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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오늘의 큐레이션] 왜 무지개떡 건축인가

건축가 황두진 강연 "한옥의 밀도와 복합 한계 넘는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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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황두진 건축가강연입니다.


실무 건축가이면서 건축에 대한 생각을 글과 책으로도 꾸준히 발신해온 황두진 건축가는 2년 전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의 도시 건축에 대한 자신의 대안적인 생각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연장선 위에서 도시 곳곳의 건축물을 답사하고 탐구한 결과를 <가장 도시적인 삶>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지난 10월 28일 오픈하우스서울 2017에서 '상가아파트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했던 강연과 질의 응답 내용을 소개합니다.


우리 한옥은 왜 고층이 없을까. 한옥과 아파트는 어떤 관계가 있나. 단지형 아파트는 뭐가 문제일까. 국내 유명 상가아파트들은 어떻게 생겨났나... 무심코 봐왔던 갖가지 우리 도시 건축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 제가 주로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텐데요, 관련된 지도 두 개를 먼저 보겠습니다.


먼저 제가 이 작업을 하면서 『가장 도시적인 삶』에 등장하는 건물들을 연도별로 색깔을 달리해서 서울 지도에 표기해본 것입니다. 물론 서울의 모든 상가아파트를 다룬 게 아니니까 모집단의 한계는 있겠죠. 그것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주상복합건물들이 대부분 1960~70년대에 집중되어 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지도는 책에 수록된 지도입니다. 상가아파트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놓았습니다. 먼저 단독형, 그리고 단지와 결합한 유형과 시장과 결합한 유형. 그걸 색깔별로 인덱스한 지도예요.


이 지도가 앞선 지도와 차이 나는 건, 지형이 굉장히 뚜렷하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 지도를 만들어주신 신윤석 씨는 현재 지도나 도표 그래픽 작업을 주로 하고 계시지만, 원래 전문적인 건축 교육을 받으셨기 때문에 자료를 실제로 다룰 뿐 아니라, 해석할 수 있는 분입니다.


신윤석 씨가 지도를 만들면서 먼저 지형을 넣자는 제안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실제 지형이 들어간 지도를 통해서 지형과 이 상가아파트들의 위치가 결합된 걸 보니까 어떤 공통점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상당히 많은 상가아파트가 산기슭, 평야와 산이 만나는 쪽에 위치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물길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는 얘기이고, 오늘 말씀드릴 건물 중에 상당수가 물길 위에 지어졌기도 합니다.

이 책 작업을 하게 된 과정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전작에서 한국 도시에 지어진 무지개떡 건축의 계보를 두세 페이지 정도로 간략히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이 챕터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았고, 그 챕터가 520페이지로 늘어난 결과물이 지금의 『가장 도시적인 삶』입니다


이런 책을 왜 쓰게 됐나. 거슬러 올라가보면, 건축가로서나 글 쓰는 사람으로서나 그전에 『한옥이 돌아왔다』라는 책을 썼고, 한옥 작업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도시에 대해 가졌던 생각, 도시건축에 대한 생각 들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이 돼서 오늘 이런 책까지 쓰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한옥’이라는 주제가 이 ‘상가아파트’, 무지개떡 건축과 역설적으로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건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도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두 가지, 바로 밀도와 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옥은 그 두 가지가 굉장히 약했던 건축입니다. 그 자체로는 물론 굉장히 소중하고 훌륭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지만, 도시건축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옥은 너무나 많은 제약을 지닌 건축이라는 것을 한옥 작업을 하면서 절감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

서울 사대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기별로 차이가 나겠지만 조선 시대 후기 한양의 인구가 대략 30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대문 안 인구가 27만 명이 채 안 됩니다. 조선 시대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겠죠.


이 건물들을 보시면, 기본적으로 다 단층 건물입니다. 도시 밀도를 측정하는 개념 중에 하나가 용적률이라는 개념인데, 한양의 용적률은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한 30~40%정도밖에 안 될 겁니다. 그 정도 용적률이라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시가 아닙니다. 그냥 마을이죠. 큰 마을.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대한민국이 세워지면서 우리가 이 초저밀도의 중세 도시를 떠나지 않고 수도를 서울로 유지했잖아요. 이후 면적도 대여섯 배 이상으로 넓어졌고, 인구도 1000만, 수도권까지 합치면 2500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대도시가 됐습니다. 그러면 이 초저밀도의 건축 유형, 한옥으로 형성됐던 도시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1980년대 초반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제가 찍은 안암동 사진입니다. 사대문 밖으로 나가는 전차 노선이 생기면서 1940년대 교통이 편리해진 사대문 밖 지역에 대규모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북촌, 서촌, 최근엔 은평 한옥마을은 들어보셨어도 안암동 한옥마을이란 건 못 들어보셨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없어졌으니까.

