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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내가 틀렸다"

'이집트 혁명' 주역 고님의 뼈아픈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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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의 봄'을 기억하시는지요? 2011년 인터넷 소셜미디어를 통한 민주화 열기가 거리 시위로 번져 나가 급기야 철권 독재자라 불렸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했던 역사적인 사건 말입니다. 당시 뜨겁게 솟구친 민주화 불길은 중동 곳곳으로 확산됐습니다. 그 화염 중심에 구글 직원(중동 마케팅 담당 임원) 와엘 고님(Wael Ghonim, 1980년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시민들을 한 방향으로 독려하고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선거 이후, 그는 어느 순간부터 깊은 침묵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들뜬 열광 이후에 찾아든 무력감 때문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그가 2년여 긴 침묵을 깨고 2016년 1월 15일 TED 무대에 다시 섰습니다.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새로운 출발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소셜미디어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출사표였습니다. 이 동영상은 외국 유수의 매체와 칼럼, 블로그에 인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뒷 부분의 제안이 주목할 만합니다. 전문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회를 해방시키고 싶은가?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

저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틀렸습니다. 2011년에 저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익명으로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가 이집트 혁명의 촉발을 도왔을 때였습니다. 아랍의 봄은 소셜미디어의 거대한 잠재력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심대한 약점도 드러냈습니다.

우리를 단합시켜 독재자들을 넘어뜨린 똑같은 도구가 결국에는 우리를 분열시켰습니다. 저는 오늘, 소셜미디어를 사회 운동에 사용해본 저 자신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직접 직면했던 도전들의 일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2000년대 초였습니다. 아랍인들은 웹 공간으로 몰려갔습니다. 지식과 기회,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 사람들과의 연결에 목말라 있던 우리는 참담한 정치 현실을 피해 가상의 대안적 삶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전까지는 정치에는 완전히 무관심한 상태로 살았습니다. 2009년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렵 소셜미디어에 접속했을 때였습니다. 점점 더 많은 이집트인들이 나라의 정치적 변화를 열망하고 있음을 보게 됐습니다. 저 혼자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2010년 6월, 인터넷은 제 삶을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 페이스북을 훑어보다가 사장 한 장을 봤습니다. 무시무시한 사진이었습니다. 젊은 이집트 사람이 고문을 당해 숨진 시신 사진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칼리드 사이드였습니다. 칼리드는 29세의 알렉산드리아 사람이었는데 경찰에 살해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사진에서 저 자신을 봤습니다. 저는 "내가 칼리드일 수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처페이스북 페이지 '우리 모두가 칼리드 사이드'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익명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는 "우리 모두가 칼리드 사이드"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불과 사흘 만에 페이지 친구가 10만 명이 넘었습니다. 저와 똑같은 우려를 공유한 이집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이 중단돼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공동운영자로 압델라흐만 만수르를 충원했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이고 함께 일을 했습니다. 크라우드소싱으로 아이디어를 모으고 사람들을 참여시켰습니다. 우리는 집단적인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정권이 국민에게 숨겼던 뉴스들을 전파했습니다. 우리 페이지는 아랍 세계에서 팔로워가 가장 많은 페이지가 됐습니다. 팬들 수가 기존 제도권 언론 기관이나 심지어 정상급 유명인사들보다 더 많았습니다.

2011년 1월 14일 튀니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고조되면서 독재자 벤 알리가 해외로 망명했습니다. 저는 희망의 불꽃을 봤습니다. 소셜미디어 상에서 이집트인들은 궁금해 했습니다. "튀니지도 했는데 우리라고 왜 못 하겠는가?" 저는 페이스북에 행사 하나를 올렸습니다. 제목을 '부패와 부정의, 독재에 맞선 혁명'이라고 붙였습니다.

