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북] 새책 번역할 때마다 목욕을 합니다

조회수 2017. 8. 11. 14: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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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김석희 "소로의 '월든'은 죽기 전에 옮겨보고팠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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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의 [미니북]은 손바닥 안의 책 한 권입니다. 화제의 저자 인터뷰를 비롯한 긴 호흡의 글을 전합니다.


오늘은 최근 '월든'을 우리말로 옮긴 김석희 번역가 인터뷰입니다.


김석희 번역가는 국내 번역가들 중에서도 자취가 독특합니다.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문학과를 중퇴한 후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돼 작가로 등단했습니다.


창작과 번역을 겸하다가 소설집 『이상의 날개』와 장편소설 『섬에는 옹달샘』을 낸 후로는 한동안 번역에만 몰두했습니다.


지금까지 350권(300종)을 옮겼고 1997년에는 제1회 한국번역대상을 받았습니다. 번역가로서는 드물게 역자 후기만 따로 모은 단행본을 두 권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고향인 제주도 애월읍으로 귀향한 지 8년, 올해 탄생 200주년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대표작 '월든'을 번역한 그에게 이메일로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해묵은 고전을 새로 번역한 이유부터 인공지능 시대 번역의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여러가지 생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처: <사진 제공: 시공사>

-월든은 오래된 고전이고, 번역본도 이미 여러 종이 나와 있습니다. 지금 다시 번역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죽기 전에 번역하고 싶은 고전이 몇 권 있는데, 『월든』도 그중 하나였어요. 2017년이 소로의 탄생 200주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 맞춰 준비를 하면서 좋은 텍스트가 없을까 찾아보았더니,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사진 실린 월든』이 있더군요.

미국의 풍경사진작가인 허버트 웬델 글리슨이 20세기 초에 월든 호수와 그 주변 풍경을 촬영한 사진 66점이 수록된 판본인데, 소로 탄생 200주년 기념판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어서, 이 책을 대본으로 삼아 번 역과 편집 작업을 진행했고 생일(7월 12일)에 맞춰 출간했지요.

-소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다면요?

10년쯤 전에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번역하면서, 이런저런 참고자료를 접하는 과정에 동 시대 문인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게 되었는데, 소로가 특히 관심을 끌었지요. 둘은 나이도 비슷하고(소로는 1817년생, 멜빌은 1819년생), 대표작이 출간된 시기도 비슷합니다(『모비 딕』 은 1851년, 『월든』은 1854년).

두 사람은 이렇게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배경과 전개는 너무나도 달랐어요. 소로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고, 멜빌은 12세 때 학교를 중퇴하고 소년가장이 되었지요. 이런 차이가 에세이스트와 소설가라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월든』도 번역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던 것이죠.

-많은 번역서들을 내오셨는데 다른 외서에 비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사실 『월든』은 그냥 읽기에도 어려운 책입니다. 진리에 대한 소로의 통찰은 대부분 언어로 표현하기에 부적절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소로는 비문자적 언어를 사용해야 했고, 독자는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소로의 문장은 파생적이고 우의적인 은유와 길고 복잡한 단락 등을 자주 사용한 구식 산문(게다가 19세기 미국 영어)이어서, 그것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은 덤불숲에 길을 내는 일만큼이나 지난한 노릇이 아닐 수 없지요.

그래서 프랑스어와 일어로 번역된 책을 참조하면서 도움을 받았는데, 덕분에 오솔 길이나마 생겼다면 다행이 아닐까 싶군요.

-소로의 문체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다른 작가들에 비해 실제로 뛰어난 건가요?

『월든』에는 많은 매력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뛰어난 문체에 있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소로의 문체는 언제나 대상의 적확한 파악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 정직한 인품과 단순소박한 생활을 반영하여 꾸밈없고 간결하면서도 힘찹니다.

그런 한편 소로는 사물의 핵심에 바싹 다가가는 데 어울리는 경구적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역설과 반어법, 과장과 생략, 논리적 비약, 엉뚱한 비유, 완곡 표현 같은 복잡한 수사기법을 구사하여 문체적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즐거워하는 면도 있지요.