은평 한옥마을

이를 두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유럽에 가면 수백 년 된 건물도 잘 보존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하는 이야기가 꼭 나오죠. 유럽은 자동차 문화가 본격 도래하기 이전에 평균 층수 6층 이상인 현대 도시가 되기에 충분한 고밀도 도시를 만들어놨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비교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한마디로 "한옥이 잘못했네" 하는 것입니다. 4, 5층짜리 한옥을 조선 시대에 개발을 했어야 한다는 거죠. 왜 안 했을까요? 왜냐하면 조선은 농업을 근간에 두고 상업을 천시하며 의도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사농공상’의 나라입니다.


사농공상이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가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고층 빌딩도 필요 없고, 고밀도의 도시도 필요 없는 거죠. 당시에는 저 안에서 충분히, 나름대로 근사하게 살 수 있었을 거예요.


제가 좀 더 방점을 찍고 싶은 건 후자입니다. 도시란 밀도와 복합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인데도, 우리는 도시를 이해하는 데 그동안 밀도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고, 어쩌면 밀도를 죄악시한 측면도 굉장히 많습니다.


몸은 도시에 와 있는데, 마음은 자꾸 전원을 향하는 거예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제 세대까지는 실제로 비도시 출신이 많다는 것입니다. 도시 인구의 대부분이 비도시 출신이었고 도시 출신이라 하더라도, 어찌 보면 지금도 진정한 도시적 경험을 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 건축계에서도 인구에 회자되는 담론들을 보면 땅, 유독 땅과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이때도 땅은 인공 대지와 같은 개념도 아니고, 자연 상태의 땅을 의미하는 경우가 너무 많고요. 이게 다 농경시대 유산입니다. 이런 구시대의 문화적 관성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대안으로서 등장한 것이 아파트, 정확히는 단지형 아파트입니다. 아파트 단지를 많이 지을수록 도시는 자칫 고립된 섬이 되기 쉽습니다. 투시도를 보면 조경이 잘 되어 있고, 르코르뷔지에가 말했던 녹지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근사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단지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집 사이, 길을 지나갈 수 없게 됩니다. 단지가 지역을 소위 빗장 공동체로 만드니까.


그리고 이 조경이란 것도 실제 시공하면서 지하층에 주차장을 만들고, 대지를 전체적으로 조금씩 위로 올립니다. 1.5미터 정도 땅이 올라와 있어서 투시도와 달리, 이런 아파트 주변을 걸어 다니면 실제로는 담장 옆을 걸어가는 셈입니다. 대안이 이것뿐일까 하는 의문이 당연히 떠오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도시에 특별한 매력이 없는 듯한데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지역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계획한 것도 아니고, 유명 건축가가 멋진 건물을 설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술가들이 몰려들고, 카페가 늘어나고, 레스토랑이 들어오고, 갤러리들이 생기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까지 일어납니다.


서울에 많은 이런 지역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아래층에는 상가, 위에는 주거가 있는 무지개떡 건축이 자연 발생적으로 많이 지어져 있는 곳입니다. 대표적으로 서촌, 경리단길, 홍대 주변 지역 등이 있습니다. 주거와 상업이 적당히 혼재돼 있으면서 건물들이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고


경리단길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전 세계의 모든 도시들이 대부분 이렇게 이루어져 있는 겁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볼로냐, 뉴욕 맨해튼, 파리,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뒤편, 동남아시아의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태국 방콕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 한복판에, 상가가 있는 건물 위에 다 사람이 살아요.


예시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듭니다. 맨해튼이나 파리에 사는데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을 아시는 분 있으세요? 맨해튼에서 단독주택에 살 수 있어요? 트럼프도 그렇게 못 살잖아요. 왜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 단독주택에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물론 특수한 예외가 있겠습니다만, 우리 머릿속에서 이상적인 주거는 단독주택으로, 아니면 단지형 아파트로 세팅돼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꼭 아파트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부동산 거래하기 좋다는 등 다른 경제적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카사밀라

건축계에서 작가로서 개인적 자아에 충만한, 심지어는 광기의 건축가로 불리는 가우디의 카사밀라. 이 역시 상가아파트입니다. 아래 두 개 층은 상가, 그 위는 40세대 정도의 아파트예요. 왜 외국에서는 이런 건물을 보러 다니면서 우리의 도시를 이야기할 때는 밀도에 대해 아주 부정적으로 이야기할까요? 왜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을까요?


서울이 고밀도 도시일 것 같지만 아닙니다. 서울 전체 평균 용적률이 160퍼센트 정도인데, 유럽의 바르셀로나, 파리 같은 도시의 평균 용적률은 250~260퍼센트가량 됩니다. 고층 빌딩이 보이지 않는데, 무슨 소리냐고요?


최근 몇 년 사이, 부자가 늘어난다고 사회가 부유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뼈저리게 깨달았듯이, 평균을 올리기 위해 정규분포 곡선의 한 쪽을 올리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간 영역이 올라가야 합니다. 도시 평균 밀도도 마찬가지예요. 고층 빌딩이 많다고 올라가지 않습니다.


