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 자기 해명의 욕구

조회수 2018. 4. 16. 07:5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활자와 근대' 저자 박천홍 '나는 왜 이 책을 썼나'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오늘 소개해드릴 [책 만드는 사람] 박천홍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입니다.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새로운 저서 '활자와 근대'를 출간했습니다.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2003)과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2008)에 이어 우리 근대의 또다른 단면을 조명하는는 역저를 써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인쇄술의 도입 과정과 여파를 이야기한 책입니다. 근대 텍스트를 구성하는 물질적 조건이 지식과 사유의 구성 방식, 그리고 독서 경험을 어떻게 바꿔가는지 실증적으로 추적했습니다.


왜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책을 쓰게 되었는지 이메일로 물어봤습니다. 아래 답글과 함께 본문 중 일부를 발췌 소개합니다.

나는 왜 이 책을 썼나?


『활자와 근대 – 1883년, 지식의 질서가 바뀌던 날』은 제가 앞으로 써나갈 책들의 ‘서문’ 격입니다. 서문 치고는 조금은 길어져 버렸습니다. 이 책을 비롯해서 뒤따라 이어질 글들의 일관된 주제는 근대적 지식의 형성 과정입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얼마나 쓰게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 첫 번째 작업이라고 불러야 할 이 책의 서문에서 저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 책은 근대적 지식 체계가 성립되기 시작한 기원의 시공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대인들이 기계화되고 표준화된 문자와 기록, 지식을 통해서 무엇을 상상했고 꿈꾸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식과 정보, 개념 등을 낯선 시선과 감각으로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오늘날의 세계를 새롭게 해석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힌 대목인데, 독자들에게는 막연하고 관념적으로 읽힐 수도 있을 듯합니다. 특히 ‘근대적 지식 체계’란 게 무엇을 말하는지 어렴풋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근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무척 중요하고 복잡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논자에 따라서는 그것을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평등주의, 시공간 압축 등 제각기 여러 가지로 풀이합니다.

여기서는 지식 세계를 대상으로 한 근대라는 말만 생각해볼까 합니다. 그것은 단순 소박하게 말하면 복수성과 이질성을 뜻할 것입니다. 단 하나의 진리, 도전받지 않은 사상, 신성하고 영원한 신의 말씀처럼 유일무이한 지식(사상, 인식, 감성 등)은 근대 세계에서는 부정되거나 논박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지식들이 비판과 검토, 토론과 경쟁의 대상이 됩니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타자의 합리적 주장을 존중하는 것이 근대적 지식인의 미덕입니다.


이처럼 지식의 절대성 대신 여러 가지 이질적인 지식‘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승인받으려고 하는 사회가 우리에게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닙니다. 이 책의 부제에서는 지식의 질서가 바뀌던 때를 1883년 『한성순보』의 창간일로 못 박았지만, 대략 19세기 중후반 무렵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연활자 인쇄술의 도입과 신문의 등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밝히는 길고 지루한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무수히 많은 시대와 인물, 소재와 주제가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근대 그것도 근대의 지식에 관심이 갔던 것일까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자기 해명의 욕구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꽤 많은 책을 읽어왔으니 예나 지금이나 퍽 충실한 독자입니다. 첫 번째 직업은 책을 만드는 편집자였습니다. 이어서 책을 알리고 소개하는 잡지사의 기자로 일했습니다. 곧 책의 생산자이자 매개자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의 희귀한 문헌과 서적을 소장한 기관에서 그 자료들을 정리하고 관리하고 전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전자책 제작과 디지털 아카이브 사이트 관리까지 맡고 있습니다. 어설프긴 하지만 책의 미래에도 어쩔 수 없이 연루되어 있는 셈입니다.