이런 경구적 표현은 소로가 원전으로 애독한 그리스-라틴 문학, 또는 동서양의 경전들, 초서나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영국 고전문학 등을 모방한 것이기도 합니다.

-소로는 왜 젊은 시절 숲속 호숫가 오두막에서 살기 시작했고, 2년 2개월 이틀이라는 기간 후에 다시 나온 건가요?

소로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랠프 월도 에머슨(1803~82)의 영향이 컸어요. 소로는 1841년에 에머슨의 집에 입주하여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지냈는데, 1842년에 사랑하는 형이 죽자 소로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절망에 빠졌지만 에머슨의 격려와 도움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그후 1844년 가을에 에머슨은 월든 호수 주변의 숲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호수 북쪽 기슭의 토지 일부를 매입했는데, 이런 곳에 작은 집을 짓고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 지금은 세상을 떠난 형과 함께 배를 타고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을 여행했던 추억을 책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염원을 품고 있었던 소로는 곧바로 에머슨의 허락을 얻어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1845년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에 이사했지요.

이리하여 2년 2개월 2일에 걸친 월든 숲속에서의 독거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1847년 9월에 에머슨이 유럽으로 장기 여행을 떠나면서, 그동안 자기 아내를 도와서 집안일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하자, 소로는 월든 호수를 떠나 에머슨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겉으로는 사정이 그렇지만, 소로 자신은 책에서 이렇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나는 숲에 들어갈 때처럼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숲을 떠났다. 내가 살아야 할 삶이 몇 가지 더 남아 있어서, 숲속에서 사는 한 가지 삶에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맺는말」, 502쪽

-소로는 언행에서 주관이 아주 뚜렷한데 어떤 대목에서는 굉장히 독단적이고 선민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가령 이런 구절: “30년쯤 살았지만 선배들로부터 유익하거나 새겨들을 만한 조언을 단 한 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나에게 도움 되는 말을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고, 지금도 해줄 수 없을 것이다.”(「경제 생활」, 16쪽)

소로는 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가 되지 않고, 요즘 말하는 프리랜서 작가가 되어 잡지에 원고를 써서 생계를 꾸렸어요. 1830년대부터 1840년대에 걸친 당시의 미국은 잡지 문화가 번성한 시기여서, 소로는 펜 하나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지요.

게다가 이 프리랜서 작가는 욕망이 별로 없었습니다.

“나는 날품팔이가 가장 자유로운 직업이라는 것을 알았다. 1년에 30일 내지 40일만 일하면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날품팔이 노동자의 일과는 해가 지면 끝나고, 그때부터는 노동과 관계없이 자기가 선택한 일에 자유롭게 열중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고용주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느라 1년 내내 잠시도 쉴 짬이 없다.”


「경제생활」, 92쪽

그러니 소로가 혐오한 선배들은 동업자, 즉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 속에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말로 ‘사상’을 짜는 사람들 가운데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자들도 있었던 겁니다. 책에서는 이런 식으로 표현되고 있어요.

“양다리 대신 생각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일종의 지적 지네 같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을 보면 온몸이 근질거렸다.”


「손님들」, 231쪽

출처: <사진 제공: 시공사>

-올해 소로 탄생 200주년을 맞아 새로 출간된 소로 전기에 관한 뉴욕타임스의 리뷰를 보니, 소로는 자연 속의 은둔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삶의 실험가였다고 소개했더군요. 동의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로 들어간 것은 현실 도피나 은둔의 제스처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노동하는 삶을 실험하기 위해서였고, 『월든』은 그 기록인 것이죠. 또한 소로는 이곳에 사는 동안 겪은 체험을 통해 불의한 국가 정부에 대한 시민의 저항을 주창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월든』은 생태학 및 자연보호운동의 선구적 저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그가 『시민불복종』을 통해 제기한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국가와 개인 양심의 문제도 오늘날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책을 번역해 오셨습니다. 『월든』이 선생님의 번역 이력에 이정표가 되기를 원했다고 후기에 쓰셨더군요. 오래 번역을 해오시는 동안 어떤 중장기적인 계획이나 목표,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오셨나요? 그동안 어떤 이정표들을 지나오셨나요?

