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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초격차'는 이미 따라잡히고 있다

조회수 2021. 5. 10. 16: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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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른 삼성과 경쟁사의 현재 구도, 그리고 흔들리는 1등 삼성의 지위와 향후 과제를 짚어봤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함축하는 단어는 바로 ‘초격차(超隔差)’다. ‘기술 격차’에 ‘초(超)’라는 접두어를 붙인 이 단어는 2009년 삼성의 공개석상에 언급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회사를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의 동명 저서 <초격차>에 따르면 ‘독보적 기술력으로 경쟁사와 격차를 크게 벌리고 슈퍼 사이클을 만든다’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격차는 유지되고 있을까. 점유율은 여전히 높다. 삼성전자의 세계 시장에서 디램(D램) 점유율은 40%, 낸드플래시는 30%로 각각 세계 1위이며 파운드리도 2위에 위치했다. 다만 최근 업계에서 들리는 이야기나 증권가 리포트, 보도 등을 보건대 삼성전자의 반도체 상황은 과거 ‘초격차’를 말할 때와 결이 다르다.

출처: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관련해 주목할 회사는 바로 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Micron)이다. 지난해 11월 176단 3D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만든 데 이어, 지난 1월엔 1αnm 디램(D램)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메모리반도체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뒤처졌던 마이크론이 앞선 두 업체보다 더 나은 기술을 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NH투자증권에서 낸 ‘마이크론에 추월당한 한국 반도체’ 리포트가 눈에 띈다. 증권가에서 ‘추월’이란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 현 상황만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국내 업체보다 늘 한 세대 늦게 디램과 낸드 제품을 내던 마이크론이 격차를 좁히다 못해 역전했기 때문이다.

출처: (사진=마이크론 홈페이지)

1αnm는 선폭이 14나노미터인 디램이다. 선폭은 얼마나 미세하냐에 따라 반도체 성능이 좌우된다. 삼성전자는 자사 최첨단 공정 제품인 1znm(15나노미터) 디램을 7nm 이하 선단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노광공정 장비로 만든다. 반면 마이크론이 만든 1αnm 디램은 EUV보다 미세공정에 뒤쳐지는 불화아르곤 액침(ArFi) 장비가 쓰인다. 이전 세대 장비를 쓰는 마이크론이 차세대 디램 생산에서 더 앞선 것이다.


마이크론은 어떻게 기술적 도약에 성공했을까. 지난 3월 도현우 연구원이 쓴 NH투자증권 리포트를 참고할 만 하다. 리포트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경쟁사를 의식하지 않고 공정 개발 방향을 정했다. 반도체 선단 공정에서 EUV는 필수 장비이지만 대당 2000억원에 달해 비싸고 매년 생산 수량도 40여대에 불과해 현재 돈이 있어도 필요한 만큼 구하기 어렵다.


이에 마이크론은 기존 ArF 이머전 장비로 1αnm 디램을 만드는 데 주력한 끝에 양산에 성공했다. 선폭 미세화는 회로를 그리고(노광) 불필요한 부분을 깎는(식각) 공정을 반복하는 ‘멀티 패터닝’을 적용해 극복했다. 디램 미세공정에서 한발 앞서나간 마이크론은 1βnm 디램까지 ArFi 장비가 더 효율적이라 강조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EUV를 본격 적용한 제품을 만들기까지 향후 1~2년은 시간을 벌 수 있는 셈이다.


도현우 연구원은 “가능하다면 기존 장비를 활용하는 게 빠른 신제품 개발에 더 유리하다. 마이크론의 세계 최초 1αnm 개발은 이러한 점들이 작용했다”며 “경쟁사가 아직 1αnm 개발을 완료하지 못한 반면 마이크론은 ES(Engineering Sample)가 완료됐고 상반기 중 CS(Customer Sample)가 완료돼 하반기에 본격 출하될 계획”이라 설명했다.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만든 7세대 176단 3D V낸드도 기술적으로 유의미하다. 비록 88단 낸드 두 개를 겹쌓은 ‘더블 스택’이라곤 하나, 비트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면서도 기존 ‘플로팅 게이트’보다 난도가 높은 ‘리플레이스먼트 게이트(Replacement Gate)’ 기술을 적용해 셀 간 전기적 커플링 문제를 해소했다. 이 제품은 128단 V낸드와 비교했을 때 읽기·쓰기 레이턴시가 약 25% 이상 개선됐고 전력 효율도 늘었다고 한다.

출처: (사진=마이크론)
마이크론은 176단 3D V낸드를 업계 최초로 개발했다.

물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서로 상황이 다르다. 마이크론이 수율보단 기술 전환을 우선으로 접근하고 있고, 아직 EUV 공정 체제도 본격화하지 않은 상태다. 낸드의 경우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출시할 7세대 V낸드에서 처음 더블스택 기술을 적용한 176단 제품을 양산할 것이라 밝혔다. 경우에 따라 200단 이상의 낸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그간 1년 이상 기술이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던 마이크론이 치고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에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4월 29일 1분기 실적 발표 직후 기관투자자 설명회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질문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이날 컨퍼런스 콜에서 “올해 하반기 중 14nm 디램 양산을 계획하고 있고 이미 주요 칩셋 업체의 평가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며 “싱글 레이어에 EUV를 적용한 이전 세대 공정과 달리 14nm부턴 다수 레이어(층)에 EUV 공정을 적용할 계획”이라 강조했다. 차세대 공정의 핵심은 EUV이며, 결국 중장기적으로 이 선택이 기술적 우위를 담보함을 천명한 것이다.