한국의 도시는 수평적으로 너무 확대됐어요. 그 결과 OECD 국가 중에 출퇴근 시간이 제일 긴 사회가 됐습니다. 제 생각에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개인이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세계. 파고들어가는 집요한 탐닉의 세계. 어떻게 보면 소위 덕후의 세계. 한 사회의 문화나 감성을 한 단계 위로 올려주는, 이런 세계를 키워나갈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도시 구조가 그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한창 서울이란 도시를 개발할 때, 미국식 도시계획에 따라 용도지역 및 지구를 설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몇 년 전, 대선 주자 한 분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음미해볼 만한 문구를 하나 남기셨지요. 우리한테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대안이 있냐? 이것이 제가 질문을 던지게 된 계기와 과정입니다.


무지개떡 건축의 내용이 오로지 저만 할 수 있다든가, 저만의 독점적인 주제라는 건 아니에요. 이러한 건축 유형, 도시 주거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세상에 좀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책의 본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도시에서 가장 시범적인 형태의 무지개떡 건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조선 시대 후기 객주가(客主家)에 기원을 둔 ‘한옥상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래된 가게, 특히 서울 구도심에 전면에 상가가 있고 뒤에 살림집이 있는 유형의 집들이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유형이 아직 밀도를 얘기할 단계는 안 되지만, 적어도 복합을 얘기할 수 있는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한 100년 전에 드디어 밀도의 변화가 왔어요. 왜냐하면 1876년에 강화도조약을 맺은 후 일찍이 근대화한 일본의 다층 건축 유형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조선 상인들이 전통 건축의 구법 안에서 그런 다층 건축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만든 게 2층 한옥상가입니다. 조선 시대에 국한해서 이야기해보면, 이 2층 한옥상가의 출현이 제가 보기에는 조선 건축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층 한옥상가면 아래층에서 사업하고 위에서 살았을 것 같잖아요. 1, 2층이 다 상가입니다. 한국 집은 온돌방이 있어야 하는데 2층 목조 건물에 전통 온돌을 넣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사람은 어디에 살았냐 하면, 2층 한옥상가 뒤에 살림집 한옥이 있습니다.


2층 한옥상가는 극히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남대문로에 겨우 살아남은 한옥상가 하나를 부수지 않고, 리노베이션 한 것이 큰 뉴스가 될 정도로요.

옥인동 2층 한옥상가

출처황두진

그 후에 상업이 더 발달하고 도시의 밀도가 올라가야 됐을 때, 2층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되냐. 이 2층 한옥은 없어지고, 다른 더 큰 집이 됩니다. 더 높은 집.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지은 집들이 되죠.


뒷집은 어떻게 되느냐. 유동인구가 많아지잖아요. 상업가로니까. 환경이 나빠지니까 떠나요. 수평적으로 주거와 상업이 공존할 수 없다는 좋은 예입니다. 이게 인사동인데요. 정확하게 관훈동이지만, 통칭하면 그렇습니다.


이 집들은 어떻게 되느냐. 마당에 지붕을 덮죠. 그래서 한정식 집이 됩니다. 그게 지금 우리 도시에 많이 남아 있는 구도심의 한정식집 중에 상당수가 원래 2층 한옥상가하고 연계되어 있던 집이에요.


눈을 좀 돌려서 동남아시아로만 가도 우리랑 얘기가 너무 다릅니다. 3층짜리 상가주택, 소위 숍하우스(shophouse)가 대세예요.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구시장광장의 상가주택들이나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의 상가주택들.


싱가포르에서 오래된 숍하우스의 일부를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는 차이나타운역사박물관(Chinatown Heritage House)을 직접 가서 보고, "이게 오리지널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왜 그렇게 물었냐면 이 건물이 콘크리트로 지어졌습니다. 이미 당시에 콘크리트가 보급되어서 콘크리트로 상가주택이 지어진 것이지요.

충정아파트 정면

출처황두진

이제 본격적으로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사실 소개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이 아파트가 옥인동 한옥상가나 서울역 앞에 지어진 관문빌딩보다도 먼저 지어졌거든요. ‘아파트 공화국’ 한국에서 당연히 최초의 아파트는 무엇일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겠죠.


조사를 해보니까 최초의 아파트를 두고 학계에서 굉장히 논쟁이 되었던 것 같은데요. 결론적으로 서울시립대에 계시는 박철수 교수가 논란의 종지부를 찍으신 것 같습니다. 1930년 일본인 도요타가 지은 당시 이름 ‘도요타아파트’, 이후 ‘유림아파트’로 불리었다가 현재는 ‘충정아파트’로 불립니다. 프랑스대사관 부지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이 녹색의 슈렉 같은 건물이 한국 최초의 아파트입니다.


이 건물의 1층을 보세요. 상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충정아파트가 처음부터 상가가 들어간 아파트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자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였다면, 한국 최초의 아파트가 상가아파트였다는 뜻이죠. 적어도 충정아파트는 현재 상가아파트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제 책에 넣었습니다.