어떤 목표나 방향을 정해놓고 번역을 해온 것은 아니지만(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때그때 상황과 형편에 따라 내가 원하는 책을 출판사와 협의를 거쳐 번역한 경우는 종종 있었어요. 예컨대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즈), ‘쥘 베른 걸작선집’(20권), 『모비 딕』 같은 책들이 내 번역 이력에 이정표가 된 경우가 아닌가 싶네요. 청탁을 받아 번역한 책이지만 『로마인 이야기』도 그렇고요. 15년에 걸친 대장정의 산물이었으니까.

-소설과 번역이라는 '두 집 살림'을 하다가 한때 소설을 접고 번역에만 매달리셨지요. 1996년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재번역하면서였다고 한 인터뷰에서 읽었습니다. 그뒤에 다시 애인 생각이 나셨는지 소설집을 내셨지요. 요즘은 장편을 쓰고 계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떠신지요? 앞으로는요?

1988년에 소설가로 데뷔한 뒤 10년쯤 소설과 번역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았어요. 번역은 조강지처 같고 소설은 애인 같다는 흰소리를 하면서 으스대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속으로는 창작의 어려움 때문에 소설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나에게 결정적인 용기를 준 것이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지요. 1982년에 처음 번역했던 이 책을 15년 뒤에 다시 번역하면서, 한편으로는 글쓰기의 욕망과 창작의 갈증을 대리만족의 형태로나마 달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만한 작품을 써낼 수 없다면 아예 글쓰기를 작파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죠. 그래서 과감히 애인과 헤어지고 아내한테 돌아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20년 가까이 속 편하게 살았는데, 멀리 떠난 줄 알았던 애인이 다시 찾아와 또 한번 놀아보자고 꼬드기는 바람에 재작년에는, 그동안 묵혀두었던 작품들을 모아 소설집 『하루나기』를 펴냈고, 지금은 얼개만 잡아두었던 장편을 다듬고 있습니다. 원래는 올해 낼 생각이었는데,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월든』 번역에 시간과 수고를 쏟는 바람에 늦어졌어요. 내년 상반기에는 출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번역할 책을 고르실 때 기준은 무엇입니까?

나는 번역가로서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번역을 시작하던 무렵은 우리나라가 세계저작권조약에 가입하면서 번역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던 때였고, 또한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출판이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왕성하게 전개되던 때여서 출판사들도 좋은 번역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지요. 그런 때에, 신춘문예와 서울대 출신의 소설가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랬는지, 출판사들도 나에게는 괜찮은(바꿔 말하면 어려운) 책들만 번역을 청탁한 편이에요.

그렇긴 해도 내 나름의 기준이 없진 않았어요. 그게 뭐냐면, 그 무렵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놈이 앞으로 크면서 읽을 만한 책이라는 정도의 선은 긋고 있었지요. 어쨌든 그동안 350권(300 종)의 책을 번역했는데, 온라인서점에서 검색해보니까 지금도 300여 권이 살아 있더군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냈을 거예요.

책을 많이 번역한 것이 꼭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읽을 만한 책을 번역했다는 점에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 좋은 책들을 나한테 맡겨준 출판사들, 그 책들을 읽고 나를 괜찮은 번역자로 평가해준 독자들에게도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지요.
출처: <사진 제공: 시공사>

-번역 작업에서 특별히 유념하는 원칙이나 유의사항이 있나요?

번역을 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선은 원서가 있어야 하고, 그 원서를 독해할 수 있는 외국어 실력이 있어야 하고, 그 뜻을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번역은 태생적으로 몇 가지 한계를 숙명적으로 떠안고 있지요. 번역을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도 바로 그런 조건들 때문입니다.