낸드에 대해선 “낸드 기술 패러다임은 레이어수 뿐 아니라 스택킹 효율성 측면도 중요하다”며 “우리는 싱글스택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 난이도 선순환 구조를 확보하고 더블스택 기술을 셀 레이어 기준으로 200단 후반까지 적용해서 탁월한 원가 경쟁력을 유지할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낸드를 싱글스택으로 128단까지 양산 가능한 만큼 더블스택으로는 산술적으로 256단까지 가능하다는 걸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삼성전자 평택2공장.

다만 이런 상황만으로도 삼성전자엔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전통적으로 앞선 기술력을 바탕에 두고 가격으로 경쟁사를 누르던 ‘치킨게임’ 전략을 통해 초격차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업체 간 기술 격차가 좁혀진 가운데 반도체 시장이 ‘슈퍼 사이클’을 타고 있는 현 상황에선 기존 전략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메모리 반도체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EUV 공정 적용을 본격화하고 있고, 디램 점유율 4위인 난야테크놀로지는 신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으며, 낸드 점유율 3위인 웨스턴디지털(WD)은 마이크론과 함께 업계 2위인 키옥시아를 인수할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에도 투자해야 하는 삼성전자로선 이들의 추격을 떨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도현우 연구원은 리포트에서 “치킨게임으로 대변되던 과거 선두업체의 전략은 1년 이상의 기술력 격차가 배경”이라며 “디램에서 이익률 차이가 이미 10%포인트 미만으로, 이런 환경에서 공격적 투자로 디램 가격이 하락하면 자사 수익성 둔화도 후발업체 못지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경쟁사로부터 추격을 당하고 있다면,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수탁생산)에선 ‘넘사벽’ TSMC와의 격차를 쉽게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점유율 기준으로 TSMC는 지난해 1분기 48%에서 올해 1분기 56%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19%에서 18%로 줄었다. 단순히 세계 1위와 2위로 나누기엔 격차가 40%포인트에 육박할 만큼 크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서 TSMC에 밀리는 이유론 비즈니스상 차이가 주로 꼽힌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기치 아래 TSMC는 파운드리에만 전념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자사에 필요한 반도체 제품을 만드는 ‘종합 반도체 회사’(IDM)다. 기술 유출에 민감한 회사들로선 삼성전자보단 TSMC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기는 게 더 안정적이다.


TSMC와 삼성전자는 미세공정상 기술 격차도 있다. 2017년 막대한 투자를 통해 7nm까지 ArFi를 밀어붙이면서 글로벌 주요 고객사를 확보한 TSMC는 2019년 5nm부턴 EUV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AMD의 CPU를 비롯해 브로드컴, 퀄컴, 엔비디아 등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출처: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의 패키징 기술 '엑스큐브'.

삼성전자는 10nm에서 파생공정을 만들었다가 8nm부턴 LPU(Low Power Ultimate) 공정을 도입한 뒤 7nm에서 본격적으로 EUV를 쓰고 있다. 5nm는 2020년 4분기 첫 세대 신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올해 하반기까지 2세대, 3세대 제품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TSMC가 5nm 제품 공급을 2019년 말부터 시작했으니 두 기업의 기술 격차는 약 1년으로 보인다.


반도체에서 선폭의 크기가 작아질 수록 공정의 난이도는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폭 미세화에 한계가 있다면 결국 다른 쪽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삼성전자는 트랜지스터 구조를 기존 ‘핀펫’(PinPET)에서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나아가 패키징에선 3D 실리콘 관통전극(3D-TSV)를 상용화했고 3D 적층 기술인 ‘엑스큐브’, 2.5D 패키징인 ‘아이큐브4’ 개발은 물론 2019년 삼성전기로부터 이관받은 ‘팬아웃 패널레벨 패키징’(FO-PLP)에도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출처: (사진=삼성반도체이야기 홈페이지 갈무리)
삼성전자는 3nm 공정에 GAA 방식을 적용하려 한다.

파운드리에서 삼성전자는 TSMC를 따라잡기 위해 미세공정에서의 기술력 확보는 물론이고 트랜지스터 구조 변화, 패키징 기술력 다변화 등을 동시에 이뤄내야 한다. 여기에 메모리 반도체에서 마이크론, SK하이닉스 등 후발 주자의 추격을 막아야 하며, ‘IDM 2.0’으로 파운드리 확장을 꾀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룡’ 인텔의 잠재적 위협에도 대비해야 한다. 장기적으론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에 막대하게 투자하고 있는 대만과 미국, 중국의 공세도 위협 요인이다.


삼성전자는 1980년대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의 ‘씨앗’을 뿌렸고, 이후 지난해 작고한 이건희 회장 체제에서 글로벌 선두 반열에 오르는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과거와 같은 혁신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그 사이 경쟁 업체들의 추격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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