사진에 찍힌 버스가 지나가는 중이 아닙니다. 충정아파트 바로 앞이 버스 정류장이에요. 주민들이 편리하겠죠. 다만 이 충정로가 확장되면서 충정아파트 앞면이 잘려 나갔습니다. 지금 전면은 잘린 후의 모습이고. 이게 오리지널 윗면이에요. 이 윗면은 그 당시에 1930년대 전전에 일본에서 지어줬던 도준카이라는 유명한 그 주택공급 반관반민의 업체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서 지었던 일본식 아파트하고 상당히 분위기가 유사해요.


이 충정아파트에 도시괴담이 많아요. 공통적으로 여기에 인민군재판소가 있었고 대량학살이 있었다는 거예요. 주변에 군사학 전공자들한테 문의해봤는데 적어도 군사학 쪽에서는 충정아파트 관련 정보가 안 나온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절반의 도시괴담 정도로 남은 것 같습니다.

출처맥스 데스퍼 AP 기자

한국전쟁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바로 AP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가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이 찍힌 때가 서울 수복 가까운 날일 겁니다. 맨홀에 숨어 있던 북한군 한 명이 연막탄에 몸이 완전히 시커멓게 탄 걸 미 해병대가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에요. 공격자와 피공격자가 한 컷에 담겨 있는 전쟁 사진이 거의 없대요. 그 배경에 있는 건물이 바로 충정아파트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도로 확장으로 잘려 나가기 전의 입면이 보입니다. 충정아파트는 이래저래 이야깃거리도 많은 건물이니까 기억해놓을 만합니다. 건물을 실제로 가서 보면 상당히 낡았고, 안타까운 느낌이 듭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런 아파트들을 보러 다니기가 쉽지가 않아요. 대부분 아파트 분위기가 너무 안 좋습니다. 건물이 너무 낡았고, 남이 와서 보는 것 자체가 싫고. 사진 찍으면 고발하겠다는 안내가 여기저기 붙어 있기도 합니다. 마음속으로 사과하면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재건축 반대파와 재건축 찬성파로 사분오열돼 있습니다. 재건축이 잘 진척되지 않습니다.


이 사진들이 이렇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정도 높이의 좀 더 나은 뷰를 확보하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지하철 환기구에 기어 올라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제 책에 들어간 사진 거의 대부분을 직접 찍었어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 상가아파트들을 누구랑 같이 다닐 수가 없어요. 두세 명만 돼도 눈에 너무 잘 뜨여서 혼자 다녀야 해요. 제 주변엔 훌륭한 사진작가들이 계시지만 그냥 작업의 효율을 위해서 부득불 혼자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파트 입구를 보면 간판이 세 개나 있죠. 내부로 들어가보면, 중정형입니다. 중앙 냉난방이 돼 있던 최신 아파트였기 때문에 굴뚝이 남아 있고요. 내부의 모습이에요. 이 뒤가 중정입니다. 이 일대가 다 재개발 지역인데. 거기서 보이는 모습이에요.


다시 외벽을 보면 페인트 같지만, 자세히 보면 타일 위에 페인트를 칠한 것입니다. 1930년대부터 시작했다고 보면 한국 아파트 역사가 90년이 조금 못 되잖아요. 한국 아파트 역사에서 안 변한 게 외벽 재료예요. 그냥 구체 위에 시멘트 바르고 페인트 바르고 끝! 이보다 더 쌀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가장 저렴한 재료로 국민 대다수의 주거를 해결해온 겁니다.

그다음은 1966년에 지어진 문제의 ‘좌원상가아파트’입니다. 이런 건물을 답사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제보도 들어오고, 인터넷 검색도 해서 찾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과정이 보통 어떻게 되냐 하면, 사진을 보거나 제보를 받으면 강력한 우군이 있죠. ‘스트리트 뷰’. 그걸로 먼저 한번 봐요. 그런데 이런 건물을 보면 가고 싶겠습니까. ‘건물이 너무 별로…’ 싶다가도 일단 직접 가서 봐야 한다고 다잡습니다.


실제 가서 보면, 얘들이 말을 걸어요. ‘어, 너 왔냐.’ 사실 저한테 너라고 하면 안 되죠. 저보다 어린데. 하여간 ‘형님 오셨습니까.’ ‘넌 나이에 비해서 왜 이렇게 늙었냐.’ 한국은 이상해요. 전 세계에서 평균수명은 제일 긴 나라가 어떻게 건물 수명은 제일 짧은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자기 관리는 하면서 건물 관리를 너무 안 하는 나라입니다.


이 건물은 가좌역 바로 맞은편에 있고, 1, 2층이 상가고 3, 4층이 주거입니다. 나중에 가서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게 규모도 굉장히 크고 뒤로 깊은 건물이거든요. 그럼 ‘주상복합’ 정도의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통상적으로 한국에서 ‘최초의 주상복합’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가져간 건물은 ‘세운상가’입니다.