당시 저는 그 페이지의 30만 사용자에게 질문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1월 14일이다. 1월 25일이 경찰의 날. 국가 공휴일이다. 우리 10만 명이 카이로 거리로 나가면 아무도 막지 못할 거다. 우리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불과 며칠 안에 행사 초대장을 보낸 사람이 1백만명을 넘었고 10만 명 이상이 참석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이 캠페인에 결정적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곳곳에서 자생적인 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됐습니다. 무바라크 정권이 그것을 막을 수는 없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들은 소셜미디어가 뭔지 이해조차 못했습니다. 1월 25일, 이집트인들이 카이로와 다른 도시의 거리로 밀려들었습니다.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공포의 장벽을 부수고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Proud of you Egyptians. Very proud. I am proud of this guy.

Posted by We are all Khaled Said on  Wednesday, January 26, 2011

이집트 혁명 18일간 우리는 유토피아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같이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무바라크 이후 이집트는 모두를 위한 나라가 될 거라는 믿음을 나눠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여파가 들이닥쳤습니다. 무바라크 정권이 인터넷과 통신선을 차단하기 몇 시간 전, 저는 카이로의 어두운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트위터로 막 다음과 같은 단문을 올리고 난 참이었습니다. "이집트를 위해 기도한다. 정부가 내일 대학살을 계획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순간 뭔가가 제 머리를 세게 쳤습니다. 저는 균형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무장한 남자 4명이 저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한 명이 제 입을 가리고 나머지가 저를 제압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국가 보안요원에게 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수갑이 채워지고 눈이 가려진 채 감방 안에 갇혔습니다. 저는 겁에 질렸습니다. 저의 가족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병원과 경찰서, 심지어 시신공시장까지 저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실종된 후, 제가 페북 페이지의 운영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동료 몇 명이 언론 매체에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국가 보안요원에게 체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구글의 동료들은 저를 찾기 위한 검색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광장의 시위대는 저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11일을 지낸 끝에 저는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무바라크 대통령은 퇴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생애에서 가장 감격스럽고 기운이 벅차오르던 순간이었습니다. 위대한 희망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혁명이 일어나던 18일간 유토피아를 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같이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무바라크 이후 이집트는 모두를 위한 나라가 될 거라는 믿음을 나눠가졌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혁명-이후 일어난 사건들은 명치에 꽂힌 치명타 같았습니다. 행복의 순간은 점점 빛을 잃었고, 우리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투쟁이 우리 내부를 양극화로 몰아갔습니다. 소셜미디어는 그런 상태를 증폭시킬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정보와 루머, 울림방(에코 효과를 내는 방), 증오의 말들이 쉽게 확산되도록 할 뿐이었습니다.

그때의 인터넷 공간은 독성으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본 온라인 세계는 낚시성 글과 거짓말, 증오의 말로 가득한 전쟁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가족의 안전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저에 관계된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두 부류의 주요 세력 간에 양극화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군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이슬람주의자들로 극명하게 양분됐습니다.

그 가운데에 있던 저 같은 사람들은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양 집단은 서로 자신들 편에 설 것을 요구했습니다: 자신들 편이 아니면 반대 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2013년 7월 3일, 군은 이집트에서 첫 민주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을 축출했습니다. 그보다 사흘 전에는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중 시위가 있었습니다.

2년 이상 침묵 속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양극화 현상이라는 것은 주로 우리 인간의 행동이 몰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셜미디어가 그런 행동을 구체화하고 충격을 확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날 저는 아주 힘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침묵하기로 했습니다. 완전한 침묵 말입니다. 패배의 순간이었습니다. 2년 이상 침묵 상태로 지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때까지 일어난 모든 것에 대해 성찰해봤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양극화 현상이라는 것은 주로 우리 인간의 행동이 몰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셜미디어가 그런 행동을 구체화하고 충격을 확대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뭔가를 말하고 싶다거나, 당신이 싫어하는 누군가에 대해서는 싸움을 걸거나 무시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인간의 충동입니다. 하지만 바로 기술 때문에 이런 충동에서 비롯하는 행동들이 불과 클릭 한 번으로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오늘날 소셜미디어는 진정한 참여보다는 퍼뜨리기, 토론보다는 글 올리기, 깊은 대화보다는 얕은 촌평에 유리한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는 겁니다. 마치 이곳에서는 서로서로가 함께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해 (일방으로) 말하기로 합의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날 소셜 미디어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루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편향을 뒷받침해주는 루머들이 지금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 사이에 사실로 믿어지고 확산되고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각자 자신의 울림방(echo chamber, 같은 의견만 반복해서 메아리치는 방)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의하는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우리는 그 외 사람들은 '뮤트' '언팔로우' '차단'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온라인 토론은 빠르게 성난 폭도로 변질되고 맙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스크린 뒤의 사람이 아바타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넷째, 우리의 의견을 바꾸기가 정말 힘들어졌습니다. 소셜미디어의 빠른 속도와 간결함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복잡한 세계 문제에 대해 140자로 날렵한 의견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한번 그렇게 하고 나면 그것은 인터넷 공간에서 영원히 살아서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그 견해를 바꾸고 싶은 동기도 점점 약해지게 됩니다. 심지어 새로운 증거가 나왔을 때도 그렇습니다.

