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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六感] 광화문 한복 vs 교토 기모노

조회수 2016. 7. 27. 11: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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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젊은세대의 생기발랄함으로 부활하는 전통미의 재발견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윤광준 사진작가 '육감(六感)' 세 번째 이야기는 한일 양국의 전통 의복에 관한 소회입니다.


서울 광화문 광장과 교토 기온 거리에서 조우한 젊은이들의 한복과 기모노 차림에서 작가는 시공을 초월해 생멸하고 진화하는 아름다움의 생물성을 포착해냅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민주적 권력이며 그것은 설교와 훈계가 아닌 자발적 인정과 수용에서 파생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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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각별한 곳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도 직장도 모두 그곳에 있었다. 지금도 그 일대가 익숙하다. 하지만 어느듯 세월은 흘러 이곳과도 멀어졌다. 이제는 일산 주민이 된 나는 서울 시내에 볼일을 보러갈 때나 이곳을 스쳐지나곤 한다.


가끔은 서울 구경꾼이 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내가 탄 버스가 광화문을 지날 때 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는 경우가 그렇다. 언제부턴가 그 주변에 둘러 선 외국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그 숫자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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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요즘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압도적이다. 그래도 그 사이사이로 다양한 나라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어느 순간 서울은 국제 도시가 다 된 것인가. 달라진 스카이라인만큼이나 광화문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얼마 전에는 버스가 아니라 두 발로 광화문 일대를 걸어봤다. 오랜만이었다. 세종로 중심부는 너른 광장이 돼 있다. 그곳에서 눈을 들어 본 광화문과 북악산의 위용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기에도 사람들이 북적댄다. 사방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사람들. 그 틈새로 한복 차림의 젊은 여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 눈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흘러든다.

출처: 사진=뉴시스

나도 모르게 눈길이 한참을 머문다. 어쩜 저리 어여쁘고 당당할까. 한복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예전 어머니들이 입던 그 한복이 아니다. 세련된 색상과 색다른 소재, 몸에 잘 맞는 디자인으로 새로 단장한 한복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 그대로 '패셔너블'하다. 헌칠하게 자란 우리 젊은이들만큼이나 그 위의 한복도 신선하고 멋지다.  


문득 교토에서 본 기모노 생각이 났다. 작년 여름이었다. 그곳에서 전통 의복인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과 곧잘 마주쳤다. 북적대는 도심은 물론 한적한 공원에서도 눈에 띄었다.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명절도 아니어서 더했다. 당당한 모습이 내심 부럽기까지 했다.

출처: 윤광준 촬영

제 나라에서 자기네 전통 복식으로 다니는 일이 뭐 그리 대수인가. 아마 우리 한복 생각이 나서 그랬을 것이다. 일상에서는 멀리 밀려나 기껏해야 결혼식이나 드문 행사에서만 접할 수 있는 우리 옷이 그 순간 오버랩됐다.


교토 기온 거리에서도 기모노 차림의 여성과 마주쳤다. 가까이 갔다가 깜짝 놀랐다. 내 귀에 들려온 것은 우리말이 아닌가. 상대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처럼 꾸민 한국인 관광객이었던 것. 기모노 대여점에서 빌린 옷을 입고 관광 중이라고 했다.

출처: 윤광준 촬영

잠시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그전에 본 그 많던 기모노 행렬의 상당수도 외국인이었다는 걸까. 그렇다면 기모노는 관광 소품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외국인들은 일본을 좀 더 제대로 느끼기 위한 보조 장치로 전통 복장을 택했던 것일 테고. 내가 본 광화문과 경복궁 주변 한복 행렬의 실상도 비슷할지 모른다.


광화문 인근 통의동에 사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다. 그의 말로는 몇 년 새 한복을 입고 다니는 우리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이들 사이에서 서울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세종로 광장에 한복 차림으로 와서 사진을 찍는 것이 인기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한복을 대여해 주는 업소도 생겼다는 말까지 했다.