그런데 건축물대장상 건립 연도는 좌원상가아파트가 1년 빨라요. 이 건물이 완공했을 때, 세운상가는 아직 짓는 중이었어요. 건축물대장을 제가 한번 떼보고 가거든요. 사람으로 치면 호적등본 같은 거지요. 건축물대장에 출생 연도도 나와 있고, 면적이 얼마라는 재원이나 특성도 나와 있어요. 그다음에 원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해당하는, 그러니까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가 다 나와야 하는데, 대부분 그 난이 공란입니다. 속된 말로 아비어미 없는 자식들이에요.


좌원상가아파트 대장을 봤더니 1966년 12월 23일에 사용승인을 받았는데, 세운상가는 가장 빨리 사용승인 받은 게 1967년 11월 17일이거든요. 그런데 왜 우리는 그동안에 좌원상가아파트는 얘기 안 하고, 세운상가만 얘기했냐. 지명도가 비교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운상가는 얘기할 거리가 많고, 무엇보다 김수근 사단의 작품이니까요.


좌원상가아파트는 누가 설계했는지 저도 못 찾았어요. 무명이면, 혹은 익명이면 서러워요, 건물도. 그리고 불이 났던 건물인데 제대로 복구가 안 됐어요. 1층 복도가 이렇게 생겼습니다. 복도 양쪽이 다 열려 있지요. 지금 사진을 보면 ‘뭐, 형편없군’ 하실지도 모르는데요. 당시 분양광고입니다.


분양광고 문구를 보세요. 지금 이 문구를 내놔도 어필할 수 있을 걸요. “생활의 근대화. 독신아파트 분양 및 임대. 스팀온돌 라지에이터 냉온수 상시 사용…” “주차장, 시청 거리 8분, 세면기, 양변기, 샤워, 자동 화재 경보기, 1‧2층 청소…”


나름 고급 맨션아파트였습니다. 낮에 답사를 다니면서도 말씀드렸는데, 절대로 지금 이 아파트들의 표면적인 초라함과 누추함과 낡음을 가지고 이 평가하면 안 됩니다. 이 아파트들이 지어졌을 때 다 타워팰리스였습니다. 연예인들이 살고, 고위 공직자들이 살고.


이 건물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가좌역이라는 위치를 감안했을 때, 과연 독신자들이 근사하게 이 안에서 생활의 근대화를 만끽하고 살았을지는 좀 의문입니다만.

세운상가 (세운전자상가 남쪽 정면)

출처황두진

이제 세운상가를 이야기할 차례가 됐습니다. 세운상가는 지금 가장 ‘핫’한 건물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요. 세운상가라고 통칭하긴 하지만, 지금 없어진 현대상가까지 합치면 총 여덟 개의 건물군입니다. 이것들이 건립 연대도, 시공 주체도 다 다릅니다. 설계자만 김수근 사단이었던 것이고요.


실제로 김수근 선생님은 깊게 관여는 안 하신 것 같아요. 오히려 윤승중 선생님이 훨씬 더 깊게 관여하신 듯한데, 더 자세한 내용은 요새 세운상가에 대한 자료가 너무 많으니까 찾아보시면 되겠습니다. 하여간 공식적으로는 세운상가를 ‘공식 대한민국 주상복합 1호’라고 하지만, 제 책에서는 좌원상가아파트가 1호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했습니다. 학계에서 판명되겠죠?


개인적으로 세운상가는 하나의 건물로 접근하기보다, 여덟 개의 상이한 건물에서 공통점을 추출해가면서 접근하는 게 훨씬 더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너무 방대한 건물이라 사실은 한 장으로 다루기 힘들지만 요약해서 넣었고요. 사진을 보여드리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세운상가는 사진을 찍으면 근사하게 나옵니다. 건물이 높은 부분도 있고, 워낙 축이 장대합니다. 그중 남쪽에 있는 건물 중에 하나가 풍전호텔, 지금은 PJ호텔인데, 지하실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민국 최초의 슈퍼마켓이 있었다고 합니다. 답사 다닐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앞서 말씀드린 스트리트 뷰하고, 또 네이버의 옛날 신문 검색 기능입니다. 물론 동료, 선후배, 연구자들의 도움도 굉장히 크죠.


앞에서부터 세운전자상가, 청계상가, 그리고 대림상가. 세 개의 건물에 아름다운 중정이 있죠. 대개 사람들이 세운상가하면 지저분하고 낡고 이런 이미지를 생각하는데, 주로 데크가 그랬구요. 안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멀쩡합니다. 특히 PJ호텔하고 삼풍넥서스 같은 건물들은 리노베이션을 깨끗하게 했어요.