도대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의 형태는 언제부터 이렇게 만들어진 것일까, 읽고 쓰는 일이 한 사회나 역사를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책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에 참여한 사람들의 일상은 어떻게 구성되고 있을까, 활자나 문장의 형식과 공간 배치에 따라서 의미는 달라질 것인가, 죽은 글자를 생동하게 하는 마법 같은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동일한 책을 읽는 나와 다른 사람의 경험은 어떻게 다를까, 책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등등.


이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싶고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망. 이것이 이 책을 쓰게 했고 계속 쓰게 할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종잡기 어려운 자료 앞에서 좌절하고, 앞뒤가 잘려나간 기록 앞에서 낙망하고, 표현할 길 없는 사태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읽고 쓰고 타자와 함께 이야기하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을까, 고통과 노동, 사랑 없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하고 저는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활자와 근대' 본문 발췌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인쇄술과 화약 그리고 나침반, 인쇄술은 학문에서, 화약은 전쟁에서, 나침반은 항해에서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변화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베이컨은 "그 어느 제국도 그 어느 종파도 그 어느 별도 인간의 생활에서 이 세 가지 발명보다 더 큰 힘과 영향을 미친 것은 없었다."라고 단언했다.


이 발명의 힘과 영향력을 인류의 진보와 정의라는 잣대로 가늠해본다면 어떨까. 화약은 전쟁의 목적인 파괴력을 조직화하고 극대호했다. 하지마 인간 생명의 파멸을 체계화하고 대량화함으로써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했다. 나침반은 신화의 공간을 해체하고 대륙과 해양의 무한한 부를 탐험하게 했다. 하지만 미지의 종종과 공간에 대한 착취를 자극함으로써 제국과 식민이라는 악마가 태어났고 인간의 대지는 피와 신음으로 얼룩졌다.


사물과 실재의 영역을 주관하는 화약, 나침반과 달리 인쇄술은 인간의 정신과 사상의 세계에 이성과 해방의 빛을 던져주었다. 인쇄는 말을 하나의 사물로 붙들어놓음으로써 지식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고, 언어를 표준화함으로써 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또 지식을 무한히 복제하고 전파하게 함으로써 지식의 소유와 향유에 대한 독점을 깨드렸다. 아울러 이성을 비판적이고 공적으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절대적 진리나 맹목적 신앙을 회의하게 했다. 하지만 편견이나 오류들을 더욱 고착화할 위험성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이 발명들은 모두 중국에서 싹이 텄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저 멀리 서유럽에서 원산지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더욱 단단한 열매를 맺었다. 중국의 화약과 나침반은 아랍을 거쳐 서유럽으로 전해졌다. 19세기에 유럽인들은 능란한 항해술과 압도적인 화력으로 중국을 위협함으로써 기원의 신화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인쇄술은 예외였다. 제지술은 중국 문명의 소산으로 유럽에 전해져 정신문화의 토대가 되었지만, 목판과 활자 인쇄술은 동서양이 서로 독자적으로 발명, 발전시켜갔다.


중국의 목판과 필승의 활자,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발명되었고 세련된 문자문화를 꽃피게 했다. 하지만 인쇄술의 쓰임새와 영향력의 차원에서 동서양은 극단적으로 대비되었다.


서양에서 인쇄술은 정치와 종교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불화의 근원이었고, 지식의 절대성을 비판하는 논쟁과 지적 담론의 무기고였으며, 전쟁과 혁명을 선동하는 무대 뒤 악마의 장치였다. 인쇄 공정의 기계화, 인쇄기계의 고속화, 언어의 표준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한 독서혁명 등을 거치면서 서양은 지식의 독점을 타파하고 지식 전달과정을 민주화했다. 또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고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었고, 상징과 신념의 사유 양식을 상품화했다. 한마디로 서양에서 인쇄술은 역동적인 사회 변화의 근원이었다.