다섯째 -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점인데요 -,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체험이란 진정한 참여보다는 퍼뜨리기, 토론보다는 글 올리기, 깊은 대화보다는 얕은 촌평에 유리한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는 겁니다. 마치 이곳에서는 서로서로가 함께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해 (일방으로) 말하기로 합의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예의바름을 증진하고 사려깊음을 보상하는 소셜미디어의 체험을 설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말한 이런 중대한 도전들이 이미 양극화한 이집트 사회에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 저는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이집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양극화는 전 세계에서 고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기술이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해법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어떻게 하면 온라인 상의 협박과 낚시성 글을 퇴치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반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예의바름을 증진하고 사려깊음을 보상하는 소셜미디어의 체험을 설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선정적이고 좀더 확실히 한쪽 편에 치우치고, 때로는 분노하고 공격적인 글을 올리면 더 많은 사람이 보게된다는 사실을 저는 확실히 압니다. 분명히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글의 품질에 대해 더 초점을 기울이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여러분이 올린 글을 읽은 사람의 수인가요, 아니면 여러분이 쓴 글을 읽고 영향을 받은 사람의 수인가요? 늘 의견을 퍼뜨리는 것만 하기보다는 대화에 참여하도록 이끌 수는 없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견해를 읽고도 거기에 답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해줄 수는 없을까요? 또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도록, 나아가 그런 사람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방향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요?
2011년 3월 TED 강연 '이집트 혁명의 내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바꾸는지 알려주는 매트릭스를 갖게 된다면, 그래서 그것이 우리의 소셜미디어 체험의 일부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바꾸는지를 알 수 있다면, 아마 저는 더 사려깊게 쓸 겁니다. 나와 이미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호소하고 '좋아요'를 구하기보다는 말이지요. 그런 사람은 이미 자신들의 편견을 확인할 뿐일 테니까 말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온라인 상에 올라가서 폭넓게 퍼진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런 팩트 체크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는 효과적인 크라우드소싱 메카니즘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컨데, 우리는 오늘날 소셜미디어 생태계에 관해 재고해 보고, 사려깊음과 예의바름, 상호 이해를 보상해주는 체험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의 가치를 믿는 사람으로서 저는 몇몇 친구들과 팀을 꾸리고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가능성을 찾아보고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우리의 첫 생산물은 대화를 위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바라건대 서로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하는 대화를 유치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해답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종, 총기규제, 난민 문제, 이슬람과 테러의 관계와 같은 아주 대립적인 이슈에 관한 상이한 토론을 가지고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이것들은 아주 중요한 대화들입니다.

오늘날 지구 상의 사람들 중에서 적어도 세 명 중 한 명은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하지만 이 인터넷의 일부가 우리 인간 행동의 고상하지 못한 면 때문에 포로로 잡혀 있습니다.

5년 전 저는 말했습니다. "만약 사회를 해방시키고 싶다면,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

오늘, 저는 우리가 사회를 해방시키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인터넷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우리가 사회를 해방시키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인터넷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영상 소개] 인터넷을 바꾸기 위한 새 플랫폼 Par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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