세운상가 중정

출처황두진

두 건물이 실제로 상태가 굉장히 좋기 때문에 세운상가라고 해서 다 낡은 건물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가면 굉장히 당혹스러워요. 게다가 서울시가 데크도 다시 잇는 등 사업을 하면서 도시재생의 아이콘이 됐죠. 이게 대단한 건물의 운명이에요. 아무래도 이런 운명이 가능한 것이 아버지를 잘 만나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들은 제가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찍은 세운상가 여러 건물들의 입면입니다. 개인적인 소회를 좀 말씀드리면, 가급적 건물을 찍을 때 투시도처럼 찍지 않고, 정면 샷을 찍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건물을 가장 인격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초상 사진을 찍듯이. 제가 이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어떤 후배 건축가가 ‘어쩜 그렇게 오래된 건물을 아이돌 찍듯 찍었냐’고 했는데, 이 사진으로 받은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었습니다.

삼일대로 위에 서 있는 낙원상가

출처황두진

그다음으로 개인적으로도 매우 좋아하고, 또 오늘 답사의 마지막 코스였던 ‘낙원빌딩’입니다. 낙원상가는 사실은 하도 할 얘기가 많아서 조금 줄여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낙원상가가 있는 도로가 삼일대로고요. 이 삼일대로는 간단히 말해 우리 국토의 척추예요. 위로는 가회동길이고, 감사원을 지나고, 더 올라가면 서울 성곽하고 닿습니다.


다시 말해서 북한산에서 시작해 북악산을 거쳐 내려오는 서울의 자연의 축과 이어지는 바로 그런 도로이고요. 남쪽으로 내려가면 1호터널을 지나, 한남대교를 지나, 경부고속도로가 되죠. 삼일대로가 그만큼 중요한 길입니다.


낙원상가는 지금 봐도 대단한 건물이에요. 일단 규모도 크고, 복합도도 어마어마하게 높죠. 악기상가가 있고, 지하에는 전통시장이 있고, 극장도 있습니다. 또 6층부터 16층까지 149세대의 아파트가 있습니다. 이런 건물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보통 어떤 비전, 미래를 꿈꾼 이론가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죠.


'도시에는 이런 건물이 있어야 한다’는 이론을 발표하고, 사회의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 정책 결정자들한테 받아들여지면서 이런 건물을 지어보자는 사회적 합의 내지는 어떤 움직임이 생기고, 거기에 공감한 뛰어난 건축가가 설계하는, 그런 시나리오를 떠올릴 수 있죠.


그러나 내막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곳이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때 공습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한 소개공지대였어요. 세운상가하고 똑같아요. 이후 해방되고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그 자리에 재래식 시장이 하나 들어섭니다.


그런데 여기에 삼일대로를 개통해야 뚫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낙원빌딩이 지어진 1968년 즈음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었거든요. 삼일대로가 국토의 척추니까 당연히 여기에 길을 내야죠.


근데 거기 재래식 시장이 사람 몸으로 치면 목덜미에 해당하는 곳에 딱 박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시하고 협상에 들어갑니다. 당시 서울시장이 ‘불도저’로 불린 김현옥이었는데, 시장 상인들이 굉장히 현명하게 대처했어요. 특이하게 상인 대부분이 지주였기 때문에 ‘낙원상가주식회사’라는 법인을 만들어서 공동 대응을 합니다. 협상력을 가지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재래식 시장은 지하로 들어가기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지금도 지하에는 재래식 시장이 있습니다. 1층에는 도로가 있고요. 삼일대로가 지나가야 하니까요. 2층부터 4층까지는 상가가 들어갔는데, 이 상가 지분을 지주인 시장 상인들이 일부 갖습니다.

낙원상가 지하 시장

출처황두진

그렇게 구도는 짜였고, 그러면 이제 집 지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당시 정부가 돈이 없고 민간기업도 돈이 없어서 선투자하고 건물을 지을 주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대일건설이라는 곳이 이 건물을 지으면서 특혜를 받습니다. 그 위에 고급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할 수 있게 해준 거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금 낙원상가는 세 개의 주체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낙원상가주식회사, 대일건설, 아파트 입주자들로 이루어진 협의회. 그래서 등기부등본을 쌓으면 산처럼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만들어진 게 아니고,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민과 관이 협상을 하고, 거기서 실갱이가 벌어지고 하는 과정에서 이런 크고 복잡하고 굉장히 특이한 건물이 완성된 겁니다. 이걸 제가 본문에서 뭐라고 일컬었냐면 “어쩌다 모더니즘”. 모더니즘에 대한 이론이 머릿속에 정립돼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하다 보니 나온 거죠.


처음에는 낙원상가의 업종이 다양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악기 전문 상가잖아요. 대일건설을 방문했을 때 아주 재미난 얘기를 들었어요. 세운상가는 결과적으로 전자를 업종으로 선택했고, 자기네는 그것보다 훨씬 작은 시장인 악기를 주종목으로 삼았는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옳았던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전자는 크고 변화가 빠른 시장이라, 용산으로 갔다가 결국 다 온라인으로 이동했지요. 물리적으로 고정된 한 장소에서 취급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닌 거죠. 그런데 악기는 시장의 규모가 대형 건물 하나를 잘 매만져서 갈 수 있는 정도라고. 1980년대에 그렇게 건물을 재구성했다고 합니다. 악기상가는 상당 부분 대일건설 소유입니다. 결론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건물이라는 것이죠.

