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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7일 오후 7시, 대치동에 위치한 프릭업 스튜디오에서는 ‘KT GIGA 인터넷 아프리카TV 스타리그 시즌2’(이하 ‘ASL 시즌2’) 4강전이 열렸습니다. 결승도 아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여기에 쏠렸습니다. ‘스타크래프트 : 브루드워'(이하 ‘스타크래프트’) 최고의 라이벌 중 하나로 꼽히는 이제동 선수와 이영호 선수의 ‘리쌍록’이 무려 6년 만에 열렸기 때문인데요, 현장에는 1천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고, 온라인에는 20만명이 넘는 시청자가 모여 화제성을 입증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생명을 유지해 온 아프리카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에서 제작한 전략 게임입니다. 직접 해 본 사람이 없을 수 있지만, '임요환'이나 '홍진호'정도는 들어보신 분도 많을겁니다. 거의 20년이 돼 가지만 PC방에선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오버워치’, ‘리그오브레전드’ 등이 대세가 됐지만, 대한민국 e스포츠의 역사는 ‘스타크래프트’로 시작됐습니다. 팀 단위로 진행되는 프로리그가 있었고, 개인전으로 치르는 스타리그와 MSL이 있었습니다. 물론 영원한 것은 없죠. ‘스타크래프트’도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다. ‘스타크래프트2’의 등장에 승부조작 사건까지 불거지며 서서히 소멸했습니다. 게임의 대명사 자리도 ‘오버워치’와 ‘리그오브레전드’에 내줬고요.

프로리그가 사라졌다는 말은 ‘스타크래프트’를 업으로 삼던 직업인들이 직장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스타크래프트’는 명맥을 유지했고, 이번에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이는 순전히 아프리카TV 덕분입니다. 전직 프로게이머들이 BJ로 활동한 덕분에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마지막 최강자로 꼽히는 ‘최종병기’ 이영호 선수도 ‘스타크래프트2’에서 은퇴한 후 개인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꼭 1년이 돼 갑니다. 이영호 선수는 얼마 전 ASL 시즌2에서 우승하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프릭업 스튜디오에서 이영호 선수를 만나 지난 1년간 BJ 생활을 되돌아봤습니다.

이미지 '별로'였던 아프리카TV에 오다

이영호 선수는 각종 ‘최연소’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영호 선수는 다른 선수들이 은퇴하고 BJ로 전향하고도 한참 동안 현역으로 남았습니다. 이영호 선수가 프로게이머일 때 아프리카TV BJ는 생각지도 않은 옵션이었습니다. 이영호 선수는 “그때 아프리카 이미지가 한창 안 좋을 때였고, 프로게이머들도 꺼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영호 선수는 선수 은퇴 이후 본격적으로 BJ로 활동에 나섰습니다. 아프리카TV가 적극적으로 나선 탓입니다. 이영호 선수는 “선수 은퇴를 이후 중국, 트위치, 아프리카TV 등 많은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라며 “아프리카TV 쪽에서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했고, 전 프로선수도 많이 있으니까 ‘한 번 해봐야겠다’ 생각해서 들어오게 됐다”라고 당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지금의 이영호 선수를 있게 해 준 ‘스타크래프트’인 만큼, 마무리는 ‘스타크래프트’로 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습니다.

처음에는 ‘클린 방송’을 표방했습니다. 아프리카TV가 이미지가 좋지 않은 플랫폼임을 의식해섭니다. 이영호 선수는 “’다른 스타크래프트 게이머와 다른 방송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들어왔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밝혔습니다. 방송을 지속하면서 아프리카TV의 이미지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이영호 선수는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철구 형도 요새는 심한 것도 안 하고, 옆에서 보면 진짜 방송 생각만 한다”라며 “한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을 존경하는데, 존경까진 아니지만 ‘대단하다. 인정해야 한다’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프리카TV BJ로 진로를 결정한 뒤에는 콘텐츠를 준비하기 위해 ‘스타크래프트’ 실력을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집중 연습했습니다. 준비 기간이 짧아 ‘스타크래프트’ 실력 회복에 주력하다보니, 방송을 풀어가는 쪽은 다소 미흡했습니다. 이영호 선수는 “준비가 부족해 첫날에는 방폭(에러로 인한 방송종료)도 많이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방송에 임했는데, 요즘에는 스스로 즐거운 방송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영호 선수가 전업 BJ가 된 지 이제 꼭 1년이 돼 갑니다. 아프리카 방송 애청자는 26만명, 유튜브 구독자는 5만명입니다. 유튜브는 아프리카TV 측에서 운영해주고 있습니다. 소소하게 소통하는 방송은 3천명 정도 실시간으로 접속해 있고, 많아지면 1만명에서 1만5천명 정도가 들어옵니다.

삶의 질은 BJ가 프로게이머보다 낫더라

이영호 선수가 2011년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받은 연봉이 3억원입니다. 인센티브, 개인리그 보너스를 제외한 금액입니다. 전성기가 지난 지금, 아프리카TV 개인방송을 해서 버는 돈이 그에 못지않습니다. 이영호 선수는 “스타크래프트2 게이머일 때보다는 확실하게 많이 벌고, 스타크래프트1 시절과 비교해도 적게 벌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영호나 이제동 선수 같은 최상위급 선수 출신만 더 버는 게 아닙니다. 물론 방송인만큼 개인이 하기 나름이지만, 이름값이 낮았던 선수들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채정원 아프리카TV 인터랙티브콘텐츠 사업본부장은 “2군 혹은 빛을 보지 못했던 선수들도 자신만의 끼를 발산해 선수 시절보다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영호 선수는 “모든 BJ가 게이머 때보다 잘 벌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반적인 삶의 질도 좋아졌습니다. 2007년 <한겨레>기사에 따르면 프로게이머들은 최소 주 66시간의 훈련을 진행했고, 2군 선수는 1군 선수의 훈련 상대 구실을 하면서 숙소 정리 등 잡일까지 맡았다고 합니다. 물론 BJ라고 마냥 편한 건 아닙니다. 새벽까지 방송하면서 다소 불규칙한 생활을 하게 되고, 방송을 진행하며 생기는 스트레스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게이머 시절보다는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다는 게 이영호 선수의 생각입니다. 본인이 하고 싶을 때 방송할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강한 ‘추억의 힘’, 지속성은 물음표

이번 ASL 시즌2가 성공했던 이유는 스타플레이어인 ‘택뱅리쌍(김택용, 송병구, 이제동, 이영호 4명의 스타플레이어를 지칭하는 말)’이 참여해서입니다. 물론 스타는 아프리카TV에서 여전히 잘 ‘먹히는’ 콘텐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추억만으로 유지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새로운 스타플레이어가 등장할 수 없고, 기존 인기 BJ들은 입대를 앞두고 있어 수년 뒤를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추억의 힘은 강력하기는 하지만 지속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게이머들도 스타만 하는 게 아니라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반응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직 ‘스타크래프트’라는 콘텐츠가 가진 힘은 은퇴 이후가 막막했던 프로게이머가 전문 방송인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정도는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