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세계] 촘스키 박사님! 저.. 질문 있는데요?

조회수 2017. 3. 16. 20: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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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9. 저자와 번역가는 동업자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한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은 한 나라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것도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바로 보이고 제대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번역의 세계]는 해외 도서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그 역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제9화 '저자에게 묻다'입니다.


외국어에 날고 긴다는 번역가도 해석 도중에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자가 왜 이런 단어, 이런 표현을 썼는지가 궁금해집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물어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혹자는 책이 한번 출간되고 나면 저자와는 별개의 삶을 산다는 말도 합니다.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읽히고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노승영 번역가는 가급적 저자에게 물어보는 편을 택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지 한번 들어볼까요.

2009년에 있었던 일이다. 재커리 캐닌의 『숏북』(2010)을 번역하는데 문장 하나가 영 찜찜했다. 원문은 이렇다.


HOLLY HUNTER — 5’2” — won Best Actress for The Piano, although it was a bittersweet victory, as the actor who played the piano had just died in real life.


일단 이렇게 옮겨봤다.


홀리 헌터(157cm): 『피아노』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피아노를 연주한 배우가 얼마 전에 죽었다.


찜찜했던 이유는 영화 『피아노』에서 주연을 맡았던 홀리 헌터가 촬영 당시 피아노도 직접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도 멀쩡했던 배우를 난데없이 죽었다고 하다니. 왜 저자가 이렇게 쓴 것일까. 혹시 잘못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고민 끝에 문장 뒤에다 이런 옮긴이 주를 달았다.


(속지 말 것! 『피아노』에서는 홀리 헌터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옮긴이).


원문에는 없는 말을 억지로 지어내 붙인 셈이었다. 책이 출간된 후 우연히 저자와 이메일로 연락이 닿았다. 나는 내심 그때 번역이 제대로 된 것이었기를 바라면서, 그 문장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 편지글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괄호안의 우리말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붙인 것이다.

Dear Zach,

(친애하는 재크에게),


THE SHORT BOOK was published in Korea 6 months ago. --; Anyway, I can't understand the following sentence:

(『숏북』 한국어판은 여섯 달 전에 출간됐습니다. --; 근데 이해 안 되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 HOLLY HUNTER — 5’2” — won Best Actress for The Piano, although it was a bittersweet victory, as the actor who played the piano had just died in real life.


I've heard Holly Hunter played piano for herself in THE PIANO and I know she haven't died yet. What is the truth?

(제가 듣기로 영화 『피아노』에서 홀리 헌터는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제가 알기로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진실은 무엇인가요?)

이튿날 재크는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마찬가지로 괄호 안의 우리말은 지금 덧붙인 것이다.

Dear Seung Young,

(친애하는 승영에게,)


I realize now that that is an incredibly confusing joke the way I wrote it. What I was trying to say was that an actor played the role of the piano, not that an actor actually played music on the piano. Of course, the piano is an inanimate object, and was not an actor performing as a piano, but that is the kind of joke I was making those days.

(생각해보니 무척 헷갈리는 농담이었군요. 제 취지는 그녀가 『피아노』에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한 게 아니라 피아노 역을 연기한 배우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피아노는 무생물이며 배우는 피아노 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게 당시에 제 유머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재크는 ‘play’라는 단어를 ‘연주하다’와 ‘연기하다’, 두 가지 뜻으로 쓸 수 있음에 착안해 일종의 말장난을 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홀리 헌터가 연기한 주인공 에이다가 피아노와 함께 바다에 빠지는데 그녀만 살아나고 피아노는 바닷속에 잠긴다.


저자는 이 장면을 염두에 두고 피아노를 의인화해 그 역을 연기한 배우가 죽었다고 쓴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로서는 원문을 엉뚱하게 이해한 것으로 모자라 터무니없는 옮긴이 주까지 달았던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번역을 맡은 책의 저자와 메일을 주고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로는 저자의 메일 주소를 입수할 수 있으면,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문답을 주고받았다.


번역 인생 10년(?)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그동안 저자와 주고받은 문답을 정리해봤다. 상대는 모두 25명이었고 분량은 약 1000건(질문 1000건, 답변 1000건)이나 됐다. 200자 원고지로는 1000여 매에 해당한다.

번역을 하면서 굳이 저자에게 뜻을 물어봐야 할까. 더구나 요즘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도 회자되지 않나. 이 말은 텍스트가 일단 저자의 손을 떠나면 그에 대한 해석은 독자에게 달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번역에서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오역은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의도에 반한 번역자의 해석은 창조적 해석이 아니라 틀린 해석을 한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저자에게 연락해 뜻을 물어본다. 저자 중에는 정말로 죽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땐 도리 없다. 아무리 궁금해도 혼자서 머리를 싸매는 수밖에.


