그리시나요? 당신 소설에서 분명하게 변모하는 주인공들과 비교할 때 당신은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분명히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려고 무진장 애쓰는 그런 주인공과 닮았지요. 저는 하루 종일 글을 쓰면서 지내는 그런 사람과 아주 많이 닮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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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목 번역가가 읽은 필립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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