외국어 실력을 필요조건, 글쓰기 능력을 충분조건이라고 할 때,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경우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학 작품, 특히 뛰어난 소설 작품은 스토리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문체의 힘이 남다르고 뛰어나기 때문에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청준과 이문구의 소설을 읽으며 서로 다른 문체의 글맛을 즐기듯, 미국 독자들은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소설을 읽으며 서로 다른 문체를 즐기지요. 그렇다면 번역에서도 그 다름을 독자들이 즐기도록 해줘야 합니 다.

사실 이런 수준의 번역을 하기란 쉽지가 않아요. 원서를 읽으며 문체의 맛을 식별하기도 어렵지만, 그 맛을 우리말로 옮기기란 더욱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나도 10년쯤 100권을 번역한 뒤에야 원서의 글맛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어요. 이런 수준에 못 이른 번역자가 자신의 글 버릇대로 옮겨버리면 헤밍웨이도 포크너도 다 같은 문체로 읽히게 되는데, 그건 원문을 죽이는 짓이나 마찬가지지요.

-이른바 인공번역 시대입니다. 젊은 번역가나 지망생들은 앞날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말리시겠습니까, 그래도 해보라고 하시겠습니까?

21세기는 문화와 정보의 세기라고 합니다. 문화와 정보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언어입니다. 언어에 의한 소통이 없이 어떻게 문화와 정보의 교류가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출판시장을 보면 번역서 비중이 30%쯤 되고, 교과서나 참고서 같은 학습서를 빼면 50%가 넘고, 출판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인문사회 분야에서 의미 있는 책은 십중팔구 번역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자동차, 선박, 반도체를 수출하지만, 그 바탕이 되는 지식과 정보는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이고, 그 지식과 정보를 선진국으로부터 들여오려면 번역을 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번역은 앞으로도 더욱 중요할 작업일 수밖에 없어요.

요즘 번역기계가 등장하면서 과연 번역가의 생존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요. 일반 번역은 인공지능이 담당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문학 번역도 그럴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정답 찾기가 아닙니다. 그러니 문학에서는 의도적 오류가 가능한데, 여기까지 기계가 들어올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내가 죽기 전에는 꿈같은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런 믿음으로 번역에 매진해야겠지요.

그런데 번역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등산처럼 한 발짝 한 발짝 빠짐없이 옮겨야 하는 고된 노동이지요. 또한 번역가로 일하면서 처자식은 먹여 살릴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번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외국어 실력이면 다른 일을 찾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번역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쉽게 선택할 문제가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 번역을 지망하는 후배를 만났을 때 선뜻 권하기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 다. 그래도 책 읽기가 좋고 글쓰기가 즐거워서 번역에 몸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런 말로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군요. ‘번역자’가 아니라 ‘번역가’를 꿈꾸라고. 세계화ᆞ정보화 사회의 첨병으로서 미래의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꿈과 용기를 가지라고. 번역은 충분히 뜻 있고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사진 제공: 시공사>

-어디선가 하루 일과의 8.8.8 원칙을 말씀하셨지요. 책을 읽고 옮기거나 쓰는 일 외에 빼놓지 않는 수칙(ritual 같은 것)이나 습관이 있으세요?

내가 번역으로 먹고사는 일은 일종의 ‘재택근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직장인 같은 태도로 생활방식에 리듬을 갖추지 못하면 오래 지속할 수가 없지요. 번역하면 꽤 고상한 작업처럼 들리지만, 사실 나도 노동자에 지나지 않아요. 아침에 일어나 서재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면, 그것은 직장인들이 출근해서 타임카드를 찍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직장인들도 하루에 8시간 근무가 보통이잖아요.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8시간 일하고 8시간 놀고 8시간 잔다가 하나의 룰은 아니에요. 직장인들도 때로는 야근을 하는 것처럼 나도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는 밤을 새우기도 해요. 하지만 제주에 내려와 살면서부터는 마당을 가꾸고 동네를 산책하고 벗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면서 번역하는 시간이 많이(반쯤으로) 줄었네요.