서울 한복판 세종로로 나온 젊은이들의 한복 차림 열풍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렵게 말을 돌릴 필요 없다. 차고 넘치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제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아름다움의 재발견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낡은 전통이 살아나는 방법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윗세대가 아무리 목 놓아 부르짖어도 소용없다. 현재의 것보다 돋보이고 빛나 보이면 자발적으로 선택되기 마련이다.

출처: 사진=심심스토리

한복 차림으로 모여 다니는 아가씨들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치렁거리는 옷을 입고 나온 이유가 뭐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수월했다. 더위야 잠시 참으면 되지만 간지는 포기 할 수 없다고. 그러고는 까르르 웃는다.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젊음은 갓 따낸 풋콩마냥 싱그러웠다.


그런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찬찬히 살펴봤다. 예전의 한복과는 달랐다. 우선 치맛단이 훨씬 풍성해졌다. 신데렐라의 드레스마냥 아래로 내려갈수록 폭이 커져 옷의 맵시를 한층 강조했다. 저고리의 기장도 더 길어졌다. 가슴을 덮고도 더 내려오는 길이는 가지런히 퍼진 치마에 비례해 잘 어울렸다. 그 사이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한복의 태는 정말이지 볼수록 아름답다. 전문 모델이 아니어도 좋다. 중간 색조의 색상에, 새로운 느낌의 옷감, 새로운 비례로 재단한 한복을 입으면 누구나 돋보일 수밖에 없다. 이 마법을 누가 마다할까.


남자 한복도 마찬가지다. 커진 덩치에 걸맞게 새로 개량된 한복은 풍성한 위용으로 입은 사람의 존재감마저 키워준다. 남녀가 짝을 이뤄 입은 한복의 중첩적 매력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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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젊은이들의 기모노 차림에서 느꼈던 부러움은 이젠 가셨다. 이토록 빛나는 옷이 우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다소곳 잠자고 있던 우리 한복은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자부심의 아이콘이 됐다.


한복을 입고 광화문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들도 이제는 달리 보인다. 그들이 그저 이국에서 별난 추억 하나를 더하겠다는 생각에서만 이 낯선 옷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따라 입고 싶은 욕망, 입어서 돋보이는 아름다움이 없다면 공짜로 줘도 사양하고 말 일이다.


내가 그랬다. 외국에 가서도 그 나라 전통 의상이 내 숨은 호기심과 미적 감각을 끌어당기지 않으면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좋아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저항하기 힘든 권력이다. 그 힘은 설교와 훈계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수용할 때 자연 확산된다. 세상만사가 그런 자력으로 움직인다.


한복의 부활은 그런 힘이 되살아났다는 방증이다. 전통의 단순한 연장이 아닌 옛것의 재구성과 온축된 감각의 재발견이다.

출처: @kangheungbo

이제 광화문 거리를 거니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 생기발랄한 젊은이들의 한복 패션을 관찰하는 일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 세종대왕상을 차례로 지나 광화문 정문까지 가본다.


마치 경복궁 앞의 '번개' 약속이라도 한 듯 울긋불긋 한복 행렬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까르르 맑고 투명한 웃음소리 사이사이로 터져나오는 폰의 셔터 소리들. 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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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갈증이 있었다. 나는 왜 사진을 찍고 있는지, 왜 글을 쓰는지, 딱히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왜 미친 듯이 여행을 가고, 음악을 듣고, 전시회를 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답답했다.


그렇게 '컬처 폐인'의 삶을 오래 살다보니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일찍 눈떠버린 인간이구나. 나는 보이지 않는 '육감'을 타고난 사람이로구나.


그런 멋진 세계에 혼자 빠지는 게 아까워 더 많은 사람들을 물고 늘어지기로 했다. 이 칼럼은 그런 '신세계'로 향하는 길잡이가 되고 싶다.

필자 소개


풍류와 멋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심미안 좋기로 소문난 사진가이자 글쟁이. 재미있게 사는 것을 신조로 삼고 놀이와 작업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오디오, 음반부터 온갖 생활 디자인 용품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물건들의 애호가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마당과 객석 기자를 거쳐 웅진출판 사진부장으로 '한국의 자연 탐험'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8년간 진행했다.


1996년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베짱이 인간의 삶'을 시작했다. 2002년 사진 분야 베스트셀러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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