낙원상가 평면

출처황두진

대일건설 사무실에 초기 투시도와 중요한 도면이 걸려 있습니다. 낙원상가는 이상하게 설계자에 대한 설이 여러 가지가 있더라고요. 심지어 김수근 설도 있고 일본인 건축가설도 있어요. 지금도 학생들이 김수근 선생님 작품이냐고 하면서 찾아오는데, 아니라고 하면 되게 실망하고 간대요.


좀 이상하지 않나요? 건물에 관심이 있으니까 찾아왔을 텐데, 설계자가 누구건 말입니다. 그렇지만 도면에 딱 나와 있지 않습니까. ‘연합건축’이라고. 그 당시 충무로에 있던 회사고, 대표가 김만성이라는 분입니다. 낙원빌딩 설계사는 연합건축입니다.

낙원상가 중정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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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평면이 참 들여다볼수록 괜찮은 평면이에요. 짜임새가 있습니다. 평면도 가운데 부분은 바로 중정입니다. 낙원상가의 유명한 중정. 오늘 답사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조용하고, 양옆의 거대한 부조가 거의 종교적이에요.


분위기가 약간 촌스럽지만 대단히 긍정적이지 않나요. 당시 현장 노동자가 한 부조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디에고 리베라냐 그랬습니다. 제가 보기에 서울 구도심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원일아파트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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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에는 ‘유진상가’와 ‘원일아파트’라는 두 무지개떡 건축이 가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길이과 크기의 유진상가, 그리고 옆에는 크기로 있고 옆에는 서북 지역의 거점 시장 ‘인왕시장’입니다. 물론 굉장히 큰 시장인데, 원일아파트는 인왕시장하고 한 몸을 이루고 있어요. 인왕시장으로 들어가는 주출입구가 원일아파트 1층을 뚫고 나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한 몸을 이루고 있죠.


입면을 보면, 설계자를 알 수 없는데 상당히 정성스럽게 잘 디자인했습니다. 어지간한 이름 있는 건축가가 설계한 것보다 비례도 좋고 괜찮은 부분이 많습니다. 원일아파트도 내부에 중정이 있는데, 중정 비례가 조금 좁긴 합니다. 위의 캐노피 디자인을 잘했습니다. 위에는 유리를 끼워서 빛이 들어오게 했고, 양옆을 개방해서 환기도 잘 되고요.


우리가 이런 콘셉트를 계속 연구 개발했으면 네덜란드 MVRDV이 설계한 ‘마켓홀’ 같은 걸 할 수 있었겠죠. 마켓홀도 시장과 공동주거가 결합한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항상 이런 아이디어를 외국 가서 보고 배우려 할까요.


우리에게 있던 가능성은 배척하고, ‘아니, 어떻게 시장 위에 사람이 살아?’ 하다가 외국에 가면 ‘와, 시장 위에 사람이 살아!’ 감탄하는 거죠. 물론 마켓홀이 세련되었지만, 못살던 시절에 이렇게 했던 걸 계속 아이디어를 발휘하고 발전시켰으면 그때보다 훨씬 양질의 것을 지금 만들 수 있겠죠.

서소문아파트 코너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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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연구자분들 사이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건물이 인기가 참 좋아요. ‘서소문아파트’. 저도 개인적으로 이 건물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저층부 상가의 처리에서 배울 점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시면, 상가가 길을 쭉 따라오죠? 코너를 싹 돌았어요. 그러면서 다시 옆 건물의 상가랑 연결이 돼요. 이쪽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큰길 쪽도 마찬가지예요.


코너부 처리를 통해서 길에 대한 건물의 자기 태도를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통일로변의 면을 전부 유리벽으로, 통창으로 해서 밖을 다 볼 수 있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마도 프라이버시 때문에 가려놨지만요. 다만 도로에 대한 태도 자체는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물 중앙 뒤에 골목이 하나 있는데 골목과 연결되는 길이 아파트 1층 상가를 뚫었어요. 상가가 말려들어 가면서 또 가게들이 있는 뒷골목에 연결돼요. 낡았지만 한때는 여기도 연예인 아파트라 불렸던 곳입니다. 나름대로 타워팰리스예요. 낡은 아파트이지만 도시건축의 기본적인 덕목을 갖춘 건물이라고 생각해요. 도시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너무나 좋은 아파트입니다.

서소문아파트

출처황두진

그런데 이 아파트가 물길 위에 지어졌어요. 지도를 보면 물길이 보이죠? 지금 이 물길의 대부분은 복개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안으로는 안 보이고 그 위를 지나가는 도로의 흔적만 보입니다. 복개도로 한 부분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섰고, 이 물길은 서소문공원, 서울역 뒤를 지나서 삼각지를 지나 원효대교 밑으로 흘러갑니다.