뒤집힌 거울처럼 동양은 서양과 달랐다. 한마디로 변화에 저항하는 힘이 바로 동양의 인쇄술이었다. 인쇄술은 정치의 안정과 사상의 통일, 전통의 보존에 기여했다. 중국에서 필사와 목판의 고유한 전통인 서예는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천편일률적이고 반복 가능한 활자는 인격이 깃든 필기에 비해 품격이 떨어지는 실용의 기술일 뿐이었다. 이미 고대에 난숙해버린 요순의 이상 정치와 공맹의 탁월한 지혜는 끊임없는 존숭과 경배의 대상일 뿐, 비판적 검토나 상업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었고 천박한 교환가치로 평가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렇듯 동서양 문명은 오랜 시간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평화로운 공존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서양은 화약과 나침반의 위력에 눈뜨고 인쇄술이 고무한 자본주의 정신으로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더 많은 부와 미지의 지식을 찾아 먼 나라와 지리 바깥으로 눈길을 돌렸다.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던 동아시아의 지식 세계에도 머지않아 근대라는 낯선 소식이 날아들어왔다.


(중략)


이 책에서는 근대적 지식체계가 성립되기 시작한 기원의 시공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대인들이 기계화되고 표준화된 문자와 기록, 지식으로 무엇을 상상했고 꿈꾸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식과 정보, 개념 등을 낯선 시선과 감각으로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오늘날의 세계를 새롭게 해석해낼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근대 초기 조선의 개항과 정치외교의 전개 과정에서 바깥의 영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바깥의 힘은 내부의 반발이나 수용이라는 조건과 만나 변형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서양식 연활자의 도입이라는 문화적 사건에서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일본의 계몽사상가와 김옥균을 비롯한 조선의 급진개화파, 그리고 김윤식을 비롯한 온건개화파의 대응방식에 주목한다. 근대 초기 조선의 문화적 혁신을 주도한 것은 한쪽의 일방적 의지가 아니라 안과 밖의 유기적 상호관계였다는 사실을 밝혀갈 것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로제 샤르티에에 따르면, 텍스트의 의미는 형태에 의존한다. 다시 말하면 형태가 텍스트의 의미를 생산한다. 이 책에서는 근대에 생산된 신문과 단행본 등 연활자로 구현된 근대 텍스터의 서지학적 형태, 활자 조판 구조, 판형에 따른 독서공간의 변형 등 텍스트를 구성하는 물질적 조건이 지식과 사유의 구성 방식 그리고 독서 경험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눈여겨볼 것이다. 텍스트의 내용 분석에만 치중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텍스트의 물질성과 정신성의 관계를 밝혀볼 것이다.


이 책에서 근대 지식 세계의 형성 과정에 주목한 것은 다양한 복수의 가능성 가운데서 당대인들이 선택하고 수용하고 변형시킨 것들이 바로 지금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구성해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다시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삶을 더 풍부하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중략)


오늘날 우리는 의사소통 양식의 문명사적 전환기를 살아가고 있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매개하고 구현하는 기술은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공간을 생성하는 공리의 근거가 알파벳 표기법을 통한 말솔의 기호화에 있지 않고 '정보'의 바이트로 저장하고 조직하는 능력에 있는 새로운 정신 공간의 등장'"이라고 표현했다.


그 정신 공간과 의사소통의 회로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모습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질 것이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을 해석하며 지혜를 설파하던 과거의 문화적 유산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보이고 들리고 기억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사물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바깥 세계와 자신의 내면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가치를 탐구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결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그 중심에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바뀌든 여전히 책과 활자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가 말했듯이, 과거의 삶이 남긴 것들, 남아 있는 건축물, 무덤들의 내부는 그 위로 휘몰아치는 시간의 폭풍에 풍화될지라도, 문자로 기록된 전승을 읽어갈 때 비밀스러운 기술처럼 일종의 마술처럼 '죽은 글자'가 '살아 있는 정신'으로 되살아나 우리를 묶고 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여전히 믿는다.


[북클럽 오리진] 컨텐츠 카톡으로 받아보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