저자 중에서 답변을 가장 성의 있게 해주는 사람은 교수들이다. 평소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아선지 번역자가 질문해도 자상하게 가르쳐준다. 메일 주소를 알아내기도 쉽다. 대학교 홈페이지에 가면 메일 주소가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이메일로 문답을 주고받은 저자 중에는 유명한 학자들도 적지 않다.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2015)의 저자 대니얼 데닛은 꽤나 참을성이 있었다. 엉뚱한 질문에도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왜 인간의 조상이 침팬지인가』(2015)의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답이 수월했다. 궁금한 문장 하나를 명쾌하게 가르쳐주었다.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2011)의 노엄 촘스키에게도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답변에는 외국에 나가 있어서 5개월 뒤에나 돌아온다고 적혀 있었다. 비서가 대신 답한 것 같았다. 포기하고 혼자 해결했다. 공저자가 세 명이나 되는 『로드사이드 MBA』의 경우에는 셋 다 동시에 메일을 보내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사람이 답장을 보내왔다.


요즘은 저자들 중에도 SNS를 활발하게 쓰는 이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해준다. 저자의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에 멘션을 보내 메일 주소를 주고받은 다음 소통한다.


이런 저자들의 특징은 질문을 보내자마자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메일 맨 아래에는 대개 “Sent via Blackberry”나 “Sent from my iPhone”이라고 쓰여 있다. 모바일 폰으로 즉답한 것이다. 휴가 중에 답장을 하는 저자도 있다.


SNS를 하지 않는 저자의 경우에도 저자나 도서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이메일을 문의할 수 있게 돼 있는 곳이 많다. 저자로서도 자신의 취지가 외국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번역자의 질문을 반기고 애매한 문장은 쉽게 풀어 써주기도 한다.

반면에 아주 비협조적인 저자도 있다. 아무리 검색해도 이메일 주소조차 알 수 없거나 에이전시에 문의해도 감감무소식인 경우다. 간신히 연락이 닿아도 다음 책을 쓰느라 바쁘니 알아서 번역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명색이 번역가라면 자력으로 해석하고 옮길 수 있어야지, 저자에게 의지하는 것은 구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엔 저자의 의도를 중시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질문도 몰라서 하는 게 아니라 미심쩍어서 한다.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했던 해석이 틀린 경우는 열 번에 한 번 정도 된다. 그 한 번의 오역을 피할 수 있다면야 열 번의 질문으로 저자를 귀찮게 하고 내 시간을 쏟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질문의 출발점은 번역자인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나의 무지가 드러날 때도 있다. 한번은 저자로부터 '주변의 영어 원어민에게 물어보라'는 답장을 받은 적도 있다. 어찌나 망신스럽던지. 하지만 대부분의 저자는 언어적·문화적 차이로 인해 번역자가 오독할 수 있음을 충분히 감안한다.

물론 책에 따라서는 저자에게 물어보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특히 문학 작품이 그렇다. 이 경우에는 번역자가 우리말의 한계와 가능성에 맞춰 원작을 재구성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번역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어려울 때도 많다.


소설을 주로 번역하는 동료 번역가의 말로는 저자에게 질문을 보내고서 답장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텍스트에 전부 담겨 있으며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저자라면 “당신의 문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번역자의 의문이 원망스러울지 모른다.


저자에게 물어본다고 해서 번역자가 저자에게 종속된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최종 판단은 번역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임도 번역자의 몫이다. 번역계에서는 ‘저자의 의도’라는 말이 일종의 금기어처럼 돼버렸지만, 저자의 의도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절대적 권위를 가지지 않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저자의 의도는 문장의 뜻을 파악하는 데 훌륭한 참고 자료임에 틀림없다. 번역자로서는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이용할 의무가 있다. 그런 점에서 번역자와 저자는 다른 언어권의 독자에게 최상의 글을 선사하기 위한 멋진 잠재적 동업자들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소개



노승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한 후 컴퓨터 회사와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2006년에 출판 번역에 입문해 11년째 번역을 하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번역가이자 실력만큼 속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계형 번역가. 지금까지 50권가량을 번역했다. 편집자가 뽑은 《시사인》 2014년 올해의 번역가로 선정됐다.


주요 역서로는 멜러니 선스트럼의 『통증 연대기』, 노엄 촘스키의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 아룬다티 로이의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이단의 경제학』,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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