바로 ‘만초천’입니다. 봉준호 감독 「괴물」에서 괴물이 사는 곳이 만초천이에요. 원효대교로 흘러들어 오거든요. 그리고 하필이면 그 옆을 경의중앙선이 지나가면서 서소문아파트의 부드러운 곡선과 경의중앙선의 곡선이 탁 만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소문아파트는 곡선이 아니라 두 번 꺾인 직선입니다. 이상하게 두 번밖에 안 꺾였는데 곡선으로 느껴져요. 너무나 부드럽게 연속되는 상가들과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연결부… 요새 어떤 아파트가 지역에 대해서 이런 태도를 취하나요. 여기 맛집들도 있으니니까 일부러 찾아가서 식사 한번 해보실만 합니다.


지금까지 상가아파트나 상가주택을 살펴봤는데요. 저는 한반도가 아직 적절한 도시 주거를 못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에 적합한 무지개떡 건축을 앞으로 좀 더 적용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 우리 역사 속에서, 진화론의 발생 단계에서 사라진 연결 고리에 해당하는 이 상가아파트라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지만 실무하는 건축가가 상당한 시간을 동원해가며 답사를 다니고 자료를 모으고 책을 내고 이렇게 강연을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런 건축 유형이 있었고, 그 유형을 잘 연구 개발했으면 현재의 도시 주거나 도시의 풍경은 굉장히 바뀌었을 텐데, 어떻게 서울 사대문 안이 조선 시대로 돌아가느냐 하는 문제의식입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안 되고 도시가 바뀌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생각입니다. 잠깐이나마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얼마되지 않는 햇수 동안 이렇게 다양한 상가아파트들을 쏟아냈다는 걸 한번 돌아보고 거기서 새로운 출발점을 모색해야 되지 않을까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오늘 보신 아파트 거의 대부분은 아직까지 이름을 모르는 익명의 건축가들이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 책을 그분들한테 바친다고 헌사를 썼어요. 너무 긴 시간 동안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겠습니다.

<질의 응답>


Q. 1960~70년대 지어진 주상복합건물들이 기술적인 한계든 설계의 한계든 거주하는 사람들한테 안 좋은 인상을 주고, 상가아파트는 살기 좋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을 주었다고 답사 때 말씀해주셨는데요. 어떤 부분이 안 좋은 점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저는 상가아파트라는 존재를 부각시키고, 그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의견을 만들어내려고 했기 때문에 비교적 따뜻한 시각으로 봤지만, 책에 지금 언급하신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피어선아파트 같은 경우는 제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자기가 어렸을 때 실제로 거기서 살았다는 거예요. 자기 아버지가 ‘드디어 한국에도, 서울에도 세계의 다른 도시들처럼 이런 제대로 된 도심형 주상복합이 생겼으니 우리가 거기서 한 번 살아 봐야지 않겠냐’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식구들을 데리고 거기로 이사를 갔답니다. 첨단이었으니까 연예인, 고위 공직자 이런 사람들이 들어갔겠죠.


그런데 살아보니까 문제가 생긴 거예요. 왜냐하면 상가로부터 오는 소음, 냄새, 이런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재 위험. 이 두 가지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상가와 공존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과 화재. 실제로 옛날 신문 검색에서 상가아파트 화재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아파트의 다수가 줄줄이 쫘악 나옵니다. 소방 검사에서 걸리고.


저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냐면, 당시 한국의 설계 기술이 이런 주상복합 아파트를 능숙하게, 쾌적하게 설계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됐다. 특히 소방 안전 쪽에서. 지금은 충분히 그와 관련된 능력은 대한민국 건축계가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당 부분은 좀 더 발전된 설계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상가아파트는 우리한테 몇십 년 빨리 온 것 같아요. 저때 상가아파트가 자리를 잘 잡을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까 얘기했지만 ‘어쩌다 모더니즘’이죠.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데, 건축 유형이 먼저 온 겁니다. 그 점이 상당히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 지어진 상가아파트가 영원히 퇴출되어야 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책을 썼습니다.


Q. 정말 넘치는 애정이 보이는데요. 이들 중에도 가장 애정이 가는 것이 있다면?


A. 아주 기다렸던 질문인데, 마지막 질문으로 정말 좋네요. 건축적 실험이라는 측면에서는 대신아파트입니다. Y자형. 그것은 정말 저한테 너무 인상적이고 쇼킹했어요. 그 밖에 여러 개인적인 이유에서, 제가 거기 갈 일도 많고, 거기 사시는 분도 알게 됐고, 아까 답사도 갔고, 어렸을 때 거기에서 영화도 봤고, 지금도 그 옆에 냉면집에 가고…


이런 의미에서는 낙원상가. 이 두 개가 제일 마음속에 있고요. 왠지 모르게 항상 지나가다가 한번 들러보고 싶은 데는 서소문아파트. 이 세 가지 정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작성자 정보

북클럽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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