번역과 관련해서 버릇이 하나 있는데, 책을 새로 번역할 때마다 목욕을 합니다. 그냥 샤워 정도 하는 게 아니라,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박박 밀어냅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책을 펴 들면, 깨끗해진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새로워진 기분으로 책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작가에게는 한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제주도에서 보시기에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욕망이 들끓는 도가니 같습니다. 욕망의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에 오르려고 경쟁하는 생지옥이나 같아요. 그러니 사람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늘 허기져 있지요. 3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4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4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6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6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이렇게 무한 경쟁에 시달리다 지친 사람들, 또는 그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 중에는 시골로 가서 자연을 벗삼아 조용히 여유롭게 살겠다고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기도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월든』이 많이 읽히는 이유도 거기에 닿아 있을 겁니다. 현실에 지친 영혼들에게 자연회귀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출처: <사진 제공: 시공사>

-그동안 번역하신 책이 삼백 권이 넘는다고 하셨지요. 가장 애착이 가는 책 다섯 권 정도를 꼽아주신다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가 가장 곤혹스러운데,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앞에서 이정표가 되었다고 말한 책들이 애착이 가는 책들과 겹치지 않을까 싶군요. 『프랑스 중위의 여자』, 『모비 딕』, ‘쥘 베른 걸작선집’, 『로마인 이야기』, 『월든』.

-앞으로 옮겨보고 싶은 고전이 또 있나요?

고등학교 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교롭게도 나는 이 두 책을 한두 달 사이에 연이어 읽었는데, 라스콜리니코프와 뫼르소―너무나도 판이하고 대조적인 두 주인공 때문에 나는 종종 꿈속에서 두 인물을 서로 뒤바뀐 모습으로 만나기도 했지요.

나의 독서 이력에서 서너 번 되풀이해서 읽은 책도 이 두 책뿐인데, 처음엔 소설 속 주인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매달렸으나, 나중엔 그 상이한 자의성이야말로 소설 밖 작가의 재능이자 세계관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소설가가 어떤 존재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고,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 책들을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데, 『이방인』은 언제든지 마음이 내킬 때 착수하면 되겠지만, 『죄와 벌』은 러시아 소설이니까 내가 번역한다면 중역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괜찮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번역을 위해 읽는 책 외에는 어떤 책을 주로 읽으시는지요?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해주신다면?

한때는 추리소설을 즐겨 있었는데, 요즘은 오래전에 읽었던 고전을 틈틈이 꺼내어 한껏 게으르게 뒤적이곤 합니다. 나이가 든 탓일까요? 뽀얗게 앉은 먼지를 툭툭 털고 다시 펼쳐보면, 갈피마다 행간마다 묻어나는 속살의 내음이라니! 그 얼마나 아련하고 황홀한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이런 태도에는 아마 디지털 세상에 대한 아날로그적 반감이 스며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월든』에서 특히 맘에 들거나 아끼시는 구절이나 단락을 몇 개 꼽아주시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한 왕국의 군주다. 그 왕국에 비하면 러시아 황제의 제국도 얼음이 남긴 작은 언덕처럼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하다.”


「맺는말」, 499쪽


“왜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서두르고 또 그렇게 필사적으로 사업에 몰두해야 하는가?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다른 사람이 치는 북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북소리가 어떤 박자를 갖고 있든, 얼마나 멀리서 들려오든, 자기가 듣는 음악에 보조를 맞추도록 내버려두자.”


「맺는말」, 506쪽


“시간이 흐른다고 새벽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하는 빛은 우리에게 어둠과 같다. 우리가 자지 않고 깨어 있는 날에야 새벽이 찾아온다. 새벽은 앞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맺는말」, 516쪽

출처: <사진 제공: 시공사>
나는 지금도 일감을 앞에 두면 언제나 막막한 기분에 휩싸이곤 합니다. 책을 새로 만나고 페이지를 새로 열 때마다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에, 그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그 미지의 곳에 들어서야 합니다. 그때만큼 긴장될 때도 없지만, 그때만큼 가슴이 설레는 때도 없습니다. 나는 언젠가 번역을 '장미밭에서 춤추기'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고통 속의 쾌락, 거기에 번역의 매력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매력에 사로잡혀 번역을 계속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김석희의 역자 후기 모음집 '번역가의 서재'(2008)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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